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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노갑총재 김명윤이사장도 당했다”

희대의 사기사건 방정환재단 스캔들

  • 김기영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hades@donga.com

“권노갑총재 김명윤이사장도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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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그 색동회에 이종찬씨가 얼굴을 나타낸 때가 1986년. 이씨는 동요 ‘반달’의 작곡가인 윤극영 색동회 창립동인 중앙위원 댁을 방문, 선생의 평생 숙원사업인 동심문화원을 설립해주겠노라고 자청했다. 이에 윤극영씨는 화선지에 반달 작시휘호를 대량으로 그려줬고 이씨는 이를 표구해 모금활동을 벌이는 등 색동회 관계자들에게 여러 가지 사업아이디어를 제시하며 접근했다.

그러나 호언장담과 달리 실제 이뤄지는 일은 없었고 이씨를 둘러싼 나쁜 소문만 확산됐다. 그러던 1992년 5월 이종찬씨는 ‘대한민국 어린이헌장비’ 건립사업을 한다며 어린이 관련 단체들 사이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당시 이씨의 명함에는 ‘한국청소년기금 총재’라는 직함이 찍혀 있었다. 그 해 8월9일 색동회 산하기관으로 ‘소파탄생100주년기념관 건립추진위원회’가 설치되는데, 이와 별도로 이씨는 96년에 “방정환선생의 장남인 방운용옹의 승인을 받았다”며 훗날 한국방정환재단의 모태가 된 ‘소파방정환선생기념사업회(기념사업회)’를 발족시키고 그 해 6월7일 김명윤 의원을 고문으로, 이수성 국무총리를 명예회장으로 하고 이씨 자신을 회장으로 한 조직구성을 마쳤다.

96년 이씨는 탁월한 ‘네트워킹’ 능력을 발휘해 소파선생 관련 단체 여러 개를 잇따라 만들어냈다. 그 해 11월에는 김수남 색동회 회장(97년 작고)과 ‘소파방정환선생기념관건립위원회(건립위원회)’를 창립하기로 합의한 후 주비위원을 선정했고 이와 별도로 ‘장한나 후원회’(회장 김명윤)를 만들어 천재 첼리스트 장한나양에게 고가의 첼로를 구입해주겠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또 같은 해 12월에는 이씨 자신이 소장을 맡아 ‘한국방정환연구소’라는 조직도 만들었다.

장한나후원회는 동아그룹의 지원을 받아 7억원 상당의 첼로를 장양에게 사주며 기증식을 갖기도 했는데, 실제 장양에게 건네진 첼로의 정확한 가격은 이종찬씨만 알고 있을 뿐, 후원회장인 김명윤 의원도 내막을 모를 정도로 은밀하게 사업을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96년은 이렇게 ‘방정환 비즈니스’를 위한 준비기간이었다. 각종 소파관련 조직 구성도 의미가 있지만 96년 이후 방정환 비즈니스에서 두고두고 이씨 자신의 ‘기득권’ 주장에 근거가 되는 중요한 계약도 마쳤다. 96년 5월 이씨는 소파의 아들인 방운용옹과 별난 ‘양도계약’을 체결했다.



‘양도증서(讓渡證書)’라는 제목의 이 계약서는 방운용옹이 이씨에게 “소파선생의 함자(銜字)와 아호(雅號) 사용의 권리를 양도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또 “오늘부터(계약일인 5월1일)는 1996년 6월7일 창립되는 ‘소파방정환선생기념사업회’만이 고(故) 소파 방정환의 유업계승 및 기념사업, 추모사업, 연구사업 등 기타 제반사업을 할 수 있다”고도 돼 있다. 마지막으로 “오늘부터는 국내·외의 단체(법인 포함)나 개인이 부친 고(故) 방정환의 함자와 아호를 어떤 용도로든 사용(이전에 사용하던 일들의 재추진도 포함)하고자 할 때에는 법률적 사용권리자인 이종찬 선생께 사전 승낙을 받아야만 문제가 없음을 밝혀둔다”고도 기록돼 있다. (사진 참조)

‘방정환 비즈니스’를 시작하다

이 양도증서에 양도인으로 등장한 방옹은 “몇날 며칠을 집에 찾아와 떼를 쓰는 통해 마지못해 서명을 해주었다. 한편으로는 젊은 사람이 아버님의 유업을 잇겠다고 하니 반갑기도 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사망자의 고유명사를 독점 사용할 수 있는지의 법적 해석과 관계없이 이씨는 그 후 승승장구, 방정환 비즈니스를 ‘독점적’으로 벌여나갔다. 97년 1월29일 ‘건립위원회’ 창립 주비위원회를 발족했는데 주비위 명예위원장에 이수성 전총리, 위원장에 김명윤 의원, 사무총장에 탤런트 박규채씨를, 홍보실장에 김순 전소비자문제를 연구하는 시민의 모임 회장, 자료실장에 김석득 전연세대 부총장, 재정부장에 이학래 한양대학생처장 등을 각각 앉히고 이씨 자신은 기획실장이 돼 전체 업무를 총괄했다.

6월7일에는 김수남 색동회장의 사망으로 공석이 된 ‘기념사업회’ 수석부위원장에 성악가 조수미씨를 임명했다. 또 신임 부회장에 바르셀로나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인 황영조씨를 임명했다. 7월에는 프로기사 이창호 9단을 새로운 부회장에 임명했다. 이후 방정환재단의 모체가 될 ‘기념사업회’ 는 이때부터 이미 화려한 스타군단으로 세상의 주목을 끌기 시작했다.

그러나 평화는 오래가지 않았다. 이종찬씨의 독단적 조직운영에 불만을 느낀 유명인사들이 속속 모임을 박차고 나가기 시작했다. 그 해 11월7일 ‘건립위원회’ 박규채 사무총장이 이씨의 언행에 불만을 품고 사무총장직을 사퇴했다. 이듬해인 98년 3월 김명윤 의원을 대신해 ‘건립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던 이수성 전총리도 위원장직을 사임했다. 이전총리의 사임과 관련해서는 여러 가지 증언이 나오고 있다.

방운용옹은 “97년 12월말에 김대중(金大中) 대통령당선자를 모시고 프레스센터에서 ‘방정환 문집’ 헌정식을 가졌는데 대통령 당선자가 나온다고 그래서인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정치인들과 재벌총수들, 기업인들이 70∼80명 이상 찾아왔다. 대통령 당선자까지 참석한 이날 행사는 전적으로 이수성 전총리의 덕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그 날 찾아온 손님들이 저마다 봉투 하나씩을 내미는데 나와 이전총리는 인사하느라 돈이 얼마나 들어왔는지 확인도 못했다. 이종찬에게 물어보니 ‘이전총리에게 보고를 했다’고 그러는데 나중에 들어보니 전혀 업무보고를 하지 않았고, 이 때문에 이 전총리가 크게 화를 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 날 문집 헌정식에서 얼마의 성금이 걷혔는지 정확히 아는 행사 관계자는 없고 이씨가 전적으로 자금을 관리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렇게 돈 문제로 서서히 갈등이 생기기 시작하더니 98년 11월 ‘기념사업회’가 ‘한국방정환재단’으로 공식 출범하면서 돈을 둘러싼 잡음들이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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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영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hade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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