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12월호

공공부문 개혁 없이 기업 구조조정 없다

영국경제 구조개혁에 비춰본 한국경제 개혁의 해법

  • 원종근

    입력2006-07-28 10: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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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만일 정부가 공공부문 개혁과 공기업 민영화를 통해 경제개혁에 모범을 보인다면, 정부는 이를 기반으로 강력한 노사관계 개혁 내지 기업구조조정을 국민에게 요구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경제가 표류하고 있다. 구조조정이 지연되면서 주가는 폭락하고 기업활동은 극도로 위축되었으며 금융불안은 날이 갈수록 증폭되고 있다. 국제 유가(油價)도 만만치 않은 장애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현대건설이 부도의 위기를 넘기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고 대우자동차는 끝내 법정관리로 넘어가고 말았다.

    이런 추세가 지속된다면 내년에는 경상수지가 적자로 반전될 것이라는 비관적인 견해도 나오고 있다. 더욱이 부(富)의 편재와 양극화 현상은 우리 사회를 극단적인 갈등과 대립 구조로 몰아가고 있다. 가까스로 경제위기를 극복해내는가 싶더니 다시 위기의 물결이 한국경제를 엄습하고 있다.

    이와 같은 위기의 본질은 무엇일까. 어떻게 해야 이런 위험을 극복하고 한국경제를 다시 한 번 탄탄한 성장궤도에 올려 놓을 수 있을 것인가. 이 글에서는 영국경제 구조개혁의 과정을 심층적으로 살펴봄으로써 우리 경제가 나아갈 기본 개혁방향을 찾아보고자 한다. 1970년대 소위 ‘영국병’이라는 불치의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뼈를 깎는 구조조정으로 경제를 회생시킨 영국의 경험은 우리 경제개혁의 기본방향을 제시해주는 살아 있는 모델이요 교과서라고 할 수 있다.



    영국병과 대처리즘



    영국은 1976년 파운드화의 가치폭락에 이은 급격한 외환보유고 감소로 전례 없던 통화위기에 직면, 당시 노동당 정부는 같은해 9월 마침내 IMF에 자금지원을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이로써 통화긴축·금융제도 개선 등을 주 내용으로 하는 영국경제에 대한 IMF 관리체제가 시작되었다. 그 후 영국은 지속적인 경제개혁 작업을 통해서 이른바 영국병을 치유, 경제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영국경제가 공식적으로 IMF관리체제를 탈피한 것은 1년 만인 1977년 9월이었지만, 본격적인 경제개혁 작업이 이루어진 것은 대처 총리가 집권하던 1980년대였다. 소위 대처리즘(Thatcherism)이라고 불린 이 시기 영국 경제개혁의 초점은 크게 세 가지, 즉 공공부문 개혁, 공기업 민영화 및 노사관계 개혁에 있었다.

    대처리즘의 본질은 영국의 각 부문이 세계수준의 경쟁력을 회복하고 생산성을 향상시키도록 각종 제도를 개선하고 유인책(incentives)을 제공하며, 개혁의 걸림돌을 과감하게 제거하는 것이다. 영국은 당시 세계화라는 용어를 쓰지는 않았지만, 각종 효율(efficiency)과 생산성 (productivity) 기준을 세계 수준에 올려놓는 정책을 씀으로써 세계수준의 경쟁력=세계화=영국화라는 개념을 추구하였다. 이러한 기본등식 개념은 단순히 경제부문뿐만 아니라 공공부문·교육부문 등 사회 각 분야에 무차별적으로 적용되었다.

    대처리즘의 영향을 받은 영국 공공부문 개혁의 특징은 공공부문이 정치의 압력에서 벗어나 ‘시장의 압력’(market pressure)을 받게 했다는 점이다. 이런 개혁의 결과 영국의 공공부문은 민간기업과 같이 비용, 효율성, 생산성 및 성과 등의 개념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재정지출의 절대규모가 대폭 삭감되었고 비용에 비해서 효율성이 낮은 정부조직은 과감하게 정리되거나 민간으로 이양되었다. 즉 공공부문에 시장원리가 도입된 것이다.



    시장원리 도입과 공공부문 개혁

    공공부문 개혁은 규모축소에서 시작했다. 1980년 무려 75만명에 달하던 공무원 수는 87년에 64만명, 97년에 약 51만명으로 감축되었다. 공무원 수를 감축하기 위해 초기에는 신규채용 금지, 부처별 인원감축계획 수립 등 다소 강압적인 방법이 사용되기도 하였으나, 공무원 수 감축의 기본철학은 공무원들로 하여금 제한된 공공자원을 어떻게 사용해야 국민의 후생(welfare) 수준을 높일 수 있는가를 깨닫게 하는 데 있었다. 이는 공공부문의 세계적 경쟁력 달성·유지 여부가 국제경쟁력에 가장 중요한 초석이 된다는 기본 철학이 담겨 있다.

    공무원 수 감축과 아울러 함께 추진된 중요한 개혁 프로그램은 ‘넥스트 스텝’(Next Steps). 반관반민 단체인 각종 대행기구(Agency)를 설립하여 정부의 행정서비스를 대폭 이관·위임하는 제도다. 실상 정부업무의 95%는 국민의 실생활과 밀접하게 연관된 대(對)국민 행정서비스 업무다. 중요한 정책결정 업무는 5%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정부조직 안에 정책결정 업무와 행정서비스 업무가 혼재돼 상대적으로 행정서비스 제공을 소홀하게 취급하는 경향이 있었다.

    넥스트 스텝은 이러한 정부조직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개혁 프로그램이었다. 영국정부는 차량등록 여권발급 등 국민의 실생활과 밀접하게 관련된 110여 개 행정서비스 사업을 각종 대행기구에 이관하였다. 이때 대행기구는 중앙정부와 예산·서비스 품질 등에 대한 계약을 체결하며, 책임자는 재정·인사권을 가지고 독자적으로 운영한다. 정부가 대행기구에 명확한 목표를 부여하되, 목표달성의 방법은 자율에 맡기며 다만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요구하는 체제다. 대행기구의 책임자는 공개경쟁을 통해 선발한다. 이 제도는 1989년부터 시행되었는데, 현재 영국 행정부 업무의 약 75%가 이런 대행기구들을 통해 수행되고 있다.

    넥스트 스텝과 병행하여 메이저(Major)정부가 새롭게 시작한 정부개혁 프로그램은 시장성과측정(Market Testing)이다. 이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모든 업무를 시장성과측정에 부쳐 정부 내부에서 직접 수행할 것인가, 아니면 민간부문에 외주(外注, out-sourcing)를 줄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이다.

    시장성과측정 선별 과정에는 행정부 내부의 지원자와 민간부문 지원자가 서로 경쟁하게 된다. 경쟁 기준은 누가 예산을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함으로써 해당 행정업무의 가치를 극대화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여기서 민간부문 지원자가 이기면 외주 계약이 체결된다. 즉 시장성과측정은 행정업무의 수행 여부를 경쟁에 부침으로써 행정의 ‘품질경쟁’을 유발하는 정부개혁 프로그램이다.

    1992년 시장성과측정 제도를 도입한 후 영국의 정부예산은 20∼28% 절감효과를 보인다. 예산절감보다 더 큰 효과는 행정부의 업무수행이 기업경영과 같은 합리성 추구, 성과측정 및 이의 피드백(feedback), 경쟁촉진 등의 개념이 바탕에 있기 때문에 효율이 크게 증대되었다는 것이다. 시장성과측정의 기본철학은 ‘정부의 행정업무는 기업과 마찬가지로 최고의 경쟁을 통해 최고의 효율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기업뿐 아니라 공공부문도 세계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유지하지 못하면 진정한 세계화를 이룰 수 없다는 영국정부의 사고방식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영국 중앙정부의 효율성 추구는 지방정부의 업무수행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다. 지방정부는 주민의 일상생활에 필요한 행정서비스를 직접 생산·공급하는 주체이며 특히 주택 및 교육은 지방정부 업무의 핵심이다.

    영국의 지방정부는 1980년부터 강제적 경쟁참여제도인 CCT(Compulsory Competitive Tendering)를 통해 업무추진에 경쟁개념을 도입하였다. 이 제도는 1988년 이후 크게 활성화됐는데, 법이 지정하는 일정한 공공서비스에 대하여 지방정부와 민간기업이 함께 입찰에 참여하고 입찰에서 낙찰된 기관이 공공 서비스를 공급하게 되어 있다.

    CCT제도 도입 초기에는 그 대상사업이 일부 도로사업, 상·하수도 사업 등에 국한되었으나 그 후 점차 확대돼 거리청소, 쓰레기 수거, 스포츠·여가시설의 유지 및 관리 업무 등이 편입되었고, 1992년 이후에는 법률서비스, 재무서비스, 정보기술, 긴급공사를 제외한 모든 일반 도로공사 등 전문서비스 업무에까지 확대되었다.

    CCT 사업 중에 쓰레기 수거, 학교 급식, 건물 청소 및 가로등 등 기타 청소업무 등이 비교적 규모가 큰 분야다. CCT 사업규모는 1990년대 이전에는 연간 10억파운드 미만이었으나, 90년대 이후 급격하게 증가하여 1994년에는 잉글랜드와 웨일스 지역의 CCT 사업규모가 연간 60억 파운드 수준으로 급증하였다. CCT제도의 도입으로 지방 공공부문에 기업경영 방식이 채택되었으며, 경쟁 촉진으로 인해 지방 행정업무에 소비자·고객정신이 창출되는 현상이 생겨났다.

    영국의 지방정부는 주택 및 교육부문에서도 기업식 경영기법을 적극 도입하고 있다. 영국의 지방정부는 전통적으로 주택의 신축, 증·개축, 재개발, 주택임대 같은 주택업무를 수행해 왔는데, 중앙정부는 지방정부의 이런 기능을 축소시키고, 민간기업들의 주택공급기능을 확대하는 정책을 채택했다.

    실제로 대처 총리는 재임 초기 수십만채의 공공주택(council house)을 세입자들에게 헐값으로 분양하였다. 그 결과 영국민의 주택소유율은 68%로 유럽 내에서 최고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지방정부의 교육기능도 축소되었다. 영국정부는 1988년 교육법 도입을 계기로 지방정부의 교육기능과 권한을 상대적으로 약화시키고 교육재정 관리에도 효율성과 기업식 경영방식 도입을 강조한다. 이에 따라 각급 학교의 자율성이 크게 제고돼 고용하는 교사의 수와 유형 및 예산 사용에 자율권을 가진다.

    CCT 제도가 가장 크게 공헌한 부분은 주민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지방정부의 행정업무 수행에서 ‘행정서비스의 공급자인 지방정부 대(對) 행정서비스의 수요자인 시민’이라는 고객개념이 창출되었다는 것이다.



    행정서비스의 기준

    정부의 행정서비스 품질에 대한 최종판단은 수요자인 국민의 몫이다. 메이저 행정부는 1992년 영국 국민들이 정부의 행정서비스에 대한 최종 평가를 할 수 있도록 ‘시민헌장’ 제도를 도입하였다. 시민헌장 제도는 다음 여섯 가지 원칙에 근거하고 있다.

    ①서비스의 기준: 국민 개개인이 받을 수 있는 서비스의 기준은 반드시 명확하게 설정하고 공표해야 한다.

    ② 정보제공: 국민 개개인이 제공받는 행정서비스의 내용과 기준을 다른 서비스와 비교할 수 있도록, 모든 관련된 정보는 쉽게 읽을 수 있는 평이한 언어로 제공되어야 한다.

    ③ 국민과 협의: 행정서비스의 소비자인 국민의 목소리를 경청해야 한다. 행정서비스의 수준과 품질을 결정할 때는 반드시 소비자인 국민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

    ④ 공무원의 책임: 공무원은 서신 전화 면담 등 어떤 형태의 대(對)국민 접촉에서도 자신의 이름을 분명하게 밝혀야 한다. 공무원은 언제나 정중하게 도움을 제공하여야 한다.

    ⑤ 불만 시정: 행정서비스의 기준이 맞지 않거나 실수가 있을 경우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시정하여야 하며 아울러 정중히 사과해야 한다. 불만처리 시스템에 대한 접근은 쉬워야 하고 반응은 신속해야 한다.

    ⑥ 예산 자원의 가치 보장: 비효율적이고 관료적인 절차는 배격되어야 하고 행정서비스는 예산 자원의 가치를 극대화할 수 있도록 우선순위가 재조정되어야 한다.

    이러한 시민헌장 개념은 모든 공공분야에 적용된다. 시민헌장의 기준은 매년 상향 조정된다. 예를 들어 런던지하철과 철도는 정확성과 신뢰성 기준을 계속 충족하지 못할 경우에 제공할 보상제도를 도입했으며, 전국보건서비스(National Health Service)는 약속된 수술이 불가피하게 취소될 경우 일정기간 내에 자동으로 입원할 수 있는 보증제도를 도입했다. 또 NHS는 긴급하지 않은 수술대기환자들의 대기기간도 그들이 무한정 기다리지 않도록 그 한계 목표를 설정했다.

    경찰은 긴급호출에 응하는 목표 시간을 제시하였다. 학교들은 자기 학교 학생들의 공적 시험(public examination) 결과를 신문에 게재하여 학부모들로 하여금 다른 학교들과 비교할 수 있게 하였다.

    이와 같은 시민헌장 제도는 공공부문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고, 이를 행정서비스의 소비자인 시민들이 직접 평가하게 함으로써 영국의 대외경쟁력을 향상시키려는 데 목적이 있다.

    이상과 같은 영국의 공공부문 개혁은 1980년 이래 서서히 진행되었으나, 선택 대안들은 가히 극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대처리즘의 정책들은 중도노선보다는 양 극단을 택했다. 한꺼번에 모든 것을 이루려고는 하지 않으나 일단 시작된 개혁조치들은 그 효과가 극명하게 드러날 때까지 추진하는 것이 영국 공공부문 개혁의 본질이다.

    영국정부는 공공부문 개혁을 통해 ‘스스로 불안하게 하는’ 정책 대안을 선택했다. 스스로 불안하게 하고, 스스로 경쟁에 몰아넣는 자기희생적 정책을 선택함으로써 영국의 공공부문 개혁은 성공할 수 있었다. 영국의 공공부문은 스스로 자기보호막을 걷어버림으로써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있는 정부의 전형으로 거듭난 것이다.

    영국 경제개혁에서 또 하나의 중요한 초점은 강력한 공기업 민영화다. 영국은 경제개혁 작업을 이끌어가면서 영국석유(British Petroleum), 영국가스(British Gas), 영국통신(British Telecom), 영국항공(British Airways), Rover자동차 등 거의 모든 공기업을 민영화했다. 이런 민영화를 통해서 과거 국민세금으로 운영되던 공기업들이 이제는 수익을 올려 국가에 세금을 납부하고 있다. 즉 민영화를 통해 공기업들은 더욱 효율성 있고 생산성 있는 민간기업으로 변환된 것이다. 민영화된 공기업 중 많은 기업이 현재 세계적 수준의 경쟁력(global competitiveness)을 보유하고 있다.



    공기업 민영화와 세계적 수준의 경쟁력

    공기업 민영화를 추진하면서 영국정부는 세 가지 원칙을 지켰다. 첫째, 민영화 대상 사업과 서비스를 최대한 경쟁에 노출시켜 민영화 이전에 충분한 경쟁여건을 조성한다는 것. 이러한 경쟁은 효율성을 촉진하고 고객들에게 이익을 고르게 배분하는 효과가 있다. 경쟁여건을 조성하지 않고 민영화를 서두르면, 이는 일부계층이나 부문에 불평등한 이익(windfall profits)을 안겨줄 뿐이다.

    민영화의 둘째 원칙은 가능한 한 국민들의 주식소유를 최대한 확대한다는 것이었다. 영국정부는 특히 종업원들의 주식소유를 장려하기 위한 광범위한 유인책을 고안했는데, 이는 민영화에 따른 노조의 반발을 무마하고 고용을 안정시키며 기업의 경영권을 확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이러한 원칙을 지킨 결과 주식을 소유한 국민들의 숫자가 급증했다.

    민영화의 셋째 원칙은 매각대상 사업이나 서비스의 민영화 추진과정에 최대의 매각수익을 실현하는 것이다. 이는 정부의 재정 건전화에 도움을 줄 뿐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국민의 납세부담을 줄이는 효과를 낳는다.

    영국정부는 공기업 민영화를 통해 효율성 증대, 공공부문의 차입 수요감축, 기업경영에 대한 정부간섭 배제, 공공부문의 임금 결정 부담 경감, 주식대중화와 종업원지주제 장려 및 정치적 이익의 획득을 추구했다.

    영국 공기업 민영화의 목표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경쟁을 통한 기업의 효율성 제고라고 말할 수 있다. 공공부문의 획기적인 효율성 향상과 더불어 기업부문에서도 세계 수준의 대외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경쟁을 통한 기업의 효율성 제고를 위해 영국정부는 우선 경쟁상대가 있는 공기업은 그 소유권을 민간에 이양함으로써 산업 내 경쟁을 촉진시켰다. 독점 공기업의 경우에는 민영화 이후 경영합리화를 유도하기 위해 제품이나 서비스의 가격인상을 억제하고 소비자에 대한 서비스 향상을 도모하는 제도적 보완책을 동시에 강구했다.

    영국의 공기업 민영화는 시기에 따라 이렇게 나눌 수 있다. 제1단계는 1979∼83년으로, 이 시기에는 주로 규모가 작고 이미 경쟁여건이 조성된 공기업들을 민영화했다. 이 기간에 총 12개 공기업이 민영화했으며 이들 공기업의 매각수입은 총 16억 2500만 파운드에 달했다.

    이 기간에 영국정부는 민영화 대상기업의 경쟁여건 조성을 위해 일부 관련 법규를 제정하거나 개정했다. 1980년의 교통법, 81년의 통신법, 82년의 석유 및 가스법, 83년의 에너지법 등이 그 좋은 예다. 이 법들은 각기 교통 통신 석유 전기 등 비교적 독점적 성격이 강한 산업분야에서 기존 규제를 완화하고 경쟁을 촉진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대처리즘 경제개혁의 또 하나 중요한 기둥은 노사관계 개혁이다. 1970년대 영국의 노사관계는 영국병의 주원인이었다. 대처 행정부는 노사관계를 개혁하지 않고는 영국병을 제대로 치유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1980년대 내내 노사관계 개혁작업을 추진하였다. 노사관계 개혁은 1993년 통합 노동조합법의 개정·제정으로 드디어 마무리되었다.

    대처리즘 노사개혁의 초점은 ‘노동시장의 유연화’에 있었다. 대처 행정부는 노동시장의 유연화 작업을 통하여 노동시장·노동조합 운동의 경직성을 해소하고 기업의 탄력성을 높여 결과적으로 대외경쟁력을 제고하는 전략을 사용했다.

    대처 행정부는 1979년 ‘불만의 겨울’을 지난 직후 권력을 장악했다. 1979년 1월22일 영국의 노동계는 NUPE(National Union of Public Employees)의 주도로 대규모 연대파업에 돌입하였다. 지방자치단체, 병원 등 공공부문 근로자들이 주당 60파운드의 최저임금을 요구하면서 연대파업에 돌입한 것이다. 그 결과 학교는 문을 닫았고 거리에는 쓰레기가 넘쳤으며 환자들이 치료를 받기는커녕 병원에 가지도 못하는 최악의 사태가 발생했다. 시민들의 혼란과 고통은 극에 달했고, 끝내는 총선에서 노동당 정부가 실각하고 보수당 정부가 들어섰다.

    불만의 겨울을 지내면서 영국국민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노사관계가 근본적으로 개혁되지 않으면 영국병의 치유가 불가능하다는 국민적인 합의에 도달했다. 총체적인 패러다임의 변화가 요구되었던 것이다. 만성적인 노사분규와 국제수지 적자, 생산성의 급격한 저하, 그런데도 점점 늘어나는 사회복지 수요, 이러한 영국병을 근본적으로 치유하기 위해서는 노사관계에 획기적인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것이 대처 행정부의 판단이었다.

    대처 행정부는 집권 초기부터 노조와 사활을 건 싸움을 시작했다. 실상 1970년대 영국의 노동조합은 ‘제2의 정부’였다. 영국은 전통적으로 의회민주주의 국가였지만, 1970년대에는 ‘영국을 지배하는 것이 의회인가, 노조인가’라는 말이 회자될 정도로 노조의 정치적 영향력이 증대되었다. 1970년대 영국의 빈번한 정권교체는 사실상 노조의 영향력 때문이었다. 노조는 때로 법과 질서를 무시하면서까지 전투적 파업을 단행하여 자신의 이익을 관철하려 했다.



    노조와 정면대결

    대처 행정부는 1980년대 ‘고용법’과 ‘노동조합법’ 개정을 끊임없이 반복하면서 노조의 법적 지위를 떨어뜨렸고 노조의 조직력을 약화시켰다. 그 결과 ‘클로즈드 숍’이 금지되었고, 동조파업 및 지원파업이 금지되었으며, 노조간부 선출이나 파업결정 등에는 반드시 비밀투표를 하도록 법으로 규정했다.

    노조의 불법파업에 대해 행정부는 전례없이 강경하게 대처하였다. 1984년 탄광노조(NUM)불법파업에 대한 영국정부의 대응이 좋은 예다. 1984년 중반부터 이듬해 3월까지 근 1년이나 지속되었던 탄광노조 파업에 대해 대처 행정부는 탄광산업 자체를 포기할 각오로 강경대응 방침을 고수했고 결국 노조를 굴복시켰다. 이 사건은 영국 노동운동에 큰 분수령이 되었다. 이후 영국의 노조들은 불법파업 관행을 포기하고 준법운동으로 그 행로를 바로잡았다.

    영국의 보수당 정부는 1980년의 고용법, 82년 고용법, 84년 노동조합법, 88년 고용법, 90년 고용법, 93년 통합 노사관계법 개정 및 제정을 통해 꾸준히 노사관계를 개혁해왔다. 법률에 기반을 둔 노사관계 개혁은 클로즈드 숍(Closed shop)을 금지하고, 불법파업을 분쇄하며, 노동조합 내부의 민주화를 촉진해 노동조합을 합리적인 기구로 변모시키고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확보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대처 행정부는 노동조합의 탈정치화 이념을 추구하였다. 노동조합이 정치에 개입하면 경제정책이 노조의 정치논리로 인해 왜곡된다는 것이다. 대처 정부는 이러한 이념을 일관성있고 꾸준하게, 법률에 의거한 정통성을 가지고 추구하였다. 그 결과 영국의 노동시장은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유연하고 신축성 있는 시장으로 변모했다.

    영국의 노동조합들은 더 이상 경직되거나 파괴적이지 않으며 사용자들과 매우 협력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파괴력을 지녔던 영국의 노조는 이제 전세계에서 가장 합리적인 노조로 변모했다. 의사결정 방법과 과정도 매우 민주적이다.

    노조의 개혁은 1979년 대처가 집권할 당시만 해도 거의 불가능한 일로 여겨졌다. 1970년 6월에 집권한 보수당의 히드 수상은 ‘조용하지만 총체적인 혁명을 신속히’ 이루겠다고 공언했지만, 집권 4년 동안 노조에 끌려 다니다가 결국 구조개혁에 실패하고 물러났다. 1970년대 중반에 집권한 노동당의 캘러헌(Callaghan) 정부도 노조의 영향권에서 끝내 벗어나지 못하고 결국 ‘불만의 겨울’ 사태가 지난 후 보수당에 정권을 내주었다.

    그러나 대처 행정부는 역대 어느 행정부보다 강력하고 일관성 있게, 신념을 가지고 노사개혁을 추진했다. 대처 정부는 일시적으로 고통과 희생이 뒤따르겠지만 유연한 노동시장 창출을 통해 궁극적으로는 효율적인 경제성장과 고용증대를 이룰 수 있다고 믿었다. 대처 정부는 노사개혁 과정에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고통과 희생을 마땅히 감수할 각오를 하고 용기있게 노사관계를 개혁해 나갔다.

    이러한 영국의 노사관계 개혁은 세계 모든 나라에서 노사정책의 귀감이 되고 있다. 가장 영국적인 노사개혁이 가장 세계적인 모델이 된 것이다. 이렇게 노사개혁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노사개혁에 대한 합리적 이념 추구와 ‘자유경제’ ‘작지만 강력한 정부’를 지향한 대처 행정부의 강력한 통치이념이 있었기 때문이다.



    매각·퇴출·도태로 사양산업 처리

    대처리즘 경제개혁의 또 하나의 특징은 사양산업 처리 정책이다. 대처 행정부는 세계적인 경쟁력을 유지할 수 없는 사양산업들을 과감하게 매각하거나 퇴출시켰다. 공기업 중 민영화를 통해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는 기업이나 사업부문은 민간에 매각함으로써 경쟁력 회생을 꾀했고, 민영화를 해도 경쟁력을 회복하기 어렵다고 판단되는 사업부문은 과감하게 퇴출시켰다. 민간기업의 경우에도 경쟁력이 없는 경우에는 시장원리에 따라 자연 도태하도록 방치했다.

    대처 행정부가 출범하던 1980년에 영국의 평균 노동생산성은 미국의 3분의 1, 일본의 2분의 1 수준에 머물렀다. 반면 영국의 노조, 특히 석탄 철강 자동차부문 등의 노조는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노조였다. 대처 행정부는 이렇게 경쟁력 없는 산업의 노조를 해체할 뿐 아니라 경제성이 없다고 최종적으로 판단될 경우 아예 그 산업 자체를 폐쇄하기도 했다. 1980년에 폐쇄한 브리티시 레일랜드 자동차회사 및 영국철강공사가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노사개혁 부문에서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석탄산업의 경우 대처 행정부는 전례없이 강경한 정책으로 탄광노조(NUM)를 굴복시켜 해체했고, 결국 산업 자체를 거의 폐쇄하다시피 하였다. 1955년 약 850개에 달하던 탄광 수가 1992년에는 50개로 감소했고, 같은 기간 약 70만 명에 달하던 광부 수도 4만4000명 선으로 감축했다.

    강력한 산업구조조정은 영국병을 치유하고 영국경제를 새로운 발전의 궤도에 올려놓았지만 부작용도 적지 않았다. 가장 큰 부작용은 산업구조조정 과정에 약 400만 명의 실업자가 배출되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실업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영국정부는 다양한 직업적응훈련 및 새로운 직업을 창출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영국의 사양산업 처리 정책은 이후 세계 각국 산업정책에 중요한 모델이 되었다. 이는 영국이 다른 나라에서는 거의 상상할 수 없는 강력한 사양산업 처리 정책을 일관성 있게 밀고 나가 산업구조조정을 이루어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영국경제는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영국경제가 새롭게 도약하고 있는 것은 80년대에 이와 같은 산업구조조정의 대가를 지불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앞에서 영국경제 구조개혁의 내용을 심층적으로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영국경제 개혁에서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는가? 한국경제 개혁의 기본방향은 무엇인가?

    해답은 한국경제가 공공부문에서부터 개혁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대처리즘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영국정부가 솔선하여 공공부문 개혁 모범이 되었기 때문이다. 영국정부는 스스로 불안하게 하고, 스스로 경쟁에 몰아넣는 자기희생적 정책의 선택으로 개혁을 추진하였다. 자기 보호막을 스스로 걷어버렸던 것이다.

    당초에 불가능해 보이던 경제개혁을 성공리에 마무리할 수 있었던 것은 이렇게 자기 희생적인 정부개혁을 대처 행정부가, 솔선해서 감행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개혁으로 영국정부는 국민에게 무엇인가 요구하고 강요하며 투입시키는 ‘투입의 정부(government of input)’에서 국민을 위한 서비스를 창출하고 봉사하는 ‘산출의 정부(government of output)’로 거듭날 수 있었다.

    우리 경제가 다시 위기상황에 빠진 가장 큰 이유는 경제위기 극복과정에 공공부문의 개혁이 실종됐기 때문이다. 불행히도 국민의 정부는 출범 초기에 관료제도를 혁파하지 못했다. 아니 오히려 지극히 보수적이며 수구적인 관료집단에 개혁의 칼을 쥐어주었다. 그 과정에 관료들은 관료집단을 더욱 공고히 하고 그들의 기득권을 더욱 강화함으로써 관치(官治)의 성벽을 더욱 높이 쌓았다. 국민의 정부 들어 관치금융과 정부규제의 정도가 더 심해진 것은 이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한국경제가 개혁에 성공하려면 먼저 공공부문을 과감하게 개혁해야 한다. 지극히 보수적이며 수구적인 관료집단을 혁파하고, 창의적이며 진취적이고 자기 희생적인 정부를 창출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관료집단은 아직도 개발경제 논리에 집착하고 있다. 정부가 산업을 선도하고 규제하며 정부의 방식과 논리로 나라를 이끌어야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리 때문에 정부 부문의 몸집은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국민의 정부 출범 초기 정부개혁을 소리 높여 외치며 공무원의 인원 감축, 부처 통폐합을 시도했지만 그 결과는 매우 실망스러웠다. 각 부처의 필사적인 로비 결과 부처 통폐합은 이상한 형태로 마무리됐고, 정부의 몸집은 더욱 비대해졌으며, 민간인 전문가를 대거 영입하겠다는 개방형 임용제는 공무원 내부의 인사 잔치로 전락했다.

    그 와중에 금융감독원 같은 기관은 절대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무소불위의 공룡으로 등장했다. 절대권력은 절대 부패하는 법이다. 최근 불거진 금융감독원 일부의 비리 사건은 정부개혁의 현주소와 실패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한국경제는 이제 관료집단의 통제 범위(span of control)을 벗어난 지 오래다. 관료들이 탁상에서 그림을 그리고 경계선을 긋는 동안 각 경제주체들, 특히 기업들은 경계선 저 너머로 뛰어가며 하늘을 날고 있다. 관료들은 더 이상 녹슨 통제의 칼을 휘둘러 기업활동을 가로막고 국민들의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막으려 해선 안 된다.

    오히려 ‘작지만 효율적인 정부’로 거듭나야 한다. 정부의 규모는 더욱 축소되어야 하고 인원은 더욱 감축되어야 한다. 전문성은 더욱 제고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민간인 전문가가 대규모로 영입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갖출 필요가 있다. 현행 개방형 임용제의 문제점을 보완해 대폭 수술해야 하는 것은 바로 이런 까닭에서다.

    정부는 민간이 할 수 있는 일을 부당하게 간섭하거나 개입하지 말아야 한다. 오히려 정부업무 중 민간이 할 수 있는 일은 과감하게 민간에 이양할 필요가 있다. 영국의 공공부문 개혁에서 우리는 정부의 기능축소라는 공공개혁의 미학(美學)을 배워야 한다.

    정부가 할 일은 민간이 할 수 없는 일, 즉 공정한 게임의 규칙을 만들고 인력을 양성하며 사회 기반을 조성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과학기술 분야에서, 정부는 민간이 할 수 없는 기초과학 연구에 집중함으로써 민간이 그 결실을 이용하여 상업화할 수 있게 도와주어야 한다. 기업이 할 수 있는 영역에 정부가 뛰어들어 경쟁하는 것은 금물 중에 금물이다.

    정부 개혁을 통해 우리 정부는 영국과 같이 투입의 정부에서 산출의 정부로 거듭나야 한다. 개도국의 전형인 투입의 정부는 국민들에게 끊임없이 무엇인가 요구하고 강요하며 정부의 의지를 투입(input)한다.

    반면 산출의 정부는 국민의 욕구(need)를 절감하고 포착(catch)하여 이를 충족시킬 서비스를 창출·공급한다. 투입의 정부는 국민에게 사랑받을 수 없다. 국민 위에 군림하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가 국민에게 사랑받는 산출의 정부로 거듭나길 기대한다.

    공공부문 개혁과 함께 또 하나 시급하게 추진해야 할 과제는 공기업 민영화다. 우리나라 공기업들은 민간기업들보다 훨씬 방만하게 경영되고 있다. 민간기업이라면 벌써 퇴출됐어야 할 기업들이 공기업이라는 이유만으로 버젓이 생존해 있다. 막대한 부채와 재정부담으로 운영되는 공기업들은 시급히 정리하거나 퇴출 또는 매각해야 한다.



    공공부문부터 구조개혁을

    최근 정부는 11·3 부실기업 퇴출조치를 통해 52개 민간기업들을 시장에서 퇴출시켰다. 그러나 민간기업보다 더 부실하게 운영되는 공기업에 대해서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다. 공기업들은 우리나라의 통신 에너지 제철 등 주요 기간산업을 독점하면서, 그러한 독점의 환상 속에서 비효율의 단잠을 만끽하고 있다.

    지난 6월 말 현재 우리나라 13개 정부투자기관과 20개 정부출자기관의 부채총액은 399조원이다. 이는 우리나라 국가채무 113조원의 3.5배에 해당하는 엄청난 금액이다. 공기업의 부실과 부채는 결국 국민부담이다.

    우리나라 공기업들은 개혁은커녕 오히려 낙하산 인사로 그 부실의 규모를 더욱 키우고 있다. 낙하산 인사로 임명된 비전문 경영진들은 특별한 죄의식 없이 수익성 없는 사업을 감행하는가 하면, 업무추진비를 과다 사용하고 기업조직의 질서와 효율을 무너뜨리고 있다.

    공기업의 임원직이 정치적 논공행상의 대상으로 전락해서는 안 된다. 인사개혁 없는 공기업의 경영혁신은 불가능하다. 공기업의 경영개혁과 함께 혁명적인 민영화가 추진되지 않는다면, 우리나라 공기업들은 또다시 국민에게 피해를 주고 경제운용에 주름살이 지게 하는 부담으로 남을 것이다.

    공기업 민영화의 과실이 엉뚱한 곳에 떨어지지 않게 하려면 영국처럼 공기업 민영화의 기본원칙, 즉 민영화 이전에 경쟁여건 조성, 국민들의 주식소유 확대, 최대 매각수익 실현을 엄격하게 고수해야 한다.

    앞에서 우리는 한국경제 개혁의 기본방향을 공공부문 개혁과 공기업 민영화의 관점에서 살펴보았다. 만일 정부가 공공부문 개혁과 공기업 민영화를 통해 경제개혁의 모범이 될 수 있다면, 정부는 이를 기반으로 강력한 노사관계 개혁 내지 기업구조조정을 국민들에게 요구하며 또한 호소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것이 정부의 진정한 리더십이다. 한국경제의 구조개혁은 공공부문부터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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