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나라 안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는 대우자동차나 현대건설 사태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오늘날 한국에서 거대 기업집단에 대한 인식은 그리 좋은 편이 아니다. 모르긴 해도 한국의 고유어 가운데서 근래 외국의 언론으로부터 가장 각광 받은 어휘가 바로 우리나라 경제풍토가 만들어낸 ‘재벌’일 텐데, 우리의 국어사전에서마저 이 낱말을 ‘정부의 지원 아래 성장한 가족·혈족 지배의 대규모 기업집단’이라고 부정적으로 풀이하고 있다.
그런 와중에 이번 달 ‘이 사람의 삶’에서는, 30여 개의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는데다 연간매출 8억 달러를 기록하고 있는 만만찮은 기업집단의 총수를 주인공으로 삼았다. 재벌에 대한 불신과 불만이 팽배한 이 시기에 하필 거대 기업집단을 이끌고 있는 사람을 초대했느냐고 타박할지 모르는 독자들에게는 “우선, 나라 안에 있는 기업집단이 아니니 부담없이 찬찬히 들여다보자”고 권한다.
인도네시아 합판의 10% 생산
동티모르 독립, 관광 명소 발리 섬, 노래 ‘붕가왕 솔로’, 불안한 정정(政情), 그리고 수하르토 혹은 와히드… ‘인도네시아’라는 정답을 유도하기 위한 요즈음 방식의 퀴즈식 힌트들이다.
그러나 20∼30년 전만 해도 한국인들에게 인도네시아를 연상시키는 코드는 단연 ‘나무’였다. “인도네시아 산(産) 원목을 직접 갖다 만들었다”는 가구 선전이 대유행이었을 만큼 인도네시아는 가장 중요한 원목 수입 대상국이었다.
바로 이 원목사업을 기반으로 조성된 인도네시아 현지 기업 ‘코린도’와, 그 기업집단을 창업해 지금까지 이끌고 있는 한국 사람 승은호씨(承銀鎬·58)가 만나볼 대상이다.
코린도그룹의 주 업종은 합판 생산업이다. 칼리만탄(보르네오) 섬 동부에 위치한 발릭파판과 중부의 방갈란푼에 대규모 합판공장이 있고 싱가포르와 인접한 빈탄 섬, 그리고 요즘 자치독립운동이 끊이지 않는 이리안자야에도 코린도의 합판공장이 있다. 이 네 군데 합판공장에서 연간 70만∼80만㎥의 합판을 생산, 3억 달러 이상의 수출실적을 올리고 있다. 이 나라 전체 합판 생산량의 10분의 1을 점하고 있다는 것이다. 합판생산에 필요한 원목도 절반 가량은 직접 생산하여 조달하고 있다.
수도 자카르타에서 남동쪽으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제지공장 역시 합판사업과 더불어 코린도를 지탱하고 있는 주력 공장이다. 신문용지만 생산하는 이 제지공장에서는 연간 43만t의 종이를 생산, 1999년도의 경우 1억7000만 달러의 매출을 올렸다. 미국, 대만, 인도, 스리랑카 등지에 수출할 뿐 아니라 인도네시아 국내 신문용지 시장의 80%를 점유하고 있다. 역시 자바 섬 안에 있는 컨테이너 공장은 월 4000 박스의 철 컨테이너를 생산하여 미국, 독일, 중국 등지에 전량 수출하고 있다.
“IMF 때도 문닫지 않아”
이외에도 한국의 동양화학과 합작 설립한 화학공장이 있고, 육로 및 해상 운송회사, ‘이글(EAGLE)’이라는 독자 브랜드를 가진 신발공장에다 파이낸싱·증권·보험 회사 등 금융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업체를 거느리고 있다.
이 간단치 않은 기업군을 진두 지휘하고 있는 승은호라는 사람은 누구인가. 그리고 어떤 연유로 인도네시아로 건너가 창업을 했는가. 그의 성공 요인은 무엇인지, 더불어 ‘한국인 승은호’와 그의 코린도를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등을 탐색해보기로 한다.
미국지사에서 업무를 마치고 인도네시아로 향하는 길에 잠시 한국에 들른 그를 서울 강남의 코린도 지사에서 만났다.
―정확히 코린도의 계열회사는 몇 개입니까?
“글쎄요, 30개쯤 될 겁니다 아마.”
―1년 중 대부분의 시간을 인도네시아 현지에 머물면서 경영을 직접 챙기시는 걸로 아는데, 그런 분이 자신이 경영하는 계열회사를 ‘아마 30개쯤’이라 말하니 좀 어색하게 들리는데요?
“허허허, 그렇게 들렸나요? 그런데 그게 이렇습니다. 가령 운송회사의 경우 트럭을 이용한 육상운송과 해운, 그리고 통관업무를 처리하는 회사가 각각 따로 있는데 이것들을 뭉뚱그려 하나로 볼 것이냐 세분할 것이냐에 따라, 서른 개가 못 될 수도 있고 넘을 수도 있다는 얘기지요.”
―인도네시아에도 코린도 같은 기업집단이 많습니까?
“많은데 우리처럼 조직적으로 하는 데는 없다고 봐야 할 겁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기업집단이 은행 돈 끌어다가 무분별하게 사업을 벌였다가 지난 IMF 때 와르르 무너졌어요. 하지만 우리 코린도 그룹 회사는 단 한 군데도 문 닫은 데가 없습니다.”
―혹독한 불황기를 망한 회사 없이 끌어갈 수 있는 요인은 무엇이었습니까?
“예를 들어서 우리와 경쟁하던 컨테이너 공장이 IMF 이전에 다섯 군데나 있었습니다. 그런데 불황이 닥쳐서 수출이 둔화되자 전부 문을 닫고 우리 코린도만 남았습니다. 불황을 견뎌낼 힘이 없는 회사들이었기 때문에 문을 닫은 거지요. 장사라는 게…”
장사꾼이란 어려운 시기를 버텨낼 힘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새로운 공장을 하나 세울 때 항상 2년이나 3년 동안은 밑질 것이라는 계산을 하고 시작한다. 문제는 기초 자본을 은행돈으로 끌어대거나, ‘밑지는 기간’의 손실을 빚으로 충당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예전 한국의 풍토 같으면 은행 돈 끌어다가 일단 사업을 벌이고 봤다. 그렇게 해서 성공하기도 힘들겠지만, 운이 좋아 성공했더라도 거기서 무슨 기업가 정신을 찾을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승회장은 오늘날의 코린도 그룹을 어떻게 일궈낼 수 있었을까. 그의 동력은 무엇이었고 창업과정은 어떠했을까? 그 과정을 알아보기 전에 승 회장에게 이런 질문을 툭 던졌다.
―그렇다면 코린도가 인도네시아 경제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어떻습니까?
큰 그룹이라는데, 도대체 인도네시아에서 몇 등이나 되느냐는 질문을 그렇게 건넸던 것인데 나는 금세 후회하고 말았다. 외형만 가지고 재계 몇 위라고 자랑하던 재벌 기업들이 하루 아침에 무너지는 것을 연일 목도하고 있는 지금, 덩치의 크고 작음이 무슨 의미가 있다는 말인가. 하지만 나는 돌을 깎아 만든 불상(佛像)도, 개신교의 교회 건물도 동양 최대여야 직성이 풀리는 사회에 몸담고 있지 않은가. 기왕에 한국인이 이끄는 기업이니 인도네시아 재계에서 손가락을 여러 개 구부리지 않아도 되는 순번에 들었으면 하는 천박한 의문이 솟구친 것이다.
“인도네시아에서는 몇 번째 가는 기업이다는 말 자체가 성립이 안 됩니다. 그 나라에는 한국처럼 개개의 기업은 물론이고 그룹단위로 내는 통계자료가 없습니다. 어느 기업이 1등이라고 자랑하면 1등인 줄 알아야 해요. 눈에 잘 띄면 1등이고 잘 안 띄면 조그만 업체지요. 나는 한국 사람들이 그런 질문할 때가 제일 난감한데, 그럴 땐 이렇게 대답해버리지요. 인도네시아에서 발행하는 신문용지의 80%를 우리 제지공장이 공급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가 문 닫으면 인도네시아 일간지가 최소한 1주일은 나오지 못할 것이다, 이 정도면 우리 코린도가 그 나라에서 꽤 영향력 있는 기업 아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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