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당 대선후보…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 당선가능성이 중요”
- 6·25전쟁 관련 발언… “어이없다. 왜 문제삼는지 알 수 없다”
- 민주당 갈등… “심각하게 보지 않아. 정당이란 그런 것”
- YS·JP연대… “그런 일 관심 없고, 관심 두지 않으려 해”
- 미국의 대테러전쟁… “우리 일로 생각하고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김대통령은 정치·경제·남북문제·차기 대선 등 여러 분야의 현안에 대해 차분하게 자신의 입장을 설명했다. 특히 최근 정치권의 쟁점이 되고 있는 6·25전쟁 관련 발언과 한나라당 의원들의 ‘친북정권’ 논란에 대해서는 “어이가 없다” “왜 그런 것을 문제삼는지 알 수가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국민의 실망과 비판이 이렇게 계속되어서는 야당이나 여당을 떠나 정치권 전체에 위기가 올 가능성이 있다”며 경고의 메시지를 던졌다.
평소 ‘위기’라는 표현을 잘 쓰지 않던 김대통령이 현재의 여야 대치국면을 “정치권 전체에 위기가 올 가능성이 있는 상황”이라고 표현한 것은 대단히 이례적이다.
김대통령은 민주당 차기 대권주자의 자격에 대해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생산적 복지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지식기반경제와 남북화해협력에 대한 비전과 소신이 필수적”이라고 전제한 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이듯이 당선 가능성도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인터뷰는 지난 10월11일 오후 3시30분 청와대 본관 접견실에서 있었고 편집 마감전에 보충질문의 기회도 가졌다. 인터뷰에는 민병욱 출판국장 대우 부국장, 황의봉 신동아편집장이 동석했다.
“거국내각 생각해본 적 없어”
―최근 김영삼(金泳三) 전대통령과 김종필(金鍾泌) 자민련 총재 사이의 연대 움직임이 화제입니다. 이를 두고 정계개편이 가시화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들도 하고 있습니다.
“나는 그런 문제에 관심을 두지 않고 있고 또 갖지 않으려고 합니다. 나는 1년 반 후면 물러날 사람입니다. 내가 할 일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경제를 포함해 국내정치를 잘해서 국민을 안심시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선거를 공정하게 치러, 항상 말해온 대로 다음 대통령선거가 역사상 가장 공정한 선거가 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여야관계가 요즘처럼 경색돼서는 앞으로 1년 반 남은 임기동안 대통령께서 효율적으로 일을 수행할 수 있을 지 걱정하는 사람들도 많은데요.
“그 동안 소수여당으로도 이 정권에서 참 많은 개혁을 했습니다. 인권관계 법률도 만들었고 4대 개혁도 했고요. 물론 해야 할 일을 다 못한 것도 있습니다. 어디 욕심대로 되겠습니까? 지난번 선거에서 과반수 얻으면 더 좀 하려고 했는데 국민의 지지를 얻지 못해서 안 됐으니 현실을 수용해야죠. 결국 소수 여당으로서의 입장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야당의 협력을 구할 것은 구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야당도 국민의 지지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정당한 일은 지지해주리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처럼 국민의 실망과 비판이 계속되어서는 야당이나 여당 할 것 없이 정치 전체에 위기가 올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여당과 야당이 나라문제를 놓고 겸허하게 생각하면서 서로 협력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임동원 장관 해임안 문제로 자민련과의 공조가 파기되었습니다. 내년의 지자제선거나 대선과 관련해 자민련과의 관계는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공조가 파기된 데 대해서는 매우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자민련과는 야당시절부터 공조를 이루어왔고 또 양당이 힘을 합쳐 국민의 정부를 탄생시키고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등 많은 성과를 이루어냈던 만큼 앞으로도 계속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시점에서 내년 지자제선거나 대선 공조와 관련한 구체적인 전망을 하기는 어렵습니다.”
―지난번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공정한 선거관리를 말씀하셨는데, 그 발언 이후 공정한 선거관리를 위해 거국내각 구성이라든지 대통령의 당적(黨籍)이탈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습니다.
“그 신문과의 인터뷰에서는 무슨 구체적인 얘기를 한 게 아니고 원론을 얘기한 겁니다. 세계 각국을 보더라도 공명선거를 하는 나라에서 집권자가 반드시 당적을 이탈한 것은 아니잖아요. 국민들의 공명선거에 대한 적극적인 참여와 집권자의 강한 의지, 이 둘이 맞물리고 언론계 여러분들이 감시를 잘 하면 공명선거가 되는 것 아닙니까?”
―거국내각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생각해본 적 없습니다.”
―민주당 내부문제에 대해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동교동계 해체론 등 당의 정체성이랄지 주도세력 또는 중심세력을 두고 민주당 내부 갈등이 표면화되고 있는데요.
“나는 문제가 그렇게 심각하다고 보지 않습니다. 모든 것은 당원들의 판단과 민주적 절차에 의해서 운영되는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 서로 다른 의견을 주장하는 사람도 있고 그룹도 있고…. 정당이란 그러기 마련입니다. 당의 기본철학, 다시 말해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생산적 복지 이 세 가지 기본철학을 중심으로, 우리 국가가 나아가야 할 지식기반경제와 남북간의 평화협력문제, 이런 방향에 소신을 같이하면서, 그 구체적 방법에 대해서는 토론도 하고 설득도 해가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정권 재창출을 위해 민주당이 어떤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창당 당시의 정신 그대로, 국민을 위해 더 열심히 헌신 봉사해 나간다면 국민들로부터 더 많은 지지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민주당 내에는 국가와 민족을 위해 헌신하고자 노력하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과거 민주화운동의 정통성을 갖고 있는 분, 산업화를 위해 성실히 노력했던 분, 그리고 전문적인 소양을 갖고 있는 젊고 패기 있는 분들이 함께 하고 있습니다. 함께 단결해서 노력해 나간다면 분명히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여권에서는 여러 후보들이 경쟁하는 양상입니다. 차기 지도자감으로 어떤 유형의 인물을 염두에 두고 계신지요.
“지금 여권 내에는 여러 훌륭한 후보들이 많이 있습니다. 모두 충분한 자질과 능력을 갖춘 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차기 지도자의 덕목에는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을 겁니다. 우선,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생산적 복지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21세기 세계 일류국가의 건설을 위해서는 지식기반경제와 남북화해협력에 대한 비전과 소신도 필수적이라고 봅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이듯이 선거는 이겨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당선 가능성도 매우 중요합니다. 이 모든 것을 당원들이 참작하게 될 것입니다. 누가 가장 애당적인지, 누가 가장 우리 당의 비전을 잘 성취해나갈 수 있는 인물인지 매일매일 평가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당의 총재로서 민주적인 절차에 따라 최대한 공정하게 차기 후보 선출을 관리해나갈 것입니다.”
―향후의 권력구조에 대해서 대통령 4년중임제 혹은 내각제 개헌의 필요성을 생각해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생각해본 바가 없습니다. 지금은 경제를 살리고 민생을 안정시키는 데 온 국민의 뜻과 힘을 모아야 할 때입니다. 불필요한 논란으로 내부의 힘을 낭비해서는 안됩니다. 저 또한 총력을 다해서 경제를 살리는 데 전념하고 있습니다. 그 문제는 제가 개입할 성질이 아닙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저는 1년 남짓이면 물러날 사람입니다.”
―야당에서 ‘6·25전쟁은 성공하지 못한 통일 시도’라는 대통령의 국군의 날 기념사를 문제삼아 대통령 자진 사퇴를 촉구했습니다. 현정권을 ‘친북세력’이라고 문제삼기도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국민의 정부의 개혁정책을 사회주의적인 정책이라고 규정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 평가를 들으면 섭섭하십니까?
“섭섭하다기보다도 어이가 없지요. 그렇게 말한 분들은 (국군의 날) 연설문 안 읽어본 사람입니다. 우리 경제가 사회주의냐 아니냐 하는 논란도 그렇습니다. 아시다시피 IMF나 IBRD, OECD 등이 모두 우리나라를 신흥국가 중에서 모범적인 시장경제를 하는 국가로 인정하고 있지 않습니까? 세계언론도 그렇구요. 중동의 산유국가들도 한국을 경제발전과 산업화의 모델로 삼고 있다는 얘기가 방송에 나온 것을 봤습니다.”
무엇보다 평화가 중요하다
―‘시장경제를 한다면서 정부개입이 심하다. 그러니까 국가계획에 의한 사회주의 경제다’. 야당측 주장은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반면에 노동자 계층에서는 ‘오히려 정부의 개입이 약하다’는 불만이 나오는 등 정부가 협공을 받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정부가 시장개입을 하고 있다고 하는데, 현정부가 들어서서 모든 규제가 반 이상 철폐 또는 완화되지 않았습니까? 과거 정권들은 은행 주식을 한 주도 안 갖고 있으면서 은행 간부를 실질적으로 임명하고 거액의 대출을 권력이 좌우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공적자금을 투자하다 보니까 정부가 100% (지분을) 갖고 있는 은행도 있습니다만 은행장 선출은 인사위원회가 하지 정부는 개입 안하지 않습니까? 정부는 은행대출에도 개입 안합니다. 그것은 천하가 다 아는 사실입니다. 한보나 기아사건 같은 일이 없지 않습니까?
노동자 계층 이야기가 나왔습니다만, 이 정부는 합법적이고 정당하고 평화적인 노동조합의 권익 주장은 용납합니다. 하지만 기업의 운영에 관여하는 것은 노조의 임무가 아닙니다. 그러면 기업이 되지를 않습니다. 예를 들어 작년에 국민은행과 주택은행이 통합하려고 할 때 국민은행 노조원 1만명이 일산에 캠프를 차려놓고 반대할 때도 그것을 용납하지 않은 것은 (노조가) 경영에 간섭했기 때문입니다. 노조에 대해서는 정치참여도 인정해 주었습니다. 다만 노조의 본분과 관계없는 경영에 개입하는 일은 시장민주주의 원리에 어긋나기 때문에 용납 안하는 것입니다.”
―햇볕정책을 두고 야당을 비롯한 일부 보수층은 북한에 대한 일방적 지원이 아니냐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햇볕정책 추진과정에서 야당 설득 등 국민적 합의과정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있는데요.
“그런 지적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시는 바와 같이, 햇볕정책의 기본취지와 방향에 대해서는 국민 대다수가 지지하고 있습니다. 식량의 지원도 다수 국민이 지지하고 있어요. 야당 역시 기본적으로 이 정부의 대북정책을 지지하고 있고, 이회창 총재도 최근 국회 연설에서 이를 확인했습니다. 얼마전에는 야당에서 먼저 대북 쌀 지원을 거론한 바도 있지 않습니까? 햇볕정책은 남북이 평화공존하고 평화교류하면서 우선 안심하고 살고, 서로 이해와 협력을 넓히자는 것입니다.
또 우리뿐 아니라 미·일·중·러 등 우리의 주변 4대국을 포함한 전세계가 햇볕정책에 대해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고, 북한에 대해 인도적인 지원도 하고 있습니다. 이 모두가 북한을 일방적으로 도와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렇게 하는 것이 평화에 도움이 되고 우리는 물론 주변국 모두에게 이익이 되기 때문입니다. 한반도에서의 평화 정착은 특히 우리에게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엄청난 가치를 가집니다. 당장에 이번 미국의 테러사태에도 불구하고 우리 국민들이 아무 동요없이 생활하고 있는 것도 햇볕정책의 성과아니겠어요?”
―김정일(金正日) 북한 국방위원장의 답방은 어떻게 됩니까. 그리고 답방이 성사됐을 경우 남북관계에 어떤 전기가 이뤄질 것으로 기대하시는지요.
“아시는 대로, 북한은 과거는 물론 최근 5차 남북장관급회담에서도 6·15 공동선언의 이행의지를 거듭 밝혔습니다. 그것은 김위원장 답방에 대한 약속 이행의지에 변화가 없다는 방증일 것입니다. 다만, 그 시기에 대해서는 현재로서는 뭐라고 말씀드릴 수 없는 것이 유감입니다. 구체적인 사항은 향후 적절한 시기가 되면 남북간 협의를 거쳐 결정하게 될 것입니다.”
‘일류상품’으로 세계와 경쟁을
―그러나 최근 북측이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일방적으로 연기했습니다. 북측에 따질 것은 따지는 등 좀더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할 필요성은 느끼지 않습니까?
“정부로서는 적절한 조치를 취해나갈 것입니다. 상봉 연기 직후 열린 통일외교안보분야 장관회의에서‘북측에 우리의 입장을 분명히 표명하고 필요한 조치들을 강구하라’고 지시했습니다. 관련 부서에서 필요한 조치를 취할 것입니다.
누차 강조해온 바와 같이, 이산가족 문제는 그 어떤 남북간의 현안보다도 중요하고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입니다. 무엇보다 애타게 상봉을 기다렸던 이산가족들의 실망이 얼마나 클지 참으로 가슴이 아픕니다. 앞으로도 정부는 이산가족 교류의 제도화를 통해 이산가족들의 생사확인과 만남이 상시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해가도록 하겠습니다.”
―지난 9월 미증유의 테러사건이 초강대국 미국의 심장부에서 일어나 미국은 현재 테러리스트 근절을 위한 ‘작전’중에 있습니다. 우리 정부도 나름의 지원을 하고 있는데, 미국이 전투부대 파병을 요청할 가능성도 있습니까?
“미국 테러사태를 처음 접하고 참으로 경악을 금치 못했어요. 우리 국민, 아니 전세계인들도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테러는 어떤 명분, 어떤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는 인류 공동의 적(敵)입니다. 그런 점에서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이번 행동은 정당한 조치이고, 저와 우리 국민은 미국의 행동을 적극 지지하고 있습니다. 테러는 미국에만 해당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어디서든 언제든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 일로 생각하고 대처해 나가야 합니다.
우리 정부는 미국의 동맹국으로서 한미상호방위조약 정신에 따라 필요한 모든 협력과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입장을 이미 밝힌 바 있습니다. 지난 9월24일, 의료지원단과 연락장교단의 파견, 수송자산 제공, 반테러 국제연대 참여 등 대미 지원조치도 이미 발표했습니다. 이 지원조치도 아직까지 미국으로부터의 구체적인 요청이 없는 상태입니다.
우리 한반도는 전세계에서 안보적으로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지역입니다. 그런 우리가 그 동안 남북화해협력의 길을 일관되게 걸어오지 않았다면 세계가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는 이때에 얼마나 큰 불안감에 휩싸였겠습니까? 그래서 이번 사태를 겪으면서 우리는 다시 한번 평화의 소중함을 절실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정부는 앞으로도 철통같은 안보태세와 한미동맹관계를 바탕으로 남북화해협력을 추진해 나감으로써 국민과 함께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키고 장차의 평화통일을 준비해 나갈 것입니다.”
―일본도 미국이 주도하는 테러와의 전쟁에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일부에서는 일본의 ‘군사대국화’ 경향을 우려하고 있습니다만….
“그러한 우려의 목소리를 저도 듣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테러를 근절하기 위한 이번 전쟁은 전세계가 모두 적극적으로 동참해야 할 일이라고 봅니다. 일본도 그런 맥락에서 대응하고 있다고 이해합니다. 이러한 적극적 움직임이 과거 역사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우려를 주고 있는 것이겠지요. 따라서 일본은 자국의 방위력과 자위대 역할 증대에 대해 주변국의 우려가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감안해서 자위대 역할 증대에 관한 조치를 현행의 평화헌법 테두리 내에서 투명하게 취해나가줄 것을 기대합니다.”
―중국의 대약진, 세계적인 반도체산업의 장기불황 등 대내외적인 경제무역환경이 격변하고 있습니다. 대통령께서는 우리나라 경제의 활로와 산업발전의 방향에 대해 어떤 큰 그림을 그리고 계십니까?
“중국의 대약진을 말씀했지만, 정말이지 중국은 지금 무서운 속도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올 들어 세계 경기침체 속에 대외여건이 매우 어려워졌습니다. 우리의 3대 수출시장인 미국·일본·유럽이 함께 어려움을 겪기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테러사태까지 일어났지요. 수출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우리로선 크나큰 시련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회피할 수 없는 엄연한 현실입니다. 우리는 우리대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세계 일류상품과 서비스를 만들어내야 합니다. 우리 경제가 살 수 있는 방법은 세계에서 가장 좋은 제품과 서비스를 가장 값싸게 만드는 길밖에 없어요. 우리에게 가장 알맞은 분야를 선택해서 여기에 모든 역량과 노력을 집중해나가야 합니다. R&D투자 증대와 인력양성 등을 통해 경쟁력을 높여야 합니다. 그러한 가운데 수출과 내수 진작을 위한 노력을 병행해나가야 합니다. 그리하여 이 어려운 고비를 지혜롭게 넘기면서, 상황이 호전됐을 때 도약할 수 있는 준비도 함께 해나가야 합니다.”
―국내경제를 돌아보면 큰 기대를 모았던 IT산업이나 벤처산업에 거품이 빠지면서 증시가 침체하는 등 그 후유증이 적지 않은 실정입니다. 벤처나 IT산업이 침체에 빠진 원인과 대책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중요한 문제입니다.
지난해 이후 시작된 국내외 주식시장의 장기 침체와 미국 테러사건의 영향으로 우리 벤처산업이 상당한 애로를 겪고 있어요. 물론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고 전세계적인 현상이기도 하지만 어쨌든 매우 어려운 상황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그 동안 수 차례에 걸친 금리인하와 경기활성화대책에도 불구하고 투자와 소비심리가 위축되어 기업의 경영여건이 그 어느 때보다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조정기는 벤처산업의 구조조정을 촉진하고 건실한 기업을 중심으로 산업을 재편하는 기회가 되는 등 긍정적인 측면도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장기화될 경우 기술력 있고 건전한 벤처기업마저 자금조달에 애로를 겪게 되는 등 벤처산업 전반을 위축시킬 수 있어요. 따라서 정부는 벤처기업이 침체를 조속히 극복하고 다시 도약할 수 있도록 각종 정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1조원의 벤처투자재원을 조성하고, 코스닥시장 활성화 방안을 마련하는 등 침체된 투자 분위기를 진작시키고 우수한 기술력을 가진 벤처기업이 자금난을 겪지 않도록 돕고 있습니다. 벤처기업의 해외진출과 지방의 벤처인프라 구축도 중점 지원하고 있고요.
이밖에도 벤처산업이 자생력을 가지고 시장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각종 규제를 완화하고, 시장의 건전성을 높이기 위한 제도 개선을 적극 추진해나갈 계획입니다.”
―공교육이 위기라는 지적이 있습니다. 공교육을 교육의 중심에 세우는 방안에 대한 생각을 말씀해 주십시오.
“참으로 어려운 문제입니다. 그렇지만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입니다. 공교육이 교육의 중심에 섰을 때 21세기 지식기반사회가 요구하는 인재를 육성할 수 있습니다.
공교육 부실의 원인은 지금까지 우리 교육이 양적으로만 팽창했고 질적인 성장 노력이 미진한데서 나타난 결과이기도 합니다만, 산업사회가 지식기반사회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풉낡?이를 따라가지 못하여 발생하는 측면도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다른 나라에서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일류대가 곧 출세 보장이라는 학벌주의 문화가 만연하고 있어 이러한 문제가 보다 심각하게 부각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정부는 교육개혁의 궁극적인 목표를 공교육 내실화에 두고 학생의 창의성을 마음껏 키워주는 교육과정, 쾌적하고 첨단화된 교육환경, 보람과 긍지로 가르치는 선생님, 즐겁고 신나게 배우는 학생을 구현하기 위한, 새로운 시대를 열어주는 교육체제를 구축하는 데 최선을 다하고자 합니다.
교육의 질은 국가의 경쟁력을 좌우하기 때문에 어려운 국가재정에도 불구하고 2004년까지 약 17조원을 투입하여 우리나라의 교육여건과 교육제도를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교육여건개선 추진방안을 지난 7월20일 발표한 바 있습니다. 이러한 하드웨어 측면의 교육여건 개선 외에 학교교육 소프트웨어의 핵심인 초중고의 교수·학습방법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고 학생들의 창의성 신장을 촉진하며, 과외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수능시험제도와 학생부 성적반영방법을 개선하는 등 교육제도 개선도 병행해 나갈 예정입니다.
또한 교원의 잡무경감, 경제적 처우 개선, 교원안전망 구축 등을 포함한 교직발전종합방안을 강력히 추진하고 공교육 부실징후에 대한 진단 및 내실화 대책을 강구하여 선생님들이 흥이 나서 일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 데도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아울러 우리 사회의 고질병이라 할 수 있는 학벌문화 타파를 위해 제도적인 개선과 병행하여 국민의식개혁 운동을 적극 추진해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나 정부의 이러한 교육개혁 노력이 긍정적인 측면보다는 일부 부정적인 측면만이 부각되는 경우에 안타까움을 느꼈습니다. 교육개혁의 성공 여부나 공교육의 내실화는 확고한 실천적 의지와 이에 대한 국민의 적극적 협조에 달려 있습니다. 공교육이 교육의 중심에 설 수 있도록 국민 여러분의 이해와 인내, 그리고 적극적인 협조를 당부 드립니다.”
지역감정 해소 안돼 안타까워
―인사 편중에 대한 비판과 함께 국민의 정부에 들어서 지역감정이 더 악화됐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이 같은 비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솔직히 말씀드려, 지난 3년 반 동안 제가 지역감정 문제만큼 많이 고심한 일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기울인 노력만큼 성과가 나타나지 않아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지역감정은 과거 자유당·민주당 시절에는 없었습니다. 영호남 출신 정치인이 지역 가리지 않고 상대 지역에서 당선이 되었습니다. 박정희 전대통령도 대통령에 첫 도전했던 1963년 대선 때 다른 지역에서 졌지만 호남에서 이겨서 당선됐어요. 그때까지는 지역감정이 있었다고 할 수 없지요. 그 후 권력자와 정치인들이 악용해서 지역감정이 생겨나고 악화된 것입니다. 지금도 선거철만 되면 지역감정이 기승을 부리고 있지 않습니까?
지역갈등의 극복을 위해서는 정치권·문화계·종교계·언론계, 그리고 국민 모두가 함께 노력하는 길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선거에서 지방색을 이용하거나 이에 동조하는 일을 끝내야만 이 문제가 해결됩니다. 인사문제도 그 동안 기준과 원칙에 따라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습니다만, 아직까지 지역편중 시비가 불식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 동안 공무원 인사는 전문성과 능력, 개혁성과 도덕성을 기준으로, 얼마나 국가 발전에 도움이 되고 헌신할 각오가 되어 있냐 하는 것에 맞춰져 왔습니다. 국민적 단합을 위해 가능한 한 소외되는 지역이 없도록 고르게 안배하는 노력도 병행해 왔고요. 그래서 저는 집권 이후 전국의 모든 지역에 대해서 어떠한 차별도 존재하지 않는 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해 왔다는 것을 자신있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앞으로도 지역주의의 폐해를 극복하고 능력 중심의 인사 원칙이 철저히 지켜지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해나갈 것입니다.”
―대통령께서는 어떤 방식으로 국민의 소리를 듣고 민심을 파악하고 계십니까? 그리고 국사를 다루다 보면 비판적 의견에 마음이 상하실 때도 있으실 텐데 어떻게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십니까?
“그야말로 다양한 채널을 통해 듣고 있습니다. 대통령 비서실과 관계 정부기관, 민주당 등은 물론 각계 인사와의 면담, 민생현장 방문 등을 통해 민심을 파악하고 있습니다. 야당의 주장은 물론이고 인터넷을 통해 들어오는 각종 비판적인 글, 각종 여론조사 결과, 심지어는 시중에 떠도는 이야기들까지도 접하고 있습니다. 특히 언론 보도를 여론 파악의 가장 주요한 창구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마음의 평정을 말씀하셨는데, 저만의 독특한 방법이 있습니다. 여러가지 일로 머리가 어지러울 때는 혼자서 흰 백지를 둘로 나눠놓고 한 쪽에는 긍정적인 사안을, 다른 한쪽에는 부정적인 사안을 적습니다. 그랬을 때 늘 느끼는 바지만, 아무리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도 밝은 면은 있기 마련입니다. 그 반대도 마찬가집니다. 그렇게 차분하게 생각을 정리하다 보면 마음의 평정을 가질 수 있고, 새로운 용기와 힘도 얻게 됩니다.”
“아내는 쓴소리 잘하는 사람”
―세계적으로 퍼스트레이디의 역할은 점점 더 커지고 있습니다. 대통령께서는 이희호여사의 의견을 어느 정도 경청하십니까?
“많이 경청합니다. 어떻게 받아들일 지 모르겠지만, 솔직히 아내는 저의 내조자이기 이전에 저와 함께 수 십년간 동고동락을 함께 해온 동지입니다. 아내는 여성·장애인·입양아 등 어렵고 소외된 사람들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갖고 있으며, 제가 자칫 놓치기 쉬운 사회적 약자들의 소리를 전해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신문도 독자투고란까지 꼼꼼히 읽고 이런 일 저런 의견이 있다고 전해줍니다. 그러한 가운데 아내에게 배우는 것도 많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아내는 제게 가장 비판적인 쓴소리를 잘하는 사람 중의 한사람이지요.”
―많은 국민들이 여야간 정쟁이나 경제의 어려움 등으로 힘들어하는 것 같습니다. 대통령께서 국민들에게 어떤 희망의 메시지를 주시겠습니까?
“말씀하신 대로, 지금 정치는 불안정을 면치 못하고 있고 경제도 매우 어려운 상태입니다. 특히 중산층과 서민들이 큰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국정을 책임진 사람으로서 송구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그 원인은 국내에도 있고 국외로부터 비롯된 것도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 원인이 어디에 있건 해결은 우리가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 국민이라면 능히 지금의 어려움을 극복해 나갈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우리 국민은 21세기 지식정보화시대에 딱 들어맞는 높은 교육열과 우수한 지적 기반, 탁월한 문화창조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미 우리나라는 지식정보화에 관한 한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발전하는 나라 중의 하나가 되었습니다. 최근 OECD 보고서는 한국을 스웨덴·미국에 이은 세계 3위의 지식기반경제 국가로 소개한 바 있습니다. 컨설팅회사인 미국 매킨지는 “한국은 이대로 가면 앞으로 10년 내에 세계 7대 경제선진국이 될 것이다”고 전망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우리는 지금, 지나온 일 백년 보다 훨씬 희망에 차고 영광스런 일 백년을 내다보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우리나라는 바다와 대륙을 잇는 중요한 지정학적인 위치 때문에 이 땅에서 러·일, 청·일전쟁의 참화를 겪어야 했습니다. 급기야 나라가 망하고 35년간 일제에 병탄(倂呑)당했습니다. 해방과 동시에 국토가 분단되고 처참한 동족상잔의 전쟁까지 겪었습니다. 그리고 아직도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남북이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습니다. 고난으로 점철된 일 백년이 아직도 끝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제국주의시대가 아니고 세계화시대입니다. 우리의 지정학적인 위치는 4대국의 중심이자 대륙과 해양을 중계하는 핵심적 통로가 되고 있습니다. 경의선과 경원선이 복원되어 철의 실크로드가 열리면 광활한 유라시아 대륙이 우리의 활동무대가 됩니다.
또한 인천국제공항·부산항과 더불어 우리나라는 하늘과 땅과 바다에 걸쳐 유라시아와 태평양을 연결하는 세계적인 생산과 무역·금융·보험·물류의 거점으로 발전해 갈 수 있습니다. 21세기 아시아태평양 시대를 주도하는 한반도 시대를 이룩하게 되는 것입니다. 내년에 있을 월드컵 대회와 부산 아시안게임은 이러한 도약의 분수령이 될 것입니다. 이 두 대회의 성공적인 개최는 한국의 이미지를 세계 속에 빛내고, 국운 융성의 일대 전기가 될 것입니다.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이러한 희망과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용기를 가지고 당면한 어려움을 해결하면서 세계 일류국가를 향한 발걸음을 계속해가야 하겠습니다.”
―신동아는 이번 11월호로 70주년을 맞이합니다. 대통령께서도 신동아와 적잖은 인연을 가지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신동아와 관련해서 특별히 생각나시는 일화가 있으면 말씀해주십시오.
“여러 일들이 생각납니다.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신동아 사태’입니다. 1987년 10월호던가, ‘김대중 납치사건에 대한 이후락 증언’이란 기사를 당시 안기부가 싣지 못하도록 압력을 넣자 신동아와 동아일보 기자들이 열흘 이상 농성을 하는 등 격렬하게 항의해서 마침내 싣게 됐습니다. 그때 저도 동아일보사의 농성 현장을 방문해서 기자들을 격려한 일이 있습니다. 언론자유가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신동아는 과거 군사정권이 저에 대한 보도를 금지하다시피 할 때에도 여러 페이지에 걸친 인터뷰 기사를 실어주었습니다. 저의 의견을 국민께 알리는 데 큰 도움이 되었지요. 지금도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