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대변혁의 시대이다. 이를 흔히 문명사적 대전환기라고도 한다. 진화론적 관점에서 원숭이의 자리매김은 사람의 출현으로 인해 비로소 가능했다. 지금 이 시대의 변화가 의미하는 바도 다음 시대가 열릴 때가 되어서야 완전히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경험만으로도 변화의 방향은 대강 읽을 수 있고, 이를 분명하게 요약할 수 있다. 1990년을 전후하여 진행된 동구권의 붕괴, 이데올로기 논쟁의 종언, 인터넷의 대중화, 그리고 자본시장의 세계화와 글로벌 거버넌스(Governance)의 약화 등이 지난 10년간 경험한 현상이다. 이를 통하여 우리는 지구적 차원의 시간과 공간의 의미가 전혀 달라졌음을 읽는다. 이 변혁의 시기는 한마디로 세계화의 시기이자 정보화의 시기다. 앨빈 토플러의 말처럼 물리적 힘과 자본의 힘보다 지식의 힘이 지배하는 시기다. 지식의 기반 위에서 경영하고, 지식네트워크를 활용하며, 지식체계를 발전시키는 나라나 기업이 성공하는 시대다.
변화의 속도가 빠른 시대일수록 미래는 많은 가능성으로 열려 있게 마련이다. 잘될 수 있는 가능성과 잘못될 수 있는 가능성은 똑같이 존재한다. 그러므로 변화의 시대는 희망의 시대이자 위기의 시대다. 변화를 만들어나가는 사회에는 희망이 있지만 변화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사회에는 도처에 위기가 널려 있다.
이러한 변화의 시대를 헤쳐나가기 위하여 우리는 확실한 리더십을 필요로 한다. 이 변화가 우리에게 희망의 전기를 마련해주는가, 아니면 우리를 위기의 시대로 내닫게 하는가의 여부는 리더십에 의하여 결정된다. 세계화·정보화 시대에 위기를 희망으로 바꿀 수 있는 리더십은 다음의 세 가지 요소를 갖추어야 한다.
첫째로, 민주적 리더십이다.
둘째로, 변혁적 리더십이다.
셋째로, 지식적 리더십이다.
현재는 변화의 시대이자 불확실성의 시대다. 원래 변화의 시대에는 미래의 방향이 어느 쪽으로 갈지 모르기 때문에 불확실성 또한 증대되기 마련이다. 주술과 신비의 전근대사회에서 이성과 과학이 지배하는 근대사회로 이행한 것과 달리, 21세기 초 현대사회는 사회의 성격 자체가 불확실성을 내재하고 있다. 국가간의 경제력과 군사력에 의거해 결과가 뻔히 보이던 전쟁의 결과라든지, 한 국가의 능력에 의하여 통제될 수 있던 치안질서라든지, 핵미사일의 세력균형이 오히려 세계평화를 보장하던 동서냉전의 시기처럼 산업사회에서는 시계(視界)가 분명했다.
▶ 민주적 리더십
21세기를 맞는 초엽, 지식정보시대로 진입한 지금은 곳곳에 불확실성이 널려 있다. 방사능과 환경파괴로 인한 유해물질의 배출, 화학전·세균전이 말해주는 것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위험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다. 문명의 이기란 ‘집적된’ 위험이다. 도시 곳곳을 지하로 관통하는 가스관과 전기관이라든지 하이테크 대중교통수단의 발달 등으로, 대형 사고의 가능성은 문명도시 곳곳에서 높아지고 있다.
그리고 최근 뉴욕과 워싱턴의 테러사태가 말해주는 것처럼 가장 평화스러운 안전지대에서 전선(戰線)이 형성되기도 한다. 냉전시대 워싱턴의 상대는 크렘린이었다. 둘은 경쟁관계에 있었지만 직통전화도 있었다. 적어도 자살테러는 하지 않는다는 예측 가능한 범위 안에서 서로가 행동했다. 지금은 예고되지 않은 곳에서 공격이 들어온다. 몇 달러짜리 텐트를 공격하기 위하여 몇 백만달러짜리 미사일을 쏠 수밖에 없는 보복전도 치러야 한다. 이번 전쟁을 일각에서는 문명충돌이라고 하나, ‘보이지 않는 위험에 대한 전쟁’이라고 보는 것이 보다 타당할 것이다. 미국 사람들이 대통령을 중심으로 일치단결하여 위기를 타개해나가려고 하는 것처럼 불확실성의 시대는 확고한 리더십을 필요로 한다.
변화의 시대의 리더십이란 변화의 방향을 정확하게 읽고 미래의 불확실성을 최소화하면서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주는 능력이다. 민주적 리더십은 이러한 의미에서 적어도 세 가지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첫째는 의사소통능력이고, 둘째는 갈등조정능력이며, 셋째는 기본을 세우고 지키는 능력이다.
리더십이 가져야할 첫째 요소로서의 의사소통 능력은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이다.
5000년이 넘는 중국 역사에서도 문무(文武) 양면에서 뚜렷한 공적을 남긴 임금으로 칭송받는 당(唐)태종은 어진 인재들을 두루 등용하고 그들의 간언을 성심으로 받아들인 것으로 유명하다. 또 그는 잘못이 있으면 즉각 고치는 행동을 보여주었다.
예를 들어 고구려 정벌에 실패했을 때도 이를 한사코 만류했던 간의대부(諫議大夫) 위징(魏徵)과 같은 현신의 말을 듣지 않은 점을 깊이 반성했다. 그의 이러한 리더십은 ‘정관정요’(貞觀政要)라는 책에 잘 요약되어 있는데, 이 책은 국가경영 혹은 기업경영을 공부하려는 사람들의 필독서가 되었다.
한마디로 불세출의 리더들은 결코 지식 자랑을 하지 않는다. 대신 그들은 뛰어난 사람들을 기용하여 그들의 말을 귀기울여 들을 줄 안다. 그러므로 예부터 동양에서는 리더가 갖추어야할 최상의 덕목으로 치둔지덕(癡鈍之德)을 손꼽았다. 영악하고 예리함을 내보이는 쪽보다는 우치(愚癡)하고 둔하게 보이는 지도자를 오히려 군자다운 사람으로 인정해준 것이다.
이 덕목이 가장 중요한 이유는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하고 적응할 수 있는 실력을 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고지도자가 스스로 누구보다도 많이 알고 있다고 자부하면서, 모든 일을 자신의 주장대로만 하려 한다면 그 사회는 낙후될 수밖에 없다. 오늘날 지구상에서 가장 발달된 나라와 가장 발달하지 못한 나라를 비교하여 보면 이는 명백해진다.
선진국에서는 시스템과 인재 풀에 의해 나라가 움직인다. 못사는 나라, 국민이 헐벗고 굶주린 나라에서는 ‘영명한’ 지도자가 온갖 교시를 내리고 있다. 정말로 영명한 사람은 개인이 보유하고 있는 지식은 집단이 가지고 있는 지식의 합에 결코 미치지 못한다는 점을 잘 안다. 특히 지식정보사회에서 지식경영이 강조되는 21세기의 초엽에 지식을 갖춘 리더십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그러나 리더 개인의 한정된 지식만으로 변화에 대처하려는 것은 시대의 흐름과 맞지 않는 방식이다.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