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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깡패를 보면 잠이 안 온다”

한국 최고 ‘주먹통’ 조승식 검사가 말하는 조폭과의 20년 전쟁

  • 조성식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airso2@donga.com

“나는 깡패를 보면 잠이 안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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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부임해가는 곳마다 조폭 토벌작전
  • ● ‘큰놈’잡을 때는 직접 현장에
  • ● 김태촌 잡기 전날 밤 정화수 떠놓고 기도
  • ● 우리 애들이 검사님 손보겠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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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5월19일 오전 10시. 서울 동부이촌동에 있는 미주아파트 부근 제일사우나 앞에 3000cc짜리 고급승용차가 미끄러져 들어왔다. 승용차 뒷좌석에는 40대 초반의 남자가 혼자 타고 있었다. 근처에 숨어 있던 수사관들의 무전기가 숨가쁘게 울려댔다. 사내가 사우나탕에 들어가자 안에서 미리 대기중이던 수사관 한 명이 욕조까지 따라 들어가 동태를 감시했다. 사내가 목욕을 하는 동안 운전사는 세차를 했다.

이윽고 목욕을 마친 사내가 사우나를 나서는 순간 수사관 4명이 한꺼번에 덮쳤다. 권총을 빼든 검사가 “꼼짝 말라”고 소리쳤다. 짐짓 태연한 척하던 사내는 이내 체념한 듯 순순히 수갑을 받았다. 경호원 노릇을 하던 운전사도 함께 끌려갔다.

이날 체포된 사내가 바로 ‘대한민국 최고의 깡패’로 불리던 김태촌(당시 42세)씨다. 그때 구속된 김씨는 지금도 교도소에 갇혀 있다. 그렇다면 현장에서 권총을 겨눈 검사는? 그가 바로 ‘주먹 잡는 검사’로 주먹세계에서 악명 높은 조승식(당시 38세)검사다.

“군산에서 깡패공부 다했다”



현재 서울고검에 근무하는 조검사는 사시 19회 출신으로 1979년 서울지검에서 검사생활을 시작했다. 그가 주먹수사에 첫발을 내디딘 것은 1981년 전주지검 군산지청에 근무할 때다. 군산 깡패들을 소탕한 그는 이후 ‘조폭과의 전쟁’에 몸을 내던졌다. 가는 곳마다 잡아들였고 실패라곤 거의 없었다. 기자가 접촉한 몇몇 강력부 검사들은 한목소리로 그를 ‘최고의 주먹검사’로 꼽았다. 그의 수사사례는 오늘날 강력부 검사들에게 거의 교본으로 통하고 있다.

주먹수사가 힘든 것은 범죄의 특성상 증거확보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여간해서는 범죄에 직접 개입하지 않는 두목급 수사는 더욱 어렵다. 게다가 주먹들은 주거지가 일정치 않아 소재지 파악이 쉽지 않다. 범죄혐의가 확인돼 잡으려 해도 어디 숨어 있는지 알 수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 만큼 제보와 정보, 탐문에 기대 추적할 수밖에 없다. 주먹수사에 남다른 집념과 끈기가 필요한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또 체포과정엔 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부하들을 경호원으로 달고 다니거나 흉기를 소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보복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해야 한다.

조검사는 “군산에서 깡패 공부를 다했다”고 말한다. 도박판 피해자의 제보가 그 계기가 됐다.

“폭력배들이 도박장을 열어 지역 사람들을 끌어들인 후 높은 이자로 돈을 빌려주고 갚지 못할 경우 폭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농협 직원 한 명이 빚 독촉과 폭력에 견디지 못해 자살하는 사건이 일어났고 면사무소 계장이 노름빚으로 퇴직금을 날리기도 했다. 수사해 보니 99% 사기도박이었다.”

조검사는 사기도박에 관련된 폭력배를 모조리 잡아들였다. 당시 억대 도박판을 벌인 혐의로 구속된 오아무개씨 등은 1990년에 벌어진 ‘범죄와의 전쟁’ 때 범단(범죄단체) 수괴급으로 인정됐다. 도박판 수사에서 성공을 거둔 조검사는 여세를 몰아 본격적으로 폭력배 수사에 나섰다. 그때만 해도 범단으로 묶는 것이 쉽지 않았다. 법원이 관련법을 적용하는 데 매우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까닭이다. 그 탓에 조검사가 구속한 폭력배들도 주로 개인 차원의 범죄혐의로 기소됐다.

조검사가 군산에서 수사한 사건 중에 가장 유명한 것은 당시 한가락하는 주먹인 차아무개씨가 경쟁조직의 두목인 조아무개씨를 칼로 찌른 사건이다. 조검사는 각각 폭행, 공갈 혐의를 적용해 둘 다 구속해 버렸다. 차씨는 1990년대 초 빚쟁이 딸을 강간한 혐의로 서울지검 특수부에 의해 수배되자 미국으로 달아났다. 조씨는 ‘범죄와의 전쟁’ 때 군산그랜드파의 두목급으로 분류돼 전주지검에 의해 재구속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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