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11월호

한국 중·고생의 중국유학 메카 ‘北京55中’

  • 신영수 < 베이징저널 발행인 >

    입력2005-03-11 13: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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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 특수(特需)가 중국 조기 유학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외교관이나 주재원 부모를 따라 중국에 온 학생들은 물론 중국어를 배우거나 중국 인맥을 쌓기 위해 온 ‘나홀로 유학생’도 늘고 있다. 이들 중에는 국내 명문대학이나 베이징대, 칭화대 등 중국 명문대학에 진학하는 사례도 있지만, 현지 적응에 실패, 이 학교 저 학교를 전전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죽(竹)의 장막’으로 일컬어지던 중국이 우리나라와 수교한 지도 어느덧 10주년을 바라보는 시점에서 가히 상전벽해(桑田碧海)라 할 만큼 여러 방면에서 두 나라의 교류가 확대되고 있다. 특히 한국은 세계 최대의 시장으로 부상하고 있는 중국과 지리적으로 가까운데다, 역사·문화적으로도 뿌리를 같이 하는 측면이 많다는 점에서 ‘중국 특수(特需)’에 한껏 부풀어 있는 듯하다.

    이런 사정 때문에 과거에는 외교관과 상사 주재원들이 중국 거주 한국인 사회의 주류를 형성했지만, 요즘에는 다양한 사업을 영위하는 자영업자들이 눈에 띄게 증가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렇다보니 중국에서 공부하는 한국 학생의 수도 늘어나 중국에서 유학중인 대학생만도 전국적으로 1만5000여 명을 헤아린다.

    또한 부모의 직장이나 사업 때문에 중국에 왔거나 조기 유학을 온 초·중·고교생도 5000여 명에 이른다. 한국의 초·중·고교생은 베이징에 800여 명, 상하이에 800여 명이 있는 것으로 추산되는데, 앞으로도 많은 한국인이 중국으로 몰려들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한국 학생의 수는 더욱 빠른 증가세를 보일 전망이다.

    중국에 진출할 계획을 가진 사람들은 자녀들이 중국에서 어떤 교육을 받을 수 있을 것인지 궁금해 한다. 뿐만 아니라 한국의 상당수 학부모는 자녀들만이라도 중국에 유학보낼 생각을 갖고 있다고 들었다. 이들에게 참고가 됐으면 하는 바람에서 중국에 온 한국 중·고생들이 어떻게 학교생활을 하고 있는지 베이징을 중심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베이징에서는 55중학을 비롯한 5개 학교가 공식적으로 외국인 학생을 받아들이고 있다. 또한 19중학 등 몇몇 학교는 비공식적이지만 교장의 재량으로 외국인 학생의 입학을 허용하고 있으나 그 수는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중국이라는 나라의 특성상 어떤 ‘끈’을 잡고 접근하냐에 따라 사정은 달라질 수 있다. 외국 학생의 경우 가령 기부금을 내고 입학할 수 있는 방법도 있다. 기부금은 수업료와는 별도로 보통 2만∼3만위안(한화 약 300만∼450만원) 정도를 내는데, 입학금 성격의 기부금은 딱 부러지게 정해진 기준이 있는 게 아니므로 교장과 어떻게 담판을 짓느냐에 따라 액수에 차이가 있다.

    공립 55中, 사립 世靑中

    최근에는 공식적으로, 혹은 비공식적으로 한국 학생을 받아들이는 학교가 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중국 학교들이 외국 학생에 대한 별다른 고려 없이 중국 학생과 똑같이 수업을 진행한다. 따라서 학교 공부와는 별도로 중국어와 기타 과목의 개인지도를 받는다 해도 최소한 2∼3년 정도 중국에서 생활한 학생이 아니면 수업을 따라가기가 어렵다.

    이 때문에 많은 학생들이 영어도 배울 겸 해서 비싼 수업료를 내고 각종 국제학교를 선택하기도 한다. 베이징에는 ISB(전화·6437-6688, 한국에서 전화할 경우 8610 + 전화번호), BISS(6443-3151)·BIS(8583-3731) 등의 국제학교가 있는데, 학비는 보증금 500∼1만5000달러(나중에 되돌려 받을 수 있다)에 1년 수업료가 1만6000∼1만9000달러 수준이다.

    그러나 이 가운데 1998년 9월 설립된 베이징한국국제학교는 다른 국제학교에 비해 학비가 비교적 저렴할 뿐 아니라 정서적으로 예민한 청소년기에 자칫 흔들리기 쉬운 민족의 정체성을 심어줄 수 있다는 점에서 그 효용성을 인정받고 있다. 학비는 입학금 1200달러에 수업료는 학급에 따라 매월 150∼250달러 정도다.

    중국의 외국인 학교 중에서 대표적인 곳은 55중학. 가장 오랜 역사를 갖고 있고, 교과과정 또한 합리적이며, 중국의 명문대학인 베이징대학, 칭화(淸華)대학의 외국 학생 합격률이 가장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54년에 설립돼 47년의 전통을 지닌 55중학은 이미 26년 전부터 외국 학생을 받았다. 한국 학생들은 1991년부터 입학했다.

    55중학은 중국의 학제가 그렇듯이 초중(한국의 중학교)과 고중(한국의 고등학교)이 합쳐진 것으로 아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는 잘못이다. 55중학은 다른 중국 학교와는 달리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나누지 않고 1학년(중1)부터 6학년(고3)까지 잇따라 진행되는 교육과정을 갖고 있다. 정확하게는 1학년부터 4학년(중1∼고1) 과정을 ‘55중학’으로, 나머지 5∼6학년(고2∼고3) 과정은 ‘스칭(世靑)중학’이라고 지칭했다.

    그런데 지난해 4월부터 55중학과 스칭중학이 분리돼 55중학은 중국의 일반 학교와 마찬가지로 중학교 과정과 고등학교 과정을 함께 갖게 된 반면 스칭중학에는 고등학교 3년 과정만 남게 됐다.

    이에 따라 55중학은 공립학교로, 스칭중학은 사립학교로 운영주체가 바뀌었을 뿐 아니라 유학생을 받는 기준도 달라졌다. 55중학은 과거엔 2만위안의 입학금을 받았지만 공립학교가 되면서 입학금이 없어졌다.

    55중학은 부모가 외교관이나 상사 주재원 등의 체재자격인 Z비자(1년 기한)를 갖고 베이징에 거주하는 학생에 한해 입학이 허용된다. 이전에는 관광비자(L비자)나 방문비자(F비자)를 막론하고 외국인 학생에게는 학교에서 유학생 비자인 X비자를 받게 해줬으나 올해부터는 반드시 Z비자 소지자만을 입학대상으로 하고 있다.

    3분의 1이 중도 탈락

    55중학의 특이한 점은 고교 과정에 영어로만 강의하는 영문교학부를 운영한다는 것. 학비가 한 학기에 2만5000위안으로 비싸지만(중문 일반과정은 한 학기에 1만6000위안), 많은 한국 학생들이 영어를 배우려고 이 학교에 다닌다. 영어로 수업하기 때문에 서양 학생들이 많이 재학하고 있어 같은 55중학에서도 이 과정의 학습 분위기는 다르다. 졸업 후에는 미국으로 유학가는 경우가 많은데, 이곳에 재학중인 한국 학생들은 주로 외교관이나 주재원 자녀들로서 장학생으로 선발돼 가는 경우가 흔하다고 한다.

    고등학교 과정인 스칭중학은 55중학과 달리 일정 기준만 충족되면 소유 비자의 종류와 관계없이 학교에서 일괄적으로 X비자를 받을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준다. 때문에 한국에서 유학올 경우 어떤 유학원을 선택할 것인지를 고민하지 않아도 되고, 학생모집 담당자가 조선족 교포라서 우리말로 상담할 수 있다. 무엇보다 다른 중·고교와는 달리 언어코스를 겸한 대학입시 준비교육을 무난히 받을 수 있기 때문에 한국 학생들에게 인기가 높다.

    이를 반영하듯 스칭중학은 중국 학생 20여 명을 제외한 전체 외국 학생 250명 가운데 한국 학생이 180∼200여 명에 달한다. 대부분의 한국 학생들은 공부도 열심히 하고 학교생활도 모범적이지만, 최근 들어서는 분위기가 다소 흐트러지고 학업 성취도도 낮아져 학교 관계자와 주변의 시선이 곱지 않은 게 사실이다. 입학생 중 학교를 졸업하는 학생이 3분의 2 정도밖에 되지 않는데, 중도 탈락하는 학생 가운데 한국 학생이 절반을 넘는다고 한다.

    이들이 퇴학을 당하는 가장 큰 이유는 흡연, 음주 또는 싸움 등이라는 게 학교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들은 대부분 부모나 보호자가 없는 ‘나홀로 유학생’이거나 부모가 있어도 자녀에게 주의를 소홀히 하는 경우라고 한다. 이렇게 학교에서 쫓겨난 아이들은 한국으로 돌아갈 형편도 못돼 이 학교, 저 학교로 옮겨다니며 혼란을 겪기 일쑤다. 따라서 아직 판단력이 부족하고 주관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은 아이들은 갖가지 유혹에 무방비 상태나 다름없다는 점을 알고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스칭중학은 기숙사를 운영하고 있지만 의무적으로 입주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현재 200명 가까운 한국 학생 중 17명만이 기숙사에서 생활하고 있다. 나머지 학생 가운데는 중국에 나와 있는 부모와 함께 사는 경우도 있지만, 부모는 한국에 있고 자녀만 베이징에서 아파트를 빌려 하숙하거나 자취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들의 부모는 대개 알음알음으로 중국에 있는 사람에게 후견인 노릇을 맡기고 있으나 학생들을 제대로 관리하기란 그리 쉽지 않다.

    부모의 보살핌도 없이 외국에서 또래집단이 형성될 경우 득보다는 실이 더 많기 쉽다. 가능하면 밖으로 나돌고 싶고 공부라는 굴레에서 벗어나고픈 이들에겐 제어장치가 필요하지만, 자기들끼리만 남겨진 상황에 자제력과 인내력으로 유혹을 뿌리치기 바라는 것은 무리인 듯하다.

    한국인들이 가장 많이 거주하고 스칭중학과도 비교적 가까운 베이징의 왕징(望京) 아파트단지에서는 한국 학생들끼리 하숙을 하면서 주위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일이 종종 벌어진다. 남녀 학생들이 한집에 모여 밤늦게까지 고성방가를 하다 이웃 주민들이 경비실에 항의하는 사례도 가끔 있다. 대부분의 한국 학생들이 중국에 유학온 목적을 잘 인식하고 열심히 공부하고 있지만, 부모의 관리가 따르지 않으면 처음부터 엉뚱한 길로 접어들어 귀중한 청소년 시절을 방황과 갈등으로 점철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베이징한국국제학교 김주달 교장은 “가장 중요한 것은 학생들이 정체성과 문화 적응력을 확보하는 일”이라며 “리딩 랭귀지(leading language)로서 탄탄한 모국어 실력을 갖춰야 그 토대 위에서 외국어나 다른 공부가 열매를 맺을 수 있다”고 충고했다. 중국 대학에 진학한 후 전공과목 공부에서 뒤지지 않으려면 단지 중국말만 좀 할줄 안다고 되는 게 아니라는 것. 그래서 비단 한국으로 돌아갈 경우를 상정하지 않더라도 우리말을 비롯한 한국의 교과과정과 영어, 중국어를 적절히 조화시켜 가르치는 베이징한국국제학교를 적극 권하고 싶다는 게 김교장의 충고다.

    이런 관점의 연장선 위에서 중국 조기 유학에 대한 기대와 우려는 팽팽하게 엇갈린다. 조기 유학에 찬성하는 시각에는 지구 인구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13억명의 시장을 확보하고 최근 수년간 연평균 7%를 웃도는 경제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는 중국이 10∼20년 후엔 세계 최대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하리라는 예측이 밑바닥에 깔려 있다.

    폭발 직전의 활화산마냥 거대한 잠재력을 지닌 중국에서 중국어 능력을 습득하고 중국의 문화와 풍습을 익히는 한편, 그 과정에서 중국 사람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인간관계, 즉 ‘시(關係)’까지 만들 수 있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다는 것이다. 청소년 시절에 함께 공부한 중국인 동창생들이 장성해서 중국의 요소요소에 포진한다면 훗날 사회에 진출해서 무슨 일을 하든 더없이 소중한 자산으로 활용될 것이라는 얘기다.

    또한 외국어 공부는 빨리 시작하면 할 수록 학습능률이 높다는 것도 조기 유학을 찬성하는 이유 중의 하나다. 더욱이 한국은 여러가지 사정으로 향후 세계 어느 나라보다 중국과의 관계를 돈독히 할 필요성이 커질 것이므로 조기 유학 대상국으로서 미국이나 캐나다보다 더 실속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따르게 마련. 중국에 조기 유학을 보낸다고 해서 장밋빛 탄탄대로가 펼쳐지는 것은 아니다. 우선 최소한의 적응기간이라 할 2년 정도는 학생 자신은 물론 학부모도 슬기롭게 대처해야 한다. 말이 통하지 않기 때문에 학습능력이 떨어지고 이것이 심리적 위축을 초래하기 쉬운데, 이런 현상이 심해지면 자포자기하거나 주위의 불건전한 유혹에 빠져들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한번 나락에 빠지면 한국에 돌아간다 해도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국적 없는 미아가 될 소지가 많다. 설사 중국어를 웬만큼 익힌다 해도 다른 요인, 이를테면 가치관 형성이나 인생관 정립 등을 위한 문화적 소양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으면 빈 껍데기에 불과하다. 공부를 하거나 인생을 살아가는데도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게 되는 이른바 제로섬 게임이 적용되는 이상 균형잡힌 교육을 위한 배려가 절실하다.

    중국어를 익히는 데 전념하는 동안 청소년 시기에 반드시 쌓아야 할 자질이 결여될 수 있다는 점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외국어 실력은 필요조건은 될지언정 충분조건은 될 수 없으므로 평생교육 관점에서 신중한 접근이 요구된다. 따라서 ‘중국어 하나만 건져도 성공’이라는 단순한 논리로 중국 조기 유학을 마음먹는 것은 금물이다.

    “남자가 아이 낳게 하는 일 빼고는 안 되는 일이 없다”는 곳이 중국이다. 중국의 학교도 이곳은 외국 학생을 받고 저곳은 받지 않는다는 식의 명확한 구분이 없다. 때문에 한국 학생이 중국에서 공부할 수 있는 기회는 얼마든지 열려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다만 공부에는 왕도(王道)나 지름길이 없기 때문에 부모의 직장이나 사업 때문에 중국에 오게 됐든, 혼자서 조기 유학을 왔든 부모의 관심과 배려가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55중학 사상 최고 성적 졸업

    베이징에서 ‘국제사교구락부’ 설립을 준비하고 있는 사업가 K씨의 딸은 베이징 조기 유학의 ‘전설’로 기록되다시피 한 경우다. K양은 한국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중국생활을 시작했지만 중국어와 일반 과목에서 모두 탁월한 성적을 거뒀다. K양은 55중학을 사상 최고의 성적으로 수석 졸업하고 칭화대학에 입학했다가 올해 서울대 의예과에 합격했다.

    K양의 성공 뒤엔 부모의 독특한 교육방법이 있었다. 어머니가 학교수업과는 별도로 시간표를 짜고 가정교사를 둬 귀가 후에는 이 시간표에 따라 우리말과 중국어, 수학 등을 집중적으로 공부시켰다. 그 결과 K양은 우리말을 한국의 중고생에 전혀 뒤지지 않는 수준으로 구사하면서 중국어까지 HSK(漢語水平考試·중국어를 모국어로 하지 않는 사람의 중국어 능력을 평가하기 위해 중국 정부가 마련한 표준화 고시) 11급을 따내는 놀라운 성과를 거뒀다. 11급은 외국인으로서는 더 이상 오를 곳이 없는 최고급 수준이다.

    J군은 아버지가 공무원으로 베이징에서 근무할 때 55중학에 다니다가 중국어 실력을 높이기 위해 베이징대학 부속중학으로 학교를 옮겼다. 베이징대학 부속중학은 중국어는 물론, 일반 학과목 성적도 아주 뛰어난 학생만 받아주는 학교다.

    J군은 베이징에 집이 있으면서도 공부할 시간을 아끼기 위해 평일엔 학교 기숙사에서 지내고 주말에만 집에 돌아올 정도로 열심히 공부했다. 그러다가 아버지가 귀국하게 되자 서울로 돌아가 한영외국어고등학교에 편입했고, 그후 연세대가 주최한 중국어 논술 경시대회에서 금상을 받아 장학금을 받고 연세대에 진학했다.

    부모 없이 자녀만 중국으로 유학 보낼 경우에는 앞서 언급한 대로 여러가지 어려움 때문에 중도하차할 우려가 있으므로 믿을 만한 한국인의 집에 하숙을 시키고 생활관리를 부탁하는 것이 현명하다. A군은 교회의 집사 가정에서 하숙을 했는데, 집사 가족이 A군에게 귀가시간을 엄격하게 지키도록 하고 과외수업도 알선해 주는 등 가족처럼 챙겨줬다. 본인도 열심히 공부해 55중학을 졸업한 뒤 베이징대 경제학과에 입학했다.

    그러나 암울한 사례들도 적지 않다.

    베이징의 한 중학에 재학중인 A양은 아버지가 서울 강남에서 큰 사업을 하는 부유층 자녀다. A양은 지난 봄에 어머니와 함께 중국에 왔다. 딸을 일찌감치 중국에 보내 중국어를 배우게 하면 굳이 한국에서 힘들게 입시공부를 하지 않아도 대학에 진학할 수 있다는 기대감에서 A양의 부모는 조기 유학을 결심했다. A양의 어머니는 한국인이 많이 사는 지역에 아파트를 얻어 딸을 기거하게 해놓고 한 달에 한 번 정도 베이징을 다녀간다.

    A양의 아파트엔 조선족 아줌마가 와서 먹을 것도 만들어 주고 청소도 해준다. 하지만 조선족 아줌마가 모르는 사실이 있다. 아니, 짐작은 하지만 직접 보지 못했기 때문에 뭐라고 말을 못한다고 할까.

    매일 저녁 A양의 아파트는 학교 친구와 동네 친구 등 또래의 한국 남녀 학생들로 북적인다. A양은 매일밤 그들과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며 파티를 벌이거나 친구들에게 놀이방을 제공해주고 다음날 아침 피곤한 몸을 이끌고 가기 싫은 학교에 억지로 나간다. 그리고는 다시 저녁만 되면 A양의 아파트는 한국 탈선 학생들의 소굴로 변한다.

    A양의 이웃에 한국인 가정이 있는데, 어느날 그 집 남편이 너무 시끄러워서 참다 못한 나머지 문을 두드렸더니 요란하던 노랫소리가 갑자기 뚝 그치더라고 한다. 그리고는 마치 아무도 없는 것처럼 쥐 죽은 듯 적막이 흘러 다시 문을 두드렸더니 한참 뒤 문을 열고 나온 A양의 뒤엔 학생들이 신고 온 신발이 하나도 없이 치워져 있었다고 한다.

    A양의 어머니가 얼마전 베이징에 왔을 때 모처럼 1주일 이상 묵다 간 일이 있었다. 놀러갈 곳이 졸지에 없어진 A양의 친구들은 그 새를 참지 못하고 어머니를 빨리 돌아가게 하라고 A양을 들쑤셔댔다. A양은 어머니에게 “엄마가 옆에 있으니 집중이 안돼 공부를 못하겠다. 평소처럼 혼자 있어야 공부가 잘 된다”며 빨리 귀국할 것을 종용했고, 어머니는 딸의 ‘뜨거운 향학열’에 감동돼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기면서 그저 “공부 잘해라”며 눈물을 글썽였다.

    ‘현지 적응’이 입시 성공을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학교생활을 안정적으로 할 수 있으려면 가정생활의 안정이 필수다. 감수성이 예민한 초·중·고교 시절의 외국생활에서는 정서적 안정이 결여될 우려가 있다. 따라서 자녀의 학습의욕을 북돋우고 향수나 언어장벽 등을 극복하려면 부모가 함께 곁에서 지켜보는 게 중요하다.

    돈 버리고 시간 버리고 아이 버린다

    이런 사례 때문에 베이징에 살고 있는 교민이나 서울에서 나온 상사 주재원들 사이에는 “절대로 아이 혼자 베이징에 보내지 마라. 돈 버리고 시간 버리고 아이 버린다”는 말이 나돈다. 학생들만 이곳에 온 경우 수업을 따라가지 못하면 스트레스가 쌓여 한번 두번 수업을 빼먹다가 아예 학교에 나오지 않는 경우가 많다. 공부시간에 담배를 피우려고 교실 밖으로 나가거나 당구를 치려고 아예 학교를 나가는 것은 예사고, 한국인들이 많이 모여 노는 우따우커우(五道口) 같은 곳을 배회하기도 한다.

    이런 학생들은 대개 퇴학당하고 베이징의 다른 중학(정식 외국인 교육기관이 아니지만 돈만 내면 받아주는 학교도 있다)으로 이름만 옮겨놓고 똑같은 생활을 반복한다. 얼마전에도 55중학의 한국 여학생 세 명이 학교를 계속 빼먹고 여러 차례 주의를 받다 결국 퇴학당해 시내의 다른 중학교로 옮겨갔다. 그들이 옮겨간 학교엔 55중학에서 퇴학당하고 온 학생들이 10명이나 된다고 한다.

    적잖은 55중학 퇴학생들이 특정 학교로 재입학하는 사례가 늘자 이 학교 학생들이 불만을 터뜨리기도 했다. 그러자 학교측에서도 문제 학생을 무작정 받아주는 것은 곤란하다는 생각에서 최근에는 편입시험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베이징 스카이 특례입시학원의 정배식 원장은 중국 유학을 계획하는 한국 중고생들에게 다음과 같이 조언한다.

    ▲필답고사 준비는 중국에서부터 하라

    중국에서 학교성적이 우수한 학생이 한국의 대학입시에서도 좋은 성과를 올리고 있으므로 중국에서의 학교 수업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 특히 중국어를 확실히 해두는 것이 입시 준비에 큰 도움이 된다. 지난해에 이 학원 출신으로 서울대에 입학한 학생 4명 중 3명이 HSK 최고급수인 11급을 딴 학생들이었다.

    ▲서류는 미리미리 준비하라

    특례입학에 필요한 서류는 생각보다 많다. 부모의 근무지가 바뀌게 되면 떠나기 전에 미리 준비해둬야 한다. 특히 성적표는 필수다.

    ▲외국어 특기생 수시모집에 관심을 가져라

    요즘은 각 대학별로 수시모집을 확대하는 추세이고 외국어 특기생을 뽑는 대학들도 상당수 있다. 특례입학과는 별도 전형으로 뽑고 있으므로 각 대학 홈페이지를 활용하면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구술·면접시험 준비를 철저히 하라

    인터넷 등을 통해 각 대학의 전형방법을 알아보고 나름대로 정리해보면 유용하다.

    ▲되도록이면 부모와 함께 오라

    ‘현지 적응’이 입시 성공을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학교생활을 안정적으로 할 수 있으려면 가정생활의 안정이 필수다. 감수성이 예민한 초·중·고교 시절의 외국생활에서는 정서적 안정이 결여될 우려가 있다. 따라서 자녀의 학습의욕을 북돋우고 향수나 언어장벽 등을 극복하려면 부모가 함께 곁에서 지켜보는 게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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