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강호가 누구냐고 ? 질문자가 30대 중반이 넘었다면 용서할 수 있는 질문이다. 먹고 살기도 바쁜데 ‘영화’ 같은 배부른 소릴랑은 아예 집어치우라고 당당히 말하는 이 땅의 조로한 중년에게는 충분히 가능한 발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내심으로 답한다.
송강호는 스타다. 아니, 그 이전에 진정한 ‘배우’다.
우리 근대사만큼이나 곡절이 많은 것이 한국 영화사다. 그나마 식민지 속국의 열악한 환경에서도 근근이 이어져 온 한 줌의 예술혼이 이 땅에 ‘활동사진’의 역사를 가능케 했다. 한때는 전쟁과 가난의 시름에 젖은 이 나라 백성에게 유일한 위안거리가 되어주기도 했다.
독특하고 예술성 짙은 작가의 세계를 보여준 감독이 많지 않은 점은 아쉽지만, 그래도 할 만큼 했다. 할리우드 스타들의 휘황찬란한 광채가 전세계 영화팬의 공통된 추억거리로 명멸하는 와중에도 ‘우리별’ 1호, 2호가 꾸준히 그 순번을 이어간 결과이기도 하다. 역시 대중에게는 연기자를 통해 기억되는 영화가 더 많은 법이다.
“배…배…배신이야,…배신!”
김승호, 김진규, 최무룡, 신영균, 최은희 등등…. 이 추억의 이름들이 그 주인공이다. 후에 신성일, 엄앵란, 1세대 여배우 트로이카인 문희, 윤정희, 남정임에 이르기까지. 변두리 극장 땀냄새 가득한 만원 버스 같은 공간마저 반기게 했던 이름들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였던가. 한국 영화 스타들의 그 명예로운 이름 앞에 ‘촌스러운’이란 수식어가 붙기 시작했다. 가랑비에 옷 젖듯 조금씩 진행된 정체와 퇴보의 망령은 헤어 나올 수 없는 수렁이라도 되는 양 절망적인 상황을 불렀다. 1960∼80년대 억압적인 정치상황에서 비롯된 총체적 무기력증은 무책임한 제작자와 안일한 연출자, 넋이라곤 없는 배우를 양산했다. 급기야 전문가 집단인 그들이 오히려 관객들의 눈높이에 한참이나 뒤진 채 질시와 조소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마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이렇게 한국영화의 암흑기는 오래 이어졌다.
그러나 다행히 한 세대가 다 가기 전에 반전의 기운이 싹트기 시작했다. 꺼져가던 불씨가 질긴 생명력으로 다시 살아나는 기적의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이름하여 ‘한국 영화의 르네상스’. 다소 호들갑스럽고 섣부른 우쭐함이 우려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 기운은 분명 세차고 성과도 적지 않다. ‘은행나무 침대’, ‘접속’, ‘초록물고기’, ‘넘버3’,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등. 재기와 패기가 넘치는 흥행작에, 작가주의 영화까지 등장하는 이 신선한 바람은 정말 기적적인 반전이 아닐 수 없다. 21세기로 이어지는 이 기세는 적잖은 졸작과 함께 진행되고 있지만, 결국 ‘쉬리’와 ‘공동경비구역 JSA’라는 대형 화제작을 내놓는 데 성공했다. 거기에 송강호가 있다.
한국영화사상 최고 흥행작인 이 두 편의 영화에 그의 이름이 올라 있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억세게 운 좋은 배우? 아니면 작품을 고르는 기막힌 안목? 그에게는 이 둘이 모두 해당된다. 우선 그의 출연작을 살펴보자.
데뷔작은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1996)이다. 맡은 역할은 작았지만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주었다. 이 영화는 우리 영화사에 홍상수라는 이색적인 작가가 출현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기도 했다. 거기에 이름을 올린 송강호 역시 의미 있는 첫발을 내디딘 셈이다.
독특한 화제작에서 조그맣게 데뷔전을 치른 그는 또 한 편의 걸출한 한국영화에 얼굴을 내민다. 바로 이창동 감독의 ‘초록물고기’(1997)다. 야비한 웃음을 흘리는 폭력조직의 행동대원 역. 아직 단역이었지만 한석규의 징그러우리만치 뛰어난 연기력을 받쳐주는 그의 몸 동작 하나하나는 분명 예사롭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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