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용택 시인의 고향 사람들은 다슬기국을 초여름부터 시작하여 여름 내내 먹는다. 이 다슬기국만 있으면 아무런 반찬 없이 여름날 보리밥 몇 그릇을 뚝딱 해치운다는 것이다. 여름내 다슬기국에 보리밥을 말아먹다가, 가을추수 뒤 햅쌀밥과 먹으면 더욱 감칠맛이 난다고 한다. 더구나 가을다슬기는 겨울을 나려고 살이 통통하게 올라 맛이 제일 좋다.
교실 가운데 마룻바닥에서 쿵쾅거리고 뛰놀던 아이들을 김용택 선생님이 앞으로 불러 모은다. 미운 7살, 8살이라고 했던가. 아이들은 잘 모이지도 않고 모인 뒤에도 계속해서 재잘거린다. 조용히 하라고 김용택 선생님이 고함을 질러도 악동들은 좀처럼 그치지 않는다. .
교실 뒷벽에는 아이들이 그린 그림과 동시가 붙어있는데, 그 중에 ‘다슬기’라는 시가 있었다.
동시에 나올 만큼 다슬기는 섬진강 최상류인 이곳 임실군 덕치면 사람들이 가장 즐겨 먹는 음식이다. 물이 맑은 섬진강 상류에서는 바위틈에 붙어있는 다슬기를 손쉽게 잡을 수 있다. 다슬기는 민물고둥으로 알려져 있는데, 충청도 지방에서는 올갱이라고도 한다. 소라같이 생겼지만 크기가 작아서 그 살을 먹기보다는 국물을 많이 이용한다. 다슬기는 맛도 일품이지만 영양도 무시할 수 없다. 다슬기 국물은 푸른빛을 띠는데 이는 혈액 속의 헤모글로빈을 만드는 구리 성분이 많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우리 조상들은 다슬기가 간기능을 회복하고 황달기를 없애며 이뇨작용을 촉진한다고 믿었다.
몸 속의 독소를 빼내고 부종을 내리며 눈을 밝게 한다는 의서의 기록도 있다. 다슬기는 김시인의 고향 근방 마을 60여 리 물길에서 잡힌 것이 가장 맛있다고 한다.
“오늘 오후에는 선생님 시골집에 가서 다슬기수제비탕을 끓여먹자”
떠들던 아이들이 조용해졌다. 김용택 시인의 시골집은 마암분교에서 자동차로 15분 거리. 그가 태어나고 자라고 지금까지 시를 쓰며 살고있는 진메(긴 산) 마을에 노모가 홀로 계신다. 아늑한 동구로 들어서면 김용택 시인이 20년 전에 심었다는 든든한 느티나무가 동네 앞을 지키고, 섬진강이 흐르고, 강 뒤에는 나지막한 산이 버티고 있다. 강 건너 산기슭에는 새하얀 억새꽃이 물결치고 빨갛게 익은 감나무가 사람들을 반긴다.
섬진강은 상류라서 그런지 바지를 걷어올리고 지나갈 수 있는 개울같았다. 봄이 되면 이 편안한 강물에 건너 산에 핀 산벚꽃과 산복숭아꽃이 어린다. 경치 중에서 최고가 직접 보는 것보다 물에 비친 그림자 경치라고 했다. 해가 지고 달이 뜨면, 교교한 달빛에 산그림자가 내리고 강물이 더욱 빛난다. 달이 지고 새벽이 오면 물안개가 피어오른다. 겨울날 이 강물은 경운기가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꽁꽁 얼고, 그 위에 흰눈이 내린다니, 이 모든 광경을 고향집 마루에 앉아서 감상하는 김용택 시인은 얼마나 행복할까?
섬진강이 없었다면 그의 시는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평생동안 이 강을 떠나지 않았다. 고향집에서 덕치초등학교까지 난 강길을 초등학교 6년 동안, 어른이 된 뒤에도 모교에서 교사 생활 26년을 하면서 걸어다녔다. 이 강길에서 자연을 배우고 생각을 키우고 생각을 버렸다.
섬진강 다슬기로 끓인 수제비탕을 그는 ‘이 세상에서 그와 가장 오래 살아 그를 가장 잘 알고 이해해 주는, 그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고 제일 신뢰하고 제일 사랑하는, 삶이 아름다운 그의 어머니’와 같이 만들었다. 그의 어머니 박덕선(74) 여사는 간장과 고추장으로 유명한 전북 순창 출신이다. 이 마을에서 산 하나만 넘으면 순창이다. 김용택 시인의 고향에서는 박여사의 장맛과 된장맛이 최고라고 한다. 장맛과 된장맛이 좋으니 음식맛도 훌륭할 수밖에 없다. 시골 인심이 그렇지만 그의 집도 인심이 후하다. 식사 때 집 앞을 지나는 이웃 사람이 있으면 어김없이 불러서 같이 먹는다. 박여사의 음식맛이 하도 좋아, 일부러 이 집 앞을 어슬렁거리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다.
어머니 박덕선 여사의 조리법을 옮기면 이렇다. 다슬기를 섬진강에서 잡아 껍질에 붙은 물이끼를 깨끗이 손으로 씻어낸다. 그 뒤 반나절 정도 물에 담가놓으면 다슬기가 모래 같은 불순물을 모두 토해낸다. 해감시킨 다슬기를 펄펄 끓인 물에 살짝 데쳐낸다. 데친 다슬기는 오목하게 홈이 패인 돌확(돌절구로 생각하면 됨)에 붓고, 돌로 으깬다. 데친 다슬기는 살살 비비기만 해도 살이 껍질에서 나온다. 이렇게 부순 다슬기 껍질과 살에 물을 붓고 쌀 씻듯 조리로 살살 일면 껍질 부스러기와 살을 분리할 수 있다. 살만 분리해 물을 붓고 펄펄 끓이면, 뽀얀 녹색 국물이 우러나는 다슬기국이 된다.
술꾼들은 무럭무럭 김이 나는 이 녹색국물의 냄새만 맡아도, 숙취를 없애는 데 최고라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다. 국물이 나오면 밀가루 반죽을 하나씩 뜯어 넣어 푹 익히고 호박과 푸른고추, 붉은고추를 채썰고 조선간장으로 간을 한 뒤, 수제비가 끓을 때 넣고 잠시 후 불을 끄면 된다. 이 다슬기수제비탕에 들어간 양념은 조선간장 단 한 가지뿐이다. 호박과 고추를 채썰어 놓고 여기에 간장을 슬슬 뿌려 간을 한 것이다. 가장 단순한 양념인데 그 맛이 어찌나 일품인지, 먹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김용택 시인의 고향 사람들은 다슬기국을 초여름부터 시작하여 여름 내내 먹는다. 이 다슬기국만 있으면 아무런 반찬 없이 여름날 보리밥 몇 그릇을 뚝딱 해치운다는 것이다. 여름내 다슬기국에 보리밥을 말아먹다가, 가을추수 뒤 햅쌀밥과 먹으면 더욱 감칠맛이 난다고 한다. 더구나 가을다슬기는 겨울을 나려고 살이 통통하게 올라 맛이 좋다.
완성된 다슬기수제비탕을 먹은 아이들이 “선생님 베리 굿”하고 엄지손가락을 치켜든다. 음식을 만들 동안 강가에서 놀다온 이 녀석들의 양말이 흙투성이다. 선생님댁 돗자리를 더럽히지 않으려고 발바닥을 위로 한 채 꿇어앉은 아이들의 마음씨가 갸륵했다.
다슬기수제비탕은 느린 음식이다. 재료를 강에서 잡아서 씻고, 물에 담가 해감시키고, 끓는 물에 데치고, 데쳐서 돌확에 껍질을 부순 뒤, 조리로 일어 껍질을 분리한 뒤 알멩이살만 골라내야 재료인 다슬기를 확보할 수 있다. 여간한 정성과 시간을 들이지 않고서는 먹을 수 없다. 자연을 잃어버린 도시인은 이 느림의 멋스러움을 잘 모른다. 김용택 시인은 ‘경쟁력’이라는 단어가 가장 싫다고 한다. 그는 현재 내년 봄에 낼 시집을 다듬고 있다. 이 시집도 어김없이 자연 이야기를 담고 있다. 시로 쓸 수 없는 자연 이야기는 산문으로 쓰고 있다. 현재 쓰고 있는 이야기책 ‘논 이야기’와 ‘소 이야기’가 그것이다. 이 이야기책은 도시 어린이를 위한 것으로 논이 1년 동안 사람들과 어울려 어떤 일을 하는지, 소가 사람과 더불어 어떻게 살아가는지 그려낸다.
다슬기수제비탕을 먹는 진메마을 사람들의 삶은 얼마나 재미있고, 아름다운가. 그들은 개방적이고 열려있고 한가하고 느리다. 자연을 상대하기 때문에 삶 자체가 느리고, 음식도 느리다. 감나무를 심으면 몇 십년을 기다려야 열매를 먹을 수 있듯 느린 것은 대자연의 이치다. 김용택 시인이 어찌나 부럽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