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11월호

나 조영남을 전기의자에 앉힌 신동아

  • 조영남 (가수)

    입력2005-03-21 16: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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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에 기자의 질문이 좀 어설펐다. 자기네 책을 쭈욱 봐왔느냐는 것이다.

    웬만한 잡지사의 기자가 그런 식으로 물어왔다면, “세상에 그따위 무례한 질문이 어딨냐”고 한번쯤 내질렀을 법도 했건만, 이게 다른 잡지도 아닌 신동아의 질문이라서 어물어물 대답을 하긴 했다. 그러니까 신동아를 매달 읽으면서 지금까지 가장 인상깊었던 기사가 뭐였냐는 질문에 나는 겨우 이렇게 대답했다.

    “글쎄, 갑자기 물으니 떠오르는 게 없는데, 책을 뒤져보면 혹시 뭔가가 나오지 않을까요?”

    그리곤 일단 전화를 끊었다. 그런데 사실을 말하자면 신동아 기자 양반의 뜬금없는 질문을 받았을 때 내 머리엔 그야말로 인상깊었던 기사가 퍼뜩 떠오르긴 했다. 하나도 아니고 두 개씩이나 떠올랐다. 그러나 나는 떠오른 생각을 차마 그대로 내뱉을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 두 가지 기사가 바로 나 자신에 대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럼 왜 사실대로 대답을 못했느냐? 그건 간단하다. 나에 관한 기사를 내가 읽고서 그게 인상깊었다고 말하는 게 아무래도 속 들여다 보이는 것 같아서다.



    게다가 그 기사는 매우 일방적으로 우호적인 글이었다. 내가 생각해도 좀 민망할 만큼 조영남을 일방적으로 지지하는 글이다. 둘 다 여성이 쓴 글이라는 것도 좀 켕겼다.

    하지만 기왕 내친김에 내놓고 얘기하자. 작년 6월호에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 박사가 쓴 ‘남성탐구·이건희의 집착, 조영남의 오버’, 그리고 지난 4월호에 신동아 이나리 기자가 쓴 ‘불타는 중년 조영남의 4일야화’가 그것이다.

    자! 나한테 과연 이보다 더 기막힌 글이, 이보다 더 인상깊은 글이 어디 있겠는가. 적어도 나한테만은 이 두 글이 ‘린다 김의 여섯 시간 인생고백’보다도, ‘미국과 아랍의 세계 3차대전’보다도 더 기막혔고 더 인상적이다. 린다 김이 국방장관과 부적절한 관계를 가졌다거나 이슬람이 쑥밭이 돼서 수천명이 죽어 넘어간다는 기사보다도 내 눈에는 조영남에 관한 기사가 더 먼저 띄었다.

    물론 신동아가 독점 인터뷰한 ‘린다 김의 인생고백’은 굉장한 기사였다. 그 기사도 나를 한껏 흥분시켰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옛날 내 친구녀석 중에 부잣집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그 당시 밤의 세계를 휘젓고 다니다가 만난 여자를 가수로 만들겠다며 이리저리 돈을 쓰고 다녔다. 그러던 어느날 그 여자를 데리고 미국으로 건너가더니 소식이 끊겼다.

    린다 김 스캔들이 터진 후에 이런저런 풍문을 종합해 보니 내 친구녀석이 데리고 갔다던 그 여자가 틀림없어 보였다. 녀석은 친구들도 모르게 혼자 우물쩍댔기 때문에 나는 문제의 그 여자를 직접 볼 기회가 없었다. 설혹 봤다고 해도 그 여자가 큰 가수로 성공할 것 같지 않아서 그냥 지나쳤을 수도 있고, 그 여자가 나중에 그렇게 어마어마한 스캔들의 주인공이 되리라고는 꿈도 꾸지 못했기 때문에 그냥 지나쳤을 수도 있다.

    그래서 린다 김에 대한 소식이 궁금하던 차에 어느 신문광고에서 린다 김을 여섯 시간 동안 단독 인터뷰했다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그게 바로 우리의 ‘자랑스런’ 신동아였다. 나는 30쪽이 넘는 긴 인터뷰를 단숨에 읽었다. 내 친구와의 관련에 관한 확증은 못 잡았지만 말이다. 그렇다. 그 전설적인 린다 김 인터뷰는 온통 긴박감과 설렘으로 읽었다.

    ‘이제 다 이루었도다!’

    그러나 나에 관한 기사를 내 스스로가 읽을 때는 단지 긴박감이나 설렘이라는 말로 표현하기에는 턱없이 모자라는, 설명이 불가능한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마치 고문용 전기의자에 앉은 기분 같았다. 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나에 관한 기사가 다른 데도 아닌 신동아에 실렸다면 이건 시시한 과장도 아니고 호들갑도 아니다. 나는 ‘아! 다 이루었구나’ 싶었다.

    터놓고 얘기해 보자. 나도 알고 당신도 알고 있다. 나는 정말 아무렇게나 막 살아왔다. 닥치는 대로 살아왔다. 그래서 늘 찝찝하고 초조하고 불안했다. 그런 나를, 조영남을 ‘대한민국의 이건희’와 비교할 만한 인물로 신동아가 총대를 메고 띄워놨으니 어찌 ‘다 이루었도다’라는 배부른 탄식이 안 나오겠는가 말이다.

    사실 이런 느낌은 신동아가 준 ‘엄청난 특혜’다. 통상 신동아는 특혜를 남발하지 않는다. 특혜는커녕 대개는 박살내는 경우가 더 많다.

    게다가 ‘불타는 중년 조영남의 4일야화’는 환상적이었다. 그 기사를 읽기 전까지는 나는 내가 그토록 멋있는 남자인지 정말 몰랐다. 그 기사가 나간 후 사람들이 나를 다시 보기 시작했다(생각없는 사람들이 신동아를 읽을 리가 없다).

    신동아 기사 덕분에 나는 두 가지의 확실한 소득을 얻었다. 하나는 지금부터라도 착하게 잘 살면 승산이 있겠구나 하는 자신감이다. 또 하나는, 이건 매우 개인적인 얘기지만, 그후 내가 이나리 기자와 친해졌다는 사실이다.

    이제 남은 마지막 희망사항 하나는 언젠가 신동아에 불쑥 ‘우리가 조영남을 잘못 알았다. 그는 사기꾼이었다’, 뭐 이런 기사가 안 실리는 것이다. 결국 칼자루는 신동아가 쥐고 있다. 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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