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11월호

판소리 가락 같은 사람 이야기 ‘최일남의 인간탐방’

  • 이태주 (연극평론가·서울시극단장)

    입력2005-03-21 16: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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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창(國唱) 김소희를 탐방하는 자리에서 최일남은 그가 노리는 ‘탐방’의 특징을 이렇게 말했다.

    “이상하다. 누구 하면 금방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유명한 사람도 막상 그의 집으로 찾아가 대좌하고 보면 그의 이름이 주는 거리감이 일단은 사그라진다. 그가 예술가이든 민생을 제도하는 성직자이든 사람의 환부를 집어내는 의사이든 간에, 차 한잔 놓고, 또는 술 한잔 놓고 마주 앉으면 지금까지의 ‘고명’이 자리를 비키고 보통사람의 보통의 모습이 허물없이 드러난다. 이 ‘탐방’이 노린 것이 바로 그 대목인데, 그것은 일정한 거리를 바짝 좁히고 휘장을 걷어주는 점에서 피차의 자세를 안온하게 만든다. 김소희도 그랬다.”

    최일남은 그의 ‘탐방’이 인간 서로가 허식을 털고 알몸이 되어 만나는 순수한 만남의 자리가 되기를 원했다. 그런데 다행히 그 소원은 성취되었다.

    나는 예술가의 전기나 일기, 편지 등 그 사람의 피부, 숨소리, 눈동자, 습관, 생활환경 등을 한껏 보고 느낄 수 있는 그런 글을 좋아한다. 그래서 잡지를 들면 인간탐방 등의 인터뷰 글을 먼저 읽게 되고, 서점에 가면 전기류 서적부터 뒤적거려 본다. 남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무엇을 꿈꾸고 있는지, 나는 이 일이 알고 싶어서 늘 귀가 쭝긋거리고 눈은 접시만해진다.

    사람을 보면 시대가 보인다. 사람 속에 시대가 있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내가 살아온 시대는 격동기였다. 전환기였다. 그 시대는 언제나 벼랑처럼 느껴지고 병들어 보였다. 그 병의 뿌리는 어디에 있는가. 이 일이 나는 궁금했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의 정체(正體)가 누구에게나 보이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보는 눈이 있어야 보인다. 그 눈은 비범한 눈이요, 총명한 눈이요, 날카로운 눈일 것이다. 실상(實相)을 투시하는 맑고 깨끗한 눈일 것이다. 그리고 고뇌하는 마음의 눈, 순수하고 아름다운 눈일 것이다.

    소설가 최일남의 글을 읽으면 그런 눈을 감득(感得)할 수 있다. 그러니 나는 그의 눈을 빌려 세상의 진실을 보고 항해하는 행운을 얻은 셈이다. 최일남은 1982년부터 1년간 신동아에 ‘인간탐방’을 쓰면서 지학순 주교, 안병무 목사, 김동길 교수, 국창 김소희, 건축가 김수근, 화가 천경자, 명배우 최불암, 소설가 박경리 등의 인사들을 탐방했다. 내가 그의 글을 읽고 놀라웠던 사실은 이들 인사들이 숨기고 있는 생의 계획을 그가 능숙한 유도 질문으로 밝혀내면서 동시에 탄압받고 몸부림치고 울부짖는 시대의 아픔도 완곡하게 전한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또 한가지 놓쳐서는 안되는 일이 있었다. 그것은 탐방하는 인사들의 초상 속에 이들을 응시하는 또 하나의 인물인 소설가 최일남이 ‘오버랩’으로 비쳐지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건축가 김수근을 탐방하면서 그는 우리의 한옥에 관해서 묻는다. 그리고 집에 관한 자신의 체험을 소설 속에서처럼 써나간다.

    “나는 소년시절을 가난하게 보냈기 때문에, 어려서는 그런 기와집에 살아보지 못했다. 마을에 한두 채 날아갈 듯이 하늘을 괴고 있는 기와집은 동경의 적이자 선망의 과녁이었다. 나는 언제나 저런 기와집에서 사나 하는 것이 어린 소년의 연래의 꿈이었다. 그리고 언제나 초가집에서 살았다….”

    운치와 긴장, 리듬과 템포

    또 이런 대목도 있다.

    “고백하거니와 나는 김수근이 점심을 잘 낼 줄 알았다. 적어도 ‘쌍칼질’하는 데 가서 지글지글 끓는 고기도 썰고, 포도주도 마시며 입가심으로 진짜 주스도 마시는 그런 고급 장소를 상상하고 있었다… 허나 그런 내 생각이 잘못이었나보다.”

    두 사람은 사무실에서 자취방에서처럼 시어빠진 김치와 소찬으로 점심을 들었다. 그리고 나서 그는 이렇게 적고 있다.

    “그러자 이상하게도 친밀감이 들었다. 그럴 계제가 되면 거기 알맞게 행동을 하되, 보통의 나로 돌아오면 또 보통으로 행세하려드는 보통사람으로서의 몸가짐이 마음에 들었다. 비단 김수근뿐만 아니라 나는 이른바 각계의 유명인에 대하여 일종의 거부반응을 느껴온 게 사실이었다. 고독하게 파묻혀서 일만 하면 되었지, 공연히 여기저기 얼굴을 내밀어 허명을 떨치느냐, 이런 생각이었다. 나중에는 진짜 자기 일은 어디로 가고 대단찮은 이름 석 자만 허공에 떠다니는 꼴이 되는 경우말이다.”

    이런 글을 읽으면 그의 자화상이 보인다.

    최일남은 그 당시 우리의 산업사회가 보여주는 비인간화 현상과 인간의 존엄성이 박탈당하는 병리현상을 적나라하게 파헤치는 소설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었다. 중요한 것은 그의 소설의 특징이 해학과 풍자에 있다는 사실인데, 그런 소설적 기법이 인터뷰 속에 도입되어 글에 운치가 있고 긴장이 있으며, 리듬과 템포가 있었다. 그 문체는 흥에 겨워 구성진 가락을 뽑는 새콤한 판소리와 같았다.

    국창 김소희와의 만남을 언급한 내용은 그의 ‘인간탐방’ 스타일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판소리를 ‘한(恨)’과 연관시켜 말하는 사람이 많다. 그 곡조에서, 그 가락에서, 그리고 그 가사에서 잦아질 듯 잠기다가 다시 되일으켜 세우는 그 물 흐름과도 같은 한마당의 소리에는 그만큼 굽이굽이 맺히고 풀리는 대목이 많다. 마치 삶의 기폭과 엉켜 이쪽의 가슴을 일렁이게 하다가 쓰다듬어주다가 하면서 사람 사는 동네의 멋과 아픔을 구석구석 짚어주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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