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 독 홍상수·임권택·이창동
- 남자배우 송강호·설경구·한석규
- 여자배우 전도연·심은하·강수연 ‘신동아’는 영화평론가 및 전문기자 50명을 대상으로 한국 최고의 감독, 남자배우, 여자배우를 선정하는 전화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응답자마다 분야별로 1~2인의 인물을 추천해주었다. 그 결과를 공개한다.
● 배장수(경향신문), 이광형(국민일보), 황수정(대한매일), 권재현 김희경(동아일보), 윤자경(매일경제), 오애리(문화일보), 임준택(스크린), 김지연 이영민(시네버스), 허문영 남동철(씨네21), 이명조(연합통신), 이동진 박선이(조선일보), 박정호 신용호(중앙일보), 홍지은 이영재(키노), 신진아(프리미어), 김영진(필름2.0), 임범 이성욱(한겨레), 김혜수(한국경제), 이대현 박은주(한국일보) 이상 26명(매체 가나다순).
제2의 전성기를 구가중인 한국 영화산업. ‘간판 스타’의 얼굴도 많이 바뀌었다. 설문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감독, 배우 할 것 없이 활발한 세대교체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감독은 임권택, 배우는 안성기’ 하는 공식대로 10년 이상을 늦정거려 온 끝에 맞이한 ‘변화의 바람’이다.
홍상수, 임권택을 제치다
감독 부문에서는 18표를 얻은 홍상수 감독이 임권택 감독을 1표 차로 따돌리고 1위를 차지했다.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강원도의 힘’ ‘오! 수정’ 등의 작품을 만든 홍감독은 국제무대에도 잘 알려진 한국의 대표적 시니애스트다.
‘춘향뎐’으로 건재를 과시한 임감독 대신 홍감독이 선정된 것은 일상성에 주목하는 현대적 내러티브에 높은 점수를 준 평자들이 많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3위는 ‘초록물고기’에 이어 ‘박하사탕’으로 한국적 리얼리즘영화에 새 경지를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이창동 감독이 선정됐다. 그는 감독이기 이전에 ‘녹천에는 똥이 많다’ 등의 빼어난 중단편들로 이름난 중견 소설가다. 삶의 아이러니를 억지스럽지 않게 엮어내는 오리지널 극본의 우수함이야말로 이감독이 지닌 최대의 장점이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를 통해 스타일리스트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한 이명세, ‘나쁜 영화’에 이은 문제작 ‘거짓말’로 또 한번 국내외에 격렬한 논쟁을 불러온 장선우 감독이 나란히 4위를 차지했다.
한편, ‘공동경비구역JSA’를 연출한 박찬욱 감독은 6위에 올랐다.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의 20대 신인감독 류승완이 이광모, 이장호, 변영주, 허진호 감독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한 점도 특기할 만하다.
‘지존’ 송강호, ‘다크호스’ 설경구
남자배우 부문 결과도 흥미롭다. ‘한국에서 가장 연기 잘 하는 배우’로 공인받다시피 해온 안성기가 저만큼 밀려난 대신 송강호와 설경구가 약진했다. ‘흥행보증수표’ 한석규마저 3위로 내려앉았다. 어쩌면 안성기는 ‘국민배우’라는 영광스러운 호칭을 후배들에게 물려주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연극으로 데뷔해 1997년 영화계에 발을 디딘 송강호는 자신이 주연을 맡은 두 작품 ‘…JSA’와 ‘반칙왕’을 2000년 한국영화 흥행 순위 1,2위에 올려놓는 괴력을 발휘했다. 이로써 그는 어떤 장르, 어떤 감독, 어떤 규모의 영화에도 적응 가능한 ‘연기의 달인’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박하사탕’ 한 편으로 스타덤에 오른 설경구도 연극배우 출신이다. ‘박하사탕’에선 달리는 기차에 몸을 던지는 절망의 40대에서 고운 하늘빛에조차 눈물짓는 20대 청년까지, 20년의 세월을 넘나드는 신들린 연기로 평단과 관객의 호평을 받았다.
이어 주연을 맡은 ‘단적비연수’에서도 강렬한 눈빛 연기로 영화 자체의 완성도와는 상관 없이 ‘역시 설경구’라는 찬사를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이들에 비해 한석규, 안성기는 지난해 사실상 출연한 영화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활동이 뜸해 상대적으로 박한 점수를 받은 듯하다. 한때 평단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던 박신양은 ‘멜로 전담 배우’로 이미지가 굳어지면서 저만치 밀려났다.
‘…JSA’에서 순박한 북한병사 역을 맡았던 신하균이 3표를 얻어 8위를 차지한 데 비해, 중견 연기자 최민수가 10위로 내려앉은 점도 이채롭다.
여자배우 부문 설문 결과는 예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지속적인 상승세를 유지하고 있는 전도연이 35표를 얻어 단연 선두에 나섰고, ‘미술관 옆 동물원’ ‘8월의 크리스마스’ ‘텔미썸딩’ 등에서 발군의 연기력을 선보인 심은하가 그 뒤를 이었다.
심은하의 경우 지난해 출연한 영화는 ‘인터뷰’ 단 한 편. 이로 인해 쉼 없이 움직여 온 전도연에게 저만치 밀려난 듯 하다. 강수연 역시 별다른 활동이 없었으나 ‘왕년의 명성’에 힘입어 3위에 오르는 데 성공했다.
나이 마흔을 바라보는 이미숙이 4위에 오른 것도 주목할 만한 일이다.
‘단적비연수’에서의 열연은 단연 돋보이는 것이었다.
1,2위와 3위 이하 순위 사이의 점수 차가 지나치게 큰 것은 미모와 연기력, 카리스마를 겸비한 여배우가 그만큼 적기 때문인 것. 남자배우 쪽에 비해 이은주(6위), 김태연·배두나·서정·소유진·하지원(이상 8위) 등 신인들의 이름이 많이 보였지만 이 또한 ‘대표선수’ 부족으로 물갈이가 심한 현실을 웅변해주는 듯해 긍정적으로 볼 일만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