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4월호

18세 이세돌이 빚어내는 盤上의 질풍노도

  • 손종수 < 전 ‘바둑세계’ 편집장· 바둑평론가 >

    입력2005-04-22 13:4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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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또 한 명의 바둑 천재가 반상(盤上)에 쿠데타를 일으키고 있다. 2월 말 열린 LG배 결승에서 거함 이창호(李昌鎬)를 2판 연속 격침시킨 이세돌(李世乭) 3단이 그 주인공. 중학교 3년 중퇴학력의 18세 소년, 이세돌은 과연 ‘포스트 이창호’의 대안(代案)이 될 수 있을까.
    지난 2월26, 28일 LG배 세계기왕전 결승 1, 2국에서 세계최강자 이창호 9단을 연파해 세계타이틀 획득을 눈앞에 두고 있는 이세돌 3단을 만났다.

    오후 3시경 한국기원 근처의 찻집. “점심식사를 겸해 자연스럽게 이야기나 좀 나누려고 했는데 딱딱한 인터뷰가 돼 버리겠다”고 말하자 소년은 씩 웃으며 자리에 앉는다. 괜찮다는 뜻이겠지?

    짧은 머리 때문일까. 아니면 이마 양옆이며 두 뺨에 언뜻언뜻 보이는 보송보송한 솜털 때문일까. 4월2일이면 만 18세가 된다는 소년의 얼굴은 나이보다 더 어려 보인다. 잡티 없이 반듯한 이마에는 윤기가 돌고 그 아래 황금비를 따르듯 알맞은 간격으로 자리잡은 두 눈썹은 먹물을 쿡 찍어 한일자를 써놓은 듯 짙은데, 붓의 끌림처럼 엷게 미간을 타고 이어진 형상이 꿈틀거리는 용의 비늘처럼 수려하다.

    긴 속눈썹을 깜박일 때마다 그 뒤로 감춰지는, 크지도 작지도 않은 두 눈이 작게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 찬찬히 살펴보니 알겠다. 검은 동자가 커서 눈을 내리깔거나 웃을 때면 흰 자위가 잘 보이지 않는다.

    부드럽게 가라앉은 콧날 끝의 도톰한 콧방울, 단정한 선이 또렷한 입술, 동그란 두 귀와 유난히 새까만 눈동자가 슬기로운 인상을 주긴 하지만, 아무리 보아도 이 얼굴은 귀여운 개구쟁이다. 냉혹한 승부세계에서 정상을 노리는 프로의 얼굴과는 거리가 먼데….



    그러나 소년은 분명 한국바둑계에 거센 변화의 바람을 몰고 온 풍운아다. 질풍노도와 같은 32연승으로 연간 최다승(75승 20패)을 기록하고, 배달왕·천원전을 쟁취해 이창호의 6년 독주를 저지하며 2000년도 최우수기사로 선정된 정상의 프로인 것이다.



    목표는 ‘최고’가 되는 것

    ―LG배 결승 1, 2국에서 연승을 거둔 후 인터뷰 요청이 많았을 것 같다. 그때마다 비슷한 질문이 반복됐을 텐데….

    “신문, 주간지…음, 특히 여러 월간지에서 인터뷰 요청이 많이 들어왔다. 좀 피곤하지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다.”

    ―LG배에서 이창호 9단에게 연승을 거둔 원동력은 무엇인가. 준비된 전략이 있었나.

    “준비는 좀 있었다. 이 9단은 종반이 워낙 강하기 때문에 먼저 실리를 챙기고 싸움을 유도하는 전략을 세웠다. 1승1패 정도가 목표였는데 이 9단의 컨디션이 정상이 아니었고, 또 후배와 승부한다는 데 부담을 많이 느껴서인지 예전에는 거의 없던 실수가 나왔고, 그 때문에 내가 연승을 거둘 수 있었다.”

    ―연승을 했으니 타이틀획득까지는 이제 1승만 거두면 되는데?

    “결승 2국은 좋은 내용이 아니었다. 무리한 승부수를 뒀는데 그게 통해서 이겼다. 연승했지만 승부는 이제부터라고 생각한다. 열심히 둘 생각이다.”

    ―95년 입단 이후 기대주로 주목받기는 했어도 정상의 3인(이창호, 조훈현, 유창혁)과 비교할 정도는 아니었다. 2000년부터 갑자기 급성장한 것 같은데 그 원인은 무엇인가?

    “잘 모르겠다. 32연승의 기세를 타면서 자신감이 붙었고 어느 순간 실력이 나아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누구와 둬도 질 것 같지 않았고….”

    ―정상 3인(이창호, 조훈현, 유창혁)의 강점을 짚는다면….

    “이창호: 강점도 뚜렷하지 않지만, 약점도 뚜렷하지 않다. 전체적으로 안정되어 있다. 특히 종반 마무리는 독보적이다.

    조훈현: 경쾌하다. 초반 감각이 뛰어나고 중반전 행마의 감각도 탁월하다. 꼭 닮고(배우고) 싶은 기사다.

    유창혁: 두텁다. 공격은 최고다. 그러나 상대의 돌을 잡는 공격이 아니라, 이득을 취하는 공격에 초점을 둔다. 두텁게 두면서도 실리의 밸런스를 갖추는 능력이 놀랍다.”

    ―평소에 공부는 얼마나, 어떻게 하나?

    “공부는 별로 하지 않는다.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특별히 시간을 정해서 하는 건 없다. 더 이상의 공부가 있는지도 모르겠고, 공부를 더 한다고 실력이 늘 것 같지도 않다. 그냥 한국기원이나 연구실에 들러 바둑을 놓아보고…. 혼자 생각한다.”

    조금 뜻밖이다. ‘공부를 별로 하지 않는다’는 말을 아무런 거리낌없이 한다. N세대다운 솔직함일까. 그런데 답변 중 ‘혼자 생각한다’는 끝말이 인상적이다.

    종횡 19선, 361로(路)의 무한세계. 문득 소년의 말 속에서 끝없는 사유(思惟)의 지평을 느꼈다면 그건 착각일까. 어쩌면 ‘혼자 생각한다’는 그 한마디야말로 이 소년을 가장 적확하게 특징짓는 수식어인지도 모른다.

    ―공부를 별로 하지 않는데도 세계 최강자와 겨루는 무대 위에 섰다? 그건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너무 가혹한 말 아닌가? 특히 요즘 신예들은 공부량이 많은 걸로 아는데….

    “신예들이 공부를 많이 한다고…. 난, 잘 모르겠다.”

    말은 더 하지 않고 그냥 씩 웃는다. 무엇을 잘 모른다는 걸까. 신예들이 공부를 많이 하지 않는다는 뜻일까. 도리질을 하면서 웃기만 하니 알 수가 없다.

    ―대국을 하다 보면 유독 거북한 상대가 있기 마련인데 특별히 그런 기사가 있나? 아니면 ‘아, 이 사람은 진짜 강하다’고 느꼈던 상대라든가….

    “없다. 상대를 의식하지 않는다.”

    대답이 거침없이 나온다. 대단한 자신감, 최고의 위치에 올라 꾸밈없이 드러내는 오만은 일종의 매력이다. 소년은 어느새 그런 자격을 갖춘 것 같다. 거부감보다 호감이 앞서니 말이다.

    ―자신의 기풍은 어떤가. 약점이 있다면? 상당한 속기(速棋)로 알려져 있는데, 그 때문에 가끔 경솔한 수를 둔다는 말도 있다.

    “공격형이었는데 요즘은 집을 중시하는 쪽으로…. 빨리 두기는 하지만 초속기는 아니다. 형세 판단에 약점이 있다.”

    스스로 ‘나의 기풍은 이렇다’고 말하기는 관록의 대가(大家)라도 쑥스러운 일. 의사표현이 솔직한 N세대지만 역시 이 부분에서는 얼굴을 붉히며 얼버무린다.

    사실 소년의 기풍은 잘 알려져 있다. ‘리틀 조훈현’이란 애칭 그대로 실리에 강하고 발빠른 전투형. 감각이 뛰어나며 난전의 수읽기가 정확하고 빠르다.

    ―의식하는 상대가 없다고 했지만 그래도 라이벌을 꼽는다면 누가 있겠나. 나이가 비슷한 기사 중에….

    “최명훈 7단은 아주 힘든 상대지만 나이 차이가 많고…. 신예 중에서는 역시 진석이 형(목진석 5단)이 제일 어렵다. 개인적으로는 최철한, 원성진, 박영훈과 대국할 때 부담을 많이 느낀다. 후배여서인지 지면 다른 상대보다 스트레스를 더 많이 받는다.”

    거명한 두 선배는 모두 타이틀 홀더다. 최명훈은 무서운 ‘아줌마’(?) 루이나웨이를 물리치고 LG 정유배를 차지했으며 목진석은 이창호를 밀어내고 KBS 바둑왕이 됐다. 하긴, 이세돌은 당당한 2관왕이다. 꼭 라이벌을 꼽자면 그쯤은 돼야겠지.

    뒤이어 호명된 최철한, 원성진, 박영훈은 85년생 트리오로 2000년도 다승, 승률 등 주요 성적 상위에 랭크돼 있는 ‘앙팡테리블’이다. 이들은 이세돌이 일으킨 N세대 혁명의 추종자이기도 하지만 그 관계는 머지않아 치열한 경쟁으로 바뀔 것이다.

    ―가장 존경하는 기사가 있다면 누군가? 꼭 현대 기사가 아니라도 좋다.

    “없다. 좋아하는 기사는 조훈현 9단이다. 기풍도 닮고 싶고 무엇보다 30년 가까이 그런 성적을 유지한다는 건, 실력도 실력이지만 자기관리가 대단하다. 본받고 싶다.”

    존경이나 호감은 엄연히 다른 표현이지만 대개의 사람들은 이 둘의 차이를 크게 따지지 않는다. 존경하지는 않더라도 호감이 있는 상대라면 누군가 물어왔을 때 그 사람과의 교분이나 체면을 생각해서 ‘존경한다’고 의례적으로 말하는 데 별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다는 얘기다.

    그런데 소년은 단호하게 ‘존경하는 기사는 없다’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쉽게 ‘좋아하는 기사는 조훈현 9단’이라고 한다. 보통 사람들이 말하는 대로라면 ‘존경하는 기사’는 조훈현인 것이다. 어쩌면 소년은 정당한 승부조차 피하고 싶을 만큼 기꺼이 허리가 굽혀지는 사람에게나 ‘존경’이란 표현을 쓰는 것인지도 모른다.

    소년은 얼마 전 문용직 4단과 인터뷰하며 ‘이상형으로서 닮고 싶은, 가장 존경하는 사람은 아버지’라고 말했다. 조훈현을 좋아하지만, 그는 필연적으로 승부 무대에서 마주칠 상대이고 넘어야 할 대상이므로 아버지처럼 기꺼이 굽히는 존경심을 가질 수는 없다는 뜻 아닐까. 소년의 간명한 대답은, 인간사회에 모호하고 간단치 않게 섞여 있는 존경과 호감의 차이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일류기사가 되면 나만의 ‘바둑관’이라는 게 생길 것 같다. 막연한 질문이지만 바둑을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글쎄, 잘 모르겠다. 내게 바둑은 그냥 바둑일 뿐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대부분의 프로들은 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내가 말할 수 있는 건 입단했을 때보다 바둑이 더 어렵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남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는 바둑이 갈수록 어렵다.”

    가볍게 웃는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바둑이라고. 이 말은 조치훈의 철학적 사유가 함축된 ‘그래봤자 바둑, 그래도 바둑…’이라는 독백과 비슷한데 그런 연륜의 깨달음이 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래도 ‘갈수록 어렵다’는 말은 어떤 소성(小成)의 경지를 엿보게 해준다. 오래 전 이창호는 똑같은 질문에 ‘바둑은 끝없이 먼 길을 가는 것’이라고 대답해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었는데….

    “프로는 나이로 말하지 않는다”

    ―대국료나 우승상금이 형(이상훈 3단)의 수입을 넘어섰을 것 같은데 관리는 어떻게? 용돈은?

    “큰누나(이상희·27)가 한다. 나뿐 아니라 가족들의 수입은 전부 큰누나가 관리하는데 용돈은 하루 1만원쯤 타서 쓴다.”

    비금도의 가족이 하나, 둘 서울로 올라와 지금은 어머니(박양례·53)만 고향에 남아 3년 전 타계한 아버지의 터전을 지키고 있을 뿐, 5남매가 행당동에 아담한 둥지를 틀고 함께 산다.

    ―대국이 없는 날은 무엇으로 소일하나. 특별히 즐기는 스포츠라든가 좋아하는 취미 같은 게 있다면….

    “없다. 특별히 잘하는 운동도, 즐기는 스포츠도 없다. 집에서 가끔 게임을 하는데 그것도 좋아하는 정도는 아니다. 집에서는 그냥 잠을 많이 잔다. 대국이 있는 날은 일찍 일어나지만 없는 날은 늦게까지 잔다. 오후 3, 4시쯤 일어나는 날도 많다.”

    인터뷰 내내 짧고 직선적인 표현. 이번에는 말해놓고 스스로도 겸연쩍은지 머리를 긁으며 웃는다. 그러나 어쩔 수 없다는 얼굴. 언뜻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시니컬한 표정이 스치는 게 묘하다.

    함께 자리한 둘째 누나(이세나·25)가 보다못해 “왜, 친구들하고 볼링도 하고 당구도 좀 치잖아. 집에서 스타크래프트 같은 게임도 하고…”라며 거들자 고개를 갸웃한다. 볼링이나 당구나 구력을 말할 만한 수준이 아니기 때문이란다.

    아, 이제는 좀 알겠다. 왜 소년의 말이 계속해서 ‘없다, 아니다’로 짧게 끊어지는지.

    적어도 소년이 스스로 ‘무엇을 한다’고 말할 때에는 그것이 무엇이든 최고이거나 최고를 목표로 하고 있을 것이다. 또 하나, 사실이 아니거나 마음에 없는 말은 결코 하지 않는다는 것. 설혹 그것이 상대의 기분을 다소 상하게 하더라도 말이다. 소년이 가진 세속의 예절이나 배움은 투박한 것이나 그 마음은 투명하다는 것을 알겠다.

    ―바둑을 두지 않았다면 무엇을 했을까. 평소 그런 생각은 없었는지….

    “내 성격에 얌전하게 학교나 다니는 모범생은 아닐 것 같다. 음…. 컴퓨터나 벤처 계통의 일을 하고 있지 않을까. 그쪽이 맞을 것 같다.”

    내 성격에? 소년은 스스로 ‘즉각적이고 직선적이며 모험적’인 자신의 성격을 잘 알고 있는 듯하다. 아울러, 그 독특한 개성을 누를 생각도 없다는 듯 말한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가까운 목표는 물론 LG배 우승이겠고, 좀더 미래지향적인 목표가 있다면?

    “최고가 되는 것이다.”

    이런, 우문현답이 되고 말았다. 나이는 어리지만 이미 두 개의 타이틀을 거머쥔 데다 이제 1승이면 세계타이틀을 획득할 프로에게 너무 뻔한 질문을 던졌다. 그러나 이 짧은 대답의 느낌은 아주 좋았다. 자세를 고쳐 앉으며 숙연한 표정으로 ‘최고가 되는 것’이라고 말하는 소년의 얼굴에서, 비로소 당대 최고의 무대에 올라 세계 최강을 다투는 프로의 모습을 볼 수 있었으니까.

    인터뷰 내내 웃고 찡그리던 개구쟁이 소년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나는 깜박 잊고 있었다. ‘프로는 결코 나이로 말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어느 분야든 천재가 그 재능을 활짝 꽃피워 대성하기까지는 필연적인 요소가 있다. 우연히 대가의 눈에 띄는 경우는 소설이나 영화에서나 흔한 스토리이고 현실 세계에서는 대부분이 가장 가까운 사람이나 주변의 누군가로부터 인도를 받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무사독학(無師獨學)의 대명사로 불리는 서봉수처럼 예외도 있지만, 비율을 따져보면 역시 후자의 경우가 압도적이다. 전남 신안 앞바다 비금도에서 자란 섬소년 이세돌도 거기에 속한다.

    세돌의 재능을 발견한 사람은 아버지(이수오·1998년 타계)다. 광주교대를 나와 목포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던 아버지는 세돌이 젖먹이였을 때 비금도로 귀향, 농사를 하게 됐는데 거기서 틈틈이 아이들에게 바둑을 가르친 것이다.

    아마추어 4, 5단 실력이던 아버지는 곧 슬하의 3남2녀 중 두 아이의 재능이 남다름을 알아보았고, 큰아들 상훈(26)을 먼저 서울로 올려보내 프로수업을 시켰다. 상훈이 서울에서 프로수업을 받는 동안 막내 세돌은 섬에서 아버지의 가르침을 받았다. 밭일을 나가면서 사활문제를 내주고 일을 마치고 돌아와 채점을 하고 실전훈련을 시키는 방식이었다.

    아버지의 눈은 정확했다. 세돌은 본격적인 가르침을 받기 시작한 지 불과 2년 만에 아버지로부터 백을 빼앗는 재능을 보인다. 초고속의 청출어람(靑出於藍)을 실현한 어린 천재는 곧 서울의 형에게 보내졌다. 한발 앞서 상경한 상훈은 이미 90년에 입단의 관문을 돌파하고 ‘권갑룡 바둑도장’의 지도사범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세돌의 나이 아홉 살, 초등학교 3학년 때의 일이다.

    그러나 섬소년의 입단은 쉽지 않았다. 번번이 간발의 차이로 탈락의 아픔을 겪었는데, 3전4기로 입단에 성공한 95년의 일화는 그 절박한 상황이, 62년에 일본으로 건너가 68년 열한 살 입단의 신기록을 세운 조치훈의 그것과 흡사하다.

    세돌의 보호자였던 상훈의 입대날짜가 코앞으로 다가와, 세돌이 입단을 하지 못하면 돌봐줄 사람이 없어지는 곤경에 처한 것인데, 이 상황이 일본에서 ‘늦어도 열 살까지는 입단할 수 있다’는 기대를 받고 있다가 열 살을 훌쩍 넘겨 ‘이번에도 실패하면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막다른 길에 몰렸던 조치훈과 거의 같았던 것이다.

    ‘이번에도 입단하지 못하면 고향으로 돌아간다.’

    68년의 도쿄, 95년의 서울에서 똑같이 절박한 상황에 몰렸던 두 어린 천재는, 27년의 시공을 사이에 두고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마지막 기회에 극적으로 입단의 관문을 뚫는다.

    95년 7월2일 제71회 입단대회. 당시 세돌의 열두 살 입단은 한국기원 사상 최연소입단 3위(1위 조훈현 9세, 2위 이창호 11세)에 랭크된 자랑스러운 기록이었다. 그 이틀 뒤 형 상훈은 기쁘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입영열차에 몸을 실었다.

    상훈과 세돌이 차례로 프로의 관문을 돌파하면서 가족들이 하나, 둘 서울로 모였다. 큰누나 상희가 세돌의 새 보호자가 되었고, 둘째 누나 세나는 이화여대에 재학하면서 여류입단대회를 노크하기 시작했다.

    세돌의 가족을 보면 문득 ‘사과는 나무에서 먼 곳으로 떨어지지 않는다’는 첼리스트 요요마의 말이 생각난다. 음악을 사랑하는 자신의 마음이나 재능이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것임을 비유하는 이 말은 세돌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아버지가 아마추어 5단의 실력이었다는 사실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슬하의 아이들에게 재능의 우열을 따지지 않고 바둑을 가르친 아버지의 마음이다.

    안정 뒤의 질주

    감히 짐작하건대, 아버지가 바둑을 가르친 것은 상훈과 세돌을 프로기사로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가족의 화목과 단란함을 위해서 아이들에게 하나의 공통어를 가르쳐주려 했을 것이다. 바둑은 말 그대로 ‘손으로 나누는 대화(手談)’이고 이 말 없는 말은, 과다한 말의 오해로 빚어지는 갈등을 해결하는 데 아주 유용한 매체이기 때문이다.

    상훈과 세돌의 재능은 그 과정에 우연히 걸러진 결과였다면 지나친 억측일까. 하지만 이 생각은 크게 어긋나지 않을 것이다. 재능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이들 5남매가 하나같이 바둑을 알고 즐기는 수준에 올라 있다는 게 그 근거다.

    프로에 입단한 상훈과 세돌을 빼면 둘째 누나 세나의 바둑이 가장 세다. 이화여대 국문학과를 졸업한 그녀는 각종 여류대회에서 상위권을 유지하는 아마추어 6단 수준의 강자.

    만화가를 꿈꾸는 큰누나 상희나 서울대 컴퓨터공학과에 재학중인 둘째 형 차돌(21)이 비교적 약하지만, 그렇다고 밖에서까지 하수 취급을 당할 만큼 기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상훈이나 세돌, 세나와 비교할 때 그렇다는 말이지 이 둘의 기력도 프로에게 5, 6점을 깔고 버티는 아마추어 3단 정도의 실력은 된다. 이들 5남매가 서울 행당동에 둥지를 틀고 단란하게 살아가는 것을 보니 아버지의 마음에 있던, ‘말 없는 말’이 제대로 전해진 것 같다.

    이 단란한 가족의 힘이 세돌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95년 입단 이후 세돌은 꾸준히 좋은 성적을 유지하며 성장했으나 99년까지는 그저 ‘일류가 될 가능성을 가진 유망주’였을 뿐 정상을 위협할 수준은 결코 아니었다.

    비금도의 가족이 모두 한자리에 모여 살게 되고, 큰형 상훈도 군복무를 무사히 마치고 돌아왔다. 세돌의 급성장이 이 시기와 맞아떨어지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생활의 안정이 가정을 꾸린 성인에게만 힘을 주는 게 아니다. 정신적인 안정으로 이어지는 그 힘은, 정신의 안정이 절대 전제로 작용하는 바둑을 직업으로 가진 세돌에게도 의식, 무의식적인 힘이 되었을 것이다.

    2000년 벽두부터 세돌은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이창호의 철권통치 10년에 열광하는 한편 식상해 있던 바둑팬들은 아우토반을 질주하는 재규어처럼 내달리는 어린 영웅의 32연승에 환호했다. 32연승은 반백년 한국기원 사상 역대 3위의 연승기록(1위 이창호 41연승, 2위 김인 40연승)이다.

    그러나 세돌의 질주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기록은 32연승에서 멈췄지만 잠시 브레이크를 밟았던 세돌의 질주는 다시 이어져 2000년도 마지막 달력을 떼낼 때까지 계속됐다. 그 과정에 정상의 조훈현이 꺾이고 이창호가 밀려났으나 ‘토네이도 이세돌’에 휩쓸린 최대 피해자는 유창혁이었다. 제8기 배달왕기전 도전 5번기 최종국에서 세돌에게 패해 타이틀을 잃는 바람에 세계타이틀(제5회 삼성화재배)을 따고도 ‘2000바둑문화상 최우수기사상’까지 세돌에게 빼앗겼기 때문이다.

    이창호의 6년 독주를 저지하며 MVP가 된 세돌은 최다승 1위(75승 20패), 연승 1위(32연승), 최다대국 1위(95국)를 기록하며 연간수입 1억원을 넘기는 빅스타의 반열에 올랐고, 이날 고향 비금도에서는 잔치가 벌어졌다고 한다.

    세돌은 2000년의 영광을 새해에도 계속 이어갈 생각인 것 같다. 제5회 LG배 세계기왕전 본선 16강전부터 결승에 이르기까지 세계 최강의 여류 루이나웨이(芮乃偉), 중국의 1, 2인자인 창하오(常昊), 저우허양(周鶴洋)를 차례로 격파했다는 사실은, 2000년도에 누린 세돌의 영광이 결코 우연한 행운이 아니었음을 입증한다.

    결승 5번기 1, 2국에서 세계최강자 이창호를 연파한 것도 그 연장선상의 일이고, 그렇기 때문에 더 많은 팬들이 이창호의 10년 통치를 무너뜨릴지도 모르는 이 ‘N세대혁명’의 과정에 뜨거운 시선을 집중시키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우리가 알 수 없는 어떤 곳에 영적인 존재가 있다면, 그의 아버지도 크게 기뻐했으리라 믿는다. 요요마의 말처럼 ‘사과는 나무에서 먼 곳으로 떨어질 수 없는 것’이니까….

    이세돌은 왜 강한가. 그 힘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가. 당연한 말이지만, 우선 재능이다. 아마추어 5단 실력의 아버지로부터 본격적인 바둑을 배운 지 2년 만에 백을 빼앗았다는 사실은, 그것이 설혹 다소 과장된 얘기라고 해도 타고난 재능을 인정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세돌의 재능은 특출했다. 똑같이 공평하게 가르치되 강요하지는 않았으니 5남매 중에서 재능을 보인 상훈, 세나, 세돌만 바둑의 길을 택하게 됐는데, 그중에서도 세돌의 실력이 가장 빠르게 향상하며 5년 앞서 입단한 형을 추월했으니 바둑에 관한 한 세돌의 재능은 ‘하늘이 내린 것’이라 해도 좋을 것 같다.

    그러나 프로 중의 프로, 강자 중의 강자는 재능만으로만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타고난 재능에 더해서 좋은 스승이 있어야 하는데, 세돌의 경우는 가장 가까운 곳에서, 가장 잘 아는 아버지가 그 역을 했다. 역사, 언어, 족보학에 이르기까지 상당한 학식을 쌓은 교사였던 아버지는 바둑 교육에도 탁월한 스승이었다.

    아버지가 세돌에게 중점적으로 가르친 것은 사활훈련. 바둑을 배우려는 많은 사람들은 비슷한 형태 속에서 삶과 죽음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사활문제를 지극히 싫어한다. 그러나 이 사활훈련이야말로 바둑에서 가장 중요한 수읽기의 힘을 키워주는 최선의 방법이다. 세돌은 아버지가 밭일을 다녀오는 동안 하루종일 그런 사활문제를 안고 씨름하는 생활을 수년간이나 계속했던 것이다. 신예기사 중에서도 정확하고 빠르기로 정평이 난 세돌의 수읽기는 이미 이 시기에 거의 틀이 잡힌 것으로 보인다.

    정확한 수읽기, 담대한 배짱

    18세 이세돌이 빚어내는 盤上의 질풍노도
    은 바둑팬들의 관심을 집중시켰던 LG배 세계기왕전 결승 1국인데, 이세돌의 정확한 수읽기에 의한 타개가 돋보이는 중반전 하이라이트(● 이창호 : ○ 이세돌)다. 수순은 좀 길지만, 흑이 ▲로 찔러 좌변 백 일단을 핍박해왔을 때 백 1 이하 21까지 선수로 삶을 확보하고 우상귀 백 23으로 붙여가 대세를 결정짓는 장면이다(좌상귀는 백A, 흑B, 백C의 패맛도 남아 있다).

    좌변 백의 능란한 수습으로 인해 대세력이 궤멸된 이후 실리부족에 시달리던 이창호는 하변 흑 두 점을 무리하게 움직였다가 대마를 죽이고 자멸하고 만다. 이창호로서는 보기 드문 완패였다.

    이세돌이 보여준 것은 정확한 수읽기에 의한 타개였지만, 더 중요한 사실은 그것이 세계 최강자를 상대로 한 몸싸움에서 조금도 위축되지 않고 최강의 수단으로 맞부딪쳐 간 결과라는 점이다.

    여기서 볼 수는 없으나 이후 종반 하변 흑 대마를 잡는 과정도 마찬가지였다. 18세 소년의 담대한 배짱이 부동심(不動心)으로 세계를 제패한 이창호를 뒤흔들어버린 인상적인 한 판.

    이 대국에서 패한 이창호는 “포석부터 중반에 들어설 때까지 흐름이 상당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 컨디션엔 이상이 없다. 빨리 잊고 내일 바둑(결승 2국)에 전념하겠다. 이세돌 3단에 대해서는 이번 승부가 끝난 뒤 평가하겠다”며 평정을 유지하려고 애썼으나 이튿날 또다시 역전패, 바둑팬들을 놀라게 했다.

    연패 후 인터뷰를 거부한 채 검토실에 들러 최규병, 유창혁 9단 등과 복기, 검토를 하면서 마음을 추스렸으나 그 충격의 여파로 식욕까지 잃었다는 후문이다.

    이 대국에서 보여준 정확한 수읽기와 담대한 배짱이야말로 이세돌 바둑의 두 축이다.

    18세 이세돌이 빚어내는 盤上의 질풍노도
    는 제8기 배달왕기전 도전 5국. 이세돌이 흑 ▲로 우상귀 백을 위협한 장면인데 귀를 지키지 않고 백 △로 뚫어 차단한 것이 유창혁의 착각이었다(● 이세돌 : ○ 유창혁).

    다음 흑 1이 통렬한 급소로 백은 살 수 없는 모양이 됐다. 백 △로 8의 곳을 막았으면 무사했고 이후 평범한 끝내기를 거쳤으면 백이 두터운 형세였다. 백 △의 착각을 간파하고 즉각 우상귀 백을 잡으러간 흑 1은 빠른 감각과 강인한 결정력이 돋보이는 한 수였다.

    똑같이 수읽기에 관한 표현인데 ‘수가 깊다’는 말과 ‘수가 밝다’는 말은 어떻게 다를까. 비슷한 것 같지만 두 표현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수가 깊다’는 것은 향후 반상(盤上)에 전개될 일련의 추이(推移)를 멀리 내다보는 힘이 강하다는 뜻이고, ‘수가 밝다’는 것은 부분적인 돌의 접촉이나 형태에 감춰진 최선의 수를 찾아내는 힘이 강하다는 뜻이다.

    빠른 감각, 강인한 결정력

    따라서 ‘수가 깊은’ 기풍은 대체로 장기전에 강한 역전형이며, ‘수가 밝은’ 기풍은 국지전, 난전에 강한 속전속결형이다. 전자의 대표적인 기사가 조치훈이라면, 후자의 경우는 조훈현이 아닐까 싶다.

    그러면 피말리는 초읽기 중에 우상귀 백을 잡으러 간 흑 1은 어느 쪽에 속할까. 당연히 후자다. ‘수가 밝다’는 것은 감각이 뛰어나다는 말과 같다. 상대가 착각을 범하는 일순간에, 그것도 초읽기중에 ‘이 돌의 형태는 살 수 없는 모양’이라는 것을 간파해내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살 수 없는 돌’이라는 판단이 내려졌으면 다음은 살상(殺傷)의 실행이고 그 실행에 필요한 것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강인한 결정력이다. 장황한 설명을 거쳤지만 그것이 흑 1이며, 이세돌의 강점이라는 뜻이다.

    이 대국만큼 승자와 패자의 명암을 뚜렷하게 갈라놓은 승부도 드물다. 승자인 이세돌은 배달왕 획득에 힘입어 2000년도 MVP로 선정됐고, 패자인 유창혁은 세계타이틀을 따내 가장 유력한 MVP 후보로 올랐다가 이 패배로 국내타이틀 무관(無冠)으로 밀려나면서 MVP 후보에서도 탈락하는 아픔을 겪었다.

    독특한 자기류(自己流)의 발상

    대체로 일가(一家)를 이룬 명인, 국수들은 어느 시기에 이르면 상식의 틀을 깨는 과정을 거친다. 이 말은, 여느 사람들과 똑같은 사고(思考)만으로는 큰 완성을 바라볼 수 없으며 명인, 국수가 될 수 없다는 뜻이다.

    18세 이세돌이 빚어내는 盤上의 질풍노도
    은 제6기 박카스배 천원전(● 이세돌 : ○ 윤성현). 세 귀를 차지한 백의 실리에 흑이 중앙 대세력으로 맞선 장면인데, 백 △로 차단했을 때 흑 1로 젖힌 수가 검토실의 기사들을 놀라게 한 기수(奇手)였다. 백 2로 잡히는 부분의 손해를 감수하고 흑 3∼7로 중앙 세력을 완벽한 집으로 굳힌 발상이 독특하다.

    보통은 백 △를 두면 흑은 2의 곳으로 처리하고 마는 정도인데, 이세돌은 그런 상식의 틀을 깨고 멋들어지게 중앙 세력을 집으로 굳히는, 사석(捨石)의 묘미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흑 1 이하의 수순은 그 발상에 남들의 사고가 미치지 않는, 자기류(自己流)의 영역이 있음을 보여준다.

    이세돌은 강하다. 앞에서 보여준 깊은 수읽기, 빠른 감각, 담대한 배짱, 독특한 발상은 그런 강함을 충분히 입증한다. 그러나 소년은 아직 무엇인가 부족하다. 이창호, 조훈현, 유창혁 등 정상의 경계를 무시로 넘나들면서도 신예들을 상대로 곧잘 추락하는 것이다. 그 편차가 너무 크다. 분명히 무엇인가가 부족하다.

    이세돌은 도예가의 뇌리에 영감(靈感)으로 스친 자기(磁器)의 형상과 같다. 질 좋은 흙을 반죽하고 물레를 돌리며 빚기 시작했으니 아직은 완성된 그릇이 아니다.

    그 영감의 형상이 완벽한 실체를 드러내려면 오직 자신의 치열한 노력이 필요하고, 그 끝에는 그가 숙연하고도 진지한 자세로 염원한 ‘최고’의 월계관이 있을 것이다.

    가까운 장래에 우리는 이창호를 뛰어넘는 또 하나의 신인류를 만날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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