대 전에서 0시50분에 떠나는 목포행 완행열차가 실제로 있었을까? 사실이든 아니든 유행가요 ‘대전 블루스’는 중년층의 애창곡이다. ‘세상은 잠이 들어 고요한 이 밤…’, 이 노래는 변변한 이별의 말도 제대로 나누지 못하고 열차에 몸을 싣는 애절한 마음을 가슴저리게 뿜어 올리고 있다.
40대가 넘은 지방 출신 사람들에게 ‘완행열차’와 ‘대전’은 남다른 존재다. 경부선과 호남선이 만나고 갈리는 곳이 대전이다. 공업화가 진행됨에 따라 농촌 젊은이들은 물동이와 호밋자루, 지게와 쟁기를 내던지고 너도나도 서울로 향했다. 그들의 정처(定處)는 그냥 ‘서울’이었다. 서울에 가서 무엇을 어떻게 해봐야 할지에서는 달리 대책이 없었다.
한국 최고의 무사고 기관사
상행선 열차가 대전쯤에 이르면 고향역에서 완행열차에 몸을 실었을 때의 두려움과 설렘도 눅눅해져 버린다. 완행열차 객실에서 대여섯 시간이나 부대꼈으니 몸도 지칠 대로 지쳤다. 이럴 때 ‘이곳 대전역에서 20분간 정차하겠습니다’라는 차내방송은 상경길에 녹초가 된 몸을 추스리라는 시그널이다. 언 손을 ‘후후’ 불어가며 가락국수 한 그릇으로 원기를 되찾고 고단한 서울길에 다시 나섰던 것이다.
기차를 처음 탔을 때 궁금한 게 하나 있었다. ‘기차도 자동차나 선박처럼 운전사가 핸들을 돌려서 방향을 바꿀 것인가? 아니면 열차 바퀴와 레일이 맞물리기 때문에 레일이 휘어진 대로 알아서 방향을 틀어지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그것이다. 레일이 휘어진 대로 방향을 트는 것이 기차라면 기관차 운전사(기관사)는 뭣하는 사람일까?
부끄러운 얘기지만 나는 아직도 이 의문에 대해 명쾌히 답변할 수가 없다. 태평양을 가로지르는 비행기도 이륙 전에 자동항법장치에 코스를 입력해 놓으면, 이륙 후에는 조종사의 조작 없이도 비행이 가능한 세상이다. 그러니 기관사가 원시적으로 핸들을 조작하지 않아도 기차 방향이 바뀔 것이라고 막연히 추측할 뿐이다.
대전으로 간다. 대전역 부근에 기관차 승무사무소가 있고, 그곳에는 우리나라 최장의 무사고 기록을 보유한 기관사 신범철씨(53)가 있다.
그는 지금 대전-부산 간을 운행하는 경부선 열차의 기관사로 있다. 새벽에 부산을 출발하여 이제 막 대전에서 후임자와 교대하고 나왔다는 신씨를 만났다. 만나자마자 평소에 벼르고 있던 궁금증부터 털어놓았다.
―기찻길의 레일이 굽어진 곳에서, 기관사는 자동차 운전하듯이 방향을 돌립니까?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자동차가 다니는 길은 넓기 때문에 자동차는 상황에 따라 진행 방향을 이리저리 바꿔야 하지만, 기관차는 레일 위를 달리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기관차 바퀴 방향을 바꾸면 탈선하게 돼 오히려 큰 사고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기관사가 이리저리 핸들을 조작해서 방향을 바꾼다면 큰일입니다.”
신씨가 씽긋 웃고 나서 차륜이 어떤 원리로 레일을 이탈하지 않고 맞물려 진행하는지에 대해 한참 설명했다.
―그렇다면 간간이 일어나는 탈선사고의 원인은 어디에 있습니까?
“여러 가지 원인이 있지요. 기관차나 객차에 어떤 결함이 있다든지, 아니면 선로가 놓인 지반에 문제가 있는 경우 탈선할 수도 있지만, 그런 사고는 지극히 드물어요.”
―현업 기관사 중에 최장 무사고 기록을 갖고 있다고 들었는데, 기관사의 무사고 기록은 어떻게 관리되는 것입니까?
“기관사 잘못으로 일어난 사고는 기관사 책임으로 돌아갑니다. 속도 조절을 잘못 해서 과속을 했다거나, 기관차나 객차의 결함 여부를 사전에 발견하지 못했다거나, 또한 역 구내에서 기관차의 선로를 바꿀 때 잘못하면 사고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습니다. 크든 작든 사고가 발생했을 때 그것이 기관사의 잘못이라는 게 판명되면 그 동안 쌓아온 무사고 기록은 없어지고 제로 상태에서 다시 출발하게 됩니다.”
현재 신씨의 무사고 기록은 142만㎞다. 기관사가 된 이래 이 기록이 한번도 제로로 환원된 적이 없다고 한다. 기관사가 된 이래, 적어도 자신의 잘못으로 사고를 일으킨 적이 한번도 없다는 얘기다. 우리 나라에 철도가 생긴 이래 최장 무사고 기록은 142만 3200㎞로, 97년도에 정년퇴직한 장병권씨가 갖고 있다. 신씨의 현재 기록과는 3200㎞ 차이가 난다. 신씨는 취재차 만났던 9월 말에 “앞으로 15일만 사고를 내지 않으면 한국 최고 기록을 경신하게 된다”고 했다. 이 기사가 나갈 무렵이면 그는 이미 연일 신기록을 경신하고 있을 것이다.
하나님과 함께한 무사고 기록
그렇다면 기관사가 하는 일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우선 발차 역에서 시동을 걸어서 열차를 움직이게 하고, 목적지에 다다르면 멈추게 하는 일이지요. 열차 운행 전에 열차의 이상 유무를 검사하는 일도 기관사의 의무 중 하나입니다. 물론 정비 담당자들이 따로 있지만 그걸 믿고 탔다가 문제가 생기면 그 책임은 기관사에게 돌아옵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이렇다. 기관사는 운행할 동력차를 인수받아 검수(檢受) 당담자에게서 기관차의 상태에 대해 설명을 듣는다. 이어 동력차의 성능과 정비 상태를 점검한 뒤에 열차 운행에 들어간다. 운행중에는 역장 및 차장과 긴밀히 연락하고, 각종 신호기·표지·운행시간·운전조건의 변화에 따라 속도를 조절하는 등 제반 조처를 취한다. 종착역에 도착하면 다시 열차를 점검하고, 동력차와 화차 및 객차를 분리한 뒤 동력차를 기관차 사무소에 인계한다.
―사람들에게 기차 소리를 흉내내 보라고 하면 ‘칙칙폭폭’이라고 합니다. 이 ‘칙칙폭폭’은 유치원 시절 우리말 의성어 공부의 대표적인 사례로 통하는데, 사실 그건 증기기관차 시절의 소리 아닙니까?
“그렇지요. 안 맞는 거지요.”
―그렇다면 증기기관차 시절부터 기관사로 일해온 사람으로서, 요즘의 디젤기관차 소리를 흉내낸다면 뭐라고 하는 게 좋겠습니까?
“글쎄요, ‘빠앙’하는 건 기적 소리고… ‘덜크덩 덜크덩’이라고 할 수밖에 없을 것 같은데, 그 소리도 사실은 기차에서 나는 소리라기보다는 선로의 이음매 때문에 나는 소리거든요. 기관차의 기관이 돌아갈 때에는 ‘우우웅’ 하는 시끄러운 소리가 나는데….”
―말이나 글로 표현하기에는 ‘칙칙폭폭’만큼 정취가 있는 것은 없네요. 칙칙폭폭의 정취를 살리기 위해서 그런 소리를 내는 장치를 별도로 만들어 달고 다니면 안 되겠습니까. 나이든 사람들의 향수도 자극하고, 아이들 국어 교육의 일관성도 지켜나갈 겸해서….
신씨는 “그거 참 좋은 생각”이라고 맞장구치면서 한바탕 사람 좋은 웃음을 웃었다. 그가 웃는 모습은 열 량이 넘는 객차를 씩씩하게 끌고 철로를 질주하는 기관사라기보다(물론 기관사가 객차나 화차를 완력으로 끄는 것은 아니다), 시골 초등학교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이 다칠세라 교정의 유리조각을 줍는 교감 선생 쪽이 더 어울릴 것 같은 표정이다. 아닌 게 아니라 그의 어릴 적 꿈은 선생님이 되는 것이었다.
선생님을 꿈꾼 소년
1947년 논산시 연산면 덕암리에서 빈농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고향에서 중학을 졸업하고 교사를 양성하는 대전병설고등학교 입학시험에 도전했다가 낙방했다. 다음해에 다시 도전하려고 재수를 했는데, 말이 재수지 농사일 하느라 변변히 책 한번 들여다볼 짬이 없었다. 그는 그 무렵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는데 스스로 “신앙적 체험을 많이 했다”고 털어놓는다.
그는 지금도 독실한 기독교 신자다. 기관실에 올라가 열차를 운행하기 전에 그는 승객의 안전을 기원하는 기도를 해야 비로소 마음이 평안해진다고 한다. 크리스천이 아닌 독자일지라도 그가 세운 142만㎞ 무사고 기록은, 그와 ‘그의 하나님’이 함께 이룩한 결과라고 평가해주는 데 인색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하지만 그의 기독교 입문 시절은 축복스런 기억으로만 남아 있지 않다.
“학교도 떨어지고 앞길이 막막해서 새로 맛들이기 시작한 신앙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침 저녁 가릴 것 없이 매일 교회에 나갔지요. 좀 우스운 얘긴데, 당시만 해도 저는 교회를 주일(일요일)에만 나가도 되는 곳인 줄 몰랐어요. 교회에 나가는 사람은 직장이나 학교에 가는 일을 함께 해서는 안 되는 줄 알았습니다. 시골 교회여서 그랬는지 ‘고등학교 다니면서도 교회에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을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다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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