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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이민열풍, 왜 캐나다인가

캐나다 드림 꿈꾸는 ‘30·40대 고학력 중산층’

  • 박은경 < 자유기고가 >

캐나다 드림 꿈꾸는 ‘30·40대 고학력 중산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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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70년대부터 90년대 초까지 ‘아메리칸 드림’이 꾸준히 이어졌고, 1980년대 ‘남미 드림’이 붐을 이루었다면, 90년대 말부터는 ‘캐나다 드림’이 불고 있다. 이민붐은 IMF위기가 한창이던 1998년 절정을 이루었다. 이후 잠시 주춤했다가, 지난해부터 급격히 늘고 있다. 이유는 앞날에 대한 불안감, 더 나은 삶, 자녀교육 등 세 가지로 요약된다.
지난 2월10일 토요일 오후 2시. 지하철 1호선 종각 역은 일찍 퇴근한 직장인들로 몹시 붐볐다. 서류가방을 든 30~40대 남자 한 무리가 지하철 출입구를 빠져 나와 근처 빌딩 안으로 총총히 사라졌다. 이들이 도착한 곳은 건물 2층에 자리잡은 세미나 장소. 캐나다 이민 관련 설명회가 한창인 실내는 70여 명의 사람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정면에는 대형 지도와 스크린이 걸려 있고, 50개 남짓 놓인 책상이 모자라 20여 명은 따로 마련된 의자를 차지하고 있었다. 2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에 이르는 남녀 참석자 중 대부분이 30~40대인 듯 보였다.

뒤늦게 도착한 두 명의 중년남자가 세미나 장소로 급히 발걸음을 옮기자 입구를 지키고 있던 직원이 황급히 이들을 붙잡아 팸플릿 봉투를 건네주었다. 1시 반부터 시작된 이날 설명회는 오후 7시가 돼서야 끝났고, 사람들은 설명회가 진행되는 중에도 계속 불어났다. 세미나 장소 밖에 마련된 상담테이블 주변에는 이민상담신청서를 손에 든 사람들이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정보통신회사에서 2년째 부장으로 재직중이라는 40대 중반 남성은 독립이민에 관심을 보였지만 상담직원은 기업투자이민을 권했다. 4억이 넘는 재산이면 얼마든지 투자이민을 갈 수 있다는 말과 함께. 자녀가 둘이라는 40대 초반 주부는 “남편이 의사인데 캐나다에 가서 의사로 일할 수 있는지”를 궁금해했다. 한편, 증권사에서 투자전문가로 근무한다는 30대 중반 남자는 이미 캐나다 이민을 결심한 듯 “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인데 지금 수속을 밟아 4학년 정도에 이민 가고 싶다. 독립이민이 가능한가? 수속비용은 얼마나 드는가?”라며 궁금증을 내비쳤다.

캐나다·미국·뉴질랜드·호주를 포함해 이와 유사한 이민 설명회가 서울에서만 매달 수십 군데서 열리고 있다. 약 30개 업체가 회원으로 있는 이주공사협회 이종오 이사에 따르면 보통 한 업체에서 매월 5~10회 설명회를 여는데 한 번에 참석하는 인원은 평균 100~150명이라고 한다. 현재 외교통상부에 등록된 이주공사업체는 총 45개. 이중 ‘영업정지’와 ‘휴업’ 처리된 3개 업체를 제외하고 실제 영업중인 업체가 42개임을 감안하면 매월 수만 명이 이민 설명회를 찾는다는 얘기다. 뿐만 아니라 인터넷에 개설된 캐나다 이민 관련 사이트를 드나드는 사람은 그 수를 헤아릴 수도 없다. 검색엔진 야후코리아에서 캐나다 이민과 관련한 단어를 치자 2월9일 현재 106개에 달하는 사이트가 올라 있고, 무려 2761개에 이르는 웹페이지가 소개됐다. 이 가운데, 캐나다 이민과 함께 현지 정보를 상세히 알려주는 홈페이지 한 곳은 지난 2년 사이 40만 명이 넘게 다녀간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민국 1위 캐나다



70~80년대 ‘아메리칸드림’에 이어 최근 불어닥친 ‘캐나다드림’의 열기를 현실적으로 체감할 수 있는 지표가 외교통상부 재외국민이주과의 통계자료다. 이 자료는 해외이주법이 제정된 62년부터 지난해까지 국별·형태별로 해외이주자 현황을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캐나다와 정식으로 외교관계를 수립한 것은 1963년 1월14일. 이에 앞서 62년 2명이 처음 캐나다로 이주한 것으로 돼 있다. 이후 66년까지 줄곧 두 자리 수를 유지하던 캐나다 이민자 수는 67년에 이르러 507명으로 대폭 증가했고, 이후 지금까지 해마다 수백 또는 수천 명을 기록했다.

67년 캐나다 이민자가 급격히 증가한 이유는 그 이전인 63년 서독 광산지역 광부로 파견된 사람들이 그곳에서 3~4년 근무하다 국내로 돌아오지 않고 캐나다로 이주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독일 병원에서 근무하던 간호사 일부도 이때 캐나다로 옮겨 갔으며 이들이 캐나다 이민 1세대를 형성했다. 30여 년에 이르는 캐나다 한인 이민역사를 통해 현재 캐나다에 거주하는 교민 수는 대략 11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30여 년에 이르는 캐나다 한인 이민역사상 가장 뜨겁게 달아오른 최근의 이민 열기를 좀더 정확히 알기 위해 ‘국별 해외이주 현황’을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캐나다를 비롯한 전체 이민자 수가 1만2949명에 달한 96년, 이민국 1위를 차지한 미국으로 떠난 사람은 모두 7277명(56.2%). 다음으로 3073명(23.73%)이 캐나다를 선택했다. 전년도(95년) 이민국 2위를 차지했던 뉴질랜드를 제치고 캐나다가 2위 자리에 오른 것.

이어 뉴질랜드 2045명(15.8%), 호주 519명(4.0%) 순이다. 97년에는 총 1만2484명이 이민을 떠났고, 미국 8205명(65.7%), 캐나다 3918명(31.4%), 호주 216명(1.7%), 뉴질랜드 117명(0.94%)이었다.

한편 본격적으로 IMF 위기가 닥친 98년은 전년도보다 이민자 수가 더 많이 늘었다. 전체 1만3974명의 이민자 중 미국을 택한 사람은 8734명(62.5%)이었고, 그 뒤를 이어 캐나다 4774명(34.2%), 호주 322명(2.3%), 뉴질랜드 96명(0.7%) 순으로 나타났다.

줄곧 ‘이민국 1위’ 자리를 고수하던 미국을 제치고 캐나다가 1위로 뛰어오른 것은 99년이다. 99년 통계를 보면 전체 1만2655명의 이민자 중 미국이 5360명으로 42.4%를 차지한 반면, 캐나다는 53.6% (6783명)를 기록했다.

이어 호주 302명(2.4%), 뉴질랜드 174명(1.4%)이다.

뿐만 아니라 2000년에는 전체 이민자 1만5307명 중 미국 이민자가 5244명(34. 4%)으로 99년에 이어 또다시 2.2% 줄어든 반면, 캐나다는 9295명(60.6%)으로 99년에 비해 무려 37.0%의 증가율을 보였다. 이민자 수를 놓고 비교할 때 미국의 2배에 육박하는 수치다. 뒤를 이어 호주 392명(2.5%), 뉴질랜드 348명(2.3%)으로 집계됐다.

1970년대부터 1990년대 초까지 ‘아메리칸 드림’이 꾸준히 이어졌고, 1980년대 아르헨티나를 비롯한 ‘남미 드림’이 붐을 이루었다면, 1990년대 말부터는 ‘캐나다 드림’ 열풍이 불고 있는 셈이다. 특히 그간 한국인들이 이민국 1순위로 꼽던 미국은 90년 중반 이민법이 까다롭게 바뀌면서 한때 1만 명대를 오르내리던 이민이 주춤해졌고, 80년대 중반부터 90년대 초까지 1000명을 넘어섰던 호주 이민도 지금은 감소 추세에 있다.

뉴질랜드는 90년대 중반 2000~3000명을 오르내리던 이민자 수가 97년 117명으로 급격히 떨어졌다. 다만 지난해 348명이 이주하면서 99년에 비해 100% 증가한 수치를 보였다.

앞날에 대한 불안감

IMF 위기가 한창이던 98년 전체 이민자 수가 급격히 증가한 이후 한때 주춤하다 지난해부터 다시 이민이 급격히 늘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미 외국으로 떠날 결심을 굳히거나 한창 서류수속중인 사람들이 한국을 떠나려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앞날에 대한 불안감’과 ‘더 나은 삶’ ‘자녀 교육’이다. 이러한 배경을 설명해주는 각종 통계와 자료가 적지 않다.

홍콩에 본부를 둔 ‘아시아시장정보(AMI)’가 1990년대 말 아시아 11개국 국민을 대상으로 ‘직업에 대한 불안감’을 조사한 결과, 말레이시아, 태국에 이어 한국이 3위를 차지했다. 한국인 3명 중 1명꼴로 직업에 대한 불안감을 호소한 것.

뿐만 아니라 최근 세계경제포럼(WEF)이 전세계 122개국을 대상으로 평가한 ‘환경지속지수’에서 한국은 95위를 기록했다. 이외에 최근 쏟아져 나온 국내 기관의 각종 보고서는 경제위기, 민간소비위축, 장기불황에 대한 우려, 증시불안, 실업률 증가 등 끊임없이 ‘위험경고’를 발하고 있다.

한편, 보건 당국에 따르면 우리나라 근로자의 업무상 재해나 질병으로 인한 사망자 가운데 ‘과로사’로 추정되는 뇌혈관이나 심장질환에 의한 사망자 비율이 97년 8.1%에서 98년 10.8%, 99년 14.6%로 해마다 급증하고 있다.

오늘날 어지러운 우리 정치 현실은 더 많은 사람들의 등을 떠미는 실정이다. 3월 초 가족을 데리고 캐나다로 떠난 김재열씨(남·37)는 “나라는 경제위기 등으로 침몰 직전인데, 눈만 뜨면 치고 박는 정치권 꼴을 더 이상 보기 싫다. 이대로 있다가는 스트레스 받아서 내 명대로 못 살 것 같아 떠난다”고 했다.

김씨와 비슷한 시기 기업투자이민을 떠난 또 다른 김모씨(남·44)는 “친구들한테 이민 간다고 했더니, 나라꼴이 ×판인데 뭐 하러 이 나라에서 꼬박꼬박 세금 내면서 열 받느냐며 잘됐다고 하더라. 솔직히 나도 지난 8년 동안 인천에서 자동차정비공장을 운영하면서 스트레스 많이 받았다. 우리나라가 사업하기에 얼마나 어려운 나라인가”라고 반문한다.

곧 초등학교 6학년, 중학교 3학년이 될 두 아들을 둔 김씨는 “걸핏하면 장관 바뀌고 걸핏하면 교육제도 바뀌고… 도대체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너무 혼란스러웠다. 이제 떠난다고 생각하니까 홀가분하다”고 털어놓는다. 영어 실력을 쌓기 위해 1년 전 사업체를 정리했다는 김씨는 캐나다에 가서도 자동차정비공장을 열겠다며 의욕을 내비쳤다.

IMF 위기가 터진 97년 이후 불어닥친 감원바람으로 중년남성 직장인이 무더기 퇴출되는 것을 지켜본 지금의 30~40대 직장인들은 ‘우리도 선배들처럼 언제 직장에서 쫓겨날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가지게 됐고, 제2차 구조조정 바람이 본격화할 조짐을 보이자 서둘러 짐을 꾸리는 실정이다.

환경 관련 기술자로 부산에서 13년째 사업을 해오던 한모씨(남·44)는 캐나다 토론토로 출국하기 위해 이미 사업을 정리하고 짐까지 부친 상태다. 그는 “뒷돈 거래 없어도 되고, 내가 번 만큼 정직하게 세금 내면서 깨끗하게 사업할 수 있는 곳으로 가고 싶었다. 또 나이키를 신든 싸구려 운동화를 신든 남 눈치 안 보고 마음 편하게 살고 싶다”고 한다.

5년 전부터 꾸준히 이민을 고민해왔다는 한씨는 “나라 분위기가 몇 년째 가라앉아 있어 미래에 대한 걱정이 앞섰다. 또 올해 중·고등학교에 진학할 아이들의 장래를 생각해 결심을 굳혔다”고 털어놓는다. 독립이민을 떠나는 한씨는 현지 취직을 위해 요즘 영어 공부에 한창 열을 올리고 있다. 그의 아내는 만약을 대비해 일식요리 기술을 배우는 중이다.

오는 4월 캐나다로 떠날 예정인 김모씨(남·46)는 “정보통신회사에 오래 몸담아 왔기 때문에 캐나다에 가서 취업을 할 생각이었는데, 아무래도 나이 때문에 어려울 것 같다”고 한다. 그래서 현지에서 할만한 사업을 구상중이라는 그는 “4년 사이 2000명 가까운 직원이 타의에 의해 회사를 떠났다. 더 늦기 전에 새 삶을 시작하고 싶어 어렵게 이민을 결심했다”고 고백한다. 또 다른 이유도 있다.

“고교 1학년인 큰애가 아들인데 내성적이라 학교에서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편이다. 아이들한테 놀림받을까봐 솔직히 걱정된다. 반면에 공부는 썩 잘하는 편이라 좀더 큰 세계로 나가서 글로벌시대에 걸맞은 인재로 키우고 싶은 욕심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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