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11월호

속에 있는 말 다 털어놓게 만드는 신동아 인터뷰

  • 김근태 (새천년민주당 최고위원)

    입력2005-03-21 16: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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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발이 성성하고 품위도 있어 보이는 노인네들이 ‘이놈’ ‘저놈’ 하면서 아이들처럼 너무나 편하게 서로를 대하는 광경을 보고 한동안 멈춰서서 구경한 적이 있다. 아마도 절친한 동기동창쯤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마치 흘러간 세월에 복수를 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면서도 그 친밀함은 모든 것을 껴안을 수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너무 익숙해서 잊어버리는 존재

    나에게는 신동아가 그렇다. 항상 내 주위 어딘가에 신동아가 있다. 사무실 책상 위나 응접용 테이블, 또는 차 뒷좌석 등등에. 한 달이 지나면 다음 호가 그 자리를 차지할 때도 있고 두세 달 치가 한꺼번에 이곳저곳을 차지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너무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그런데 70년이라니…. 70주년 기념호 특집 원고청탁을 받고 조금은 놀랐다. 지난 5월호에 신동아 지령 500호를 맞아 한림대 유재천 부총장이 기고한 글이 떠오른다. 신동아는 창간사에서부터 ‘조선 민족의 앞날을 위한 대경륜을 제시하는 조선 민중의 공기’가 될 것임을 천명했으며, 1931년 11월 창간된 이래 일제에 의한 폐간의 비운과 1964년의 복간, 1968년의 필화사건 등을 거쳐온 신동아의 역사가 바로 그러했다는 것이다. 이 글은 최초로 신문잡지의 시대를 개척한 신동아의 잡지사적 의의, 그리고 지령 500호를 맞아 신동아에 기대하는 새로운 희망을 피력하기도 했다.

    이 글을 읽고 나는 신동아가 간직한 그 오랜 역사와 그 역사만큼의 무게를 분명하게 인식했다. 그러나 그것은 잠시였다. 나는 그후 곧 신동아가 가진 오랜 역사와 그 무게를 다시 까맣게 잊어버렸던 것이다. 신동아는 내게 너무나 익숙해서 오히려 그 존재마저 잊게 만드는 것 같다.



    기쁜 마음에 흔쾌히 원고청탁을 받아들인 후 책상에 앉았는데, 이번에는 당혹감이 찾아왔다. ‘신동아에서 읽은 잊을 수 없는 글’이라는 주제 때문이다. 처음 그런 주제로 글을 써달라고 했을 때는 내심 자신이 있었다. 솔직히 말해 ‘별거 아니겠군’ 싶었다.

    신동아의 날카로운 분석기사와 심층인터뷰를 보며 그 깊이에 고개를 끄덕인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국제 교육 역사 인물 비사(秘史)에서 심지어는 헨리홍의 최신영어비법까지 담아내는 폭넓은 정보와 기획력을 눈여겨본 적이 많았다.

    그런데 막상 그중 한두 가지를 고르려니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게 좋겠군’하며 펜을 들면 ‘아니야, 저게 더 좋을 것 같은데’하는 변덕이 생겼다. 그렇게 왔다 갔다 하는 일이 지루하게 반복됐다.

    결국은 좀 쑥스럽지만 남의 이야기가 아닌 내 이야기를 쓰는 것이 가장 편하고 솔직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기억에 남아있는 다른 기사들은 얼굴에 철판을 깔고 한쪽으로 밀어냈다.

    ‘아름다운 정론지’

    지난해 11월, 나는 그때까지 단편적으로 알려졌거나 생각은 정리됐으되 밝히지 않았던 결심들마저 신동아 인터뷰에서 모두 쏟아냈다. “정치적으로 큰일을 할 수 있는 리더십으로 발전하도록 노력하고 있으며 경선 출마를 위해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밝힌 것도 이 인터뷰에서였다.

    또한 우리나라의 민주화 정도와 발전 방향, 개혁작업과 남북 화해협력에 난관이 발생하는 이유, 그리고 그런 난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국민에게 새로운 각오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당정쇄신이 필요하다는 점도 처음으로 밝혔다. 신동아 2000년 12월호는 이런 나의 마음을 한치의 빈틈도 없는 정확한 기사로 전달했다.

    그리고 지난 6월 신동아는 다시 나를 인터뷰했다. 2001년 7월호 신동아에 실린 이 기사는 “고통스러운 개혁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도덕적 신뢰가 뒷받침되어야 하는데 신뢰의 위기가 발생하고 있다. 국민의 신뢰를 모으기 위해서는 집권세력의 자기 희생과 결단, 변화의 모습, 국민과 함께 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당정쇄신이 필요하다”는 나의 호소, 그리고 이런 주장을 공식적인 당 시스템을 통해 끊임없이 제기했고 대통령에게도 건의했던 과정을 가감없이 실어주었다.

    신동아 인터뷰에서는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을 다 할 수 있다. 믿음을 주고 친숙하기 때문에 그럴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신동아 기자들과 편집진의 투철한 기자정신을 믿는다.

    인터뷰에서 나온 말들을 기사로 바꾸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은 작업임을 잘 안다. 신동아는 의미의 본질과 요지를 놓치지 않으면서도 인터뷰이(interviewee)가 한 말을 전혀 가공하지 않고 생생하게 독자들에게 전해준다.

    문득 ‘아내는 여자보다 아름답다’는 광고 카피 한 구절이 떠오른다. ‘결혼이 좋은 것은 자신의 젊은 시절을 기억하는 사람과 함께 늙어간다는 것’이라는, 어떤 영화의 주인공이 했던 말도 함께 떠오른다. 언론이 투명성을 요구받고 있다. 나는 신동아가 ‘우리 국민의 삶을 철저하게 기억하는 잡지’라고 믿는다. 신동아의 지난 70년 역사가 그랬듯이 ‘아름다운 정론지’라는 정체성을 앞으로도 꿋꿋하게 유지할 것이라고 믿는다. 바로 거기에 신동아의 빛나는 역사적 임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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