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도로 주유원의 일기 / 황호민 (충남 논산시)
우수작 2편 (고료 각 250만원)
열다섯 살 소년가장의 꿈 / 정영기 (인천시 남동구)
아파트 파수꾼의 밤과 낮 / 강춘달 (필명·대구시 수성구)
* 당선작은 신동아 2001년 11월호부터 매달 1편씩 게재됩니다.
심사경위
올해로 37회를 맞은 신동아 논픽션 공모에서 황호민씨의 ‘고속도로 주유원의 일기’가 최우수작으로 뽑혔다. 응모작은 모두 52편. 두 달여에 걸친 예심 결과 13편의 작품이 본심에 올랐다. 본심 심사위원 3명은 각 5편씩 상호 교환해 읽는 방식으로 전 작품을 검토했다.
10월5일 동아일보 충정로 사옥 신동아 회의실에서 열린 본심에서 심사위원들은 최우수작 1편과 우수작 2편을 선정했다. 최우수작 선정에는 그다지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고속도로 주유원의 애환과 갖가지 일화를 실감나게 그린 점, 그리고 고발성이 강하면서도 세상에 대한 따뜻한 시각을 잃지 않아 잔잔한 감동을 준다는 점에 의견이 일치했다.
반면 우수작 2편 선정엔 적잖은 진통이 있었다. 6편의 작품이 경합을 벌였는데, 막판에 남은 것은 ‘열다섯 살 소년가장의 꿈’ ‘아파트 파수꾼의 밤과 낮’ ‘닥터 로제타 홀의 조선 사랑’ 3편이었다. 쉽게 합의에 이르지 못한 심사위원들은 장시간 토론 끝에 “아까운 작품”이라는 단서를 붙인 채 ‘닥터 로제타 홀의 조선 사랑’을 탈락시켰다.
심사위원본심: 김국태(소설가) 유시춘(소설가) 전진우(동아일보 논설위원)
예심: 이상락(소설가)
예심통과 작품
아파트 파수꾼의 밤과 낮(강춘달) 해인을 꿈꾸며(공경호) 억울한 형벌(강원식) 아내는 이렇게 암으로 죽어갔다(최세희) “아! 8·15”-죽음의 쇠사슬을 풀고(손점룡) 열다섯 살 소년가장의 꿈(정영기) 야맹증(이광민) 노인과 바다(정인찬) 로렐라이에서의 마지막 절규(전성준) 고속도로 주유원의 일기(황호민) 아버지의 축제(이정미) K호와 SOS(김태조) 닥터 로제타 홀의 조선 사랑(김흥권)
심사평
▲ 김국태 - 고발문학으로서 설자리 확보
‘로렐라이에서의 마지막 절규’ ‘열다섯 살 소년가장의 꿈’ ‘닥터 로제타 홀의 조선 사랑’ ‘아버지의 축제’ ‘노인과 바다’ ‘아! 8·15’ 등은 낱말 선택과 문장 구사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 개념이 분명한 낱말과 맞춤법에 맞으면서 국적 있는 문장이어야 한다. 내용을 담는 그릇으로서 문장이 부실하다면 의미가 없지 않겠는가.
전문지식 동원이 작품 진행 속도를 방해하여 감동을 줄인 응모작은 ‘해인(행복 속으로)’ ‘K호와 SOS’ ‘아내는 암으로 이렇게 죽어갔다’ 등이다. ‘열다섯 살 소년가장의 꿈’ ‘아! 8·15’ 두 작품은 소재가 너무 상식적이고 상투적이다. 정보가 보편화한 현대사회에서는 소재에 대한 독특한 해석이 작품의 관심사항일 것이다. ‘억울한 형벌’에서 교도소 풍경 따위는 큰 의미가 없고, ‘딸 인물’과 작자 사이 인간관계를 숨긴 점이 결정적 결함이다.
‘열다섯 살 소년가장의 꿈’; 감정 절제로 객관성을 유지한 점이 평가할 만한데, 그 극단의 객관성 유지로 실화가 아니라 허구일지 모른다는 의혹을 불러일으킨다. ‘아파트 파수꾼의 밤과 낮’; 시점 혼란, 어색한 어순, 불필요한 한자 넣기 등 결점은 있으나 읽히는 작품으로서, 수기라기보다 소설에 가까운 점이 단점에 해당한다. 감정 절제로 객관적 서술을 확보한 점이 평가할 만하다. 비유라든가 속담 사용에 무리가 없는 점도 장점이고, 소재에 대해 화자가 느끼는 소회를 적절히 구사했다.
‘고속도로 주유원의 일기’; 일용직 근로자에 대한 부당 대우와 비리, 운전자 일반이 일구집는 갖은 작태 등을 속도 있고 해학적이고 풍부한 상식으로 꾸려내 감동을 준다. 부정적 시선으로 일관하기 십상일 내용을 객관적 시각으로 담아냄으로써 체험수기가 고발문학, 증언문학으로서 설자리를 확보하고 있다. 시제가 과거 현재로 이유 없이 넘나드는 것은 오늘날 우리 작품 일반이 저지르는 폐해이고, 이 작품이 뛰어넘지 못한 흠이기도 하다.
▲ 유시춘 - 따뜻한 시선과 숨결
소설은 ‘작가의 눈’으로 보는 현실과 인간이다. 작가는 삼라만상과 인간백태 가운데서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을 선택해서 본다. 어떤이는 분단의 고통과 같이 크고 진지한 것을 보는가 하면 혹자는 인간내면의 작고 섬세한 것을 들여다본다. 이 과정에 작가는 필연적으로 카메라의 앵글처럼 한 부분을 선택하고 과장하기 마련이다. 때문에 소설은 작가의 주관과 심미안에 의해 디자인된 현실이다. 작가에 의해 변형된 현실이 큰 감동을 주는 것은 그것이 보편성을 획득하는 경우다.
그러나 때로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기술한 논픽션이 소설 못지않은 깊은 울림을 주는 것은 그 내용이 갖는 진실성 때문이다. 현실은 더러 상상력이 극대화된 그 어떤 소설보다 더 충격적이고 극적인 경우가 많다.
본선에 오른 작품 중에 원양어선 조업에 종사하는 이의 글이 세 편이었다. ‘해인을 꿈꾸며’와 ‘K호와 SOS’, 그리고 ‘노인과 바다’는 성실한 기록성을 높이 평가할 만했으나 전문적인 기기와 기술에 대한 설명이 너무 장황해서 흥미와 감동을 주기에는 미흡했다.
이에 비해 당선작 세 편은 소재가 우리 일상 속의 흔하디 흔한 주유소와 아파트이고, 시제의 불일치와 시점의 혼란 등 서술상의 미숙함에도 불구하고 시선이 따뜻하고 글쓴이의 숨결이 느껴져서 좋았다. 논픽션 역시 감동은 현실을 보는 ‘눈’과 ‘태도’에서 나오는 것이다.
▲ 전진우 - 삶의 관조와 사람살이의 깊이
심사평을 할 때마다 늘 하는 얘기지만 논픽션이 픽션이 아니라고 해서 그저 체험기를 일기처럼 옮기는 것은 아니다. 꾸미지 않은 일기라면 초등학생 일기보다 나은 것이 있을까. 그러나 어린이 일기가 논픽션이 될 수 없는 것은 그 속에 삶의 관조랄까, 쉽게 말해 사람살이의 깊이가 담겨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황호민의 ‘고속도로 주유원의 일기’가 돋보인다. 문장이 매끄러운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세태를 보는 필자의 눈이 담담하고 따뜻하다. 여기서 ‘따뜻함’이란 ‘미화’와는 전혀 다른 의미다. 세상살이를 보는 깊은 눈이다. 최세희의 ‘아내는 이렇게 죽어갔다’는 72세 노인의 극진한 아내 사랑을 그리고 있으나 지나치게 세세한 전문적 의학용어를 사용해 오히려 감동을 떨어뜨리고 있다.
김홍권의 ‘닥터 로제타 홀의 조선 사랑’은 소재 자체에 교육적인 면이 있고 방대한 자료 발굴과 함께 필자가 발로 뛴 노력이 어우러진 노작(勞作)이라 하겠으나 번역문 투의 문장 등 자료를 채 녹여내지 못한 아쉬움이 크다고 하겠다. 강원식의 ‘억울한 형벌’은 장황한 옥생활 소개보다는 자살한 아내와 가족간 갈등이 더욱 설득력 있게 기술되었어야 한다고 본다. 이광민의 ‘야맹증’은 논픽션이라기보다는 한 편의 단편소설 같은 느낌이 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