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4월호

불꽃튀는 스포츠신문 四國志

  • 조성식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mairso2@donga.com

    입력2005-04-20 14: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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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살인적인 초쇄경쟁을 벌이는 스포츠신문 四國志. 스포츠신문은 왜 내일자 신문을 오늘 오전에 인쇄해야 하는가. 가판에서는 어느 신문이 우위이고 배달판에서는 어느 신문이 강세인가. ‘20초 전쟁’에 목매는 스포츠신문의 제작·판매·광고 시스템을 철저 해부했다.
    3월14일 오전 11시, 지하철 2호선 충정로역. 중림동 방면 출구 도로변에 신문더미가 쌓여 있다. 스포츠신문이 가장 많고, 일간지로는 석간인 문화일보, 그밖에 경제신문 한 종류와 주간신문 몇 종이 눈에 띈다.

    포장이 돼 있고 노끈으로 묶인 점으로 미뤄 어디론가 실려갈 신문들인 듯싶다. 각 신문더미 위엔 날짜와 부수, 발송지가 적힌 종이가 끼워져 있다. 스포츠조선을 덮은 종이엔 ‘2001.3.14 200부 홍대’라고 적혀 있다. 판수는 30판.

    스포츠신문 초판은 오전에 인쇄된다. 그에 따라 정오쯤이면 서울과 수도권 일대에 내일자 신문이 배포된다. 이른바 가판석간이다. 스포츠조선의 경우 30판이 이에 해당한다. 따라서 도로변에 쌓여 있는 스포츠조선 30판은 하루 전인 3월13일 정오에 발매된 신문이다.

    그 옆에 스포츠투데이가 쌓여 있다. 250부짜리와 205부짜리 두 묶음이다. 모두 1판이다. 스포츠투데이 1판은 스포츠조선 30판과 같다. 마찬가지로 하루 전날 오전 발행된 신문들이다. 잠시 후 용달차가 다가오더니 신문더미를 차에 싣는다. 운전기사에게 “반품이냐”고 묻자 고개를 끄덕인다.

    끝 모를 초쇄경쟁



    3월6일 스포츠서울 스포츠조선 일간스포츠 등 스포츠3사 노동조합은 각사 경영진에 초쇄경쟁 개선책을 요구하는 공동결의문을 발표했다. 스포츠투데이가 빠진 것은 노조가 없기 때문. 다음날 전국언론노동조합(위원장·최문순)은 스포츠4사 대표이사 앞으로 ‘근로조건 악화를 부추기는 초쇄경쟁 개선 촉구 건’이라는 제목의 공문을 보냈다.

    스포츠3사 노조는 결의문을 통해 “스포츠신문 조합원들은 오전 11시30분대 초쇄시각을 맞추기 위해 새벽같이 일어나 오전 7시 반에 출근해야 하고, 초판 제작 마감이 끝나자마자 바로 5개의 지방판을 포함한 당일 최종판 제작 마감까지 판갈이를 거듭하는 엄청난 격무에 시달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노조는 또 “이러한 제작 풍토는 기자조합원들에게 부실한 기사를 양산하게 함으로써 신문의 질적 저하를 초래하는 구조적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며 “우리는 스포츠신문사 경영진이 살인적인 초쇄경쟁에 대한 각성을 토대로 개선에 관한 합의를 하루 빨리 도출해낼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밝혔다.

    노조가 문제삼은 초쇄경쟁이란 말 그대로 초판, 곧 가판석간을 먼저 찍기 위한 경쟁이다. 현재 스포츠신문의 초판 인쇄 시각은 오전 11시30분 안팎. 이에 비해 문화일보와 같은 석간 종합일간지의 가판은 오전 11시, 조간 종합일간지 가판은 오후 6시에 인쇄된다. 일반 가정에 배달되는 스포츠신문은 조간 종합일간지와 마찬가지로 밤 12시쯤 인쇄된다. 사실상 조석간 체제로 운영되는 셈이다.

    노조 관계자에 따르면 스포츠신문의 초쇄시각이 정오 이전으로 당겨진 것은 1999년 스포츠투데이 창간 직후. 스포츠지 역사를 살펴보면 새로운 신문이 창간될 때마다 초쇄시각이 조금씩 앞당겨졌음을 알 수 있다. 일간스포츠만 있을 때는 물론 초쇄경쟁이라는 말 자체가 없었다. 경쟁의 시위가 당겨진 것은 1985년 스포츠서울이 창간되면서다.

    스포츠서울이 창간될 때만 해도 초쇄시각은 오후 4시께로 조간 종합일간지와 크게 차이나지 않았다. 두 신문의 경쟁은 초쇄시각을 오후 2시께로 앞당겼다. 초쇄경쟁이 본격적으로 불붙기 시작한 것은 1990년 스포츠조선이 창간되면서. 그 전까지만 해도 오후 시간대를 유지하던 초쇄시각은 3사 경쟁시대를 맞아 정오 가까이까지 다가섰다.

    그로부터 몇 년 동안 12시30분 초쇄 체제가 유지됐다. 그러나 ‘정오의 벽’을 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어느 한 신문이 ‘선’을 넘으면 다른 두 신문은 자동으로 따라갈 수밖에 없는 구도였다. 스포츠투데이 창간은 기존 세 신문의 이런 조바심에 불을 지른 셈이었다.

    3사 노조가 결의문을 통해 “내일자 신문을 오늘 오전에 발행하는 현실은 독자를 혼란스럽게 할 뿐만 아니라 자사 최종판 신문의 판매까지도 가로막는 모순을 드러내고 있다”고 지적한 데서도 알 수 있듯 스포츠신문들의 제살 깎기 경쟁은 한계점에 이른 양상이다. 노조에 따르면 경영진은 열악한 제작환경을 시정하기는커녕 올림픽이나 월드컵, 박찬호 경기 등이 열릴 때는 초쇄를 오전 10시 이전으로 앞당기는 등 무분별한 초쇄경쟁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는 것.

    이와 관련, 스포츠조선 이영식 노조위원장은 “석간은 조간과 불과 몇 시간 차이로 가판에 깔린다. 먼저 나와 있던 조간은 파지 신세가 돼 전부 쓰레기장으로 간다. 종이 한 장, 기름 한 방울 나오지 않는 나라에서 이 무슨 낭비냐”고 개탄했다. 이위원장은 또 “초쇄경쟁이 심해진 데는 스포츠조선의 역할이 컸다”고 말했다. 후발주자로서 일간스포츠와 스포츠서울을 단기간에 따라잡기 위해 ‘먼저 내고 먼저 팔자’는 판매전략을 구사했는데, 그것이 오늘날 극한 초쇄경쟁의 뿌리라는 것이다.

    대체 스포츠신문의 어떤 특징이 이렇듯 무분별한 경쟁체제를 낳았을까. 스포츠 발전과 대중문화 창달에 크게 이바지했다는 긍정적 평과 동시에 황색 저널리즘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 스포츠신문의 무한경쟁세계를 들여다보면 한국 언론의 구조적 문제점을 알 수 있다. 특히 지국간 과당판매경쟁으로 종종 물의를 빚는 종합일간지에 스포츠신문 4국지는 남의 일이 아니다.

    스포츠신문의 원조는 1969년 9월 창간된 일간스포츠다. 1985년 6월 스포츠서울이 등장하기 전까지 스포츠지 시장은 일간스포츠의 독무대였다. 고교야구 붐이 일었을 때 경기장 입구에 트럭을 대놓고 팔 정도로 인기가 좋았다.

    후발주자인 스포츠서울은 스포츠신문의 대중화 시대를 열었다. 전 지면 컬러화를 내세우며 젊은 독자층을 파고든 스포츠서울은 선두주자인 일간스포츠를 단숨에 따라잡았다. ‘읽는 신문’ 시대를 지나 ‘보는 신문’ 시대가 온 것이다. 거기에 일간지 최초의 한글전용, 전면 가로짜기 편집, 연예면 확대 등의 차별화전략이 시장에 먹혀 들어갔다.

    스포츠서울의 대성공과 더불어 스포츠지 시장은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스포츠서울 창간 배경에 대해선 몇 가지 분석이 있다. 5공화국은 스포츠공화국으로 불릴 정도로 스포츠 활성화 정책을 폈다. 군사정권의 폭압적 정치에 염증과 무력감을 느끼던 국민들에게 스포츠는 정신적 해방구 구실을 했다. 1982년 발족된 프로야구는 국민의 폭발적 관심을 일으키며 조기정착에 성공했다. 스포츠신문 1면에 각 종목 중 야구 기사가 가장 많이 등장하는 전통은 이때 만들어진 것이다. 야구팬들의 호응에 힘입어 일간스포츠는 날개돋친 듯 팔려나갔다.

    스포츠조선의 ‘원죄’

    거대 지하철 가판의 탄생도 스포츠서울 창간을 촉발한 요인이다. 스포츠신문은 종합일간지에 비해 가판 판매율이 높다. 스포츠서울 창간 1년 전인 1984년에 개통된 지하철 2호선은 가판시장의 개념을 획기적으로 바꾸었다. 스포츠서울은 가판시장을 집중 공략했는데 그것이 성공을 거두었다. 그리고 그 영향력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 같은 대형 국제경기를 잇따라 유치한 것도 큰 호재였다.

    이런 분위기를 타고 1990년 3월 스포츠조선이 탄생했다. 스포츠조선은 연예면 특화와 만화 지면 강화로 승부수를 던졌다. 무분별한 연예 스캔들 기사와 대담한 노출사진, 타블로이드판 만화부록은 선정성 및 음란성 시비를 불러 일으켰다. 그렇지만 나머지 두 신문 또한 스포츠조선의 전략을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무차별 판매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일부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스포츠신문 음란폭력성 시정촉구운동’이 벌어진 것도 그 즈음이다. 오늘날 스포츠신문들에 가장 위협적인 존재인 음대협(음란폭력성조장매체대책시민협의회)은 바로 이 운동의 결실이었다. 음대협은 지난 10년 동안 스포츠신문의 음란폭력성을 추방하기 위해 광고주 불매운동, 규탄집회, 검찰고발 등 실력행사를 벌여 스포츠신문 판매에 타격을 입혀 왔다.

    스포츠조선이 시장의 한 축을 형성한 이후 비교적 안정된 3파전 구도가 유지되던 스포츠지 시장은 1999년 3월 스포츠투데이 창간으로 또한번 요동했다. 스포츠투데이의 차별화 전략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판형 변화. 기존 3개 스포츠신문의 판형보다 조금 작은, 미국 일간지 ‘USA투데이’ 판형으로 바꾸었다. 글자 각도와 색깔도 달리 했다. 또한 스포츠지 영역인 스포츠 연예 문화 레저에 머무르지 않고 정치 경제 국제 사회 분야의 뉴스를 다룸으로써 스포츠 종합일간지를 지향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스포츠투데이는 스포츠지 ‘본연’의 자세로 돌아갔다.

    스포츠투데이는 창간 2년 만에 가판시장에서 나름의 영역을 확보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학생층이 애독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스포츠투데이는 창간 당시 ‘선정주의 배격’의 기치를 내세우고 한동안 음란물 추방 캠페인을 펼치기도 했다. 그러나 이와는 어울리지 않게 지난해 한국신문윤리위원회로부터 기사와 관련해 4회 연속 공개경고를 받는 등 선정성과 저질 시비를 부채질했다.

    한국언론재단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스포츠신문 종사자는 994명으로 전체 신문사 종사자(1만4664명. 중앙일간지 경제신문 외국어신문 스포츠신문 지방일간지)의 6.8%를 차지했다. 전년(1999년)과 비교하면 213명이 늘었다. 이는 스포츠투데이 창간과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같은 기간에 종합일간지 종사자는 166명이 줄었다.

    2000년 4월 기준으로 스포츠4사 중 직원이 가장 많은 곳은 스포츠조선(319명). 그 다음이 스포츠서울(248명)이고, 스포츠투데이(201명), 일간스포츠(155명) 순이다. 그러나 편집국 종사자, 곧 기자직만을 따질 때는 순위가 바뀐다. 스포츠서울(141명), 일간스포츠(135명), 스포츠조선(131명), 스포츠투데이(116명) 순이다. 직원 수로만 보면 스포츠신문은 종합일간지의 1/3∼1/2 규모다.

    스포츠신문 편집국 체제의 가장 큰 특징은 체육부와 별개로 야구부가 있다는 점이다. 야구기사가 스포츠신문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맏형 격인 일간스포츠의 편집국 취재팀은 체육부 야구부 연예부 사회부 문화·레저부로 구성돼 있다. 이것이 스포츠신문 편제의 전형이다.

    스포츠조선의 경우 여기에 정보통신부와 경마부가 추가돼 있다. 스포츠투데이는 사회부 대신 뉴스부가 있다.

    스포츠서울 편집국은 세분화된 팀제로 운영되고 있는데, 다른 신문과 달리 축구팀이 독립해 있는 것이 특징이다.

    기자 수가 가장 많은 팀은 연예팀과 야구팀으로 각각 16명 안팎이다. 이어 체육팀(농구 배구 골프 등 축구와 야구를 제외한 종목) 사회팀 축구팀 문화팀 레저팀 등의 순이다.

    스포츠3사 노조가 ‘살인적인’이라는 표현을 쓸 정도로 기자들의 근무여건이 악화된 것은 가판경쟁 탓이다.

    스포츠신문의 가판경쟁은 흔히 ‘20초의 전쟁’으로 불린다. 20초는 독자가 가판대 위의 스포츠신문을 사는 데 걸리는 시간을 말한다. 평소 구독습관이나 가치관에 따라 별 망설임 없이 집게 되는 종합일간지와 달리 스포츠신문은 4개지의 1면 머릿기사를 비교한 다음 선택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스포츠지들의 가판 판매실태를 알아보기 위해 3월12일과 3월13일 이틀에 걸쳐 지하철 가판을 둘러봤다.

    “팔리는 만큼만 갖다 줘야 하는데 무조건 많이 갖다 안긴다. 반품이 반도 더 나온다. 파지가 가정배달판보다 더 많을 것이다.”

    3월12일 오후 5시30분, 지하철 5호선 충정로역 구내 가판업자의 한숨 섞인 푸념이다. 그에 따르면 현재 스포츠신문 판매율은 매우 저조한 편이다. 종합일간지보다 조금 더 팔리는 정도다. 받은 양의 절반 가량 팔리면 그 날은 운 좋은 날이다.

    스포츠신문 1부 값은 500원. 그 중 가판업자가 차지하는 몫은 160원이다. 예컨대 하루에 스포츠신문 500부를 팔면 8만원의 수익을 챙기는 셈이다. 지하철역 가판엔 오전 오후 하루 두 차례 스포츠신문이 깔린다. 오전에 깔려 있는 신문의 발행일은 오늘 날짜이고 낮 12시 전후에 깔리는 신문의 발행일은 내일 날짜다. 충정로역 가판업자는 오후에 깔리는 부수에 대해 “신문당 100∼150부 정도”라고만 할 뿐 자세한 부수를 밝히지 않았다.

    이 가판에서 요즘 잘 나가는 신문은 스포츠서울과 스포츠투데이라고 한다. 가판업자는 그 이유에 대해 “연예면이 돋보이는 이유도 있지만 나머지 두 신문보다 읽을 거리가 많기 때문”이라고 나름대로 분석했다. 그는 ‘오현경·백지영 사건’ 때 얼마나 팔렸냐고 묻자 예상밖(?)의 대답을 했다.

    “그 사건으로 더 팔리진 않았다. 그때 많은 시민들이 스포츠신문을 손가락질하며 지나갔다. 한마디로 추접스럽다는 것이었다.”

    오후 6시까지 30분 동안 지켜본 결과 스포츠신문을 사간 사람은 두 사람밖에 없었다. 두 사람이 고른 것은 각각 스포츠서울과 스포츠투데이. 가판업자에 따르면 스포츠투데이와 스포츠조선은 요즘 반품을 줄이기 위해 가판 부수를 줄였다고 한다.

    3월13일 낮 12시10분, 2호선 시청역의 한 가판. 조간 스포츠신문들이 눈에 띤다. 부수는 신문당 20∼30부. 가판업자는 “반품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다”며 “판매량이 지난해에 비해 크게 줄었다”고 말한다. 가장 잘 팔리는 신문을 묻자 “1면 기사에 따라 다르지만 평균적으로 스포츠서울이 가장 많이 나간다”고 귀띔했다. 12시20분, 가판 배달업자가 100부쯤 돼 보이는 스포츠투데이 꾸러미를 갖다 놓는다. 막 나온 가판용 석간이다.

    충정로역에서 5호선으로 갈아 탔다. 서대문역∼광화문역 구간 전철 안에서 신문을 배달하는 청년을 만났다. 그는 막 나온 석간을 5호선 구간 가판에 배달하고 있었다. 그의 입을 통해 지하철역 한 가판에 깔리는 스포츠신문 부수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다. 그에 따르면 조간은 30부, 석간은 130부가 기준이다. 가장 잘 팔리는 신문은 역시 스포츠서울. 그러나 판매율은 그리 높지 않다. 평균 판매부수가 조간은 10부, 석간은 90부라고 한다. 판매율을 계산하니 각각 33%, 69%다.

    오후 1시. 이번엔 광화문 사거리 주변의 한 지상가판에 들렀다. 지하가판에 비해 신문부수가 훨씬 적었다. 석간의 경우 스포츠서울과 일간스포츠가 20부, 스포츠조선과 스포츠투데이는 10부다. 조간은 4개 신문 모두 5부. 지하가판과 달리 한 부 팔면 120원이 남는다고 한다. 판매율은 50% 안팎. 가판업자는 “요즘 전반적으로 신문이 팔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오후 4시, 서울역을 찾았다. 서울역 구내 가판은 홍익회가 관장하고 있다. 따라서 가판에서 신문을 파는 사람은 지하가판처럼 개인 업자가 아니라 홍익회 직원이다. 직원에 따르면 스포츠조선을 뺀 나머지 3개 스포츠지의 가판부수는 같다. 조간이 30부, 석간이 50부다. 스포츠조선만 20부, 30부다.

    이곳에서도 가장 잘 나가는 신문은 스포츠서울로 확인됐다. 그 다음이 스포츠투데이. 직원은 판매실태에 대해 “잘 팔릴 때는 반 정도 나간다”고 5호선 충정로역 가판업자와 같은 대답을 했다.

    그는 또 “어떤 기사가 실릴 때 신문이 많이 팔리느냐”는 물음에 흥미로운 얘기를 들려줬다.

    “물론 첫째는 찬호 기사다. 특히 박찬호 경기 결과를 1면에 실으면 확실히 많이 나간다. 연예인 스캔들 기사도 판매에 끼치는 영향력이 크다. 지난해 오현경·백지영 사건이 터졌을 때는 엄청 팔렸다. 백지영 사건 초기 스포츠서울만 관련 기사를 1면에 싣지 않은 날이 있었다. 평소 가장 잘 나가던 스포츠서울이 그 날은 여지없이 깨졌다. 스포츠서울은 다음날 조간에 백지영 기사를 실었다.”

    스포츠4사의 순위를 명확히 보여주는 자료는 없다. 판매부수가 비밀에 싸여 있기 때문이다. 다만 몇 가지 참고할 만한 자료는 있다. 지난해 공정거래위원회는 스포츠4사의 부당공동행위를 조사한 적이 있다. 1999년 10월1일부로 신문값을 동시에 500원으로 올린 것을 문제삼은 것이었다. 당시 공정거래위원회 의결자료에는 스포츠4사의 시장(가판) 점유율에 관한 기록이 있다. 그에 따르면 1999년 9월 기준 스포츠서울과 일간스포츠가 30% 안팎이고, 스포츠투데이와 스포츠조선이 각각 20% 안팎이다.

    최근 미디어오늘에 소개된 ‘2001년 한국광고주협회 인쇄매체 수용자 조사결과’는 공신력이 매우 높은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전국 1만 가구를 상대로 신문구독현황, 신문접촉현황 등을 조사한 결과 스포츠서울은 1일 및 1주 접촉률 순위에서 1위를 차지했다. 스포츠조선, 일간스포츠, 스포츠투데이가 차례로 그 뒤를 이었다. 반면 구독률 조사에선 스포츠조선이 스포츠서울을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지난 2월 스포츠조선은 편집국 기자들을 상대로 근무 만족도에 관해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설문 중엔 1등 스포츠신문을 묻는 항목도 있었다. 응답자의 70.5%가 스포츠서울을 꼽았다. 자사인 스포츠조선을 꼽은 사람은 21.9%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그 이유가 또한 흥미롭다. 스포츠서울이 1등 신문으로 선정된 이유는 부수량(32.4%)이 아니라 신문의 질(47.3%)이었다. 이에 반해 스포츠조선을 1위로 꼽은 응답자들은 가정판매량(52.5%)을 첫째 이유로 내세웠다.

    스포츠4사는 현재 하루 7차례 신문을 인쇄한다. 글머리에 언급한 대로 스포츠조선의 경우 가장 먼저 인쇄되는 신문은 30판으로 불린다. 30판은 서울 수도권 지역 가판석간이다. 정오 무렵부터 깔리기 시작해 가판이 문을 닫는 오후 7∼8시까지 ‘생존’한다. 밤 12시가 되면 서울 가정배달판과 수도권 가판인 50판 인쇄가 시작된다. 가장 많이 인쇄되는 신문이 바로 이 50판이다.

    50판이 나오기 한 시간 전쯤엔 지방판 인쇄가 이뤄진다. 경기 충청 강원 지역의 40판, 호남의 41판, 부산 경남의 42판, 대구 경북의 43판 등이다. 최종판인 60판이 인쇄되는 시각은 새벽 2시. 서울 수도권 지역 가판조간이다. 60판의 ‘생존기간’은 매우 짧다. 30판 발행과 동시에 자취를 감춰야 할 운명이기 때문이다. 30판에서 60판까지 발행일은 모두 같다.

    나머지 3사의 인쇄체제도 스포츠조선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판수 명칭이 다를 뿐이다. 스포츠서울은 25판으로 시작해 55판으로 하루를 마감한다. 일간스포츠의 경우 서울 수도권 가판은 17판, 서울 가정배달판은 46판으로 불린다. 스포츠투데이는 ‘알기 쉽게’ 1판으로 시작해 7판으로 끝난다.

    인쇄사정이 이렇다 보니 스포츠신문 기자들의 근무여건은 같은 일간지인 종합일간지 기자보다 열악할 수밖에 없다. 가장 큰 차이는 서울 지역 가판 인쇄시각이다. 종합일간지의 가판석간은 오후 6시에 인쇄된다. 따라서 종합일간지 기자들은 스포츠신문 기자들처럼 아침 일찍 출근해 기사를 마감할 이유가 없다.

    “초쇄경쟁은 말하자면 살아남기 경쟁이다. 예전엔 기사의 질로 승부를 걸었는데, 언제부터인가 누가 더 빨리 인쇄하느냐가 관건이 됐다. 정신없이 달려오다 보니 도대체 왜 이런 짓을 하는지,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초쇄 경쟁은 자사 신문끼리도 서로 갉아먹게 만든다. 아침 7시에 나온 신문과 낮 12시 전에 새로 인쇄된 신문이 가판에서 경쟁해야 한다. 독자들은 혼란스러워 한다. 이는 철학이 없는 상행위다. 게다가 실익도 별로 없다. 겉보기엔 판매가 중요한 것처럼 보이지만 주수입원은 역시 광고다. 결국 광고를 많이 싣기 위해 판매경쟁을 벌이는 것이고 초쇄경쟁도 그와 관련된 것이다.”

    스포츠서울 성희중 노조위원장의 말이다. 성위원장에 따르면 경영진도 최근 스포츠 3사 노조의 결의 이후 초쇄경쟁의 문제점을 시인하고 개선을 약속했다고 한다.

    “조석간 체제에 걸맞게 인원을 보강하거나 그것이 여의치 않으면 보상이라도 있어야 하지 않나. 기자들은 내심 오후 1시까지 (가판석간) 인쇄시각이 늦춰지길 기대하고 있다. 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석간신문(문화일보·국민일보)과 스포츠신문은 독자층이 달라 경쟁 상대가 아니다. 인쇄시각이 한두 시간 늦춰진다고 해 있는 독자가 없어지진 않는다는 얘기다. 물론 수년간 지속된 판매체제를 하루아침에 바꾸기는 힘들 것이다. 기자들은 ‘우선 30분만 늦춰도 살겠다’고 말한다.”

    이에 대해 “노조 시각은 현실과 괴리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모 스포츠신문 관계자의 말.

    “가판대에 먼저 도착하는 쪽이 절대 유리하다. 특히 터미널 같은 큰 가판에서는 큰 차이가 난다. 대부분의 가판에선 도착 순서대로 신문을 배치하기 때문에 먼저 도착한 신문이 조금이라도 더 눈에 잘 띄는 위치를 차지하게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초쇄경쟁은 판매수익과 직결되는 문제다. 해결방법은 한 가지다. 4사가 약속을 하고 지키면 된다.”

    가판업자들에 따르면 스포츠신문들의 판매경쟁은 1면 머릿기사에 따라 그 양상이 달라진다. 스포츠신문 판매 관계자들에 따르면 최근 몇 년 동안 스포츠신문을 ‘먹여 살린 것’은 박찬호다. 경기가 열리고 있을 때야 말할 것도 없지만 겨울철 같은 비수기에도 박찬호 기사가 1면에 나가면 ‘기본’은 팔린다는 것. 스포츠해설가 K씨는 박찬호의 영향력과 관련, “비인기 종목은 국제대회에서 아무리 뛰어난 성적을 거둬도 1면에 실리지 않는다. 그러나 박찬호의 감기 소식은 국내 야구소식을 누르고 1면 머릿기사가 된다”고 말했다.

    지방판의 경우 종합일간지와 마찬가지로 스포츠신문도 지역특색이나 정서를 고려해 1면 내용을 서로 다르게 한다. 예컨대 대구·경북 지역에선 이승엽을, 광주 지역에선 해태 선수를 머릿기사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것이다. 그런데 박찬호 기사는 어느 지역에서나 인기가 좋기 때문에 서울판 1면에 실리면 지방판에도 그대로 실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스포츠신문 판매율에 가장 영향을 끼치는 기사는 야구 기사라는 게 스포츠계의 정설. 스포츠투데이가 나타나기 전 스포츠3사는 저마다 특징을 갖고 있었다. 야구는 스포츠서울, 축구는 일간스포츠, 연예는 스포츠조선이 강하다는 평을 들어왔다. 스포츠해설가 K씨는 “스포츠서울이 꾸준히 업계 1위를 유지하는 이유는 바로 야구 기사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물론 연예기사가 판매에 끼치는 영향력도 무시 못한다. 최진실 GOD HOT 조성모 등 스타 관련 기사가 1면에 실리면 곧바로 독자들의 반응이 나타난다. 특히 프로야구 경기가 없는 비수기에 연예 기사, 특히 스캔들 기사는 톡톡히 효자 노릇을 한다.

    판촉용 세트판매

    종합일간지와 비교해 스포츠신문의 가판 비중은 매우 높은 편이다. 동아일보의 경우 지난해 전체 판매량에서 가판이 차지하는 비율은 1.8%에 지나지 않았다. 배달판이 96.7%로 대부분을 차지했고 우송과 해외판매율이 각각 1.3%, 0.2%였다. 다른 종합일간지들의 사정도 이와 다르지 않다.

    반면 스포츠신문의 가판 대 배달판 비율은 엇비슷하다. 다만 조선일보의 탄탄한 판매망을 등에 업은 스포츠조선은 6대4 정도로 배달판 비율이 높다. 가판에선 스포츠서울이 강세지만 배달판에선 스포츠조선이 우위라는 얘기는 그래서 나온다. 스포츠지 원조인 일간스포츠는 한국일보의 쇠락과 더불어 판매부수나 영향력이 예전에 비해 크게 줄었다는 게 스포츠계의 중론.

    스포츠신문들은 한때 50만 부 이상 발행됐으나 IMF 이후 부수가 줄었다. 여기엔 공정거래위원회 조사도 영향을 끼쳤다. 신생지인 스포츠투데이를 제외한 스포츠3사의 발행부수는 42만∼46만 부. 평상시 판매율은 60% 선. 그러나 비수기엔 50%도 힘들다. 눈이나 비가 오면 40%까지 내려간다.

    종합일간지와 마찬가지로 스포츠신문도 유가제를 실시하고 있다. 예컨대 신문사와 지국이 유가율을 70%로 정했다면 지국은 팔든 못 팔든 100부 중 70부 값을 신문사에 넘겨야 한다. 물론 70부 이상 팔면 그 수입은 전적으로 총판 몫이다. 현재 스포츠4사의 유가율은 70∼80%로 배달판보다 가판이 높다.

    총판이 넘겨받는 신문 한 부 값은 180∼200원. 만약 A총판이 B신문사로부터 한 부에 200원씩 유가율 75%에 1000부를 넘겨받았다면, A총판은 B신문사에 신문대금으로 15만 원(200×0.75×1000)을 지불해야 한다. 비슷한 비율로 총판은 중판에, 중판은 다시 가판에 넘긴다.

    어느 스포츠신문이든 창간 초기엔 가판시장을 뚫기 위해 ‘유가율 서비스’를 한다. ‘신동아’가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모 스포츠신문의 경우 창간 직후 5일간 총판에 무료로 신문을 제공했다. 그후 보름 동안 유가율을 20%로 유지했다. 이어 한 달 단위로 10%씩 올려 6개월 후엔 65%로 맞췄다.

    한가지 흥미로운 것은 발행부수와 수익의 상관관계다. 모 스포츠신문 판매관계자는 “판매수익만으로 보면 지금 구조에서는, 사실은 찍을수록 손해”라고 말했다. 스포츠신문 한 부 제작단가는 200원이라고 한다. 컬러 면이 많아 종합일간지보다 제작비가 많이 먹힌다. 신문 한 부에 200원씩 유가율 75%로 총판에 넘기면 신문사는 한 부 팔아 150원을 남기는 셈이다. 결국 제작비를 빼면 한 부 팔 때마다 50원씩 손해본다는 계산이 나온다.

    “결국 1등 싸움하기 위해 부수를 늘리는 것이다. IMF 이후 종이값과 금리 인상으로 제작비 부담이 커졌다. 사정이 그런데도 한 부에 150원 이하로 넘길 때도 있다. 종합일간지는 이보다 더하면 더하지 못하지 않는다. 신문값은 400원이지만 총판엔 100원 이하로 넘긴다. 80원, 50원, 심지어 30원에 넘기는 경우도 있다. 손해를 보면서도 발행부수를 줄이지 않는 것은 광고 때문이다.”

    한편 지국은 지국대로 신문사에 대한 불만이 높다. 신문사가 지나치게 많은 부수를 안기고 높은 유가율을 강제하기 때문이다. 상당수 지국에서 스포츠신문은 판촉용으로 활용된다. 이른바 세트 판매다. 한국일보 의정부지국장을 지낸 영공섭씨의 증언.

    “한국일보가 팔리지 않으니 일간스포츠를 끼워 팔게 된다. 독자에게는 한 부 값만 받는다. 대신 신문사는 여유부수를 줌으로써 지국의 손해를 보전한다. 하지만 여유부수는 곧 없어진다. 부수를 줄여달라고 요청하면 무능력한 지국장으로 낙인찍힌다. 전체 부수의 3분의 2가 파지로 변한다. 지국들은 파지수입이라도 건져 손실액을 줄이려 하지만 역부족이다.”

    영씨에 따르면 상당수 지국들이 세트판매를 한다. 예컨대 중앙일보엔 스포츠투데이, 동아일보엔 스포츠서울을 끼워 파는 식이다. 한국신문공정판매총연합회(신판연) 회장 이우충씨도 세트판매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두 종류의 신문을 주면서 한 부 값만 받는 것은 불공정 행위다. 지국장이 괴롭다. 본사에는 두 부 값을 내야 하니. 하지만 본지 인지도가 약하니 어쩔 수 없다.”

    신판연에 따르면 모 종합일간지 개봉지국은 한달 발송부수가 1000부인데, 그 중 40%는 일간스포츠가 낀 세트판매다. 모 종합일간지 갈현지국은 본사로부터 1200부를 받는데, 스포츠투데이 280부를 끼워 팔고 있다.

    스포츠신문은 종합일간지에 비해 전체 매출액에서 판매수익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 종합일간지의 경우 광고 대 판매 비율이 평균 8대2다. 반면 스포츠신문은 7대3 또는 6.5대3.5다. 스포츠투데이의 하루 평균 광고매출액은 1억5000만 원선. 월 50억 원이 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나머지 스포츠신문들도 이 기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모 스포츠신문의 지난해 광고매출액은 570억 원, 판매매출액은 190억 원이었다.

    광고대행사 관계자 S씨에 따르면 스포츠조선의 광고매출액은 조선일보의 10분의 1 수준이다. 조선일보는 하루 평균 13억∼15억 원의 광고수익을 올린다. 한국언론재단 자료에 따르면 중앙지 1면에 실리는 광고는 1단에 30만 원인데 비해 스포츠신문은 8만 원이다.

    스포츠신문의 광고를 언급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음란광고로 지탄받는 이른바 700서비스 광고다. 청소년보호위원회가 음대협에 의뢰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2주 동안 4개 스포츠신문에 실린 청소년유해광고는 모두 1321건이다. 물론 모든 700서비스 광고를 음란광고로 재단할 순 없다. 청소년보호위원회 서학봉 사무관은 “700서비스 광고 자체가 불법은 아니다”면서 “다만 그동안 확인한 바에 따르면 원조교제를 주선하는 등 불법광고로 드러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서사무관에 따르면 스포츠투데이는 지난해 11월7일 자정결의에 이어 지난 2월 ‘그린 페이퍼’를 선언한 후 이런 종류의 광고를 일절 싣지 않고 있다. 스포츠조선도 지난 3월2일 게재중단을 선언했다.

    3월15일 오후 4개 스포츠신문의 가판석간을 구입해 700서비스 광고 게재 여부를 살펴봤다. 서사무관의 말대로 스포츠투데이와 스포츠조선엔 단 한 개도 없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스포츠서울과 일간스포츠엔 각각 수십 개의 700서비스 광고가 눈에 띄었다. 한 통계에 따르면 700서비스 광고를 싣지 않을 경우 스포츠신문 하나의 연간 손실액은 110억 원에 이른다.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4개 스포츠신문은 청소년보호법 10조 위반으로 모두 251회에 걸쳐 청소년유해간행물로 판정 받았다. 700서비스 광고 외 만화와 기사도 문제가 됐다. 이 판정을 받으면 표지에 ‘18세 미만 구독불가’를 표시하고 포장판매해야 한다.

    그러나 지난해 스포츠신문들은 단 한 차례도 포장판매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간행물윤리위원회 심의국 민갑식 팀장은 “스포츠신문은 일간이므로 청소년유해물 판정을 받을 즈음엔 이미 판매가 다 끝난 상황”이라며 “현행법으로는 사실상 경고의 의미밖에 없다”고 말했다.

    음란성 광고와 더불어 스포츠신문에 부정적 이미지를 씌우는 것은 ‘뻥 튀기’ 기사와 선정적 기사다. 특히 자주 물의를 빚는 기사는 연예인 스캔들 기사. 연예주간지 기자 출신으로 현재 모 일간지에 근무하는 P씨의 얘기를 들어보자.

    “연예기사가 1면 머리를 장식하는 횟수는 스포츠 기사에 비해 현저하게 적다. 프로야구 시즌이 끝나면 연예 데스크가 압력을 넣는다. 뭔가 하나 내놓으라는 것이다. 강박감이 무리한 기사를 만들어낸다. 지금은 그런 일이 사라졌지만 과거엔 연예기사가 마땅치 않을 경우 기자가 연예인의 양해나 묵인 아래 ‘만들어내는’ 기사도 더러 있었다.”

    연예기사 중 가장 화제를 일으키는 것은 열애설과 결혼설이다. P씨에 따르면 기자가 사실을 과장해 쓰는 바람에 해당 연예인이 피해를 입는 경우가 많지만, 어떤 경우엔 연예인이 스포츠신문을 적절히 활용하기도 한다. 예컨대 톱탤런트 최진실의 결혼기사는 언론에서 미리 결혼사실을 확정지음으로써 조성민 부모의 결혼반대 의사를 꺾는 데 한몫했다는 게 연예기자들 사이의 중론이다.

    최진실 흠집 내기

    모 주간지 연예부 기자인 B씨에 따르면 스캔들 기사의 출처는 매니저나 코디네이터 등 해당 연예인의 측근이거나 독자들의 제보다. 문제는 확인 과정에 있다. 스포츠신문에 있다가 K신문으로 옮긴 한 스포츠 기자는 “양쪽 다 확인한 후 기사를 써야 하는데 터뜨리기에 급급해 한쪽 얘기만 듣고 쓰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스포츠서울의 한 기자는 스캔들 기사가 오보 시비에 휘말리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솔직히 제목과 기사가 따로 가거나 기자 의도와 무관하게 과대포장돼 기사화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근거 없는 기사는 없다. 연예인은 정치인과 비슷한 속성을 갖고 있다. 열애설이나 결혼설 기사가 터지면, 사실인데도 인기관리를 위해 솔직히 털어놓지 않는 경우가 많다. 요즘엔 방송에 연예관련 프로그램도 많고, 독자들이 PC통신이나 인터넷 등을 통해 공유하는 정보로 기사의 신뢰도를 곧바로 검증할 수 있기 때문에 최대한 사실을 확인한 후 기사를 쓴다.”

    스포츠조선 이영식 노조위원장은 “팩트는 맞지만 팩트화하는 과정에 문제가 있다”며 “1단으로 다루면 적당할 기사를 머릿기사로 다루는 경우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오보 또는 과장된 기사임이 드러났는데도 정정기사를 내보내지 않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말했다.

    특정 연예인을 흠집 내는 기사나 특종을 놓친 데 따른 보복성 기사도 화젯거리다. 채시라 결혼기사는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은 것이었다. 연예기자들은 호화결혼식을 꼬집는 기사를 썼다.

    그러나 호화롭기로 따지면 최진실 결혼식이 더하면 더했지 못하진 않았다. 그런데도 최진실 결혼에 대해선 별 말이 없었다. 평소 연예기자들과의 친분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채시라는 신성우와 파혼한 후 기자들을 잘 만나주지 않았다. 그 때문에 본의 아니게 반감을 샀다. 그러다 어느날 갑자기 결혼을 발표하니 기자들이 곱게 보지 않은 것이다.

    최진실 결혼기사의 경우 스포츠4사 중 유독 한 신문만 낙종했다. 그후 이 신문은 오해(?)를 받을 만한 기사를 연달아 내보냈다. ‘최진실 결혼 발표 미스터리’를 시작으로 영화 ‘단적비연수’ 제작이 최진실 개인 일정 때문에 차질을 빚는다는 둥, 최진실이 CF계에서 특A급이 아니라 A급이라는 둥, 잦은 말 바꾸기로 방송사에 피해를 입힌다는 둥, 최진실에게 ‘좋지 않은’ 기사가 시리즈로 이어졌다. 특히 ‘결혼발표 미스터리’ 기사에선 최진실의 과거 남자들까지 들먹여 연예기자들 사이에서 ‘너무 심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연예기자들과 달리 스포츠기자들은 스포츠선수의 사생활과 관련된 스캔들 기사는 쓰지 않는 것을 불문율로 삼고 있다. 스포츠해설가 K씨는 그 이유에 대해 “선수 개인을 보호하려는 뜻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프로스포츠계를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진단했다.

    사실 프로야구계만 해도 기사화되지 않았을 뿐이지 연예인 뺨치는 스캔들이 자주 발생한다. 가장 흔한 것은 파혼과 이혼. 그 정도만 해도 점잖은 편이다. 간통에 심지어 강간미수사건까지 있다.

    스포츠기사의 과장 또는 오보사례도 연예기사 못지 않다. K신문 체육부 기자의 얘기.

    “스포츠기사의 특징은 뒤에 오보로 판명돼도 연예기사와 달리 명예훼손과는 상관없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그래서 ‘아니면 말고’ 식의 기사가 많다. 축구선수 아무개가 이탈리아리그로 간다든가 바르셀로나팀이 한국에 온다든가 하는,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기사화해도 아무 문제가 안 된다. 축구협회에서 ‘접촉 중’이라고 말하면, 곧바로 ‘온다’라는 기사가 나간다. 요즘은 기자들 스스로 노력해 오보가 많이 줄었다.”

    2월27일 MBC ‘PD수첩’은 ‘황색 질주 10년, 스포츠신문’이라는 제목으로 스포츠신문의 문제점을 파헤쳤다. 부풀리기 및 선정적 기사, 만화와 광고의 음란성 등 주로 편집제작 쪽을 문제삼은 보도였다. 보도 직후 일부 스포츠신문은 연일 MBC를 공격하는 기사를 내보내며 반격에 나섰다. 특히 스포츠투데이의 반발이 거셌다. 담당 최승호 PD는 “취재를 통해 스포츠신문이 겉으론 스포츠를 표방하지만 전혀 전문스포츠지가 아닐 뿐만 아니라 오히려 왜곡된 스포츠문화를 선도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스포츠신문 기자라고 다 ‘PD수첩’ 보도에 반발하는 것은 아니다. 개중엔 공감하는 사람도 있고 자성하는 사람도 있다. 또한 공감과 불만을 동시에 드러내는 사람도 있다. “‘PD수첩’ 보도에 어느 정도 공감한다”는 스포츠서울 성희중 노조위원장은 보도의 편파성을 문제삼았다.

    “방송 내용처럼 스포츠신문들이 자성해야 할 부분이 없지 않다. 그러나 두 가지를 지적하고 싶다. 첫째, 선정성 문제다. 사실 이 점은 우리 언론 전반의 문제가 아닌가. 국내 정치나 남북문제에 대한 몇몇 종합지의 논조나 기사를 보라. 여론을 호도하고 있지 않은가. 오보로 판명된 중앙일보의 김정일 답방기사는 일단 터뜨리고 보자는 선정적 보도태도를 잘 보여준 사례다. 파급효과로 봤을 때 종합지의 선정적 기사가 스포츠지보다 더 위험하다. 이는 방송도 마찬가지다.

    둘째로 스포츠신문의 긍정적인 면을 외면한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PD수첩’은 스포츠신문이 스포츠 활성화에 이바지하고 건전한 여가생활을 선도한 점을 무시했다. 비인기종목을 여론의 수면 위로 끌어올리고 레저 오락 등의 분야에서 독자들에게 알찬 정보를 제공한 점을 과소평가한 측면이 있다.”

    스포츠서울 연예팀의 한 기자도 ‘PD수첩’의 보도방식을 비판했다. 그는 “(스포츠신문이) 선정적이지 않다고 항변하는 것은 아니다”면서 “‘PD수첩’이 먼저 방송사간 시청률 과열경쟁과 연예 관련 프로그램의 선정성 문제를 짚었다면 공정한 보도로 평가받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이영식 스포츠조선 노조위원장은 “보도 내용에 깊이 공감한다. 모두 옳은 지적”이라며 자성의 뜻을 나타냈다.

    “그저 부끄러울 뿐”

    “방송 배경이나 특정 스포츠신문을 집중 비판한 데 대해 의혹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내 생각엔 특별한 의도가 있었던 것 같지 않다. 그저 반성하고 부끄러울 뿐이다. 다른 노조 간부들 생각도 다 비슷하다. 여기서 더 나아가면 내부 붕괴 가능성이 있다. 다만 선정성 문제는 미적 기준과 윤리적 기준을 구분해 판단할 필요가 있다. 우리 노조의 목표는 스포츠신문의 참된 위상 정립이다. 하루 빨리 선정성 음란성 시비에서 벗어나 국민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패밀리 페이퍼로 거듭나야 한다.”

    3월12일자 스포츠서울 노보엔 “인간답게 살고 싶다”라는 제목을 단, 한 기자조합원의 수필이 실려 있다.

    “…스포츠신문 시장의 경쟁이 가열되고 살인적인 초쇄경쟁이 우리들의 목줄에 날카로운 차꼬를 채우고 있다. 새벽 6시 반. …‘새벽별 보기 운동’. 우리들의 숨가쁜 하루는 이렇게 시작된다. …단신 기사 한 줄이라도 건지려고 토악질해대는 술자리에 몸을 내둘리는 것도 이젠 즐거움이라기보다 곤욕이다. 아침 출근시간이 걱정돼 취한 발걸음을 편집국 숙직실로 옮기는 동료들의 어깨에 삶의 둔중한 무게가 피부로 와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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