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4월호

“못말리는 신파, 그래도 눈물은 흐른다”

나의 한국영화 편력기

  • 최보은 < 문화평론가/‘시티덱스’ 편집장 >

    입력2005-04-22 15: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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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중에 듣고보니 자식가진 아줌마 기자들은 빠짐없이 다 통곡한 반면, 처녀기자들은 그 이해할수 없는 상황 앞에서 '나도 아줌마 되면 저렇게 되나' 으스스 떨었다고 한다.
    ‘한국영화’ 하면 질 낮은 신파라는 말과 통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90년대 중반 이후 그런 시절은 확실히 막을 내린 것 같다. 말이 되는 영화들, 기본을 갖춘 영화들이 쏟아져 나오는 건 물론, 서구 영화 부럽잖은 수준작도 꽤 되는 편이어서 극장갈 때 굳이 애국심과 인내심으로 중무장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하지만 남들 보기에 상투적이고 진부한 영화라도, 개인적 삶의 맥락에 따라서는 객관적 걸작보다 더 오래 기억에 남는 영화들도 있는 법이다. 20년 간격을 둔 영화지만, 내겐 ‘상처’나 ‘고스트 맘마’ 같은 영화들이 그랬다. 두 영화 다 ‘눈팅이 밤팅이’의 경험을 했고, 극장 문을 나선 뒤 레스토랑 구석자리에 숨어 값비싼 음료 쓸데없이 마셔가며 눈두덩 마음두덩을 식혀야 했다.

    김수현 원작 김기 감독의 영화 ‘상처’는 홍콩영화 좋아하는 남자들이 보면 코골고 잠자기 딱 좋은 일종의 ‘신파 멜로’다. 극장에서 그 영화를 본 게 대학교 1학년 때인 1978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은 코믹연기로 다시 주가를 올리고 있는, 당대 브라운관의 프리마돈나 김자옥 씨가 사랑하는 남자를 기다리다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비련의 여주인공 역을 맡았다. 세부적인 내용은 20여 년의 세월이 지나는 동안 기억의 잉크가 다 지워져버렸지만, 죽음으로만 해결할 수 있었던 실연의 고통에 크게 공감했던 기억은 그대로 남아 있다.

    당시 대학 산악부에 홍일점으로 속해 있던 나는, 이를테면 등보기 사랑 같은 걸 하고 있었다. 동기 중에 내가 짝사랑한 아이는 내게 전혀 무심했고, 대신 내게 아무런 전기도 일으키지 못하는 다른 동기가 죽어라 나를 쫓아다니는, 그런 전형적인 구도였다. 그런데 내가 문제의 아이를 어느 정도 짝사랑했느냐 하면, 그저 멋있자고 하는 표현이 아니라 가슴이, 말 그대로 물리적으로 찢어지는 듯한 고통에 시달려야 하는, 그런 지경이었다.

    그날, 방학을 앞두고 원정에 대비해 준비 훈련중이던 산악부 동기들과 나는, 심심한데 뭐 다른 일 없을까 하며 농담 따먹기를 하던 중 그야말로 우연히 극장을 찾게 됐고, 그때 본 영화가 바로 ‘상처’였다. 일행에 문제의 세 사람, 나와 내가 짝사랑하는 아이와 나를 짝사랑하는 아이가 다 있었음은 물론이다.



    그런데 그 영화내용이 당시 우리 세 사람이 처해 있던 상황과 너무 흡사했던 것이다. 그야말로 현실이 영화를 베꼈다고 하면 옳을까. 영상자료원 사이트를 뒤져 찾은 영화 내용을 간단히 옮기면 이렇다.

    고학생 하영은 친구 재민의 소개로 부잣집 가정교사로 들어가는데, 그 집의 둘째아들 기훈과 운명적이고 치명적인 사랑에 빠진다. 전형적인 부르주아 속물인 기훈의 아버지가 하영에게 눈독을 들이자 기훈은 하영을 집에서 내보내고, 하영은 기훈의 아이를 임신하지만 변심한 기훈은 다른 여자와 결혼한다. 재민은 곤경에 빠진 하영을 끝까지 돌보지만, 결국 하영은 수면제 과용으로 죽고 만다는 내용이다.

    그 인생 그 시점의 영화 한편

    워낙 울궈 먹은 주제인데다 현실적으로 전혀 그럴싸하지 않은, ‘죽음에 이르는 순수한 사랑’의 이야긴데, 대학 1년생인 내겐 그 ‘순수’가 통했던 것 같다. 영화 보는 내내 툴툴거리거나 몸을 비틀거나 잠에 골아떨어진 다른 동기들 옆에서, 나는 울고 또 울었다. 오지 않는 연인을 기다리며 불면에 시달리는 여주인공의 고통이, 마치 짝사랑하는 동기의 연락을 기다리며 잠 못드는 나의 그것처럼 실감나 울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극장 문을 나서면서 ‘넌 대체 왜 이런 영화를 보자고 했느냐’며 나를 한심해하는 그 짝사랑의 상대에게 절망을 느꼈다.

    영화 ‘상처’는 그렇고 그런 숱한 영화 중 하나로 잊혀져갔고, 한국영화 100선이니 하는 영광의 자리에는 접근조차 못하는 기억의 변방으로 스러져갔지만, 누군가의 일생에는 그토록 뜻깊은 눈물 흔적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그 인생의 그 시점에 그 영화는 정말이지 진실을 말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영화보기에 무슨 색다른 기준이 있겠는가. 어쩌면 자기 상태나 취미에 맞는 영화가 그 사람에게는 가장 좋은 영화일지 모른다.

    그로부터 20년 가까이 지난 1990년대 말, ‘고스트 맘마’가 그만큼 나를 울렸다. 아이를 두고 교통사고로 죽은 젊은 엄마가 사후에도 아이와 남편을 잊지 못하고 그들을 돌본다는 얘긴데, 이 영화 역시 최루성 상업영화의 하나로 평단으로부터 큰 대접을 받지 못한 채 지나갔다.

    당시 영화주간지 ‘씨네21’에서 품을 팔고 있던 나는, 근무시간에 공짜로 영화를 보는 특혜를 양껏 누리고 있었다. ‘고스트 맘마’도 극장 개봉 전 시사회에서 공짜로 본 영화였는데, 지금은 소설가 후보로 변신한 당시 ‘씨네21’ 편집장 조선희와 나란히 앉아 둘이 함께 얼마나 눈물콧물을 흘렸는지 나중에 불이 켜졌을 때 다른 기자들 보기가 민망할 지경이었다.

    실제로 같이 시사회를 본 처녀 기자들은 눈팅이 밤팅이가 된 두 아줌마 기자를 어리둥절하고 한심한 눈으로 지켜보았고, 재빨리 시사실 길 건너 카페로 피신한 두 아줌마는 한동안 서로 눈도 마주치지 못한 채 한숨만 쉬어야 했다.

    “저런 파렴치한 상술이 있나!”

    우리 같은 아줌마 직장인들의 공통점은 자식에 대한 죄의식을 천형으로 간직하고 산다는 것이다. 그래서 드라마건 영화건, 어린아이가 불쌍한 지경을 당하는 상황만 등장하면 눈물보부터 터진다. 나중에 듣고 보니 자식 가진 아줌마 기자들은 빠짐없이 다 통곡한 반면, 처녀 기자들은 그 이해할 수 없는 상황 앞에 ‘나도 아줌마 되면 저렇게 되나’ 으스스 떨었다고들 했다.

    그 정반대의 경우가, 아마도 젊은 부부의 애절한 사랑을 다룬 ‘편지’일 것이다. 두 선남선녀가 우연히 만나 사랑을 하고 만인의 축복 속에 결혼해서 그림같이 산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은 암 선고를 받고, 죽음을 앞둔 남편은 비디오테이프에 아내에 대한 애절한 사랑을 담아놓고 죽는다.

    뭐 그런 내용인데, 시사회장에서 그 영화를 보던 나는 대망의 20세기 말에 시대를 거슬러도 유분수지, 저런 파렴치한 상술이 있나, 하면서 치를 떨었다. 그리고 상영시간 내내 지루해서 어쩔 줄 모르며 수업시간에 한눈 파는 주의 산만한 아이처럼 굴었다.

    그런데 영화가 끝나고 우르르 통로로 몰려나오는 기자들 중에 빨간 눈이 한둘이 아니었던 것이다. 노총각이던 모 신문기자 하나는 손수건이 다 젖을 정도로 울었다고 했고, 내가 일하는 잡지의 젊은 남자 기자 몇몇도 남부럽지 않게 울었다는 얘기였다. 그때, 저들은 아직도 사랑이 중요한 나이로구나, 사랑 얘기에 가슴을 적실 수 있는 나이로구나, 하는 실감이 들면서, 마치 사하라사막 같은 내 감정전선을 돌이켜보게 됐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그때 울었던 기자나 평론가들이 쓴 기사 혹은 비평이 한결같이 ‘비판적’이었다는 점이다. 바로 이런 게 영화보기를 업으로 삼는 사람들의 비애다. 즐겼으면 즐긴 대로, 울었으면 운 나름으로, 그랬다고 쓰고 지나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예를 들어 그 영화는 관람료가 아까우니 절대로 보지 말아라, 이 영화는 진짜 꽝이라서 공짜로 보여준대도 시간이 아깝다, 이 영화는 스토리나 기술적 측면으로는 말도 안 되지만 최근 실연을 당한 상처를 안고 있어서 울고 싶은 사람이라면 뺨 하나는 제대로 때려준다, 는 식으로 솔직하게 얘기할 수 있다면 말이다.

    상황에 따라서 울었건 지루했건 간에, 내게도 ‘한국영화가 다 그렇지’라는 편견이 아주 최근까지도 남아 있었다. 그런데 직업을 떠나 한 사람의 관객으로서 그런 편견이 미안했던 경험이 최근 잇따라 있었는데, 그 대표적인 영화가 송능한 감독의 ‘넘버 3’와 김지운 감독의 ‘반칙왕’이다. 두 영화 다 배꼽 빠지게 웃기면서도 묘한 슬픔을 자아내는 공통점이 있고, 두 감독 다 기자보다 더 글 잘 쓰는 글꾼이라는 것도 닮았다.

    ‘넘버 3’를 보고 나서 우리 잡지의 기자들이 관객 수를 놓고 내기를 걸었는데, 나는 100만 명 동원은 문제없다는 쪽이었다. ‘한국 관객 수준이 그렇게 높지 않다’며 서울 20~30만 명 안팎일 거라던 후배에게 결국 지고 말았지만, 난 그 영화가 ‘쉬리’만큼 관객을 동원하지 못한 이유가 지금도 궁금하다.

    ‘반칙왕’은, 다행히도 관객의 상당부분이 애국심에 의해 동원됐다고 개인적으로 믿고 있는 다른 기록적 대박 영화와는 달리, 실(實)가치 그 자체로 관객에 의해 평가받은 경우였다.

    사실, 한국관객들, 특히 젊은 관객들의 경우,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한국영화라면 무조건 봐주어야 한다는 의무감이나 채무감에 시달리는 것처럼 군다. 개인적으로 영화에 대한 솔직한 소감을 글로 표현했다가 봉변을 당할 뻔한 적이 있는데, 다름아닌 신지식인 1호 심형래 감독의 ‘용가리’다.

    인터넷 사이트에 들어가 보면, 심감독은 한국 CG나 SF 장르를 이끌고 나갈 영화적 영웅으로 추앙되고 있었고, 그의 영화에 대해 잘난 척 왈가왈부하는 기자나 평론가는 위선자에다 하이에나떼처럼 취급됐으며, 그래서 결국에는 모두가 입 다물게 되고 말았다. 명백하게 실패한 영화에 대한 맹목적이고도 비논리적인 옹호에 질려버린 나는, 한동안 인터넷 영화사이트의 게시판에는 들어가 보지도 않는 것으로 개인적 복수를 대신했다.

    그런 입장에서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건, 예전에도 그랬지만 앞으로도 의무감 때문에 한국영화 보는 짓 따위는 절대로 하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게다가 지금은 그럴 필요도 없을 만큼 좋은 영화가 많이 나오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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