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11월호

주먹과 권력

  • 조성식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airso2@donga.com

    입력2005-01-10 15:15: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전국 주요도시 주먹실세 계보
    • 주먹, 검사, 정치인 커넥션
    • 호남주먹의 뿌리와 가지
    • 전화 한 통으로 권력 움직이는 ‘귀족주먹’
    >

    한 목포 주먹의 허망한 죽음

    주먹과 권력의 관계는 흔히 말하듯 ‘악어와 악어새’의 관계다. 주먹은 권력의 보호가 필요하고 권력은 주먹을 이용한다. ‘왕년의 주먹’ B씨는 “오늘날 주먹계에서 힘이라는 것은 곧 권력 실세를 움직이는 힘”이라고 말한다.

    “주먹과 권력의 관계는 하루아침에 형성되는 것이 아니다. 주먹은 권력에 투자하고 권력은 주먹을 이용한다. 그 인맥이 여간 탄탄한 것이 아니다. 끊으려 해야 끊을 수가 없다.”

    ‘이용호 게이트’가 ‘호남 커넥션’ 시비로 발전한 것은 야당 탓이 아니다. 야당이 정치공세 차원에서 사태를 키운 측면도 있지만, 근원은 주먹과 권력의 결합에 있다. 이 커넥션의 기본 원리는 공생이다. 한쪽이 정치자금을 제공하거나 선거에 도움을 주면, 한쪽은 특혜나 이권을 준다.



    오늘날 기업형으로 바뀐 주먹은 더 많은 이권을 챙기기 위해 권력에 다가간다. 권력은 양지의 세계에서 처리하기 껄끄러운 일을 주먹에게 맡긴다. ‘이용호 게이트’에서 주먹 출신 사업가인 여운환씨가 주연급 조연으로 등장하고 ‘정현준 게이트’에서 오기준이라는 과거 호남주먹의 대부가 등장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주먹과 권력의 결합이 빚어낸 필연적 현상이다.

    ‘이용호 게이트’ 발생 이후 주먹세계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지고 있다. 과연 대한민국 주먹계를 움직이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주먹계 실세는 누구고 주먹계 배후세력은 누구인가. 현재 경찰에서 파악하는 전국 조직폭력배는 총 199개파에 4153명이다. 검찰은 전국 28개 지청을 통해 주요 조직폭력배 162개파 668명을 관리하고 있다(2000년 대검 강력부 자료).

    하지만 이는 수사기관이 편의상 분류해놓은 자료일 뿐 실제 사정은 많이 다르다. 이른바 ‘실세’들은 눈에 띄지 않게 행동하는 데다 대부분 사업가이기 때문에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여운환씨가 경찰 관리대상에서 빠져 있는 것도 이런 사정에서다. 주먹계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경찰·검찰이 파악하고 있는 주먹들은 맨날 빵(감방)에 드나드는 ‘가지’일 뿐”이라고 말했다.

    주먹세계의 실상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먼저 호남주먹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가 필요하다. 현 정부 들어 호남주먹이 드세졌다는, 이른바 호남주먹 득세설은 한편으로는 맞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맞지 않는다. 일부 호남주먹이 상당한 부를 축적하고 권력층과의 친분을 과시한다는 점에서는 맞다. 하지만 호남주먹이 예나 지금이나 주먹계 강자라는 점에서는 맞지 않는 얘기다.

    주먹에는 크게 두 부류가 있다. 지역주먹과 전국구주먹이다. 지역주먹은 특정 지역에서만 힘을 쓴다. 반면 전국구주먹은 말 그대로 전국 어디서나 실력 또는 이름값을 인정받는 주먹이다. 주먹세계에서 호남주먹이 돋보이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바로 전국구주먹의 상당수가 호남주먹에서 배출된 점이다.

    호남주먹이 위력을 떨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는 부와 권력이 집중된 서울을 장악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1960년대 중반부터 서울로 진출한 호남주먹은 1970년대 후반 이른바 3대 패밀리 시대를 거치며 서울에서 최강자로 군림하고 있다. 호남주먹이 서울로 몰려든 현상에 대해서는 ‘못 먹고 못 살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유력하다.

    현재 서울에서 활동하는 호남주먹 중 일부는 부를 움켜쥐었다. 겉보기에는 다들 사업가다. 실제로 직접 주먹을 쓰는 일도 별로 없다. 정확히 표현하면 주먹이라기보다는 ‘주먹 사업가’다. 하지만 여운환씨의 경우에서 보듯 이들이야말로 주먹계를 움직이는 실세거나 뒤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이다.

    동아파와 3대 패밀리의 후예들

    현재 서울 주먹계의 실세 그룹은 40대가 주축이다. 3대 패밀리(양은이파, 서방파, OB파) 시절 행동대장급으로 활약했던 이들은 현재 독자 계파를 꾸리거나 뒤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조직은 동아파. 동아파는 원래 광주에서 대호파와 더불어 1960년대 광주 주먹계를 양분했던 조직이다. 충장로파로도 불리는데 1969년 두목 전희O씨가 구속되면서 대호파에게 주도권을 빼앗겼다.

    서울에서 ‘최고 잘 나가는 주먹’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문아무개씨. 광주 송정리 출신인 그는 1990년대 초 해외도박사건에 연루돼 구속된 적이 있다. 그후 건설업과 사채업에서 큰돈을 벌었는데 최근 벤처업계에도 진출했다. 재산이 300억원대로 알려져 있다.

    검찰은 그를 동아파의 실질적인 두목으로 보는데, 그에 대해서는 상반된 평가가 있다. 한번에 200명 가량의 부하를 동원할 수 있다는 얘기가 있는가 하면,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고 있으며 사업에 전념하면서 주먹계를 떠나기 위해 노력한다는 얘기도 들린다. 그는 정부 고위직을 지낸 민주당 P의원과 친분이 깊은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 강북지역에 위치한 대형 상가의 고위간부인 김아무개씨는 동아파 실세로 통한다. 문씨 직계인 그는 1990년대 초 ‘범죄와의 전쟁’ 당시 구속돼 실형을 살았다. 상가 분양 등으로 수백억원대의 재산가가 됐다.

    역시 P의원과 친분이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한편 ‘계보상’ 동아파 두목인 또다른 문아무개씨(50대·건물입대업)는 얼마 전 검찰에 구속됐다.

    주먹계에 따르면 3대 패밀리 조직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두목들이 오랜 수감생활 또는 해외도피로 조직을 관리하지 못한데다 중간 간부들이 독자적인 길을 걷기 때문이다. 3대 패밀리의 위력이 통하는 곳은 교도소뿐이다. 한 관계자에 따르면 교도소에서는 아직도 조양은이나 김태촌이라는 이름이 통한다고 한다.

    서방파 두목 김태촌씨는 10여 년째 옥살이를 하고 있다. 출소예정일은 2004년 10월. 양은이파 두목 조양은씨는 신학대학원에 다니고 있다. 1988년 양은이파 계열인 순천시민파에 의해 불구가 되도록 난자 당한 OB파 두목 이동재씨는 미국 뉴욕에서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긴 해도 3대 패밀리의 자취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양은이파 조직원이었던 한아무개씨는 강남 모 호텔의 나이트클럽을 운영하며 수백억원대의 돈을 벌었다. 유명 여가수 U씨의 매니저를 맡기도 했다. 그밖에 서울에서 활동하는 3대 패밀리의 후예 중 주목할 만한 사람으로는 강아무개, 조아무개, 나아무개, 박아무개씨 등이 있다. 이들 또한 모두 사업가로 변신했다.

    양은이파 계열 조직원이었던 강씨는 1980년대 후반 라이벌 조직의 보스를 난자해 악명을 떨쳤다. 모 정당의 대표를 역임한 K씨와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OB파 행동대장으로서 칼잡이로 이름을 날렸던 조아무개씨. 1980년대 후반 서방파 중간보스 이아무개씨를 기습하는 등 서방파와 OB파의 ‘전쟁’에 앞장섰던 그도 지금은 보스 대접을 받고 있다.

    서방파 막내였던 나씨는 강남에서 큰 음식점을 경영하고 있다. 서방파 조직원이었던 박씨는 고향이 목포인데, 지난해 정권 실세로 통하는 P씨가 결혼식 주례를 서 화제가 됐다. P씨는 과거 야당 시절 주먹들의 경조사를 잘 챙기기로 유명했다.

    한편 검찰은 주먹계의 시각과는 달리 3대 패밀리 조직이 명맥을 이어가는 것으로 보고 뿌리를 뽑을 태세다. 검찰은 올초 3대 패밀리의 부두목급 3명을 구속했다. 이택O(서방파), 오상O(양은이파), 김인O씨(OB파)가 그들이다. 이중 이씨는 집행유예로 출소, 인도네시아로 출국했다. 오씨는 양은이파 직계가 아니라 방계인 순천시민파 두목이었다. 김씨는 과거 명실상부한 OB파의 2인자로서 이동재씨의 오른팔 노릇을 했다.

    김태촌씨와 친구 사이로 서방파의 중간보스였던 이아무개씨. 일찍이 동남아로 진출해 카지노사업에 손을 댄 그는 1990년 해외도박사건에 연루돼 외환관리법위반으로 기소중지됐다. 정권이 교체된 직후 귀국, 현재 서울에서 대규모 위락시설을 운영하고 있다. 앞서 소개한 동아파 두목 문아무개씨의 동향 선배다.

    호남주먹은 그 뿌리가 매우 깊고 단단하다. 표면적으로는 위에 언급한 40대 주먹들이 서울을 장악하고 있지만 이면을 들여다보면 그들의 선배주먹들이 여전히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 비결은 바로 정치권에 있는 사람들과 오랜 세월에 걸쳐 다져온 인간관계다. 호남주먹은 크게 전남 주먹과 전북 주먹으로 구분되는데, 대대로 전남 주먹이 우위를 보였다. 전남 주먹의 양대 본산지는 목포와 광주다. 전통적으로 광주보다는 목포 쪽이 드세고 걸출한 주먹도 많이 배출됐다.

    호남주먹이 서울로 진출한 시기는 1960년대 중반이다. 먼저 자리를 다진 쪽은 목포 주먹. 박종O, 오종O씨 등이 상경 1세대 주먹이다.

    번개라는 별명으로 한 시절을 주름잡았던 박씨의 주 활동무대는 북창동 일대였다. 계보상 김태촌씨의 대선배로 1989년 김씨가 조직한 신우회의 고문(검찰 자료에는 회장)을 맡는 등 호남주먹계의 대부로 군림해왔다.

    그는 1988년 국내 최대 폭력조직의 하나인 부산 칠성파 두목 이강O씨, 수원 주먹계 대부 최창O씨 등과 함께 일본에 건너가 야쿠자 조직과 우의를 다지는 행사를 가진 것으로도 유명하다. 현재 모 스포츠협회의 고위직을 맡고 있다.

    무교동에 자리잡았던 오씨는 조양은씨의 직계 선배다. 1976년 3월 무교동 엠파이어호텔 후문 주차장에서 김태촌씨 부하들의 칼에 맞아 불구가 된 이후 사실상 주먹계에서 은퇴했다. 조양은씨와 김태촌씨 간에 벌어진 ‘3년 전쟁’의 계기가 바로 오씨 피습사건이다.

    광주 출신 주먹의 대부는 박영O씨다. 서열상 박종O씨 바로 아래로 원래 광주 동아파 소속이다. 전 국회의원 신아무개씨의 사위이기도 한 그는 후배 김태촌씨를 도와 신우회 자문을 맡았다. 1990년 ‘범죄와의 전쟁’ 때 구속됐을 당시 언론은 그를 ‘국내 최대 폭력조직 서방파의 전신인 동아파의 대부’라고 소개했다.

    정치권 인사들과 교분이 두터운 그는 1976년 ‘신민당 전당대회 각목사건’에 관련됐다. 당시 신민당 비주류측의 요청을 받아 김태촌씨를 비롯한 직계 ‘동생’들을 이끌고 전당대회에 참석해 주류측에 폭력을 행사한 혐의다. 김태촌씨 석방운동을 펼치고 목포파 두목 강아무개씨의 배후 노릇을 했다는 소문도 있다. 주먹계에서는 박종O, 박영O 두 박씨의 영향력이 지금도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방파는 광주시 서방동이라는 동네 이름을 따 만든 조직이다. 뒷날 김태촌씨가 범서방파로 발전시킨 이 조직의 최초 두목은 건설업자 김성O다. 김씨의 뒤를 이어 서방파를 이끈 사람이 바로 ‘정현준 게이트’로 널리 알려진 오기준씨다. 목포 출신인 오씨는 김태촌씨의 직계 선배로 1977년 구속된 적이 있다.

    당대 최고의 호남주먹들

    신우회 회장(검찰 자료에는 부회장)을 맡을 정도로 김태촌씨와는 무척 가까운 사이. 김씨를 서울로 불러들인 사람도 오씨다. 김씨는 평소 그를 ‘존경하는 선배’로 깍듯이 대접했다.

    박종O, 박영O씨와 마찬가지로 오씨 또한 현역에서 은퇴했지만 정치권에 발이 넓어 나름대로 주먹계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현준 게이트’가 터진 직후 미국으로 도피한 후 귀국하지 않고 있는데, 이경자씨에게 고위층을 연결해줬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최근 LA에서 룸살롱을 개업했다는 소문이 들린다. 고위층 인척인 차아무개씨와 밀접한 관계다.

    오씨와 같은 시기 광주에서 활동한 주먹으로 김제O씨가 있다. 구OB파 두목인 김씨는 한때 광주 주먹계를 통일했으나 오래 가지 못했다. ‘동생’들을 제대로 챙겨주지 못한 탓이다. 그후 서울로 올라와 술집을 운영했다.

    비슷한 시기에 상경한 광주 출신 주먹으로 정아무개, 추아무개씨 등이 있다. 정씨는 무도인(태권도) 출신이다. 광주에서 칼을 맞고 서울로 올라온 추씨는 서울역 부근 P다방을 근거지로 삼았다. 김대중 대통령과 오랜 세월 민주화투쟁을 함께 한 K 전의원과 친분이 깊다. 이들과 비슷한 또래의 목포 출신 주먹으로는 아마추어복싱 라이트급 챔피언을 지낸 이아무개씨가 있다.

    그밖에 특정 조직에 몸담지 않은 이 지역 출신 주먹으로 송아무개, 조아무개씨 등이 있다. 송씨는 오종O씨와 더불어 무교동에 터를 잡았는데, 그의 도움으로 상당수 호남주먹이 서울에서 자리를 잡았다. 그는 독자적인 길을 걸었는데 몇 년 전 고혈압으로 사망했다.

    주먹계의 한 관계자는 “송씨는 무척 야물었다(실력이 좋은 주먹을 가리켜 ‘야물다’고 한다)”며 “살아 있었다면 주먹계에서 상당한 위치를 차지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씨도 송씨처럼 독자적으로 활동한 주먹이다. ‘패밀리’들이 감히 넘볼 수 없는 주먹 실력을 뽐냈다고 한다.

    서울로 진출한 호남주먹 중에는 광주·목포 출신 외에도 뛰어난 주먹이 많다. 대표적인 이가 벌교 출신의 문아무개씨. 원로주먹 유지광씨와 동 세대인 그는 당대 최고 주먹으로 인정받았다. 현재 경기도의 한 소도시에서 건물임대업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광양 출신의 ‘닷소(별명)’는 박종O씨의 윗세대로 호남주먹 가운데 가장 먼저 명동에 진출한 사람이다. 신도호텔이 근거지였는데 유명 가수 조아무개씨의 매니저로도 활약했다.

    보성 출신 주먹으로는 이육O씨가 가장 유명하다. 1989년 부산의 100억원대 매립지 이권을 갈취한 혐의로 구속될 당시 언론에 ‘3대 패밀리의 대부’로 소개됐다. OB파 두목 이동재씨와 가까운 친척이다. 이승O씨가 조직한 호청련(호국청년연합회)에서 고위간부로도 활동했다.

    이씨는 교도소에서 마음을 잡아 출소 후 주먹계에서 사실상 은퇴했다. 두 아들을 모두 서울대에 진학시켰으며, 현재 일본에 거주한다.

    이육O씨가 구속되기 전 청와대에는 이씨가 호남 출신 검사들과 유착됐다는 진정서가 접수됐다. 청와대는 이를 검찰로 넘겼다.

    그런데 이 진정서에는 이씨와 친분이 있다는 호남 출신 검사 세 명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검찰 고위직을 지낸 K변호사, 정치권에 몸담은 P씨, 그리고 현직 검찰 고위간부 P씨로 알려져 있다. 검찰은 이씨와 검사들의 친분을 ‘일상적인’ 수준으로 보고 ‘없던 일’로 처리했다.

    이중 한 명은 ‘이용호 게이트’에서도 이름이 등장했다. 현재 주먹계에는 검사장급 K씨, S씨가 주먹들과 친분이 깊다고 소문나 있다.

    호남주먹의 또다른 축인 전북 주먹의 대표주자는 전주 출신 이승O씨다. 중학교 때부터 태권도를 시작해 전주고 재학 시절 전국대회를 휩쓸고 국가대표로도 활약했다. 이씨는 일찍이 사업가로 나서 1970년대 중반 서울 동대문에서 주류도매상을 경영해 큰돈을 벌었다. 호남주먹들의 후견인으로서 1970년대 후반 ‘전쟁’을 벌이는 조양은씨와 김태촌씨의 화해를 중재하기도 했다.

    이씨는 5공 정치폭력의 상징인 통일민주당 창당방해 폭력사건(1987년 4월)에 깊숙이 개입했다. 신민당 이택돈 의원과 이택희 의원과 연계해 폭력배 50여 명을 동원해 6곳의 지구당 창당을 방해한 혐의다. 1990년 3월 검거돼 폭행 등의 혐의로 징역 1년6월형이 선고됐다. 1987년 7월엔 우익청년연합단체 호청련을 결성했다.

    이 단체는 안기부에서 자금을 지원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한국과학기술재단의 공금을 횡령한 혐의로 구속돼 집행유예를 받은 이씨는 현재 모 스포츠협회 고위직을 맡고 있다.

    주먹사회에도 상류층이 있다. 이들은 조직을 이끌거나 부하를 거느리지 않는다. 하지만 필요하면 언제든지 사람을 동원할 수 있다. 조직의 두목을 움직일 수 있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그 힘은 오랜 세월 주먹계에서 쌓아온 명성과 권력과의 친분, 그리고 돈에서 비롯된다. 이들의 이름은 전국 어디서나 통한다. 수십억원대의 재산을 갖고 있으며 전화 한통으로 권력층을 움직일 수 있다.

    앞서 소개한 호남주먹계 대부들 중에도 상류층 주먹이라 할 만한 사람이 몇 명 있다. 비호남 주먹 중에는 김아무개씨가 꼽힌다. 김씨는 1970년대 중반까지 서울 주먹계를 대표한 신상사파의 실세로 통했다. 박정희 대통령 조카뻘에 해당하는 한아무개씨와 의형제 사이.

    뿌리 깊은 상류층 주먹

    1975년 1월 호남주먹의 ‘기린아’ 조양은씨로부터 사보이호텔에서 기습공격을 당하기도 했다. 주먹계 표면에서는 사라졌지만 막후에서 여전히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권력기관과의 친분이 힘의 원천이다. 목포 주먹계 거물인 강아무개씨와 친하다.

    1993년 슬롯머신사건 당시 ‘한국판 마피아’라는 별명으로 신문지면을 장식했던 정덕진씨도 이 부류에 낀다. 주먹계 주변에서 정씨만큼 돈이 많은 사람도 없다. 일찍이 파친코업계에 진출해 ‘돈을 쓸어 담은’ 그는 1000억원대 재산가다. 동생 덕일씨의 재산도 그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 않다.

    이북 출신인 정씨는 평소 권력층에 줄을 대 놓았는데, 슬롯머신사건 당시 안기부 기조실장을 지낸 엄삼탁씨, 이건개 대전고검장, 박철언 의원 등이 그와의 관계가 문제가 돼 사법처리됐다.

    도박광인 정씨는 1998년 외환관리법위반과 상습도박 혐의로 재구속됐다. 37억 여원을 해외로 빼돌려 카지노 도박자금으로 쓴 혐의였다. 지난해 출소했는데, 얼마 전 “한국이 싫다”며 미국 이민길에 올랐다.

    영등포 일대가 기반인 이아무개씨도 상류층 주먹으로 볼 만하다. 재산은 조금 못 미치지만 주먹계에서는 실세로 통한다. 역시 권력기관과의 친분에서 비롯된 힘이다. 고 조아무개 의원과 아주 가까웠다. 정덕진씨에게 미국 투자이민이 허가되도록 힘을 썼으며 수감중인 주먹계 거물 K씨의 편의도 봐주고 있다.

    지방에 있는 호남주먹은 서울로 진출한 주먹보다 한 수 아래로 치는 경향이 있다. ‘이용호 게이트’가 ‘여운환 게이트’로 옮겨가자 일부 언론은 여운환씨를 호남주먹계의 대부로 묘사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과장된 표현이다.

    1992년 홍준표 검사(현 한나라당 동대문을 지구당위원장)가 광주지검에서 여씨를 구속할 때 너무 요란스러웠던 탓에 여씨가 마치 주먹계 거물인 것처럼 일반에 인식됐지만 실은 ‘광주에서 힘이 센 정도’다.

    여씨와 친분이 있는 유력인사들도 그를 ‘거물 주먹’으로 만드는 데 한몫했다. 구속 당시 조아무개 의원을 비롯한 이 지역 출신 야당의원 3∼4명이 정구영 검찰총장을 방문해 여씨 구속에 항의했다. 검찰 내에서도 여씨를 옹호하는 사람이 몇 있었다. 이와 관련, 홍씨는 “당시 검찰 고위관계자인 S씨도 여씨를 수사하는 데 애를 먹였다”고 말했다.

    홍씨는 또 “거물급 로비스트인 O씨의 구명로비에도 시달렸다”고 주장했다. O씨는 정치권과 법조계에서 ‘마당발’로 통한다. 타고난 사업수완과 친화력으로 역대 정권 실력자들과 교분을 쌓아 왔다. 전직 검찰총장 J씨, K씨 등과 절친하다.

    광주 주먹이 부각된 것은 주먹계에 3대 패밀리 시대가 열린 후다. 공교롭게도 3대 패밀리의 두목이 모두 광주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3대 패밀리가 와해되고 ‘잘 나가는’ 주먹들이 교도소에 들어간 후 광주 주먹계는 특별한 강자가 없는 ‘춘추전국시대’를 맞았다. 그 와중에 성장한 조직이 바로 여운환씨가 관련된 국제PJ파다.

    주먹계에서 여운환은 싸움꾼이라기보다 ‘머리 좋은 주먹’으로 인식돼 있다. 1980년대 중반 서울에서 ‘당대 주먹’으로 날렸던 O씨는 “내가 활동할 때만 해도 여운환이라는 이름은 쳐주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여씨는 운이 좋은 사람”이라며 “야문 주먹들이 다 (감옥에) 들어가고 난 후 갑자기 거물이 됐다”고 말했다.

    주먹 출신 사업가 B씨는 “여운환이라는 이름이 주먹계에 알려진 것은 이강O을 따라 일본에 갔다온 이후”라고 말했다(여씨는 1988년 부산 칠성파 두목 이강O씨 등과 함께 일본으로 건너가 야쿠자 조직과 의형제 결연식을 가졌다).

    국제PJ파의 명목상 두목은 여씨가 아니라 김아무개씨다. 김태촌씨의 행동대장 노릇을 했던 양아무개씨가 김씨의 친구다. 양씨는 1990년 김태촌씨와 더불어 범죄단체 조직 혐의로 구속됐는데 현재 참치장사를 하고 있다. 국제PJ파 실세는 조아무개씨다. 조씨는 8년째 징역을 살고 있고 김씨는 6년을 살고 나왔다.

    주먹계에서는 여씨가 자신은 표면에 나서지 않고 두 사람을 내세워 조직을 관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 두 사람과 관계가 틀어지는 바람에 조직이 내분 위기를 맞았다는 얘기도 들린다. 광주에는 그밖에 신양OB파, 충장OB파 등 OB파에서 갈라진 조직과 콜박스파 무등산파 신양관광파 등이 난립하고 있으나 국제PJ파에 눌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목포 주먹계에도 절대 강자는 없다. 이 지역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은 김아무개씨. 한때 술집을 운영했던 그는 시내에 호텔을 갖고 있는데, 고위층과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후배들은 1980년대 중반 서울로 올라가 강남 일대 유흥가에 자리를 잡았다. 그중 일부가 1986년 서진룸살롱사건 때 불의의 죽음을 당했다. 이 사건의 가해자는 유도대 출신의 ‘7인조 칼잡이’였는데 주동자인 장아무개, 고아무개씨도 목포 출신 주먹이다.

    김씨에 버금가는 위력을 가진 강아무개씨는 일찍이 뛰어난 사업수완을 바탕으로 지역 출신 정치인들과 친분을 유지해왔다. 그의 부하 중 일부가 서울로 진출해 모 지역의 윤락가를 장악했다. 강씨는 여운환씨와 가깝다.

    그밖에 또다른 강아무개, 또다른 김아무개, 천아무개씨 등이 나름의 영역을 갖고 있다. 강씨는 앞서 언급한 김씨의 선배로 경기도 안양으로 옮겨간 지 오래됐다. 또다른 김씨는 주먹실력으로는 최고로 인정받는다. 현재 수배중이다. 무안 출신인 천아무개씨는 서진룸살롱사건 때 화장실에 숨어 있다가 살아남았는데 그후 독자적으로 자리를 잡았다.

    순천에는 양은이파 부두목으로 이름을 날린 강아무개씨가 돋보인다. 1980년 조양은씨와 함께 구속돼 20년형을 선고받았다. 올 2월 출소한 후 부산에서 사업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후배인 또다른 강아무개씨가 그의 뒤를 잇고 있다. 올 2월 구속된 양은이파 계열 오아무개씨도 순천 출신이다. 여수에는 정아무개씨가 유명하다. 알루미늄 샤시 사업으로 돈을 벌었다.

    전북에서 주먹이 드세기로 소문난 곳은 전주, 군산, 익산, 김제 등이다. 전주에서는 월드컵파와 나이트파가 주먹계를 양분하고 있다. 1983년 결성된 월드컵파는 한때 조직원이 100여 명에 이르는 등 이 지역 최대 조직으로 군림해왔다.

    두목 주아무개씨는 1990년 ‘범죄와의 전쟁’ 당시 구속돼 7년형을 선고받고 1998년 출소했다. 출소 당시 대학원 진학을 선언해 화제가 됐으나 올초 검찰의 주요 폭력배 집중단속에 걸려 또다시 구속됐다. 주먹계를 떠나기 위해 노력한다는 얘기도 들린다.

    전국구 주먹 이강O의 파워

    나이트파 두목 김아무개씨 역시 ‘범죄와의 전쟁’ 때 구속돼 실형을 살았다. 월드컵파에 비해 약세인 나이트파는 1980년대 후반 이리(익산)배차장파의 김항O씨가 주도한 일송회에 가입하기도 했다.

    익산에는 배차장파가 가장 유명하다. 대부인 김씨는 표면에서 사라졌다. 신아무개씨가 두목인데, 현재 원주교도소에 수감돼 있다. 행동대장인 윤아무개, 이아무개씨도 구속된 상태다. 김제에는 이아무개씨가 돋보인다. 살인사건에 연루돼 15년형을 살았다. 과거 군산 주먹계의 실력자는 형아무개씨였는데 요즘은 조아무개씨가 실세다.

    호남주먹계를 살펴보면 한번 ‘낙인찍힌’ 주먹들은 계속 교도소를 들락거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현상은 비호남 주먹계도 마찬가지다.

    부산은 칠성파를 비롯해 영도파 신20세기파 신칠성파가 4파전을 벌이고 있다. 네 조직은 하나같이 두목들이 ‘범죄와의 전쟁’ 당시 구속된 전력이 있다.

    최강자는 모 체육협회 부회장을 지낸 칠성파 두목 이강O씨. 1988년 일본에 건너가 야쿠자와 결연의식을 가진 이씨는 부산 주먹계 대부이자 전국 어디서나 그 이름이 통하는 전국구 주먹이다.

    과거 안기부 실세 O씨와 가까웠던 그는 특히 부산 경찰 쪽에 탄탄한 인맥을 구축한 것으로 알려졌다. ‘범죄와의 전쟁’이 한창이던 1991년 구속돼 1999년 출소했다. 지난해 12월 협박, 세금포탈 등의 혐의로 재구속, 2년형을 선고받고 복역중이다.

    칠성파와 치열한 영역 다툼을 벌여온 신20세기파는 안용O, 정상O씨 두 사람이 두목이다. 그중 안씨는 올 초 검찰에 의해 수배됐다. 불법오락실 영업을 한 혐의다. 영도파는 이강O씨의 친구 천달O씨가 만든 조직인데, 칠성파에 밀린다. 칠성파에서 분가(分家)한 신칠성파는 한동안 칠성파와 죽고죽이는 ‘전쟁’을 치렀다. 최근 두목 김영O씨가 이강O씨와 화해한 것으로 전해진다.

    대구 주먹계는 동성로파가 휘어잡고 있다. 두목 김아무개씨는 현재 원주교도소에 수감돼 있다. 박아무개씨가 이끄는 향촌동파는 동성로파에 밀린다.

    대구가 배출한 당대 최고 주먹 조창O씨는 올초 출소한 후 조용한 생활을 보내고 있다. 6공 실세 O씨와 가깝다고 소문난 조씨는 1987년 대선 당시 노태우 후보의 광주 유세 때 경호 업무를 맡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인천에서는 꼴망파가 주름잡고 있다. 건설업자인 두목 최아무개씨는 청송교도소에서 출소한 지 얼마 되지 않는다. 아직 꼴망파에 대적할 만한 조직이 없는데, 최근 30대 후반의 김정O씨가 새로운 실력자로 떠오르고 있다.

    대전에서는 옥O파와 진O파가 쌍벽을 이룬다. 글머리에 소개한 대로 김옥O씨는 지난 8월 수배중 심장마비로 죽었다. 조양은씨를 선배로 따랐던 그는 1980년 신군부에 의해 구속돼 조씨와 대전교도소에서 같이 지냈다.

    당시 대전교도소에는 현재 여권 실세인 정치권 인사들과 김태촌, 오기준씨 등 거물주먹이 모여 있었다. 목포를 떠나 20년 이상 대전에서 살아온 김씨는 이 지역 일간지 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대전 목포내기라는 별명으로 더 알려진 김아무개씨는 김옥O씨의 선배다. 평소 고위층과의 친분을 과시해온 그는 최근 고위층의 ‘경고’를 받고 국외로 나갔다. 진O파 두목 김진O씨는 올초 협박 등의 혐의로 구속됐으나 무죄로 석방됐다. 1990년 ‘대전 판·검사 술자리 폭로사건’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경기도 수원에는 과거 전국구주먹으로 이름을 날린 최창O씨의 영향력이 크다. 최씨의 직계로 이석O씨가 있다. 수원에선 오래 전부터 북문파와 남문파가 대립해 왔다. 북문파는 김아무개씨, 남문파는 홍아무개씨가 두목이다. 최근 홍씨는 조직에서 거의 손을 뗀 것으로 알려졌다.

    안양 주먹계의 강자는 ‘교도소 휴대폰 반입사건’으로 이름을 떨친 안아무개씨다. 얼마 전 형집행정지로 출소했다. 안씨의 선배로 조아무개씨가 있는데, 필로폰에 빠져 사실상 주먹생활이 끝난 상태다. 이천에는 김상O씨가 눈에 띄는 주먹.

    늘어나는 ‘동네 깡패’

    충북 청주에는 시라소니파와 파라다이스파의 유혈대결이 잦았다. 청주 주먹계의 대부로 불리는 신용O씨는 파라다이스파를 이끌고 있다. 10여 차례 구속된 경험이 있는데, 지난해 3월 폭행 등의 혐의로 구속돼 4년6월형을 선고받고 복역중이다. 충북도장애인연합회장, 청주시농구협회장 등을 지냈다. 충주에는 최석O씨가 있다. 역시 수감중이다. 충남 태안에는 최진O씨가 실세다. 온양에는 김춘O씨(청송감호소 수감중), 보령에는 구백O씨 등이 눈에 띈다.

    강원도에서는 원주의 김아무개씨가 유명하다. 김씨는 외국자동차 대리점을 운영해 돈을 벌었다. 정덕진씨와 관계 깊은 장아무개씨가 김씨의 배후에 있다. 강원도에는 그밖에 특별히 두드러지는 조직이나 주먹이 없다. 주문진의 박충O씨가 거론되는 정도다.

    경북에서는 영천의 소야파가 단연 돋보인다. 예전엔 소야파가 대구 일대까지 장악했다. 두목 이성O씨는 출소 후 대구에서 활동하고 있다. 포항 주먹계에서는 이정O씨가 강자다. 최근 출소했다. 경남에서는 진주의 양철O씨, 마산의 이병O씨가 돋보인다. 충무에는 술집 건설업 등으로 돈을 번 문아무개씨가 있다.

    제주에서는 산지파 유탁파 땅벌파가 3파전을 벌여왔다. 그중 산지파가 가장 센데, 두목 송아무개씨가 구속된 후 분열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전국 주먹계 실태를 보면, 전반적으로 ‘동네 깡패(군소 조직)’가 늘어나는 추세다. 이와 관련, 주먹계의 한 관계자는 “‘범죄와의 전쟁’은 실패작”이라며 “큰 조직은 어느 정도 살려 양지로 끌어들여야 암흑가 질서가 잡힌다”고 말했다.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