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처음 만난 사람이라도 재미있는 농담을 잘 구사하면 서먹서먹한 느낌이 금방 사라져 친해지기 쉽고, 상대방에게 좋은 첫인상을 남기게 마련이다. 유머감각이 있는 이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에게 주목하게 만들고, 부지불식간에 모임의 분위기를 주도해 무리의 리더 노릇을 하는 경우가 많다. 직장에서, 친구들과의 만남에서, 연애할 때, 혹은 부부지간에도 유머감각이 있는 사람은 단연 돋보이는 존재이며, 인간관계를 수월하게 만들어나간다.
웃음은 경영효율과 직결
여자들은 낯선 남자들과의 대화에서 자신을 더 웃긴 남자를 다시 만나고 싶어했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여성은 유머감각이 있는 남성에게 본능적으로 끌리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남자와 맺어지면 사회생활뿐 아니라 가정생활도 원만하게 유지해 자손을 통해 여성 자신의 유전자가 계속 전달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 ‘잘 살려면 유머감각을 키워라’는 조언이 그냥 흘려들을 말이 아니다.
TV를 보면 개그맨, 혹은 개그맨 저리 가라고 할 만큼 재치있고 유머러스한 말솜씨를 지닌 가수며 탤런트들이 각광받는 게 요즘 추세다. 웃음을 유발하는 코믹광고가 소비자의 시선을 끌고, 관객의 폭소와 미소를 자아내는 영화가 대중의 호응을 얻어낸다.
사상 최대의 관객을 동원한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관객들은 감독이 도처에 깔아놓은 유머에 아낌없이 웃음을 던진다. 지뢰를 밟은 이병헌이 “가란다고 정말 가냐… 살려주세요”라고 애절하게 매달릴 때, 도색잡지를 본 송강호가 “역시 미제라니까” 하며 감탄하거나 이병헌에게 “그림자 넘어왔어, 조심하라우”라고 겁줄 때가 그런 예다. 이 영화가 이런 유머감각 없이 그저 분단이 남북의 젊은이들에게 드리운 비극을 시종일관 진지하게만 그려냈다면 그만한 감동을 자아낼 수도, 입소문을 이어가며 그 숱한 인파를 끌어들일 수도 없었을 것이다.
비즈니스에서도 유머감각은 필수조건이 되고 있다. 직장인들은, 능력이 있지만 엄격하게 굴지 않고 우스갯소리도 잘 하는 상사나 동료를 선호한다고 한다. 유머는 조직생활을 순조롭게 풀어가게 하는 윤활유 구실을 하기 때문이다. 긴장감이 가득한 비즈니스 협상테이블에서 툭 던지는 재치있는 말 한마디가 분위기를 이완시키는 것은 물론, 상대방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주어 마침내 협상이 성사되도록 하는 천군만마 같은 원군 노릇을 하기도 한다. 99년 2월10일자 ‘동아일보’에는 이런 기사가 실렸다.
‘IBM은 매년 뉴욕 허드슨 강변의 펠러세이드에서 중역회의를 열 때마다 존 모리얼이라는 유머 컨설턴트를 기조연설자로 초청한다. 모리얼은 중역들을 웃기는 것은 물론, 웃음이 부하직원과의 의사소통에 경이적인 효과가 있다는 것도 가르친다….’
IBM 외에 세계 유수의 대기업들도 경영효율을 높이는 수단으로 거금을 들여가며 웃음 전문가를 초빙한다. 유머를 통해 조직에 웃음과 활력을 불어넣는 것이 효과적이란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또한 조직에 웃음이 퍼지면 근로자들이 건강해져서 의료보험 부담도 그만큼 줄어들고, 소속감과 연대의식이 강해져 고급 인력을 경쟁회사에 빼앗길 위험도 줄어든다는 게 정설이다.
지난 1월 말 LG경제연구원은 회사가 불황이나 구조조정 등으로 위기에 처했을 때는 IQ(지능지수)가 높은 직원보다는 EQ(감성지수)가 높은 직원이 힘을 발휘한다는 자료를 내놓았다. “회사가 어려울 때는 종업원들이 불안과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업무에 의욕을 잃는 경우가 많으므로 똑똑한 직원보다는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의 감성까지 잘 다스려 좋은 인간관계를 유지할 줄 아는 직원이 회사를 주도적으로 이끌어가고 이직률도 낮다”는 게 핵심적인 주장. 세계의 일류 기업들이 유머감각이 풍부하고 잘 웃는 사원을 선호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유머로 스캔들 극복한 클린턴
임상심리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유머감각이 뛰어난 사람은 자신을 잘 통제하고 자존심이 강하다고 한다. 완벽주의자는 어려움이 닥쳤을 때 자신에게 의존하며 스트레스를 이겨내지만, 어려움이 거듭 쌓이면 무너지기 쉬운 반면 유머감각이 풍부한 낙천주의자는 주위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며 도움을 이끌어내고 어려운 업무도 잘 버텨낸다는 것. 사람이든 동물이든 자신감이 있으면 부드럽고 너그러워지는데 유머는 이런 자신감을 길러준다는 것이다.
현대의학은 스트레스가 만병의 근원이라는 것과, 웃음이 인간의 신체기능 향상과 질병의 예방 및 치료에 큰 효과가 있음을 다양한 실험을 통해 밝혀왔다. 치열한 경쟁과 각박한 세태에 지친 현대인의 스트레스에는 유머가 천적(天敵)이다. 유머를 즐기는 사람은 아무리 심한 스트레스가 거듭돼도 그것을 쌓아두지 않고 웃음으로 배설하는 자정능력을 갖고 있다. 그는 자신뿐 아니라 주위에도 웃음을 퍼뜨려 조직에 활력과 생기를 불어넣고 스트레스를 차단한다.
요즘처럼 불경기가 닥치고 살림살이가 어려워지면 사람들은 자연히 웃음을 잃어가게 마련이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웃을 일을 만들고 사물을 낙관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대체로 일이란 비관적으로 생각할수록 잘 풀리지 않는다. 재치있는 말 한마디에 ‘푸하하’ 웃음을 터뜨리고 나면 기분이 좋아지고 기운도 솟는 느낌이다. 힘들어도 스스로 웃고 남을 웃기는 여유가 난관을 뚫고 나가게 하는 힘이 된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지난해 6·15 남북정상회담 때 발군의 유머감각을 발휘해 국내외 언론에 화제가 됐다. 그로 인해 회담장과 만찬장의 분위기가 부드러워진 것은 물론이고, 서방세계에 비친 자신의 이미지를 개방적이고 온건한 쪽으로 개선하는 데도 성공했다.
김대중 대통령도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 가운데 가장 유머감각이 뛰어난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는 지난해 초 MBC TV의 ‘21세기 위원회’가 마련한 특집 프로그램에 출연해 개그맨 심현섭이 자신의 성대모사로 인기를 얻고 있는 데 대해 “나한테 로열티 한 번 내지 않고 과일상자 하나 안 보내더라”고 조크를 던지는가 하면, “사형선고를 받았던 80년에 아내가 ‘김대중을 살려달라’고 기도하는 게 아니라 ‘하느님 뜻에 따르겠다’고 기도하는 것을 보고 가장 섭섭했다”고 토로해 폭소를 자아내기도 했다.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은 재임중 화이트워터 스캔들과 르윈스키와의 성추문 등으로 끊임없이 언론의 공격에 시달려야 했지만, 퇴임을 몇 개월 앞두고 백악관 출입기자단이 마련한 연례 만찬에서 “(재임) 8년 동안 여러분에게 족히 20년 분량의 기사거리를 제공했다”고 눙치는가 하면, 자신이 직접 출연해 임기 말년의 백악관 생활을 코믹하게 연출한 비디오를 선보여 기자들로부터 웃음과 함께 후한 점수를 이끌어냈다. 클린턴의 탁월한 유머감각은 임기 중에 계속된 스캔들에도 불구하고 그로 하여금 위기를 극복하게 하고 인기를 유지하게 한 요인이었다.
수차례 미국 대통령 선거전에 출마한 바 있는 보브 돌 전 상원의원은 98년 ‘위대한 정치 재담(Great Political Wit)’이라는 책을 펴내며 리더십과 유머의 밀접한 관계를 보여준 바 있다. 워싱턴 정가의 잘 알려진 유머들을 모은 이 책에서 돌 전의원은 “20세기의 가장 성공적인 대통령이었던 루스벨트와 레이건이 남다른 유머감각을 지녔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그는 올해 초에도 ‘위대한 대통령의 재담(Great Presidential Wit)’이라는 책을 펴내 사생활까지 샅샅이 노출되는 대통령직을 수행하는 데는 무엇보다 유머감각이 절실하다는 점을 강조하며, 뛰어난 유머감각을 지닌 대통령이 직무수행에도 탁월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