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4월호

“한국기업엔 쓸데없는 일들이 왜 그리 많습니까”

재벌기업 거쳐 GE사에 재직중인 한 엔지니어의 체험적 문제 제기

  • 김한성 < 유럽 GE 파워 시스템 근무 >chaechan@dreamwiz.com

    입력2005-04-20 15:5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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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시 한국 경제가 위기에 처했다. 이유는 무엇일까. 기업 문화가 잘못됐기 때문이다. 노사 문화도 잘못됐고 생산 문화도 잘못됐다. 무엇이 잘못됐는지는 선진국 기업과 비교하면 명확해진다. 선진국 공장에서는 모든 것이 생산 위주로 움직인다. 쓸데없는 행사도, 직급 인플레도 없다. 필자인 김한성씨는 삼성중공업과 한국중공업에서 품질관리과장으로 일하다 퇴직해 유럽 GE의 파워 시스템사에 입사했다. 유럽 GE사에서 겪은 경험을 토대로 김씨는 한국 기업의 문제점을 신랄히 지적했다.<편집자 주>
    유럽 업체에서는 오전 7시30분이 되면 작업자들이 속속 도착하기 시작한다. 한국에서와 같이 통근버스를 운용하는 업체는 거의 없다. 작업자들은 자기 차량이나 카풀(Car Pool) 차량으로 알아서 출근한다. 별도 작업 지시가 없어도 어제 일하던 위치로 이동해 7시50분쯤이면 어김없이 작업을 시작한다. 12시 점심시간이 되기 전까지 모두가 제 자리에서 열심이다.

    간혹 반장이나 중간 책임자가 이리저리 움직이며 추가 지시를 할 뿐이다. 일과시간 중 그들이 단체로 어떤 모임을 갖는 것을 본 일이 없다. 연말 연휴를 보내고 새해 첫 출근을 하는 날에도 간단한 인사만 나누고 바로 작업장으로 향했다.

    반면 한국 기업의 아침은 이채롭다. 작업시간 전 반별로 반장의 주도 아래 회합을 갖는다. 작업 시작 전에 체조를 하는 회사도 있고, 군대처럼 구보를 하는 회사도 있다. 반별 회합에서는 안전구호를 제창하고, 서로 격려하는 박수를 치기도 한다. 일주일에 한두 번은 과장이나 부장이 주재하는 단체 조례도 있다. 매월 한 번 운동장 조례를 갖고, 공장장의 긴 연설을 경청한다. 애국가도 부르고 국기에 대한 맹세도 빠뜨리지 않는다. 신년 첫 출근 때는 전사원이 오너나 대표이사의 거창한 신년사를 듣고, 이어서 각 부서장의 장황한 당부 말씀을 듣는 것도 한국적인 특성이다.

    유럽 업체에서는 점심시간을 제외하고는 별도의 휴식시간이 없다. 작업시간 중에 커피를 마시거나 잡담을 하는 사람을 발견하기 쉽지 않다. 일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일본에서는 작업시간 중간에 부여된 5분여의 휴식 시간을 제외하고는 쉬는 사람을 찾기 어렵다. 일하는 시간과 쉬는 시간을 정확히 지키는 것, 즉 회사와 근로자는 서로 ‘약속에 충실’한 것이다.

    약속에 충실한 유럽 기업



    하지만 한국의 업체에서는 작업시간에도 삼삼오오 모여 있는 사람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담배를 피워 물고 커피를 마시며 잡담하다가 관리자가 다가오면 슬그머니 일어나 작업 자리로 돌아간다. 그나마 관리자가 오면 작업장으로 돌아가던 예의(禮儀)도 점점 사라져 가고 있다. 직설적으로 말하면 한국 기업에서는 일하는 시간보다 쉬는 시간이 많다.

    직접 부서(직접 일을 하는 부서)에서 낮에 할 일을 다하면, 잔업거리가 없어진다. 간접 부서(직접 부서를 지원하는 부서)로서는 저녁에 할 일이 많아진다. 상사들이 퇴근하는 저녁 7~8시까지는 자리에 있어야 하므로 낮에 너무 열심히 일하면 오히려 곤란하다. 내 할 일을 다했다고 일찍 퇴근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잔업을 염두에 두고 쉬엄쉬엄 해나가는 것이다.

    유럽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찾아볼 수 없다. 유럽 기업들은 주 5일 근무가 아주 확실하다. 필자는 혼자 지내므로 주말에 별로 할 일이 없다. 주말에는 1주일의 보고서를 본사로 보내야 하기 때문에 인터넷이나 전화 사용을 위해 가끔 사무실로 나가곤 한다. 그러나 토요일에 출근하는 사람은 언제나 나 혼자다. 유럽의 현장 근로자와 간접 부서 요원들은 일할 때는 열심히 일하고 쉴 때는 철저히 쉰다. 대부분 3개월 근무한 후 2주의 휴가가 주어지는데, 휴가 때 확실히 자기 인생을 즐긴다. 이때 에너지를 충전하고 이것이 생활에 활력소가 된다.

    한국은 어떤가. 회사에는 오전 7시가 넘자마자 도착했는데도, 회사 일은 빨라야 저녁 7~8시가 돼야 끝난다. 일정에 없던 회의, 하향식 업무지시, 수시로 내려오는 번외업무, 부서간의 실적경쟁, 이따금 동원되는 각종 행사에 직원들은 몸과 마음이 지쳐 버린다. 접대와 경조사 방문으로 저녁 시간도 한가롭지 않다. 번거로움은 주말에도 이어진다. 휴일에 회의 일정이 잡히기도 하고 체육대회·단합대회·산행·자연보호 청소·가두 캠페인 등 잡다한 행사가 많다. 자연 다음날 피곤할 수밖에 없어, 낮에는 적당히 쉴 곳을 찾는다.

    내가 삼성에서 일할 때는 하루 12~13시간을 사무실에서 보내는 경우가 허다했다. 주 44시간 근무는 허울 좋은 구호일 뿐이었다. 간혹 집안에 일이 생겨 하루를 쉬려해도 여간 신경쓰이는 게 아니다. 간접직일수록 눈치 보기가 심하다. 그러나 유럽에서는 그렇지 않다.

    한국 기업의 접대 문화는 부끄러울 지경이다. 처음 포르투갈에 왔을 때 나이 많은 영국 감독관이 한국의 여천과 울산에서 상주했다며 “그때 기생파티 접대를 받았는데, 결코 잊을 수 없다”고 웃으며 이야기했다. 나 역시 삼성에 근무하던 시절 많은 접대를 했다. 부서 내에 영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았기에 외국인 접대가 잦았다. 관청이나 국내 감독관들에게도 일주일에 수차례씩 접대를 하고, 밤 12시가 넘어 귀가하는 일이 허다했다.

    유럽에는 접대라는 말이 없다. 특히 일로 인한 접대 때문에 업무외 시간을 희생하는 법이 없다. 유럽 업체에 상주하면서 겪은 접대는 두어 차례 점심식사한 것이 전부다. 그중에는 주문자측 감독관인 내가 식사비를 지불한 적도 있다. 한국적 접대에 익숙해 있던 나로서는 괘씸한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편하다. 서로에게 떳떳할 수 있으니까. 저녁 시간 접대가 없으니 업체로서는 막대한 비용과 전문인력의 시간 낭비를 방지할 수 있다.

    유럽 업체에는 대부분 구내식당이 없다. 직원들의 식사는 각자가 준비한다. 간단한 햄버거가 대부분이다. 일본 기업의 근로자들도 간단한 도시락으로 점심을 해결한다. 그러나 한국 작업장에는 전부 구내식당이 있다. 한국의 정서상 구내식당을 없애기는 어렵다. 그러나 식생활 패턴을 개선해 운영의 묘는 살려야 한다.

    한국 기업에서는 구내식당 외에도 통근차를 운영하고, 자녀 학비와 연금 등을 지원한다. 각종 격려금과 철따라 지급되는 각종 피복과 선물, 그리고 경조사비 지원도 적지 않다. 이러한 지원은 근로자에게는 반갑겠지만, 회사로서는 경비가 들 뿐만 아니라 이를 관리하기 위해 별도의 인력을 운영해야 한다. 이러한 지출은 결국 혜택을 받은 근로자들에게 전가된다. 이래서는 곤란하다. 기업은 이윤 창출을 노리는 만큼 그 목적에 맞게 조직을 단순화해야 한다.

    한국 기업에서 주는 봉급 명세를 보자. 기본급 외에 각종 수당이 즐비하다. 뭐가 뭔지 모를 지경이다. 하지만 외국 업체에 고용된 내가 받는 급여는 아주 단순하다. 정해진 연봉을 12개월로 나누어서 매월 받는 것이다. 주는 쪽에서는 단순해서 좋다. 받는 쪽에서는 다른 사람들이 받는 수당을 행여 못 받았나 걱정할 필요가 없어 좋다.

    한국 기업은 대부분 연수원을 운영하고 있다. 직원들의 능력 개발이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유럽의 유수 업체에서 자체 연수원이나 교육시설을 갖고 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능력 개발은 어디까지나 개인의 몫이다. 회사는 그러한 개인을 채용하기만 하면 된다. 유럽에서 능력 없는 직원은 도태되기 때문에 각자가 자기계발에 노력한다. 개인에게는 폭 넓은 직업 선택의 기회를 주고 대신 기업에게는 우수한 인력을 채용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다.

    한국만큼 ‘큰 것’을 좋아하는 나라도 드물다. 나라는 작아도 국호는 ‘대(大)’한민국이 아닌가.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한국 기업들은 한번에 수백 명을 연수원에 집합시켜 1주일 혹은 2주일간 교육을 시킨다. 나도 삼성에 있을 때 엄청나게 많은 교육을 받았다. 용인·해운대·경주 등 이름난 관광지에 있는 연수원이나 호텔 등에서 교육을 받았다. 외부 강사의 강의를 듣고, 팀별로 회사 발전방향을 토의해 발표하기도 했다. 경영자 교육시간도 있었고, 마지막엔 산행과 여흥시간을 가졌다.

    억지 연수교육

    이러한 교육이 필요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문제는 ‘비용 대 효과’다. 30∼40세가 넘은 사람들이 피곤한 몸을 이끌고 와서 낯선 잠자리에서 듣는 강의가 과연 감동적일까? 며칠 교육만으로 애사심이 생기고, 무너졌던 정신자세가 곧추설 것인가? 정상에 올라 고함 한번 질렀다고 건강이 좋아지고, 스트레스가 풀릴 것인가?

    대답이 ‘아니다’라면 한번 뒤집어서 생각해보자. 이러한 집체 교육에 들어간 비용은 얼마일까? 거대한 연수원을 만들고 운영하는 데 든 돈은 또 얼마인가? 필자는 한국중공업을 그만두기 직전 일주일짜리 연수를 두 번 받은 적이 있었다. 장소는 경남 산청의 경치 좋은 곳에 자리잡은 연수원이었다. 연수원 도착과 동시에 안내하는 교육담당자의 말이 걸작이었다. “여러분 그 동안 회사 일로 피곤하실 테니 푹 쉬었다 가십시오.”

    외부강사가 강의를 할 때 교육받는 인원의 60~70%는 졸고 있었다. 코까지 골며 자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강사는 물론 진행자도 늘 그랬던 것처럼 이들을 깨우려 하지 않았다. 쏟아지는 잠을 참으며 강의를 듣는 나 자신이 오히려 한심하게 느껴졌다. 맡은 임무를 다하기 위해 열심히 강의하는 강사에게 못내 미안했다. 역시 그때도 금요일에 산행을 다녀와 저녁에는 거나하게 막걸리를 한잔 했다. 토요일에는 오후 1시까지 교육이 진행됐다. 그러나 집에 갈 생각에 교육은 산만하기만 했다.

    그때 한 사람이 물었다. “효과도 없는데 뭣하러 토요일까지 잡아두느냐?”고. 교육 담당자의 대꾸가 걸작이었다. “규정 시간을 채우고 인원 수를 채워야 정부보조를 받을 수 있으니 할 수 없습니다.” 이게 한국 기업 교육의 현주소다.

    한국의 노사 관련 대담 프로그램에서 사용자측은 노동시장의 유연성 문제를 자주 제기한다. 기업경영의 효율화 및 경쟁력 강화 측면에서 볼 때 기업측이 노동시장의 유연성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이 문제는 근로자의 생존권과 직결된다. 선진국과 같은 사회보장 제도가 확립돼 있지 않은 우리 나라의 현실을 고려할 때, 노동시장의 유연성은 확실히 근로자의 생존권을 위협할 수 있는 면이 있다. 기업이 악용할 소지가 적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이제 노동시장의 유연성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기업활동의 필연적인 조건이 돼 가고 있다. 최근 일어난 일련의 구조조정 과정에 몇 년 전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노동여건의 변화가 나타났다. 우리가 얼마나 준비를 갖추었느냐, 선진국과 같은 사회보장 제도를 갖추었느냐를 따지기 앞서 이미 한국에도 노동시장의 유연성 요소가 들어온 것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대중의 요구에 영합하려는 정치인들 때문에 노동시장의 유연성 문제가 정체성(正體性)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유럽에서는 기업의 필요에 따른 해고가 일반화돼 있다. 회사는 잉여 인력에 대해 언제든 해고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다. 그러나 유럽에서는 철저한 사회보장 제도가 갖춰져 있고, 근로자와 회사간의 정확한 근로계약도 수반된다. 따라서 직장을 옮기는 일이 잦다. 이러한 인력의 유동성은 기업으로 하여금 경영을 원활하게 하고, 개인에게는 자발적인 자기계발을 할 수 있는 동기를 주고 있다. 따라서 노사는 해마다 단체협상이나 임금협상으로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 서로의 필요에 따라 노동자의 보수를 결정하면 그만이다. 그런데 한국은 구조조정을 한다면서 그 이면에는 무수한 편법이 판 치고 있다.

    한국 기업에서는 생산직 근로자를 중심으로 한 노조의 영향력이 강하다. 따라서 기업은 필요한 인력을 챙기는 구조조정보다는 명분에 집착한 인원 조정을 할 수밖에 없다. 이럴 경우 힘의 논리가 적용돼, 상대적으로 약자인 간접직 인원들이 능력에 관계없이 획일적으로 정리된다. 심지어 잘 훈련된 엔지니어와 관리자까지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기도 한다. 이 글을 준비하는 와중에도 한국중공업에서는 대규모 구조조정이 있었다. 삼성으로 이관된 과장급 이상 간부 중에 약 55%가 명예퇴직으로 정리되었다. 이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한국중공업에서 내가 근무하던 부서에는 부장 1명, 차장 1명, 그리고 과장 4명이 있었다. 그런데 구조조정 과정에 과장 1명만 남고, 부장·차장·과장 세 명이 정리되었다. 참으로 기막힌 일이 아닐 수 없다. 과장 1명으로 부서를 운용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회사는 그 동안 고급 인력을 불필요하게 고용하고 있었던 셈이 된다. 많은 인건비를 낭비하고, 그로 인해 기업의 경쟁력이 약화됐다는 것을 자인하는 셈이 된다. ‘이건희 신드롬’이 일어날 당시 삼성의 이건희 회장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조직 내에서 일하는 20%가 나머지 80%를 먹여 살린다. 나머지 80%는 일 안하고 가만히 있어도 좋으니 일하는 사람의 다리만 잡지 말아라. 그게 도와주는 길이다.”

    참으로 어이없지만, 이것이 한국이다. 내가 관리자로서 몇몇 사원을 데리고 일할 때다. 어떤 직원은 할 수 있는 일도 없고 일할 의욕도 없어 보였다. 그로 인하여 조직이 정상적으로 운용되지 않았다. 열심히 일하는 사원들 보기가 민망할 정도였다. 그런데도 그 사원을 어떻게 할 수도 없었다. 매년 되풀이되는 노조의 각종 투쟁에 회사가 대응하려면 이들을 자극하지 말아야 하기 때문이다.

    과장 시절, 사무실의 불을 켜고 끄는 것은 언제나 내몫이었다. 나는 전문 지식도 없이 현장에서 나온 사원들의 몫까지 일해야 했다. 행여나 회사 내에 모임이나 집회가 있으면 이들을 다독여 같이 나가도록 했다. 회의실에 재떨이가 가득 차 있어도 아무도 치우지 않았다. 내 손으로 재떨이를 비우고, 책상을 닦고, 손님이 오면 직접 커피를 대접했다. 노조에서는 여사원에게 커피 심부름을 시키지 말라고 했고, 여사원들은 이를 당연시했으므로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손님은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고, 한국 정서상 차 한 잔을 하지 않을 수 없지 않은가.

    유럽은 자유로운 조직문화가 정착된 곳이다. 직급이나 직책에 관계없이 자기 일은 알아서 하는 풍토가 일반화돼 있다. 관리자가 업무 윤곽을 정해주면, 담당자는 그 일을 완료해 결과를 보고한다. 따라서 관리자가 많을 이유가 없고, 관리 업무도 그만큼 줄어든다. 내가 상주하거나 방문한 유럽 회사들의 관리자 수는, 어림잡아 한국 기업의 30%밖에 되지 않는 것 같았다. 한국 기업에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지시를 받아야 움직인다. 모든 것이 수동적이다.

    이것은 장점일 수도 있다. 그런데 최근에는 이러한 문화까지 무너지고 있다. 윗사람이 있든 없든, 일이 바쁘든 아니든, 내 생활이 최우선인 문화가 만들어졌다. 상사의 지시에 정면으로 반발하는 일도 빈번해지고, 심지어 노조를 통해 윗사람을 공격하기도 한다, 부서장의 권위가 땅에 떨어지고 있다.

    신뢰가 사라진 한국 勞使

    몇 년 전만 해도 생산직에 근무하는 근로자가 노조에서 강성을 띠면 회사는 그를 간접부서나 타 지역(설치현장 등)으로 전배했다. 낯선 곳, 낯선 부서 업무에 격리된 그가 적응할 리 만무하니 자연 문제를 일으킬 뿐이었다. 그런데 이 부서의 부서장에게는 이들을 특별 관리하라는 또 다른 임무가 주어진다. 충성스러운 간부는 정상적인 가정 생활을 팽개치고 이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는 데 매달렸다. 한 편의 첩보 영화처럼…. 이렇게까지 된 것은 노사 관리에 탁월한 부서장이 먼저 승진하는 것이 관행이었기 때문이다. 명분 논리에 집착한 노조는 점점 강성이 되고, 회사는 통제력을 잃었다.

    해마다 되풀이되는 임금 협상이 좋은 예다. 임금은 경영 여건과 물가 상승 등 제반 여건을 고려해 합리적으로 결정되어야 한다. 그러나 회사와 노조가 벌이는 협상은 시정 잡배가 벌이는 흥정과 다를 바 없다. 노조는 터무니없는 요구, 즉 대략 30% 인상을 요구하고, 회사는 2~3% 인상안을 제시해 놓고 시간만 끈다. 몇 차 협상이니, 몇 번 결렬이니, 대안이 뭐니 하고 요란하게 떠들다가, 결국 하루이틀 시한을 남기고 극적인 타결을 했다고 발표한다. 내용은 안 들어도 뻔하다. 그리고는 타결 기념이라고 선물을 주고, 보너스도 주고, 하루쯤 휴가도 준다.

    이제는 변해야 한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마저 무너지는 현실이 도래했다. 회사가 무너지면 나도, 노조도 없는 법이다. 명확한 근로조건을 확립해야 한다. 회사는 편법을 쓰지 말고 당당히 규정대로 사규를 집행해야 한다, 그리고 솔직하고 투명한 경영으로 근로자와 신뢰를 구축해야 한다.

    대기업과 협력업체 사이의 동반자적 관계는 그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플랜트·발전설비 분야에서는 대부분의 주변기기를 외주 제작하거나 구매한다. 그에 따라 협력업체의 기술 개발에 대한 지원과 관리는 기업의 성패와 연계된 중요한 문제다. 하지만 한국은 대기업의 협력업체 관리면에서도 한 차원 뒤떨어져 있다.

    유럽에서는 한국보다 중소기업의 활동이 활성화돼 있다. 그러므로 기술력만 있으면 모기업에서 발주하는 물량을 합당한 수익성으로 꾸준히 보장받을 수 있다. 모기업은 협력업체에 대해 기술지원을 하고 물량을 안정적으로 주문해 이들을 육성한다. 협력업체에 대한 기술지도와 관리를 위해 별도 부서를 운영하며, 여기에 베테랑을 배치한다. 협력업체를 관리하는 데 커미션 같은 것은 상상할 수도 없다. 유럽의 중소기업이 모기업 담당자에게 향응을 제공하거나 접대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내가 일하는 GE사에는 세계 각국의 업체와 인력을 소싱(Sourcing)하는 부서가 있다. 이 부서에서는 끊임없이 세계 각국의 좋은 회사와 인력을 찾아 공급한다. 능력 있는 협력업체를 발굴하는 것은 유사 부품을 제작하는 협력업체간에 경쟁을 일으켜, 품질 향상과 원가 절감을 가져온다. 그리고 탄력적으로 물량을 공급받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유럽 대기업들이 중소기업을 개발 관리하는 데는 우리가 따라갈 수가 없는 노하우가 있다. 유럽의 중소기업은 대기업의 협력업체가 되기는 어렵지만, 일단 대기업의 관리 대상이 되면 대기업으로부터 철저한 지원을 받을 수 있다.

    한국 기업의 협력업체 관리 수준은 어떠한가. 내가 경험한 중공업(플랜트 분야)을 예로 들어보자. 첫째, 한국의 협력업체들은 영세하다. 이후 서술하겠지만 조직 내 관리자들은 실적 위주로 평가받고 자주 교체되다 보니, 저(低)단가 업체 수배에 주력한다. 협력업체를 고를 때 한국에서는 그들이 제시한 단가가 언제나 최우선 고려 대상이다. 협력업체는 그들보다 더 낮은 가격을 써내는 업체가 있으면 언제든지 바뀐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주문받은 물량 내에서 이익을 내려고 한다. 가격은 싼데 물량도 적다. 그런데 이익까지 남겨야 하니 자연 제품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둘째, 모기업의 결정권자가 자주 바뀌다 보니, 결정권자의 의사가 중요해진다. 즉 최고의 기술을 가진 업체를 고르기 보다는 학연이나 지연·혈연과 같은 정서적인 요소에 따라 업체를 고르는 결정권자가 많다. 능력 있는 중소업체로서는 기술과 능력만으로 물량을 확보하기 어려운 것이다.

    셋째, 한국의 모기업들은 협력업체를 동반자적인 관계에서 육성·관리하기보다는 부속적인 생산기지로만 활용한다. 이런 경향 때문에 모기업과 협력업체는 주종 관계가 형성된다. 종(從)의 위치에 있는 협력업체로서는 장기적인 비전을 가질 수 없고, 기술개발에도 수동적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토대 위에서는 협력업체의 부도가 빈번할 수밖에 없다.

    넷째, 한국 모기업에서는 발주와 관련된 일부 부서와 발주담당자를 제외한 대부분의 부서가 한직이다. 그러다 보니 이러한 곳으로는 고령자들이 전보돼 오거나, 협력업체를 관리할 만한 경험과 능력을 갖지 못한 사람들이 온다. 이들은 회사로부터 적극적인 지원을 기대하지 않는만큼, 자신의 자리 보전에 집착하는 경우가 많다. 이들은 협력업체에 물량을 공급해주는 대가로 퇴직 후의 자리를 마련한다. 그런 이유로 한국의 중소기업 간부 중에는 모기업 출신이 많다. 이들은 문제가 발생하면 모기업에 대한 로비, 즉 향응 제공에 동원된다.

    이러니 능력 있는 업체가 나올 수 없다.적정한 발주단가도 형성되지 않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금품수수나 향응제공은 일반화된다. 모든 것이 중소업체에게는 부담이 된다. 한국중공업에 근무할 때의 일이다. 나 역시 협력업체를 방문했는데, 그때마다 한국중공업의 전(前) 직원들을 만나곤 했다.

    모기업에서 사람이 나오면 중소업체에서는 넉넉지 않는 인원으로 이들을 수발하느라 일할 시간이 줄어든다. 점심시간이 되면 어디로 식사장소를 정해야 할지, 그들이 돌아갈 때의 인사는 어떻게 할 것인지 걱정한다.

    중소업체에게 그들은 생살여탈권을 쥐고 있는 제왕이다. 이들의 보고와 평가가 향후 물량확보와 직결된다. 이들이 악감정을 가지면 제품의 납품과 대금 수령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는다는 것을 중소업체에서는 잘 알고 있다. 그러다 보니 대기업의 말단 사원이 중소기업의 사장에게 반말까지 하게 되었다.

    파트너십 없는 협력업체

    이런 상황에서는 모기업과 협력업체 간에 파트너십이 생길 수 없다. 어떻게 하든 할 수 있을 때 한 건 하자는 한탕주의가 판을 친다. 대기업은 기술력이 없는 부적합 업체에게 발주하고, 그 업체에서는 불량품을 양산한다. 이에 대해 대기업은 검사 및 관리라는 명목으로 인원을 내보내 금전적인 손해를 끼치는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이다.

    지금 내가 유럽에서 관리하는 협력업체는 10여 개나 된다. 포르투갈·이탈리아·스페인 그리고 폴란드와 네덜란드 업체도 있다. 나 혼자 일정을 잡고 업체를 방문해, 공정을 체크하고 본사로 보고한다. 모든 업무지시와 보고는 메일로 이루어진다. 중요한 사항은 별도 보고서로 보내고 일반적인 사항은 매주 보고서를 작성해 본사로 보낸다. 여기에 소요되는 경비는 월 단위로 정리해 본사에 청구하고, 회사는 통장으로 매월 경비를 입금한다. 서로에게 신뢰가 없으면 이러한 체제는 이루어질 수가 없다.

    관리자가 없는 만큼 모든 책임은 실제 업무 수행자인 내가 진다. 자연히 업무에 충실할 수밖에 없고 모든 일을 세심히 챙길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라면 몇개 부서가 담당할 일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나 혼자로도 이 일이 가능하다. 그 이유는 세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 GE는 충분히 검증되고 능력있는 업체에게만 발주한다. 기본적으로 그들의 품질과 능력은 믿을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이 실수하기 쉬운 부분이나 크로스 체크할 필요가 있는 부분만 확인한다. 협력업체도 이러한 관리에 부담을 가지지 않는다. 그들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할 수 있는 좋은 방안이라고 생각한다.

    둘째, 관리할 제품과 위임할 제품을 구별하고, 위임된 제품은 과감히 협력업체에 위임한다. 당연히 책임도 그들이 진다. 유럽 대기업들이 관리 항목에 포함시킨 기기를 보면 십수년간 경험한 내가 보아도 언제나 수긍이 가는 품목들이다.

    셋째, 관리인원도 충분히 검증된 엔지니어를 활용한다. 나 역시 발전설비의 검사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전문가임을 자부한다. 국내 업체에서 근무할 때 나는 해외 프로젝트만 담당했었다. 담당자로서 GE 공사를 수행할 때 그들은 이미 나를 눈여겨보았던 것 같다. 내가 어려운 시기에 (빅딜로 내가 있던 한국중공업 부서가 삼성중공업으로 넘어갈 때) 그들은 스카우트를 제의했다.

    유럽에 산재한 GE의 협력업체들은 안정적인 생산활동을 하고 있다. 국내의 협력업체를 경험한 나로서는 부럽지 않을 수 없었다. 유럽의 협력업체들은 전통과 자부심, 그리고 모기업을 능가하는 기술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협력업체를 만드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모기업의 의지, 그리고 정부의 효율적인 지원만 있으면 한국도 이러한 협력업체를 만들 수 있다.

    국내 발주공사에 대한 정부투자기관의 규제와 통제는 밑으로 내려갈수록 심해진다. 건축과 토목 분야에서는 이러한 문제가 수도 없이 제기됐지만, 플랜트를 포함한 발전설비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다. 부끄럽지만, 11년이나 중공업 회사에서 근무하는 동안 내 손으로 금품을 제공한 것만 수십 건이다. 향응을 제공한 것은 횟수가 더 많다. 대기업이 이럴진대 중소기업의 어려움은 오죽하겠는가?

    공장에서 쓸 전기를 생산하기 위해 짓는 발전소를 예로 들자. 발전소를 짓는 도중 관계하는 정부투자기관에는 에너지관리공단·전기안전공사·산업안전공단·가스안전공사 등이 있고, 발전기를 설치하고 공사를 완료한 후에는 더 많은 인허가 기관과 만나야 한다. 그들은 물론 안전점검과 검사라는 명목으로 공사수행에 참여한다. 그러나 전체 설비에 비춰볼 때 그들이 수행하는 업무는 극히 일부분이다. 그러나 업체는 인허가를 취득하기 위해 상당한 경비와 시간을 소비해야 한다. 특히 검사와 대기에 따른 기회손실이 적지 않다. 이를 분야별로 지적해 보자.

    첫째, 국내 법규가 불합리하다. 관련 법규는 선진국 법규에다 한국의 특수 상황, 다시 말해 지극히 한국적인 조항을 추가한 것이 대부분이다. 이런 법규로는 정상적인 생산활동을 할 수가 없다.

    둘째, 절대적인 인력 부족과 장비의 노후화다. 정부투자기관은 일반 기업체보다 열악한 장비와 인원으로 업체를 관리·감독하고 있다. 현 시대에서 시간은 곧 돈이다. 따라서 검사는 최신 장비로 신속히 수행해야 한다. 그러나 정부투자 기관의 장비는 오래되었고, 그마저 운용할 인력이 절대 부족하다. 더 정확히 말하면 인원은 적지 않은데 현장에서 일하는 인력보다 책상에 앉아서 행정하는 인력이 더 많아서 문제다.

    발전설비의 내압부는 용접을 한 후 용접부의 안전성을 검증하기 위해 방사선 투과시험(X-ray)을 한다. 기업체는 시간을 줄이고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대부분 야간에 이 시험을 한다. 그러나 정부투자기관이 시험을 할 때는 사정이 어려워 진다. 최소한 시험 실시 일주일 전에 검사신청부터 해야 한다.

    자칫 이 일정이 맞지 않으면, 업체로서는 검사를 기다리느라 하루 이틀을 허송한다. 검사 요청일에도 이들은 통상적인 출근 시간(오전 9시)에 그들의 사무실로 나와 회의를 한 후 출장 신청을 하고 장비 준비를 한다. 이것으로 오전 시간을 다 보내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야 업체로 나온다. 그때쯤이면 점심시간이니, 빨리 검사를 마쳐야 하는 업체로서는 금품이나 향응을 제공하지 않을 수 없다.

    의미 없는 검사와 해외 출장

    셋째, 필요 이상의 법규적용이 많다. 발전설비에는 폭발 같은 비상 상황에 대비한 안전장치로 안전밸브를 부착한다. 대형 고압 안전밸브는 국내에서는 생산하지 못해 대부분 일본에서 수입한다. 정부투자기관은 안전검사라는 명분으로 이 제품을 검사한다. 안전밸브는 스프링의 장력이 생명이다. 완성된 밸브를 해체해 재조립하다 보면 가끔 장력 조정에 어려움이 생기는데 어떨 때는 제작업체의 기술자를 불러야만 재조립할 수가 있다. 그런데도 안전검사라는 명목으로 멀쩡한 밸브를 분해해, 기껏 치수나 재고 스프링을 눌러보는 등의 몇 가지 검사를 형식적으로 실시한다.

    이러한 검사를 위해서는 통관된 밸브를 직접 정부투자기관에 가져가야 한다. 검사기관은 대개 경인지역에 있으므로 영남지방에 있는 업체로서는 이 밸브를 싣고 경인(京仁)지역까지 올라와야 하는 것이다. 업체로서는 검사경비를 다 지불했음에도, 시간 뺏겨, 출장비 써, 여비 지출해…, 이중 삼중의 어려움을 겪게 된다.

    한번 그 기관의 담당자에게 물었다 “왜 이런 불필요한 검사를 하느냐?”라고. 그 담당자의 대답이다. “옛날 외국에서 안전밸브가 작동하지 않아 큰 사고가 난 사례가 있다.”

    이미 세계적으로 수천 기가 설치돼 사용중인 안전밸브에서 얼마나 큰 사고가 일어날 것인가? 그리고 분해해서 치수를 확인한다고 해서 사고의 위험성이 사라지겠는가? 업체의 반발이 커지자, 그 기관은 차선책으로 제작업체에 가서 검사를 받아올 경우 국내 검사는 면제해 주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모든 비용은 업체에서 부담하라고 했다.

    99년 나는 안전밸브 검사를 받으러 이 기관의 담당자와 함께 일본에 간 적이 있다. 그런데 이 기관에서는 ‘자기 기관에서는 반드시 두 사람이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며칠간 승강이 끝에 두 사람을 다 데려갈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출국하기 전부터 “출장비를 미리 보내라. 숙박비 외에 추가 경비가 필요하다” 등등의 전화를 10여 차례 걸어왔다. 항공료에 호텔비, 그리고 현금도 추가로 제공하고 일본에 갔다. 한참 IMF 위기로 국가 경제가 어려울 때, 세계 유수의 안전밸브 메이커에서 이들이 수행하는 검사를 보고 있자니,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넷째, 대(對)관청 업무는 어떠한가. 국내 한 자치단체에서 쓰레기 소각설비를 건설할 때의 일이다. 총발주비용이 400억원 정도 되는 이 설비를 건설하면서, 해외 구매품 검사라는 명목으로 감리사와 발주 시청의 공무원을 데리고 네 차례 해외를 다녀왔다. 전부 내가 이들을 수행했다. 이중 일본에 두 차례 다녀왔는데 감리사의 엔지니어와 시청 공무원이 참여했다. 유럽에는 한 차례 갔는데, 감리사의 단장과 건설소장, 시청 공무원이 동행했다. 이들은 유럽 3개국을 방문했으나 업체는 단 한 군데밖에 들르지 않았다. 미국에는 한 차례 갔는데 감리사의 상무와 엔지니어, 그리고 시청 공무원이 동행했다. 과연 이 경비는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이러한 업체 검사가 과연 필요한 것일까. 업체로서는 이러한 여행 경비를 충당하고도 이윤을 남겨야 하니 자연 설비 공사가 부실해질 수밖에 없다. 선진국에서는 어떠한가. 선진국에도 최소한의 국내법규는 있다. 그러나 모든 검사는 업체 지원과 취약 부분 보강에 집중된다. 문민정부를 거치면서 이러한 비합리적 구조가 많이 개선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개선하고 개혁할 부분이 많다.

    국가 행정을 이야기할 때 각 부처 장관과 관리자를 자주 교체해 정책의 일관성과 책임행정을 찾기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한국만큼 단기간에 정책에 대한 평가와 경영 성과를 묻는 나라도 드물 것이다. 미미한 자리에 취임한 사람도 자기 임기중에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 위해서 무리하게 업무를 추진한다. 그리고 그 성과의 홍보에 전념한다. 비단 국가 행정뿐 아니라 기업 경영도 마찬가지다.

    내가 삼성중공업에 근무하는 11년 동안 대표이사가 6번, 공장장이 6번 바뀌었다. 정책 결정권을 가진 이들이 임기 2년도 채우지 못하고 갈렸으니 일관성 있는 정책 추진은 애당초 기대할 수 없다. 중공업에서 핵심 보직인 생산부장과 설계부장의 임기도 채 2년이 되지 않았다. 내가 12년 줄기차게 근무해온 부서의 명칭도 7~8번 바뀌었다.

    한국은 노사문화가 특수하므로 생산부장은 생산부의 상황을 손금 보듯 알고 있어야 한다. 생산 직원들과 깊은 신뢰를 맺고 이들을 통솔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상호 교감할 만큼 임기가 보장돼 있어야 한다. 그러나 임기가 짧으니 그저 재임중에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는 데만 노심초사한다. 매사 성과 위주이고 문제점에 봉착하면 적당히 타협할 수밖에 없다. 좋은 게 좋다는 식이 된다.

    1990년 나는 처음 해외 출장을 나갔다. 소형 터빈을 검사하기 위해 일본의 미쓰이중공업을 방문했다. 도착 첫날 미쓰이에서는 영업부장을 비롯해 품질관리과장과 담당 반장이 나와 상견례를 하고 일정을 소개해 주었다. 그리고 4년 후 다른 검사 건으로 미쓰이를 다시 방문했는데, 상견례에 똑같은 사람이 나왔다. 그들은 한층 노숙해진 얼굴로 4년 전 일을 이야기하며 반가워했다. 당연히 일은 쉬웠고,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일을 진행할 수 있다.

    삼성중공업의 기술제휴선인 일본의 IHI에 노무라라는 조달부장이 있다. 노무라는 삼성중공업 10년간의 설계 및 영업 관련 책임자를 다 알고 있었다. 일본은 한 사람이 한 부서에서 장수하는데, 한국은 숱하게 사람이 갈려나간 것이다. 그러니 IHI는 삼성중공업의 특성과 문제점을 훤하게 알 수가 있다. 노무라를 비롯해 한국에 상주한 일본 기술자들은 호텔 주변의 식당과 술집에 관한 지도와 자료를 만들었는데, 하도 자세해서 우리가 복사해 사용할 정도였다.

    삼성중공업이나 한국중공업의 공장장과 생산부장은 현장 작업자들과 어울리고(물론 술도 마시고), 그들의 경조사 및 고충을 챙기는 것이 주요한 임무다. 이러한 일은 조직의 화합과 인간관계 형성을 위해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정도가 지나치다. 이들은 원칙과 규정보다는 얄팍한 인간관계로 노사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이들이 이렇게 된 것은 그들의 업무성적이 노사문제로 평가되기 때문이다.

    한국 과장, 외국 과장

    한국처럼 직책과 자리에 연연하는 나라도 없을 것이다. 한국중공업을 퇴사하기 전 내가 있던 부서에는 부서장인 부장이 1명이고, 그 밑에 차장 1명, 과장 4명, 대리 2명, 그리고 사원은 여사원 1명뿐이었다. 약간 차이가 있지만 다른 부서의 인적 구성도 이와 흡사했다. 한 부서에 부장이 2~3명 되는 조직도 있고, 사원은 없고 과장만 서너 명씩 되는 부서도 많았다.

    이렇게 장(長)이 많은 조직에서 일이 제대로 되겠는가? 아무리 실무과장이라고 해도, 직책이 붙으면 직책이 없을 때와는 일하는 방법이 달라진다. 자기만의 관리항목을 만들고 결재라인에 서고 싶어한다.

    일본의 회사에서 과장 만나기는 여간 어렵지 않다. 그만큼 과장이 많지 않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머리가 희끗희끗한 담당자 보기는 쉽다. 그들은 단지 엔지니어다. 일본 회사의 과장이 한국을 방문하면, 한국 회사에서는 부장이나 임원이 나가 상대한다. 그만큼 한국 회사의 직책은 인플레되어 있다.

    유럽도 마찬가지다. 유럽 기업에서는 관리자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전원이 엔지니어다. 직책이 별도로 없다. 경험과 근무 연한에 따라 엔지니어 앞에 시니어(senior)나 치프(chief) 등을 붙일 뿐이다. 유럽의 엔지니어들은 직책에 연연해하지 않는다.

    유럽에서는 갓 30을 넘긴 사람이 아버지뻘 되는 작업자나 중간 관리자에게 업무를 지시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작업자들은 그러한 관리자를 가리켜 스스럼 없이 “나의 보스”라고 말한다.

    삼성중공업에서는 40세가 넘으면 누구나 부장이 될 수 있었다. 이들 중 대다수는 몇 년간 부장을 하다 진급이 안 되면 한직을 전전하다 회사를 그만두었다. 인재양성을 표방하는 한국의 대기업에서 길러진 사람이 한참 일할 나이에 진급을 못해 회사를 그만두는 것이다. 이것이 무슨 인재를 양성하는 회사인가.

    나 역시 34세에 과장이 되었다. 남들도 다 하는 진급이라 당연하다고 생각했지만, 회사 일로 여러 나라를 방문하고 나서는 내 명함에 찍힌 과장이라는 직급이 부담스러워졌다. 선진국에서는 20년 이상 근무해 머리가 희끗희끗한 사람들도 엔지니어라는 이름으로 업무를 수행하는데 이제 30세를 넘긴 내가 과장이라니…. 간부가 생기면 그를 수발하는 인원이 따라야 하니, 인력 낭비가 많아진다. 조직을 관리하는 조직까지 생겨난다.

    유럽의 유수 회사에서는 외면만 보고는 그들의 직급을 알기 어렵다. 그만큼 직급에 연연해하지 않기 때문이다. 직급은 일할 때만 힘을 발휘하지 인격을 나누는 잣대가 되지 않는다. 네덜란드인의 상급자가 내가 근무하는 포르투갈 공장을 방문했다. 공항에서 공장까지의 거리는 차로 약 1시간. 나는 동료에게 처음 오는 상급자를 픽업하기 위해 공항에 나가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의 대답은 간단했다. “난 택시 기사가 아니다.”

    한국에서 빅딜로 한참 회사가 시끄러울 때의 일이다. 어제까지 인사하고 지내던 사원들이 하루아침에 간부들을 성토했다. ‘회사편이라나….’ 따지고 보면 과·부장들은 더 많은 고통을 겪고 있는데 타도의 대상이 돼버린 것이다. 그들이 집회하는 동안 야식을 사다주고, 저녁 늦도록 집회가 이어질 때는 사무실에 남아서 기다려 주었다. 그런데도 과·부장들이 집회에 동참하지 않는다며 회사편으로 몰아세웠다. 그들 눈에는 사원 눈치와 회사 눈치보느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간부들의 모습이 초라하지도 않은가.

    한때 전시행정이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있다. 비단 국가 행정에서만이 아니라 기업 경영에서도 전시행정이 유행했다. 한국에 근무할 때 혁신팀이니, 태스크 포스 니 하는 이상한 조직을 만들고 쓸데없는 행사를 수없이 반복했다. 운동장에 전 사원을 모아놓고 발대식을 갖고 부서별로 워크숍이라는 것을 시키고 보고서를 만들게 했다. 그리고 그 결과에 따라 시상하고….

    요상한 영어 단어의 첫자를 딴 슬로건도 만들고 패찰로 만들어 가슴에도 달아 보았다. ‘Win 96’ ‘Pro 97’ ‘Champion 정신’ ‘Top 98’ 등 국적 없는 슬로건이 난무했다. 간부들에게는 시도 때도 없이 감상문과 소감문을 내라는 독촉이 떨어졌다. 아침에 간부들을 불러내서 정문 양쪽에 도열시키고 출근하는 사원들에게 인사하고, 구호를 외치게도 했다. 현수막은 사내 곳곳에 나부꼈다.

    제안(提案) 제도가 유행한 적도 있었다. 맡은 일에서 개선할 점을 찾아내 개선하고 그 결과를 제출하는 제도다. 선진국에서도 이러한 제도가 시행된 바 있다고 한다. 그러나 한국에서 이 제도를 펼치면 무리가 발생한다. 공장장이 올해 이 상을 받아야겠다고 작심하면, 전 공장이 일보다는 이 일에 매달리게 되기 때문이다.

    각 부서마다 제안 건수가 할당된다. 부서장은 개인별로 실적 도표를 만들어 제안 제출을 독려한다. 새로운 제안이 쉽게 나오겠는가. 쓴 것 또 쓰고, 지나간 것 활용하고 남의 제안도 이용하는 수밖에 없다. ‘사무실 컵을 일회용이 아닌 유리컵으로 바꾸자’ ‘복사기 위치를 이동하자’ ‘사무용품을 재활용하자’ 등등 건수 채우기 제안이 난무했다.

    행사가 끝나면 한 달에 300건 이상을 제출한 ‘제안왕’이 선발된다. 회사에서는 그에게 상금을 주고 해외여행까지 보내준다. 이게 말이나 되는 일인가? 한 달에 300건을 제안했다니. 일은 하지 않고 회의실 구석에서 하루종일 제안만 써야 이러한 수치가 나올 것이다. 물론 그 내용도 뻔할 것이고…. 일하려고 모인 공장인지 제안 쓰자고 모인 공장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현장 부서를 대상으로 한 개선사례 발표회라는 것도 있었다. 반이나 과 단위로 개선활동을 하고, 그 사례와 효과를 발표하고, 그 효과금액이나 성취도에 따라 포상하는 제도다. 이 제도도 잘 운영하면 좋은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그러나 무리하게 추진하기 때문에 역효과가 발생한다.

    生産은 뒷전, 전시행정만

    제작 최일선에 서야 할 반장들은 주제를 선정하고 자료를 준비하는, 생산활동과 관계 없는 일로 꼬박 일주일을 보낸다. 윗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근사한 차트도 준비해야 하고 발표 연습도 해야 한다. 발표 당일에는 공장장을 위시한 전 부서의 담당자들이 생산활동을 무시하고 이 일에 매달린다. 그러나 시상은 그때그때의 노사관계를 고려해 나눠먹기가 된다. 무엇을 하자는 개선 사례인지 알 수가 없다. 이러한 행사를 주관하기 위해 명맥을 유지하는 부서도 생겨난다.

    품질청문회라는 제도도 있었다. 협력업체에서 공급한 부품에서 불량이 발생했을 때, 이 부품을 공장 한가운데 전시하고 관련 부서의 담당자와 부서장 그리고 협력업체의 관리자와 대표를 참석시켜 그 원인을 논의하고 대책을 강구하는 제도다. 취지는 협력업체로 하여금 불량품이 발생한 데 대해 깊이 반성케 하고, 향후 같은 불량이 발생하지 않게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면을 살펴보면 역시 보여주기식 탁상행정이다. 매주 이 행사를 하다 보니 담당자로서는 부품과 대상업체를 선정하는 것부터가 고민스럽다. 불량이 매주 발생하는 것도 아니고, 간단히 조처할 수 있는 문제를 갖고 행사를 준비할 수도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설사 부품과 업체를 선정했다고 해도 담당자는 행사 보드(board)판을 준비하고, 관련부서에 연락을 하느라 많은 시간을 소비한다. 원래 그가 해야 할 일에는 소홀해지는 것이다.

    한국 기업만큼 회의가 많은 곳도 드물 것이다. 회사 회의실은 언제나 꽉 차 있다. 삼성중공업과 한국중공업에 근무할 때 하루 업무의 절반이 회의에 참석하는 것이었다. 관련 부서에서 두세 사람만 협의하면 될 것을 전 부서 사람을 모이게 했다. 회의를 자주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책임을 분담하거나 회피하기 위해서다. 여러 사람이 모여 협의한 결과는 문제가 발생해도 책임을 분담할 수가 있다.

    이런 회의도 있었다. 다른 공장에서 회의가 열리기에 20분간 차를 몰고 달려가 참석했다. 여러 부서에서 10여 명이 참석했는데 회의는 시작 5분 만에 끝나고, 주관부서의 담당자가 하는 말이 “우리 다함께 고통을 분담합시다. 회의록에 사인해 주세요”였다. 사인하러 20분이나 차를 몰고 달려갔던 것이다.

    유럽 업체에서는 이러한 회의가 없다. 회사에는 아예 회의실이 없거나 있어도 그 수가 많지 않다. 사무실 탁자에 빙 둘러앉아 간단히 의견을 교환함으로써 충분히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기업 文化 무조건 모방

    일본 회사에는 독특한 조직문화가 있다. 출근 후 전 인원이 부서 단위로 모여 체조를 한다. 그러나 한국과 달리 자발적이어서 활기가 있다. 수십년을 내려온 전통이기 때문이다. 해외 현장에서 일본 업체와 같이 일한 적이 있는데, 거기서도 마찬가지였다. 조회 장소 바닥에는 사람 발모양이 그려져 있다. 아침에 모인 사람들은 발 모양이 그려진 그 자리에 발을 놓고 간단히 회합을 한다.

    한 일본 업체에는 공장 안 도로에 건널목을 표시하고, 건널목 양쪽에 깃발을 꽂아 두었다. 그리고 이 깃발을 들고 건널목을 건너게 했다. 깃발을 들면 교통사고 위험을 줄일 수 있다는 취지에서 한 것이다. 이것이 그들만의 문화가 돼 모두가 깃발을 들고 건널목을 건너게 되었다.

    어느날 한국 업체의 관리자가 이 제도를 자기 회사에서도 똑같이 하게끔 시켰다. 관리자는 ○○혁신팀을 만들어 깃발을 제작케 하고, 건널목을 그렸다. 그런데 생산직 직원들은 우습다는 듯 아무도 깃발을 들고 건널목을 건너지 않았다. 그저 힘없는 일부 간부만 겸연쩍은 모습으로 깃발을 들고 다녔다. 얼마나 어색한 풍경인가. 결국 이 제도는 시행 두 어 달만에 슬그머니 사라졌다.

    한국 기업들도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형식적인 구태를 벗고 업무 중심으로 재편되어야 한다. 관리자와 생산자는 모두 원칙에 충실해야 한다. 변화하지 않는다면 한국은 영원한 2류 국가로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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