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4월호

출퇴근길에 들고 다닌 쇼핑백의 비밀

포스데이타 김광호 사장

  • 장인석 < CEO 전문리포터 >

    입력2005-04-21 15: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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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포스데이타(www.posdata.co.kr)는 포철의 전산망을 책임지는 시스템통합 회사로 출발, 현재는 정보화사회를 구현하는 인터넷 비즈니스의 총아로 각광받고 있는 첨단기업. 하지만 97년 3월에 취임해 5년째 이 기업을 이끌고 있는 김광호 사장은 굴뚝회사에서 30년간 숫자와 씨름해온 재무통이었다. 복잡하고 변화가 심한 IT 회사의 선장으로 거듭나기까지 그는 다시 태어나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출퇴근길 김광호 사장의 양손에는 늘 두툼한 쇼핑백이 들려 있었다. 새로 취임한 사장이 비서를 시키지도 않고 항상 뭔가를 직접 들고 다니는 게 직원들에게는 좀 수상쩍어 보였을까. 직원들 사이에는 그게 선물보따리일 거라는 추측이 무성했다. 매일 선물을 받는 신임 사장이라….

    하지만 그건 선물보따리가 아니었음이 훗날 밝혀졌다. 그 속에는 신문이며 잡지에서 스크랩한 기사뭉치며, 읽어야 할 자료뭉치, 관련 서적이 잔뜩 들어 있었던 것이다. 그의 집무실 책상이며, 서랍장, 캐비닛 위에도 항상 자료와 책더미가 수북이 쌓여 있다. 곳곳에 스크랩해놓은 신문과 잡지기사도 널려 있다. 깨끗하고 가지런하게 책상을 정리하는 대부분의 CEO와는 다른 모습이다.

    선택과 집중을 위한 끊임없는 훈련

    김사장은 무언가를 읽고 공부하는 것이 취미이자 습관이다. 대학 시절과 포항제철에 근무하는 내내 그의 학구열은 유명했지만, 포스데이타에 온 이후에는 그 정도가 더 심해졌다.

    “포항제철이란 제조업에서 재무와 관리통으로만 있었으니 IT산업에 대해 뭘 알았겠어요. 하지만 경영관리자가 그 분야를 잘 알아야 부하직원들의 얘기를 듣고 의사결정을 할 수 있지요. 게다가 우리 회사는 석·박사가 수두룩합니다. 직원 전체가 대졸 이상인 정보기술회사니까요. 그러니 공부 안 할 수가 있나요.”



    그는 5년 걸릴 공부를 1년에 마쳤다고 할 정도로 관련 서적과 지식을 미친 듯이 흡수했다. 적자이던 회사를 흑자로 돌려놓아야 한다는 심리적 압박과 타이트한 일정 속에서도 IT와 관련된 조찬 세미나는 모두 참석했고, 고려대 정보통신 최고위과정과 서울대 최고경영자과정을 수료하는 정열을 보였다. 김광호 사장이 지닌 정보통신에 대한 해박한 지식은, 포스데이타를 ‘e-Biz를 선도하는 가장 유망한 기업’으로, 본인은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 회장이란 선물을 받는 기반이 됐다.

    김 사장은 이렇게 공부하는 이유를 CEO의 핵심역량 중 하나인 ‘선택과 집중’에 대한 정확한 판단력을 기르기 위해서라고 밝힌다. 가망성이 없는 사업은 ‘드롭(drop)’하고, 수익을 올릴 수 있다고 확신하는 사업에 회사의 역량을 집중해야 비전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시장의 흐름을 정확히 읽는 눈과 변화에 대한 감지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2년 전 그는 개발실에 디지털영상보안시스템(DVR)을 개발하라고 지시했다. 석·박사 직원들이 개발 가능성을 확인했고, 사업이 추진되려 하자 영업 쪽에서 판로가 희박하다며 ‘불가’를 주장했다. 그는 아날로그에서 디지털시대로 가는 과정이니 원격감시 시스템도 디지털이 각광받을 것임을 확신했다.

    “반대 의견을 묵살하고 ‘고(go)’ 하라고 지시했지요. 영업 쪽 의견도 존중해야 하지만 저에겐 CEO로서 시장의 흐름을 보는 눈이 있거든요. 그래서 담당 임원도 안 두고 제가 직접 챙겼어요. 그런데 이게 지금은 효자상품이 됐습니다. 최근 일본에서 보안제품 전시회가 있었는데, 우리 회사 제품이 일본의 소니, 파나소닉을 제치고 일본 5대 은행 중 하나인 삼화은행과 1500대, 돈으로 환산하면 50억 원어치 수출계약을 완료했어요. 우리 제품이 가장 우수하다고 일본 사람들이 칭찬할 때 어찌나 기분이 좋던지….”

    그게 국내 최초의 DVR로 업계가 주목한 ‘포스 워치’다.

    시장 흐름을 정확히 간파한 예는 또 있다. 포스데이타는 철강의 전산시스템에 관해서는 세계에서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그는 전자상거래가 활성화될 거라고 예측했고, 전자상거래의 가장 어려운 핵심 기술인 전자문서거래시스템을 개발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담당 연구원이 박사인데, 불러서 이 시스템의 개발을 지시했지요. 그런데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는 거예요. 그래서 각종 전시회에 내보내 공부하고 자극받게 했지요.”

    그 결과가 바로 99년 7월 선보인 인터넷 EDI/EC 시스템인 ‘EC 마스터’ 엔진이다. 이는 인터넷을 통한 전자거래를 가능하게 만든 시스템이다. 전자거래에 필요한 다양한 문서를 표준화했고, 웹이나 메일을 이용한 문서의 송수신을 가능하게 해 편의성은 물론 신속 정확성을 부여해 경비절감 효과도 크며, 전자인증과 전자지불 등 기존 시스템과도 연동할 수 있다는 점에 높은 점수를 받았다.

    김사장은 첨단산업의 흐름을 네 가지로 분류한다. 첫째는 전자 및 반도체산업의 시대, 둘째는 IT혁명의 시대, 셋째는 최근에 막 도래한 바이오 시대, 마지막으로 크리에이티브 비즈니스(CB) 시대가 온다는 것. 이 트렌드 속에서 방향을 잡아간다면 앞으로 뭐가 필요할지 알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리더란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 방향을 정확히 잡아줄 수 있는 능력을 가져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의 별명은 ‘똑부’다. ‘똑부’(똑똑하고 부지런한 사람)는 ‘똑게’ ‘멍부’ ‘멍게’ 등과 함께 리더의 4대 유형 중 하나. “도무지 쉬는 것을 본 적이 없다”는 사원들의 증언처럼 김사장은 ‘발바리’란 애칭도 가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가장 인기가 좋은 CEO는 똑똑하고 게으른 ‘똑게’형이다. ‘똑부’는 절대 실패하는 법은 없지만 부하들을 닦달하고 업무량이 엄청나다는 점에서 사실 인기는 없다.

    김사장은 일에 관해서는 철저하고 완벽하다. 성과를 내지 못하는 직원들은 가차없이 처벌하는 그는 ‘기업은 적자를 내서는 안 된다’는 지론을 가진 수리파 경영인이다. 그래서 성과, 퍼모먼스를 가장 중요시한다.

    “어떻게 전직원이 똑같은 보너스를 받을 수 있습니까? 인센티브란 노력하고 성과를 낸 데 따른 보상인데…. 우리 회사는 부서별로도 보너스가 다르고, 가장 성과가 좋은 부서라 해도 부서원마다 보상이 다릅니다. 저 역시 열심히 일한 만큼 포철에서 승진이 빨랐습니다(그는 32살에 과장이 됐다). 성과가 좋은 사람은 승진도 빨리 돼야죠. 우리 회사는 30세에 팀장이 된 사람도 있고, 40대보다 연봉이 더 많은 30대도 꽤 있습니다.”

    성과에 따른 보상을 철저히 하려면 평가기준이 공정하고 정확해야 한다. 포스데이타는 현재 자신이 상급자와 하급자로부터 어떻게 평가되고 있는지 네트워크를 통해 알 수 있다. 김사장은 상급자들이 제대로 평가했는지 알기 위해 항상 e-메일을 열고 전직원들과 허심탄회한 대화를 주고받는다.

    포스데이타가 해마다 연봉협상을 통해서 상위 클래스에 대해서는 10%+α를 인상하고, 하위 클래스에 대해서는 5% 정도를 감봉해도 별로 불만이 없는 것은 바로 철저한 평가 덕분이다.

    업무와 성과에 대해선 가혹한 김사장이지만 근무환경에 대해선 최대한 자율을 보장해준다. 영업직이나 개발실 직원들에게는 출퇴근 자유, 전직원에게 복장 자유를 선포한 지 오래다. 게다가 회사에서 일하든 놀든 개의치 않는다. 아무리 놀아도 성과만 좋으면 된다는 것이 김사장의 지론이다.

    최근 김사장은 어떤 조그만 벤처에 투자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그런데 투자를 결정한 계기가 남다르다. 사무실을 방문했는데, 취사도구와 침구가 한쪽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직원들이 출퇴근이라는 개념이 없이 일에 미쳐 사무실에서 일하고 먹고 자는 것을 보고 ‘아, 이렇게 열심히 하는구나’ 했다는 것이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자유롭게 일하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고 설명한다.

    “포철은 진취를 추구하지만 사실 보수적인 기업이지요. 그러나 포스데이타는 정보화기업, 첨단기업 아닙니까. 이런 기업환경에 맞게 저도 생각을 바꾼 거지요. 하지만 자율도 합리적이어야 하는데…. 전 이런 합리성에서 벗어나면 아주 못마땅합니다.”

    자율이란 것도 기본이 돼 있어야 가능한 것이고, 바로 그것이 합리주의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미국이란 나라가 겉으로 보기에는 자유분방하고 어수선해도 그 밑바닥에는 합리주의가 완벽히 깔려 있어 세계 최강국이 된 거 아니냐고 반문한다.

    이와 같은 그의 사고방식은 포스데이타의 기업문화를 자유로우면서도 일에 대해서는 철저한 벤처식으로 바꿨고, 기업문화대상을 받는 등 업계의 벤치마킹 사례가 됐다. 기업문화대상 평가위원이던 모 대학 교수는 학생들에게 포스데이타의 사례를 연구하게 해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포철에서 ‘수의 귀재’로 알려졌던 김사장이 포스데이타의 수장이 된 것은 그의 구조조정 능력을 인정한 김만제 회장의 배려였다. 연세대 경영학과를 나와 호남비료에 3년간 근무한 후 69년 포철에 입사한 김사장은 30년간 재무와 관리 쪽에서만 일한 재무통이다. 89년 포항제철 상임감사, 92년 제철학원 전무이사를 지냈고 95년 포철산기 부사장에 임명됐다. 그는 1년 8개월 동안 1580명의 직원을 거의 절반 수준인 770명으로 줄였다. 사실 그는 스스로 정이 많다고 걱정하는 사람이다. 그런 그를 구조조정의 칼날을 휘두르라고 보낸 것은 일에 관한 한 칼 같은 사람이라는 고위경영층의 판단 때문이다고 한다.

    “포철산기에는 블루칼라가 많았어요. 그 사람들 목소리 참 크지요. 그러나 어쩝니까. 회사가 살아야 하는데…. 포철산기 산하에 울산에 있는 환경관련 회사가 있었어요. 그런데 그 회사가 도덕적으로 문제가 많은 회사입디다. 포철은 도덕적으로 지적당하는 일이 없도록 가르치는 회사인데, 안 되겠다 싶어 팔아치우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런데 그 회사 사장이 출장간 사이 매수자가 나타났는데, 돈이 없어서 우선 급한 대로 제 돈을 꿔줘가면서 부랴부랴 팔았지요. 1580만원, 금액도 안 잊어버립니다. 그런데 팔고 나자마자 그 회사에 보일러가 터지는 사고가 났어요. 많이 태워야 돈을 버는 회사니까 무리해서 가동하다 그만 과열된 거지요. 얼마나 다행이던지….”

    어느날 김만제 회장이 그를 불렀다. 포스데이타가 어려운 것 같으니 가서 살려보라는 것이었다. 당시 포스데이타의 2대 사장은 ‘하우스 에이전시’로서 포철 일만 국한해서 하라는 김만제 회장의 지시에 대해 외부 수주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해 마찰이 있었다고 한다. 포스데이타는 IT산업 시대에 대비해 박태준 회장이 의욕적으로 만든 회사였다. 박회장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던 포스데이타는 처음부터 IT산업의 전 분야를 수용하는 백화점식 사업확장으로 적자가 누적돼 있었다.

    규모를 줄이라는 김회장의 지시에 따라 그는 1100명 중 3분의 1인 362명을 줄여 취임 첫해에 738명만 남겼다. 또한 잘 안되는 사업, 하고 있지만 수익에 자신없는 것은 다 ‘드롭’시켰다.

    “운이 참 좋았어요. 그때는 IMF 전이어서 취직이 잘 될 때라 나간 사람 거의 다 재취업이 됐어요. 물론 불행해진 직원도 있지만…. 워낙 포스데이타의 인력이 좋았으니까 다행히 오라는 데가 많았지요.”

    그러고 나서 곧 IMF가 터졌다. 다른 회사는 그때서야 인력을 줄인다, 사업규모를 줄인다 난리를 쳤지만 포스데이타는 어려움에서 벗어나 정상 궤도를 찾아가고 있었다. 김사장은 98년 초 전직원의 가족에게 편지를 보냈다. “마음 고생이 많았다. 이젠 내보내는 사람 없을 것이다. 다 같이 가는 거다. 남편 보필 잘해 달라.” 이런 내용이었다. 그는 그 약속을 지켰고, 오히려 직원을 더 채용하게 됐다.

    “일도 재미있게 하면 활력소”

    98년 당기순이익은 33억원, 99년 57억원, 2000년 115억원으로 해마다 증가했다. 전체 매출액의 50% 이상을 차지하던 포철 물량이 3분의 1로 줄었는데도 이익이 발생한 것은 이익이 되는 사업에 핵심 역량을 집중하고 직원들이 두 사람 몫 이상을 해준 결과라고 평가한다. 99년 결산 후 자신감을 가진 김사장은 코스닥 등록을 선언했고, 2000년 11월 마침내 코스닥 시장에 진입했다. 3월10일 현재 포스데이타 주가는 2만550원이다.

    포스데이타는 지난 2월15일 탁구팀을 창단했다. 회사의 규모나 역량이 일반인에게 알려지지 않아 스포츠를 통해 기업 이미지를 높이기 위해서다. 그런데 탁구를 선택한 이유가 그럴 듯하다.

    “운동 중에 가장 돈 안 드는 게 탁구인 것 같아요. 장소가 좁아도 되고, 선수 인원도 그렇고…. 게다가 저희 같은 시스템통합 업체는 경박단소, 적은 인원과 스피드한 경영, 순간적인 두뇌회전이 중요한데 그게 스포츠 중에 탁구와 아주 흡사하거든요.”

    창단식 뉴스가 방송에 크게 나가서 “그걸 광고로 환산하면 몇 억짜리”라며 탁구팀 창단하기를 잘했다고 웃는 김사장은 정작 탁구뿐 아니라 스포츠엔 문외한이다. 건강을 위해 등산과 골프를 즐기는 정도. 한데 나이에 비해 피부도 곱고 무척 젊어 보인다. 비결이 뭐냐고 물었더니 “일 열심히 하는 거”라며 웃는다. “일 많이 하면 몸이 상할 텐데” 하고 걱정하자, 그는 “능력 없는 사람이 일을 많이 하면 힘들지만, 일이 정말 재미있는 사람은 그게 활력소가 돼요” 하며 다시 웃는다.

    그는 남들이 물먹었다고 말하는 제철학원 전무이사로 발령받았을 때도 기분이 나쁘기는커녕 교수들과 지내면서 학교행정이란 새로운 일거리에 심취해 얼마나 즐거웠는지 모른다고 기억한다. 특히 존경하는 김호길 포항공대 초대 총장과의 만남은 그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94년 4월30일 김호길 총장이 발야구를 하다 머리를 다쳐 사망했을 때 그도 그 운동장에 있었다고 한다. 김총장이 6번, 자신이 7번타자였다. 자신이 2루에 있고 3루에 있던 김총장이 홈으로 뛰어들다 넘어지면서 돌담에 머리를 부딪혀 코에서 피가 수돗물처럼 나오던 광경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고 한다.

    일을 좋아해서 심취해야 활력이 생기고 젊어진다는 김사장에게 안주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의 꿈은 포스데이타를 세계적인 브랜드를 가진 기업으로 키우는 것. 소니 하면 워크맨, 마이크로소프트 하면 윈도를 떠올리듯 포스데이타 하면 으레 떠오르는 명품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미 스틸피아, 포스워치, 포스ERP 등 국제적인 브랜드를 만들어냈지만 그의 욕심에는 끝이 없어 보인다. 그때까지 항상 선물보따리 같은 쇼핑백을 들고 다니는 그의 모습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CEO 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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