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4월호

미국이 본 김정일, DJ가 본 김정일

  • 최영재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cyj@donga.com

    입력2005-04-20 13:3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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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미 정상회담을 마친 뒤 우리 정부의 외교안보팀이 가장 절실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일까? 바로 한반도 문제에 대한 미국 관리들의 정서와 견해일 것이다. 지난 한·미 정상회담에서 김대중 대통령은 생각보다 강경한 부시 대통령의 대북관에 적지 않게 당황했을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한·미 정상회담의 가장 큰 성과는 ‘한·미 두 나라의 대북관이 크게 다르다는 것을 확인했다는 점’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부시 행정부의 대북관은 어제오늘 만들어진 게 아니다. 역사적인 6·15 남북정상회담 이후에도 부시 행정부의 외교라인이 될 공화당 인사들은 줄곧 대북 강경노선을 언급해왔다. 문제는 공화당 행정부의 등장에 우리 정부가 아무 대책도 세우지 않았다는 점이다.

    한·미 정상회담이 있기 직전에 미국을 방문했던 한국의 최고위급 인사는 임동원 국가정보원장이다. 2월11일부터 17일까지 미국을 방문한 그는 CIA에 들러 한·미 양국의 현안을 토론하고 콜린 파월 국무장관, 콘돌리자 라이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만났다. 이 방문을 마친 뒤에야, 우리 정부는 공개적으로 부시 행정부의 강경한 대북관에 대해 언급하기 시작했다. 이정빈 외교통상부장관의 방미 때까지만 해도 한국 정부는 한·미간 대북관에 이견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었다.

    임동원 국정원장의 방미 당시, 사전에 비공식 루트를 통해 이 사실을 전달받은 워싱턴측 정부 관계자들은 적지 않게 당황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워싱턴측은 한국 정부를 대표한 이정빈장관이 워싱턴을 방문하여 콜린 파월 국무장관과 회담을 한 지 얼마되지 않아서 한국의 정보 책임자가 갑자기 방문하고 싶다고 알려왔기 때문에, 방문 목적을 알지 못해 어리둥절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주한 미국대사관과 CIA 서울 책임자는 몇 차례 조율 끝에 방문해도 좋다는 사인을 보냈다고 한다.

    우리측의 설명은 약간 다르다. 한·미 두 나라 정보기관은 특정 정보를 공동 소유하며 교환한다는 정보교류협정을 맺고 있다. 테러·마약·위조지폐·스파이 관련 정보, 양국의 국가 이익을 해칠 만한 위협에 대한 정보, 특히 북한을 비롯한 미국의 적대 국가에 대한 정보 등은 두 나라가 수시로 교환하며 관계자들을 파견해서 수사에 협조하고 있다. 또 미국 CIA는 해마다 한국 국정원 직원 30여 명을 미국에 데려다가 정보에 관한 교육을 하고 있다. 그래서 두 나라 정보 책임자들은 자연스럽게 1년에 한 번씩 워싱턴과 서울에서 교대로 만나고 있다. 임동원 원장의 워싱턴 방문은 이런 차원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워싱턴에 도착한 임원장은 파트너인 조지 테닛 CIA 국장과 두 차례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조지 테닛 국장은 임동원 원장에게 한·미 두 나라 정보기관원들의 인적 정보수집 기능은 별 차이가 없지만 과학기술 기법을 활용한 정보분석 능력은 미국이 앞서 있는 것으로 설명했다. 이에 대해 임원장은 미국의 과학적인 정보 수집과 기술적 분석 방법에 큰 관심을 보이고 한국도 과학적으로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할 수 있는 기기를 수입하고 인력을 교육할 필요성이 높다고 말했다. 임원장은 지난 2월20일 국회 정보위원회에서도 이와 같은 협의 내용을 공개한 바 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겉치레 인사에 불과했다. 임원장과 조지 테닛 국장의 핵심적인 협의 내용은 다른 데 있었다. 임원장은 김대통령의 방미에 앞서 사전조율을 맡은 대통령의 비공식 특사였다. 워싱턴의 소식통에 따르면 임원장은 현정부가 명운을 걸고 추진하고 있는 햇볕정책과 남북 정상회담을 테닛 국장에게 길게 설명했다고 한다. 조지 테닛 국장은 주로 경청하는 태도를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조지 테닛 국장의 속마음은 따로 있었던 것 같다. 테닛 국장은 임원장을 만나기 직전인 2월7일 미 상원 정보위원회에 출석해 북한과 관련해 여러 가지 증언을 했다.

    ‘신동아’는 조지 테닛 국장의 2월7일 미 상원 발언 내용 전문을 입수했다. 이 발언록의 제목은 ‘2001년 세계의 위협요소:변화하는 세계에서 미국의 안보(Worldwide Threat 2001:National Security in a Changing World)’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증언은 북한 문제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미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전세계의 위험 요소를 총괄하고 있다. 이중 한반도와 관련된 부분을 추리면 북한은 지금도 핵개발을 계속하고 있으며, 미사일 개발·수출·배치를 멈추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다음은 조지 테닛 국장의 상원 발언 중 한반도 관련 대목을 요약한 것이다.

    의장님, 올해에 미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요소를 진단하면서, 저는 미국의 이익에 영향을 끼치는 변화들이 곳곳에서 빠르게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수많은 사례가 있습니다. 새로이 나타나는 통신 기술은 법 집행과 첩보활동에 쓰이기도 하지만 테러리스트와 마약상도 이를 활용합니다. 급속한 인구 팽창은 몇몇 지역에서 도저히 감당해낼 수 없는 규모입니다. 일부 국가는 국내적으로 통합력을 잃고 혼란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한국과 이란 같은 나라에서는 낡은 장벽이 무너지는 변화가 일고 있습니다. 또 몇몇 국가에서는 미사일 개발이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의장님, 저는 경험하지 못했지만, 미국 정보기관은 이렇게 광범위한 분야에서 미국의 이익에 도전하는 다이내믹한 일들에 대처해야만 합니다. 우리가 지금처럼 불확실한 국면을 도맡아야 했던 적은 일찍이 없습니다. 우리가 처리해야 하는 일은 다양한 국면에서 대단히 많으며, 이 많은 일 가운데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제 생각에 가장 우선순위에 놓아야 할 것은 미국인의 생명을 위협하거나 미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요소들입니다. 이 점에 유념해서 저는 우선, 국제 테러리즘의 도전에 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이슬람 테러리즘, 중동의 테러리즘, 남아시아의 반미운동 등 국경을 넘나드는 테러리즘에 대해 설명) …

    이제 확산(proliferation) 분야의 문제로 화제를 바꾸겠습니다. 현재 전세계 여러 국가와 그룹들이 대량살상무기를 획득하거나, 이를 운반할 수단을 얻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먼저, 계속해서 커지는 대륙간탄도탄(ICBM)의 위협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러시아와 중국 외에도 특히 북한과 이란, 이라크 등의 나라가 다양한 탄도미사일로 미국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이런 미사일 프로그램은 해당 국가가 자체적으로 기술을 개발한 경우도 있고, 타국의 지원이나 수출로 추진하고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물론 새로운 미사일 프로그램들은, 과거 우리 미국이 냉전 시절에 직면했던 미사일 위협보다는 수도 적고 정확도나 신빙성 면에서 떨어지지만, 여전히 미국의 이익에 위협적입니다.

    예를 들면 2년 전에 북한은 대포동 1호라는 우주비행체를 시험 발사했습니다. 이 발사체는 이론적으로는 대륙간탄도탄(ICBM)으로 전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미사일은 정확도는 떨어지지만, 크기가 작은 생화학 무기를 미국으로 날릴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북한은 대포동 1호의 후속모델인 대포동 2호를 시험발사할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현재 북한이 시험발사를 유예중인 이 대포동 2호는 핵폭탄 크기의 탄두를 미국으로 날릴 수 있습니다.

    이란은 중동에서 가장 크고 유용한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는 나라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 나라가 공식적으로 발표하는 내용을 보면 대기권 바깥으로 나가는 장거리 미사일을 개발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테헤란은 북한의 패턴을 따르고 있습니다. 이란은 아마도 몇년 안에 가벼운 탄두를 미국으로 날릴 수 있는 대륙간탄도탄을 실험할 것입니다.

    이라크 역시 미사일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이라크가 외국의 기술 원조를 받는다면 10년 안에 대륙간탄도탄을 보유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의장님, 대륙간탄도탄의 위협과 마찬가지로, 중·단거리 탄도미사일의 확산도 미국의 이익과 군사력에 위협이 되고 있습니다. 비록 전부는 아니지만, 북한의 노동 미사일 수출은 중거리탄도미사일 확산을 불렀습니다. 이는 중동과 아시아에서 전략적인 균형을 깨뜨리고 있습니다. 이러한 중거리탄도미사일에는 이란의 샤하브(Shahab-∃)와, 파키스탄의 가우리(Ghauri), 인도의 아그니Ⅱ(AgniⅡ)가 있습니다.

    북한은 미사일·대량살상무기 수출국

    의장님, 저는 몇몇 국가의 지원이 미사일과 대량살상무기(WMD) 프로그램 도입 및 개발기간 단축, 생산에 촉매작용을 하리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미사일과 대량살상무기 관련 기술을 전세계에 공급하고 있는 주요 세 나라는 러시아, 중국, 북한이며, 이들의 활동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 세 나라의 자세한 활동 사항들은 기밀에 속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미국의 가장 큰 관심사이므로 간략하게 요약해드리겠습니다.

    러시아의 국영 방위산업과 핵산업은 여전히 자금 부족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모스크바는 방위산업과 핵산업의 생산품을 수출해서 부족한 외화를 메우려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러시아의 군수품이 수출되면서 여러 지역에 이루어지는 확산 문제에 주목합니다.

    러시아는 지난해 여러가지 탄도미사일 관련 생산품과 제작기술을 이란, 인도, 중국, 리비아에 공급했습니다. 실제로 지난해에 러시아는 실질적인 탄도미사일 기술을 이란으로 이전했습니다. 우리 중앙정보국이 보건대 이란은 새로운 미사일을 개발하는 데 더욱 박차를 가할 것이고, 머지않아 생산국이 될 것입니다.

    러시아는 또 이란의 다양한 민간 핵프로그램의 핵심 공급자입니다. 이런 기술 제공도 이란의 핵무기 프로그램에 도움을 줄 것입니다. 러시아에서 나오는 군수품은 이란의 생화학무기 생산기술과 설비의 중요한 원천이기도 합니다. 이란과 다른 몇몇 국가의 생물학무기와 화학무기 거래상들은 생화학무기 정보와 훈련을 위해서 러시아의 생화학 기술을 사들이고 있습니다.

    지난 수년간 중국이 외국에 미사일 관련 기술을 지원하는 것도 심각한 수준입니다. 중국은 파키스탄이 이른 시일 안에 고체 로켓 추진연료를 양산할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중국의 군수 법인들은 파키스탄 이외에도 미사일과 관련된 원재료 같은 여러 생산물을 북한, 이란, 리비아 등지에 제공했습니다. 북한, 이란, 리비아는 모두 미국의 감시대상국입니다.

    지난해 11월 중국 외교부는 핵무기 운반에 쓰이는 탄도 미사일을 외국이 개발하는 것을 지원하지 않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의장님, 지금까지 중국이 전개해온 확산정책을 기초로, 우리는 중국이 이와 같은 언급에 반하는 행동을 하지 않을까 면밀히 주시하고 조심스레 분석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우리는 파키스탄의 2단계 중거리 탄도미사일 ‘샤힌Ⅱ’ 개발을 중국이 지원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습니다.

    핵무기 개발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중국은 과거 파키스탄에 여러 가지 핵 프로그램을 지원했습니다. 1996년 5월에 베이징은 파키스탄에 핵무기로 전환할 수 있는 핵기술을 주지 않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중국과 파키스탄의 거래가 끝났다고 확신할 수 없습니다. 이란과 관련해서는 중국은 현재 진행하고 있는 두 가지 핵 프로젝트가 끝날 때까지 핵기술을 계속 제공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이란의 핵기술 개발에는 러시아도 일조하고 있습니다. 비록 지금까지는 러시아의 원조가 민간 핵기술 분야에 그치고 있지만, 이는 군사적인 부분으로 얼마든지 발전할 수 있습니다.

    북한에 관해 말씀드리자면, 우리의 주된 관심사는 평양이 계속해서 탄도미사일 관련 설비와 미사일 성분, 물질, 그리고 전문 기술을 수출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중동과 남아시아, 북아프리카의 국가들이 북한의 고객입니다. 평양은 탄도미사일, 설비, 관련 기술을 개발하고 판매하는 데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미사일 판매는 북한의 주요 외화 획득원입니다.

    … (중략) …

    이제부터 북한 문제에 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평양이 외교적으로 대담하게 국제사회에 진출하고 남한과의 관계를 개선하는 것은 그들의 전략에 중대한 변화가 생겼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 전략은 평양의 정치적 고립과 경제 봉쇄를 풀어, 더 많은 외국의 지원을 얻음으로써 김정일 정권의 생존을 연장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김정일이 북한을 얼마나 개방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저는 여러분에게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아직까지 북한이 미국이나 남한에 대한 위협을 현저하게 감소시킨다는 징후를 전혀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평양은 여전히 강력한 군사력을 보유하는 것이 국력의 기본 요소라고 믿고 있습니다. 평양이 선언한 ‘선군(military first)’정책을 유지하려면 군부에 대한 막대한 투자가 필요합니다. 북한에서는 군비 지출이 국가의 다른 지출보다 우선순위에 있습니다.

    북한은 100만이 넘는 정규군과 500만의 예비군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이는 세계에서 다섯째로 많은 군사력입니다. 한반도에서는 동맹군(한미연합군)이 아직 질적인 우세를 지키고 있지만, 북한은 지난 10년 동안의 군사력 감퇴추세를 이제 멈춘 것으로 보입니다. 미국에 대한 장거리 미사일 위협 이외에도, 평양은 중·단거리 미사일을 늘리고 있으며, 이는 우리 동맹국들을 커다란 위험에 빠뜨리고 있습니다.

    경제적 측면에서 본다면, 북한이 실제로 구조개혁을 할 거라는 신호는 전혀 없습니다. 김정일은 최근 상하이를 방문한 뒤에 경제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실제적인 방법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최근까지 김정일은 북한 경제의 이곳저곳을 땜질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습니다.

    북한이 국내 경제를 회복하려면 외국 원조가 필수적입니다. 이 나라를 1995년 경의 기아로부터 벗어나게 한 유일한 방법이 1997년부터 시작된 대규모 식량 원조였습니다. 북한의 산업시설 가동률은 여전히 낮습니다. 산업기반은 거의 와해된 상태이며, 원자재도 바닥났고 신규 투자도 부족합니다. 이런 모든 것이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습니다. 만성적인 에너지 부족은 가장 심각한 도전입니다.

    그런데 남한의 원조와 투자는 북한에 외부의 바람을 불어넣고 바깥세계에 대한 정보를 주었습니다. 이 바람과 정보는 김정일 체제가 주민들에게 하는 선전과는 다른 것입니다. 경제적 포용정책은 또한 이 나라가 경제를 재건하고 발전시킬 수 있다는 기대를 낳을 수 있습니다. 김정일이 안고 있는 위험은 만약 자신의 경호조직을 과대평가하거나, 엘리트의 지지를 잃거나, 사회 불만이 위험한 수준에 이른다면, 체제나 권력 장악력이 약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른 권위주의 체제가 그랬던 것처럼 북한에서 갑자기 급진적인 변화가 일어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임동원 국정원장은 이처럼 북한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갖고 있는 테닛 국장에게 자신과 김대중 대통령이 상당시간 김정일을 만났으며 김정일은 대화의 상대역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임원장은 또 북한의 메시지도 테닛 국장에게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일이 미국과 관계를 개선하기 원하며, 북한이 국제사회로 나가기를 바라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임원장은 또 북한이 테러 지원 국가 명단에서 제외되기를 소망하고 있음도 테닛 국장에게 전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테닛 국장은 임원장에게 “김대중 정권이 상대하는 김정일과 미국이 바라보는 김정일은 전혀 다른 모습”이라며 “한국과 미국이 북한을 바라보는 차이점이 상당히 넓은 것 같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정부와 언론의 아전인수식 해석

    이와 같은 시각차는 임원장이 콜린 파월 국무장관을 만났을 때도 드러났다. 파월 장관은 임원장에게 “한국이 북한을 포용하고 대화하는 것에 대해서는 미국이 반대할 이유가 없으며 지지한다. 그러나 북한은 국제사회에서 더 큰 신뢰를 받도록 노력해야 하며 그 실증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파월 장관은 북한이 미사일 문제, 테러 지원 문제, 인권 문제, 민주화 추진, 재래식 무기 수출, 마약 생산 및 수출, 위조 달러 인쇄 같은 문제를 먼저 해결한 후 국제사회의 검증을 받아, 의혹을 완전히 없앤 뒤에야 미국과 관계를 개선하고 지원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론적으로 미국 정보기관이 북한을 바라보는 시각은 상당히 적대적이다. 테닛 국장이 상원 청문회에서 발언하던 2월7일 미 국방정보국(DIA) 토머스 윌슨 국장도 같은 청문회에서 “북한은 군사력을 감축할 것 같지 않다. 왜냐하면 체제를 유지하는 데 군사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고 증언했다.

    워싱턴에서 한·미 정상회담이 끝난 직후인 3월7일 오후 2시46분 영국 BBC방송은 회담 결과를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부시 대통령은 ‘북한이 핵개발과 미사일 개발, 무기 암거래 수출, 대량살상무기 개발을 중지하고, 국제사회가 이를 확인하기 전에는 북한의 지도자와 대화할 뜻이 없다’고 말했다. 부시 대통령은 또 ‘북한은 94년 제네바협정 이후 핵을 개발하지 않았어야 하는데 지금도 핵과 미사일을 개발하고 있다. 클린턴 정권은 지난 6년 동안 속아왔다. 그러나 우리 정권은 절대 속지 않는다’고 김대중 대통령에게 말했다. 부시 대통령은 ‘북한을 아직도 국제사회의 위험한 존재로 파악하고 있으며 김정일은 신뢰할 수 없는 인물이기 때문에 대화하거나 협상할 뜻이 없다’고 말했다.

    부시 행정부가 이렇게 나오는 것은 미국의 철저한 국익 논리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한국 언론은 한·미 정상회담의 결과에 대해서 단순히 한·미간의 대북관에 차이가 있다는 정도로만 두루뭉실하게 보도했다. 한국 언론뿐 아니라 우리 정부의 발표도 아전인수식 경향이 짙었다. 냉엄한 국제 정치의 현실 속에서 부시 행정부의 관점을 있는 그대로 해석하기보다는 ‘어떻게 해주었으면 좋겠다’는 막연한 희망이 주조를 이루었다.

    한반도의 분단과 전쟁, 전과 탈냉전에 이르기까지, 미국은 한반도 문제에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 우리에게 미국은 하나의 조건인 셈이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듯이, 북한에 대해 강경하고, 우리 정부의 대북 포용정책에 의구심을 가지고 있는 부시 행정부의 정서를 자꾸 아니라고 덮을 수는 없는 일이다. 우리의 국익을 극대화하고 한반도의 미래를 개척하기 위해서는 미국 외교를 좌우하는 핵심 관료들의 발언과 정책·이론을 면밀히 검토하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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