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들어 각 언론사가 실시한 ‘후보 대응별’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나름대로 일관성이 있다(표1 참조). 우선 눈에 띄는 것은 이회창 총재와 이인제 최고위원의 대결구도. 이 두 사람의 지지율 차이가 워낙 미미해 아직 “이회창 대세론”을 낙관키 어렵다. 또 시선을 끄는 것은 노무현 해양수산부 장관이나 김중권 대표도 이회창 총재와 맞설 만하다는 점이다. 지금의 ‘이회창 대 이인제 구도’가 개인에 대한 지지율이라기 보다는 여·야의 대표주자를 향한 각 당의 고정표 성격이라는 사실이 세부분석에서 드러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노장관이나 김대표도 여권후보로 지명만 된다면 현재의 이인제 최고위원이 보여주는 정도의 지지율까지는 단숨에 만회가 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물론 누가 얼마만큼의 플러스 알파를 만들어낼 수 있는가는 별개의 문제다. 이래저래 대선을 앞두고 여권후보끼리의 예선경쟁이 치열해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야당후보의 분열가능성도 있다.
그렇다면 민주당의 당내 예선에선 누가 유리할까. ‘시사저널’이 미디어리서치와 함께 전국의 민주당 대의원 7180명 중 1016명을 대상으로 3월6∼8일에 실시한 여론조사를 보자. “만약 내일 민주당 차기 대선후보를 결정하는 전당대회가 열린다면 누구를 지지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27.2%가 이인제 최고위원을 꼽았다. 김중권 대표는 17.9%로 2위, 한화갑 최고위원이 13.4%로 3위. 이어 고건 서울시장이 8.1%, 김근태 최고위원이 5.4%, 노무현 장관이 5.0%, 정동영 최고위원과 무소속의 정몽준의원이 각각 2.8%의 지지율을 얻었다.
작년 11월에 실시된 동일한 조사(민주당 대의원 1006명)에서는 이인제 최고위원이 21.8%로 1위였고, 2위는 한화갑 최고위원(10.5%), 그 다음은 고건 시장(8.7%), 정몽준 의원(6.6%), 김중권 대표(6.5%), 노무현 장관(4.2%) 순이었다. 이번 조사에서 김중권 대표는 무려 12.4%나 지지율이 올라가는 기염을 토했다. 김대표의 향후 행보를 주목하게 만드는 중요한 조사결과가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어느 누구도 과반수에 근접하는 압도적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어, 합종연횡에 따른 지각변동도 예상할 수 있다.
그렇다면 여야를 통틀어 가장 유리한 사람은 누구인가. 현 시점에서 이를 판단하기엔 예측불가능한 변수가 너무 많은 것이 사실이다. 본 글에서는 가장 최근에 이루어진 여론조사 데이터를 중심으로 10가지 관전포인트만을 조목조목 짚어보도록 하겠다. 이 10가지 포인트를 종합해 보면 각 후보 지지율의 허와 실, 그리고 각 후보진영이 유념해야 할 포인트가 개괄적으로나마 그려질 것으로 보인다. 조사는 오픈소사이어티에서 3월12∼13일 이틀간 전국의 유권자 87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것이다. 표본오차는 95%신뢰수준에서 ± 3.32%이다.
▶관전포인트 1
김중권 대표도 중요변수로 부각
세 가지 가상대결 구도를 가정해 여권 예상후보 중 누가 가장 경쟁력이 있는지를 조사했다(그림1 참조).
“다음 대통령 선거에 한나라당 후보로 이회창씨, 민주당 후보로 이인제씨가 출마한다면 누구를 지지하겠는가”(시나리오1)라는 질문에는 이회창 27.2%, 이인제 27.4%, 모르겠다 45.4%로 조사되었다. 시나리오2에서는 이회창 35.8%, 김중권 17.5%, 모르겠다 46.7%였고, 시나리오3에서는 이회창 33.6%, 노무현 29.0%, 모르겠다 37.4%로 나타났다. 시나리오1과 3의 경우 오차범위를 감안한다면, 여야 후보의 우열을 가리기보다는 이회창에 대한 이인제·노무현의 경쟁력이 엇비슷하다고 분석하는 것이 오히려 타당할 듯하다.
반면 김중권의 지지율은 이인제나 노무현에 비하면 상당히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시점에서 보면 분명 그렇다. 그렇다면 민주당이 선택할 수 있는 카드는 이인제나 노무현 중 어느 한쪽을 결정하는 것일까. 일단 답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 김중권이 여타 두 후보에 비해 지지율이 뒤지게 된 원인은 여러 가지 해석의 여지를 남긴다. 김대표가 이최고위원과 노장관에 비해 눈에 띄지 않는 정치인임은 다른 형태의 질문에서도 잘 드러난다.
예를 들어 “여권 정치인 중 야당후보와 상대할 때 가장 경쟁력 있는 후보는 누구라고 생각하는가”(경향신문 2월 조사)라는 질문에 대해서도 이인제(27.3%), 노무현(12.1%), 고건(10.8%), 정몽준(6.0%), 김종필(4.1%), 정동영(4.0%), 이한동(3.6%), 한화갑(3.1%), 김중권(2.7%), 김근태(1.4%) 순으로 김대표는 두드러지는 측면이 없다. 재미있는 것은 경쟁력에 있어 이최고위원의 절반에도 못미치는 평가를 받은 노장관이 막상 이회창씨와 맞대결에서는 막상막하의 지지율을 보인다는 점이다.
게다가 경쟁력이 형편없다고 판정된 김대표조차 이총재 지지율의 절반까지는 따라 붙는다. 따라서 김대표가 대중정치인으로 부각될 수 있는 기회를 더 많이 갖게 된다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한마디로 그에 대한 지지도가 다른 후보들에 비해 떨어지는 것은 그가 상대적으로 ‘낯선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 근거로 다음 세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는 정당지지자별 후보지지율에서 찾아볼 수 있다(그림2 참조). 이인제의 경우 시나리오1에서 민주당 지지자의 54.8%, 자민련 지지자의 47.5%가 지지의사를 나타냈다. 이때 민주당 지지자의 33.8%, 자민련 지지자의 27.6%가 ‘모르겠다’고 답했다. 시나리오3 에서 노무현의 경우 민주당 지지자의 55.1%, 자민련 지지자의 26.6%가 노후보를 지지했으며, ‘모르겠다’는 각각 29.7%, 27.8%였다. 이 수치는 이·노씨 모두 민주당과 자민련 지지자들로부터 상당한 지지 의사를 이미 확보한 상태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반면 김중권의 경우 민주당 지지자의 40.3%, 자민련 지지자의 16.2%만이 지지의사를 밝혀 충성도가 상대적으로 떨어진다. 대신 민주당 지지자의 41.5%, 자민련 지지자의 46.7%가 ‘모르겠다’며 판단을 유보했다. 이는 김대표가 실제로 여권후보가 됐을 때 차지할 수 있는 기본 지지율을 아직까지 긁어 모으지 못했을 뿐이라는 분석을 가능케 한다. 그간의 우리나라 선거결과가 상당한 정파성을 띠고 있었음을 감안할 때, 만약 김중권이 여당후보가 된다면 현재 부동층에 있는 민주당과 자민련 지지자 상당수가 결국 그를 선택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이렇듯 김대표는 친여권 유권자들에게도 아직 ‘낯선 인물’이다.
지역별 지지도에서 둘째 근거를 찾을 수 있다. 이인제와 노무현은 호남 유권자의 55.3%, 47.8%가 지지하고 있지만 김대표는 이보다 적은 34.2%의 지지를 받았다(그림3 참조). 그러나 본대결에서 이회창 후보와 맞붙었을 때 호남 유권자표가 어디로 갈 것인가. 대다수가 김중권후보를 선택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충청권 유권자들은? 차기 대선에서도 DJP 공조가 유지된다면 그중 상당수는 결국 김대표를 지지할 것으로 예측할 수 있다.
셋째 근거는 이회창을 상대하는 후보가 바뀔 때마다 여권 지지자들이 보여준 태도 변화를 분석해보면 나타난다(그림4 참조). 여당후보가 이인제일 경우 김중권 지지자의 65.7%, 노무현씨 지지자의 57.8%가 이인제를 지지하겠다고 했다. 이 비율은 노무현이 여당후보가 됐을 경우도 비슷하다(이인제 지지자의 61.3%, 김중권 지지자의 65.0%).
그러나 김중권이 여당후보가 됐을 경우는 이인제 지지자의 42.1%만이 김중권을 선택했으며 39.4%는 ‘모르겠다’고 응답했다. 노무현 지지자들도 39.7%만이 김중권을 지지하겠다고 했고, 43.7%는 ‘모르겠다’는 태도였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유보적인 태도를 보인 여당후보 지지자들이 이회창과 김중권의 맞대결이 성사될 때는 김대표를 선택할 확률이 더 높다고 본다. 후보가 바뀌었다고 해서 여당후보 지지자가 야당후보 지지자로 돌아서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결과 수치는, 김중권씨가 여당후보로 최선의 카드는 아닐지라도, 무조건 버리는 카드로만 보기도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지금의 여론조사 결과는 세 후보 중 누가 여당후보로 더 경쟁력이 있는가에 대한 자료라기보다는 어느 후보가 여당지지자들에게 더 친숙한가를 보여주는 척도로 해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런 분석은 비단 김중권 대표 뿐만 아니라 고건, 정몽준, 김근태씨 등에게도 적용할 수 있는 것이다. 지금처럼 이회창 총재의 지지율이 일정선에서 고착되어 있는 상태에서는, 누구든 여당후보로 나서기만 하면 접전이 가능한 기본 지지율은 올릴 수 있다는 얘기다. 물론, 상당한 사전작업과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관전포인트 2
당선가능성에서 가장 유리한 주자는
당선가능성도 세 가지 시나리오로 질문했다.(그림 5 참조)
“내년 대통령 선거에서 이회창씨와 이인제씨가 출마한다면 00님의 지지와는 상관없이 어느 후보가 당선될 것으로 보는가”(당선가능성 시나리오1)에 대해 이회창 45.6%, 이인제 15.5%, 모르겠다 38.9%였다. 이회창과 김중권을 대결시켰을 때는(당선가능성 시나리오2) 이회창 52.3%, 김중권 10.6%, 모르겠다 37.1% 였다. 노무현과의 경우(당선가능성 시나리오3)에는 이회창 52.0%, 노무현 14.1%, 모르겠다 33.9%였다.
세 시나리오에서 모두 이회창의 당선가능성이 압도적으로 높았으며 여당후보의 당선가능성은 10%대였다. 이 수치를 ‘이회창 대세론’으로 연결시키는 것은 무리가 있으나, 유권자의 사표방지 심리를 감안할 때 최소한 이회창 후보 지지자들의 응집력을 높이는 데는 상당한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당선가능성이 높은 후보를 지지해 정권을 바꿔보자는 견제심리가 충분히 발동할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이에 반해 민주당후보 지지자들의 경우,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를 통한 정권재창출에 대한 확신이 상대적으로 매우 약하다. 이런 점에서 보면 이회창 총재 쪽에서는 ‘대세론’을 계속 밀고 나가 당선에 대한 확신을 유포하는 것이 득표에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다. 그간의 선거조사 경험에 따르면 당선가능성에서 높은 평가를 받은 후보가 실전에서 지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