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은 이미 90년대 초반부터 러시아와 합작으로 미그 29기 조립공장을 건설하여 운영하고 있다. 북한은 90~93년에 러시아로부터 미그 29기 부품을 들여와서 2대를 조립했다. 북한은 1993년 4월15일 김일성 주석 생일인 태양절에 자체기술로 조립생산한 미그 29기 2대의 시험비행에 성공했다.
지난해에 국내 주요 언론은 일제히 북한이 미그 29기 조립생산을 추진하고 있다는 기사를 내보낸 적이 있다. 2000년 11월25일 ‘조선일보’ 보도다.
“북한은 지난 7월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방북 이후 러시아측에 최신예 미사일과 미그 29기의 부품을 무상으로 지원해달라고 요청하고 있으나, 러시아측은 경화(달러) 결제를 요구하면서 이에 응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24일 알려졌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7월 푸틴 대통령의 방북시 북한은 최신예 미사일과 미그 29기의 북한 내 조립생산을 위해 부품의 무상 지원을 요청했으나 러시아측은 아무런 답을 하지 않은 것으로 안다’며 ‘이후 북한은 계속 무상 지원을 요구하고 있으나 러시아측은 경화(달러) 결제를 요구하고 있어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정부 관계자도 ‘러시아 푸틴 대통령의 방북 이후 북한이 미그 29기를 조립 생산하기로 했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확인작업을 벌이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조립공장은 최근에 만든 것이 아니고, 90년대 초반부터 러시아와 합작으로 건설해 가동하던 것으로 밝혀졌다. 한·소 수교 시절 한국 정부와 구소련 간 군사협력을 담당하고, 구소련 지역 공화국 대사를 지낸 A씨는 “북한은 이미 90∼93년에 러시아로부터 미그 29기 부품을 들여와서 2대를 조립했다. 북한은 1993년 4월15일 김일성 주석 생일인 태양절에 자체 기술로 조립 생산한 미그 29기 2대의 시험비행에 성공했다”고 말했다.
북한은 80년대 말에 이미 미그 29기를 22대 가량 보유하고 있었다. 이 22대는 모두 1989년에 구소련으로부터 완제품 형태로 수입한 것이었다. 미그 29기는 대당 가격이 1억달러(약 1200억원)에 이르며 중고품일 경우에도 5000만달러를 웃도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이 이렇게 비싼 전투기를 이 정도로 수입할 수 있었던 것은 사회주의 국가끼리 우대 가격이 적용됐기 때문이다. 그나마도 차관 형태로 들여오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미그 29기 조립생산은 1993년 이후 일단락되었다. 러시아가 구소련 시절과는 달리 완제품이든 부품이든 현금 결제를 요구하고 나섰기 때문이었다. 이는 러시아의 경제난 때문이기도 했지만, 한·소 수교에 따른 부담도 원인이 되었다. 따라서 북한의 미그 29기 조립생산은 주춤했고 조립 공장도 당연히 가동을 멈추었다.
북한이 미그 29기 2대를 조립 생산했다는 사실은 부품만 있으면 언제든지 완제품을 만들 수 있다는 뜻이다. 장성 출신이기도 한 A씨는 “두 대를 조립했다는 것은 대량 생산하지는 못하지만 부품만 있으면 얼마든지 완제품을 만들 능력이 있다는 뜻이다. 조금만 자금 여유가 생겨 부품을 들여올 수 있다면 북한은 지금이라도 미그 29기 완제품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에서 부품을 들여오는 길이 막히자 북한은 다른 길을 뚫기 시작했다. 미그 29기가 수출되던 헝가리, 동독, 유고슬라비아, 인도, 시리아, 이라크를 노린 것이다. 러시아로부터 떨어져 나간 중앙아시아의 공화국도 그 대상에 들어갔다. 정통한 러시아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은 93년 이후에도 매년 2∼3대씩 미그 29기를 자체 조립 생산했고, 90년대를 통틀어 모두 15대를 자체 생산한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이들 국가라고 해서 북한에 현금 결제를 요구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북한은 시리아와 이라크에는 미사일을 수출하고 있었기 때문에 반대 급부를 받을 수 있었다. 이 밖에도 군사 협력 관계에 있는 국가에서 미그 29기 부품을 들여올 수 있었다. 북한은 전체 예산의 30%를 군에 배정하고 있다. 또 운각산, 매봉, 비로봉 등 20여 개의 업체를 통해 무기를 수출하고 있다. 국방부에 따르면 1974년부터 1996년까지 북한은 무기 수출을 통해 연간 2억 달러를 벌어들였다. 이와 같은 무기수출을 통해 얼마든지 미그 29기 부품을 도입할 수 있었던 것이다.
90년대 후반에는 러시아의 거래선도 일부 뚫린 것으로 전해진다. 실제로 1999년 8월20일 ‘중앙일보’는 “북한이 98년 말 러시아로부터 미그 29기 10여 대 분량의 부품을 들여와 현재 조립 생산중이라는 흔적이 포착되어 한·미 정보당국이 추적중이다”고 보도했다. 98년 말은 현대의 금강산 관광사업이 시작되는 등 북한에 본격적으로 경협 자금이 흘러들어간 시기다. 당시 ‘중앙일보’는 우리 정부가 외교 경로를 통해 북한의 도입 의도, 러시아와 거래 과정, 자금 출처 등을 조사중이라고 보도했다.
이처럼 북한이 러시아 및 각국으로부터 미그 29기 부품을 들여오는 일에 핵심이 된 인물이 있다. 중국의 거물 조선족 사업가 최모씨(51)다. 그는 북한 정부로부터 해외동포로는 최대 영예인 ‘공화국 영웅’칭호를 받은 사람이다. 해외 동포로 이 ‘영웅’칭호를 받은 이는 최씨와 근래 사망한 한덕수 조총련 의장 등 세 명 뿐이다.
최씨는 1986년부터 ‘흑룡강성민족경제개발총공사’라는 회사를 차려 북한과 물물교환 무역을 시작했다. 당시 중국에는 북한과 무역을 하는 사업가가 없었기 때문에 그는 대북 민간 무역을 독점했다. 국가를 상대로 한 무역인 탓에 다루는 물품만도 수백가지였다. 그는 이런 활동으로 북한 경제를 크게 도왔고, 그 공로로 영웅 칭호까지 받았던 것이다. 그는 89년에는 하얼빈의 ‘민족호텔’에 인민폐로 1억위안(元)을 투자해 운영하기도 했다.
그러나 91년 구소련이 무너지고, 북한 경제도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덕분에 그는 북한으로부터 물품 대금을 받지 못하고 회사도 기울었다. 결국 그는 자그마치 미화 5500만 달러를 받지 못하고 도산하고 말았다. 북한은 이 금액을 갚을 능력이 없었다.
그래서 북한은 최씨에게 여러 가지 이권 사업과 일거리를 주기 시작했다. 이후 그는 90년대 내내 미그 29기 부품을 북한으로 들여오는 심부름을 했다. 그는 이미 80년대 말부터 소련제 탱크를 북한에 사다주는 무기 수입상 노릇을 한 경험이 있다.
그렇다면 이 미그 29기는 어느 정도 성능을 보유하고 있는 전투기인가. 미그 29기는 북한이 보유한 전투기 가운데 가장 성능이 우수한 기종이다. 이 전투기는 한국 공군의 최신예 전투기인 KF16과 맞싸울 수 있는 수준이다. 미그 29기는 핵폭탄 적재나 투하가 가능하며, 야간 전투능력이 탁월한 데다 F16보다 빠른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물론 아직까지 북한 공군의 주력 전투기는 미그 21기와 미그 23기다.
F15, F16에 대적하기 위해 개발
이 미그 29기는 미국의 F15와 F16에 대적하기 위해서 개발된 전투기다. 1970년대 미국은 월남전과 중동전 경험을 바탕으로 F4와 F104를 대체할 F14와 F15를 개발, 생산하기 시작했다. 당시 구소련의 주력 공군기는 미그21, 수호이15, Tu128 등이었고, 최신예기가 미그23 가변익기였다. 그러나 가장 성능이 좋다는 미그 23기도 가시거리밖 전투(BVR:beyond visual range) 뿐만 아니라 근접 공중전에서도 서방 전투기에 밀렸다. 넓은 주력날개에 강력한 엔진을 실어 기동 성능이 좋은 F14와 F15를 대적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뿐만 아니라 미국에서 경량급 전투기로 생산한 F16에 대해서도 미그23은 근접 공중전에서 열세였다. 미국 전투기는 관성항법장비(INS:inertial navigation system)와 전방시현장비(HUD:head up display)를 갖추어 경량급 전투기도 초저공 작전능력을 보유하면서 미그23의 가시거리밖 원거리 선제공격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구소련은 이런 상대적 열세에서 벗어나기 위해 1971년경부터 F14와 F15와 대등한 기동성과 작전능력을 갖춘 전투기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전투기에 요구된 사항은 저공 비행하는 목표물을 공격하는 하방 탐색/하방 공격 능력이 있는 레이더와 미사일을 장비하는 것이었다. 이런 능력을 갖추려면 무게가 상당히 늘어나는 것을 감수해야 했다. 또 복잡한 항공역학적 설계도 필요했다.
결국 새로운 전투기는 F15 정도의 크기를 가진 기체라야 요구 조건을 충족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왔다. 구소련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장거리전투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수호이27과, 소형이며 가격이 싸고 근거리 공대공, 공대지 작전을 펼 수 있는 미그29 두 기종을 개발했다. 구소련은 1982년 중반부터 이 기종을 시험 생산하기 시작했고, 1984년 양산에 들어갔다.
미그 29기는 미해군이 함재기로 쓰고 있는 F18기와 크기가 같다. 84년부터 본격 생산에 들어간 미그 29기는 그해부터 작전 배치되어 구소련 방공군에 184대, 전방 항공군에 422대가 운용중이다. 그 외에 헝가리, 유고슬라비아 등 동구권과 북한, 인도, 쿠바, 시리아, 이라크 등 여러 나라가 사용하고 있다.
한국군도 미그 29기를 완전히 뜯어 수입한 적이 있다. 국군정보사령부는 94∼95년에 러시아 하바로프스크에서 연습용 미그 29기 1대를 입수해 완전히 분해해서 아무르강(중국 쪽에서는 흑룡강)을 통해 부산항으로 들여왔다. 이때 들여온 미그 29기는 김해공항에 보관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금강산 관광사업 등 현금이 북한으로 흘러들어가면서 북한이 미그 29기 조립생산에 더욱 박차를 가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한미 연합군에 견주어 공군력이 절대적 열세인 북한이 이 분야에 투자를 하는 것은 당연하다. 북한은 그 동안 한반도 전역에 대한 전술·전략적 작전 수행을 위해서 미그 29기의 경우 40대 정도(2개 대대)가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라 부품 도입과 생산을 장기 과제로 추진하고 있다.
실제로 일본 ‘산케이 신문’은 지난 2월2일 “미국은 1998년 이후 금강산 관광 개발 허가 획득을 명목으로 현대가 북한에 건네준 약 3억 달러의 무상 원조 자금을 북한측이 군사 목적에 전용했다고 보고 있다”며 “이 때문에 부시 정권은 한반도 정책의 재검토 과정에 대북한 원조방식에 엄중한 주의를 기울일 전망”이라고 전했다.
‘산케이 신문’은 현대가 준 자금은 용도에 제한이 없는 외화 원조로 미국은 북한이 이 자금으로 ▲ 99년에 카자흐스탄으로부터 미그21 전투기 40대를 구입하고 ▲1999년 겨울과 2000년 여름의 대규모 군사연습에 필요한 석유를 구입했다며 깊은 우려를 표시했다고 보도했다. 2000년 5월17일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박용옥 국방부 차관은 “북한은 99년 7월 카자흐스탄에서 도입한 미그21 전투기 40대를 조립해서 작전 배치를 마쳤다”고 확인한 바 있다.
정권을 유지하는 기반으로 선군(先軍) 정치를 펴고 있는 북한은 현금 유동성이 생기면 다른 분야보다 먼저 군수 산업에 지출한다. 북한은 60년대 중소관계 악화와 쿠바 미사일 위기 이후 자주적 군사노선을 강조하면서 군수산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70년대는 전차·자주포 등 중무기, 80년대는 스커드미사일, 90년대는 노동1호, 대포동1호 등 장거리 미사일과 미그 29기 같은 첨단전투기를 조립 생산하는 단계를 거쳤다. 현재 북한 군수산업은 일부 첨단 무기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무기를 자급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추고 있다.
현금 생기면 군수산업에 우선 투자
북한 군수산업의 최고기구인 국방위원회 산하 제2 경제위원회는 모든 군수제품의 계획·생산·분배 및 대외 무역을 관장하고 있다. 김철만, 전병호 당중앙위원 및 국방위원이 이 사업을 담당한다.
이 제2 경제위원회는 평양 강동군에 있다. 산하에 있는 8개국과 군수공장 190곳은 일련번호나 위장 명칭으로 생산무기 종류를 은폐하고 있다. 제2 경제위원회 산하 국의 담당 분야를 보면 ▲총국은 군수산업의 전반적 계획 ▲제1 기계공업국은 소형무기·탄약 ▲제2 기계공업국은 전차·장갑차 ▲제3 기계공업국은 다연장로켓포 등 ▲제4 기계공업국은 유도탄 ▲제5 기계공업국은 핵·생화학 무기 ▲제6 기계공업국은 함정·잠수정 ▲제7 기계공업국은 항공기 생산 구매를 맡고 있다. 말하자면 미그 29기 같은 전투기 생산을 담당하는 곳은 제7 기계공업국이다.
현재 북한은 민간산업인 제1경제가 전체의 20∼30%에 지나지 않는다. 반면 군수산업인 제2경제는 약 60%를 점하고 있다. 이 두 경제체제는 서로 보완하지 못하고 단절돼 기형적인 구조를 갖고 있다. 또 심각한 전력난과 경제난 속에서도 군수산업용 전력과 자재를 민수산업보다 우선적으로 공급하고 있다. 그래서 현재 북한이 겪고 있는 경제난이야말로 군수산업 위주인 경제 구조 때문이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 북한 경제를 되살리기 위해서는 군수산업인 제2경제의 비중을 줄이고 민수산업, 즉 경공업 위주의 수출산업을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