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11월호

변혁적 리더십이 새 희망 만든다

  • 이각범 < 한국정보통신대학원대학교 교수 >

    입력2005-02-21 14: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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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시형, 대중영합형 리더십으로는 위기에 빠진 나라를 구할 수 없다. 최고지도자는 인맥에 의존하기보다는 공정하게 인재를 등용해야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 오늘의 단기적인 성과를 위해 미래를 희생시켜서도 안된다.
    지금은 대변혁의 시대이다. 이를 흔히 문명사적 대전환기라고도 한다. 진화론적 관점에서 원숭이의 자리매김은 사람의 출현으로 인해 비로소 가능했다. 지금 이 시대의 변화가 의미하는 바도 다음 시대가 열릴 때가 되어서야 완전히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경험만으로도 변화의 방향은 대강 읽을 수 있고, 이를 분명하게 요약할 수 있다. 1990년을 전후하여 진행된 동구권의 붕괴, 이데올로기 논쟁의 종언, 인터넷의 대중화, 그리고 자본시장의 세계화와 글로벌 거버넌스(Governance)의 약화 등이 지난 10년간 경험한 현상이다. 이를 통하여 우리는 지구적 차원의 시간과 공간의 의미가 전혀 달라졌음을 읽는다. 이 변혁의 시기는 한마디로 세계화의 시기이자 정보화의 시기다. 앨빈 토플러의 말처럼 물리적 힘과 자본의 힘보다 지식의 힘이 지배하는 시기다. 지식의 기반 위에서 경영하고, 지식네트워크를 활용하며, 지식체계를 발전시키는 나라나 기업이 성공하는 시대다.

    변화의 속도가 빠른 시대일수록 미래는 많은 가능성으로 열려 있게 마련이다. 잘될 수 있는 가능성과 잘못될 수 있는 가능성은 똑같이 존재한다. 그러므로 변화의 시대는 희망의 시대이자 위기의 시대다. 변화를 만들어나가는 사회에는 희망이 있지만 변화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사회에는 도처에 위기가 널려 있다.

    이러한 변화의 시대를 헤쳐나가기 위하여 우리는 확실한 리더십을 필요로 한다. 이 변화가 우리에게 희망의 전기를 마련해주는가, 아니면 우리를 위기의 시대로 내닫게 하는가의 여부는 리더십에 의하여 결정된다. 세계화·정보화 시대에 위기를 희망으로 바꿀 수 있는 리더십은 다음의 세 가지 요소를 갖추어야 한다.

    첫째로, 민주적 리더십이다.



    둘째로, 변혁적 리더십이다.

    셋째로, 지식적 리더십이다.

    현재는 변화의 시대이자 불확실성의 시대다. 원래 변화의 시대에는 미래의 방향이 어느 쪽으로 갈지 모르기 때문에 불확실성 또한 증대되기 마련이다. 주술과 신비의 전근대사회에서 이성과 과학이 지배하는 근대사회로 이행한 것과 달리, 21세기 초 현대사회는 사회의 성격 자체가 불확실성을 내재하고 있다. 국가간의 경제력과 군사력에 의거해 결과가 뻔히 보이던 전쟁의 결과라든지, 한 국가의 능력에 의하여 통제될 수 있던 치안질서라든지, 핵미사일의 세력균형이 오히려 세계평화를 보장하던 동서냉전의 시기처럼 산업사회에서는 시계(視界)가 분명했다.

    ▶ 민주적 리더십

    21세기를 맞는 초엽, 지식정보시대로 진입한 지금은 곳곳에 불확실성이 널려 있다. 방사능과 환경파괴로 인한 유해물질의 배출, 화학전·세균전이 말해주는 것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위험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다. 문명의 이기란 ‘집적된’ 위험이다. 도시 곳곳을 지하로 관통하는 가스관과 전기관이라든지 하이테크 대중교통수단의 발달 등으로, 대형 사고의 가능성은 문명도시 곳곳에서 높아지고 있다.

    그리고 최근 뉴욕과 워싱턴의 테러사태가 말해주는 것처럼 가장 평화스러운 안전지대에서 전선(戰線)이 형성되기도 한다. 냉전시대 워싱턴의 상대는 크렘린이었다. 둘은 경쟁관계에 있었지만 직통전화도 있었다. 적어도 자살테러는 하지 않는다는 예측 가능한 범위 안에서 서로가 행동했다. 지금은 예고되지 않은 곳에서 공격이 들어온다. 몇 달러짜리 텐트를 공격하기 위하여 몇 백만달러짜리 미사일을 쏠 수밖에 없는 보복전도 치러야 한다. 이번 전쟁을 일각에서는 문명충돌이라고 하나, ‘보이지 않는 위험에 대한 전쟁’이라고 보는 것이 보다 타당할 것이다. 미국 사람들이 대통령을 중심으로 일치단결하여 위기를 타개해나가려고 하는 것처럼 불확실성의 시대는 확고한 리더십을 필요로 한다.

    변화의 시대의 리더십이란 변화의 방향을 정확하게 읽고 미래의 불확실성을 최소화하면서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주는 능력이다. 민주적 리더십은 이러한 의미에서 적어도 세 가지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첫째는 의사소통능력이고, 둘째는 갈등조정능력이며, 셋째는 기본을 세우고 지키는 능력이다.

    리더십이 가져야할 첫째 요소로서의 의사소통 능력은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이다.

    5000년이 넘는 중국 역사에서도 문무(文武) 양면에서 뚜렷한 공적을 남긴 임금으로 칭송받는 당(唐)태종은 어진 인재들을 두루 등용하고 그들의 간언을 성심으로 받아들인 것으로 유명하다. 또 그는 잘못이 있으면 즉각 고치는 행동을 보여주었다.

    예를 들어 고구려 정벌에 실패했을 때도 이를 한사코 만류했던 간의대부(諫議大夫) 위징(魏徵)과 같은 현신의 말을 듣지 않은 점을 깊이 반성했다. 그의 이러한 리더십은 ‘정관정요’(貞觀政要)라는 책에 잘 요약되어 있는데, 이 책은 국가경영 혹은 기업경영을 공부하려는 사람들의 필독서가 되었다.

    한마디로 불세출의 리더들은 결코 지식 자랑을 하지 않는다. 대신 그들은 뛰어난 사람들을 기용하여 그들의 말을 귀기울여 들을 줄 안다. 그러므로 예부터 동양에서는 리더가 갖추어야할 최상의 덕목으로 치둔지덕(癡鈍之德)을 손꼽았다. 영악하고 예리함을 내보이는 쪽보다는 우치(愚癡)하고 둔하게 보이는 지도자를 오히려 군자다운 사람으로 인정해준 것이다.

    이 덕목이 가장 중요한 이유는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하고 적응할 수 있는 실력을 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고지도자가 스스로 누구보다도 많이 알고 있다고 자부하면서, 모든 일을 자신의 주장대로만 하려 한다면 그 사회는 낙후될 수밖에 없다. 오늘날 지구상에서 가장 발달된 나라와 가장 발달하지 못한 나라를 비교하여 보면 이는 명백해진다.

    선진국에서는 시스템과 인재 풀에 의해 나라가 움직인다. 못사는 나라, 국민이 헐벗고 굶주린 나라에서는 ‘영명한’ 지도자가 온갖 교시를 내리고 있다. 정말로 영명한 사람은 개인이 보유하고 있는 지식은 집단이 가지고 있는 지식의 합에 결코 미치지 못한다는 점을 잘 안다. 특히 지식정보사회에서 지식경영이 강조되는 21세기의 초엽에 지식을 갖춘 리더십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그러나 리더 개인의 한정된 지식만으로 변화에 대처하려는 것은 시대의 흐름과 맞지 않는 방식이다.

    민주적 리더십의 두번째 요소는 갈등조정 능력이다.

    새로운 변화는 새로운 갈등을 동반한다. 변혁의 시대에 많은 새로운 갈등의 양상이 나타나는 것은 갈등의 복합화 현상때문이다. 기왕에 있던 갈등이 새로운 갈등으로 단순 대체된다면 문제는 간단해진다. 묵은 갈등은 묵은 갈등대로 있고 이에 새로운 갈등이 가세하면서 문제를 해결하기가 어려워지는 것이다. 리더는 이러한 갈등을 현명하게 조정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우리나라는 전통사회의 갈등양상이 합리적으로 정리되기 전에 산업사회의 갈등현상을 맞이했고, 산업사회의 갈등이 구조화되고 제도화되기 전에 새로운 지식정보사회로 가는 엄청난 충격을 감당하게 되었다. 그 한 예가 우리나라의 선거문화다. 선진적 민주정치의 핵심인 선거는 법적 제도적 측면에서 보자면 우리나라에서도 하자가 없다. 그러나 실제의 선거판은 당의 이념과 정책에 의하여 움직이지 않는다. 대신 지연, 학연 등이 가장 큰 변수로 작용한다. 대기업 노동조합에서도, 대학에서도, 또 웬만한 사회단체에서도 비슷한 경향은 수없이 나타난다. 산업사회의 한복판에서 전통사회의 갈등변수가 작용하는 것이다.

    이제 지식정보사회로 가는 길에도 같은 현상은 되풀이되고 있다. 세계 각국은 구조조정이라는 힘든 대가를 지불하면서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산업사회의 각 계층과 집단들이 이에 대응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지식정보화시대의 갈등에 산업시대의 갈등이 덧붙여 나타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여기에 또 한 가지가 더 붙었다. 최근의 ‘이용호 게이트’가 대변하는 것처럼 전근대적 요인이 가세한 것이다.

    이러한 복합적 갈등의 표출과정에서 이 사회의 지도자들은 어떻게 리더십을 발휘해야 하는가. 그가 보여주어야 하는 덕목은 과연 무엇인가.

    우선 그는 공평무사(公平無私)함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러려면 전근대적 인연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몸으로는 그러할 수 없으나 적어도 마음으로는 그러해야 한다. 누구나 실질적으로 한 지역의 출신이고, 특정지역의 특정학교를 졸업할 수밖에 없지만 의식 속에서 이를 가능한 한 잊어버리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지역안배’라는 말부터가 이미 지역의식을 가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개인적인 인연을 가볍게 생각하고 공공(公共)에 기여함을 무겁게 생각한다면 전근대적 갈등변수들이 의사결정 과정에 개입할 여지는 없어진다.

    공평무사한 리더십이 필요

    역사적으로도 탕평책을 써서 인재를 두루 기용하려 했던 임금으로 영정조(英正祖)를 들 수 있다. 정조의 뚜렷한 개혁정책은 그의 열린 인사정책으로 인하여 가능했다. 정약용 등 실학파 선비들의 폭넓은 기용으로 유교 테두리 안에서나마 새로운 문물의 도입과 국가혁신을 위하여 노력했다. 연고에 대한 집착이 적을수록 국가나 기업경영의 식견은 더욱 잘 발휘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국민들의 공정성에 대한 바람 또한 선진국 국민에 미치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필자는 12년 전에 한국과 미국의 기업문화 비교연구를 한 적이 있다. 두 나라의 기업들을 돌며 가장 바람직한 경영자상(像)에 관한 설문을 돌렸다. 응답에서 두 나라의 기업체 종사자들은 전혀 다른 성향을 보였다. 한국의 기업에서는 근로자들을 인간적으로 대우해주는 경영인이 가장 바람직하다는 대답의 빈도가 가장 높았다.

    미국에서는 공정한 경영자를 가장 훌륭한 경영자라고 했다. 합리적 기준에 의하여 공정하게 평가하고, 개인적 친소관계에 좌우되지 않는 경영자가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 경영자는 일한 만큼 정당한 보상을 해주므로 마음놓고 일에 전념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러한 차이는 합리성이 정착된 미국과 개인적 정(情)을 중시하는 한국의 사회적 풍토를 그대로 반영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지난 1997년의 아시아 금융위기에 대해 세계 일각에서는 아시아적 가치의 실패라는 지적을 했다. 특히 아시아의 연고주의로 인해 시장기제가 정상적으로 작동되지 않았다는 점이 유난한 비난을 받았다.

    한국사회도 그후 변화를 위한 엄청난 몸부림을 했다. 개혁의 큰 방향은 세계적 문맥에 의하여 이미 정해져 있었다. 연고주의와 정경유착을 극복하고, 좀더 합리적이고 투명한 제도를 확립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시장은 제대로 작동할 수 있게 되며, 시장의 논리에 입각한 구조조정 또한 단기간에 해치울 수 있다. 변화의 과정에서 주변화되는 집단이 이러한 추세에 저항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러므로 구조조정과 더불어 사회안전망을 구축하는 것이 또한 정부의 당연한 임무였다.

    이 모든 과정에서 국민적 합의를 끌어내는 것이 민주적 리더십의 의무다. 변화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갈등을 해소하는 가장 상식적인 일은 합리적 기준을 제시하는 것이다. 올바른 방향으로의 변화를 추구하기 위해 문제를 공정하게 처리하는 리더십이 필요한 것이다. 이러한 리더십을 일컬어 공평무사한 리더십이라고 한다.

    민주적 리더십의 세번째 덕목은 기본에 충실한 경영을 하는 것이다.

    국가의 기본은 민주적 질서를 지키고, 국민을 편안하게 하며, 미래의 국가위상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 것이다. 기업의 기본은 우선 재무구조를 튼튼히 하고, 종업원이 마음놓고 일할 여건을 만들어주며, 미래를 위한 투자를 꾸준히 해나가는 것이다. 기본에 입각한 경영과 정반대의 방식은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이다. 이는 민주적 질서의 형성과 정반대의 길을 가는 것이며, 국민을 불안하게 하고, 당장의 인기에 연연하여 미래의 설계를 게을리하는 것이다.

    민주적 질서는 법치주의에 근거한다. 법치주의란 법률이 정의로워야 하고, 그 법 앞에 만인은 평등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평등이란 하향평준화를 의미하는 평균주의가 아니라 기회의 균등을 말한다. 국민은 합법적이지 않은 물리적 폭력이나 권력의 자의적 폭력, 다중에 의한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어야 한다. 사회적 범죄와 익명성에 숨은 거리의 폭력에 대하여 단호하고 엄정하게 대처함으로써 국민의 자유와 인권을 지키는 것이 민주적 리더십이다.

    20세기 전반기의 자유주의자들은 이익집단 간의 절충과 타협에 의하여 사회적 과정이 이루어지는 이른바 다원주의사회론을 상정했다. 국가의 역할은 이들 이익집단들의 경쟁이 자유롭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규범을 제시하는 데 국한되는 것으로 생각했다. 다원주의사회론은, 국가는 중립적 규범의 제시자가 아니라 이익집단의 어느 한 쪽과 같은 편이 되어 다른 쪽을 압박한다는 조합주의적 국가론에 의하여 쉽게 극복되었다.

    이제는 세계화의 시대다. 국가가 사회적 계층의 어느 편을 더 선호하는가, 이익집단의 어느 편과 손을 잡느냐가 아니라 세계라는 판도에서 ‘대한민국주식회사’를 어떻게 경영하느냐에 더욱 초점을 맞추고 살펴보아야 할 때다. 이익집단의 눈치를 보면서 우리의 경쟁력을 상실하게 만든다면 기본에 충실하지 못한 리더십이다.

    민주적 리더십의 기본은 공동선을 추구하는 데 있다. 흔히 민주적 리더십을 전제적 리더십과 대비해 생각하는 동시에 한편으로는 나약(懦弱)한 리더십과 혼동하는 경향이 있다. 민주적 리더십이란 기본을 지킴에 추호의 여지도 허용하지 않고 법치주의에 한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것이다.

    기본을 지키는 리더십에서 필수적인 점은 미래를 희생하여 현재를 도모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기업의 유지보수비라든지, 교육비나 미래를 위한 개발비용 등 눈에 보이지 않는 필수비용을 절감하여 당기순익을 실현하는 경영자는 당시에는 칭찬 받아 좋을지 모르나 기업의 미래를 어둡게 한다.

    미래를 위하여 투자할 비용으로 현재의 어려움을 모면하거나, 후손에게 물려주어야 할 국토를 난개발로 몸살 앓게 만드는 일은 바로 이와 같은 잘못된 기업경영 방식과 같은 것이다. 기본을 지키는 리더십은 미래를 바라보며 현재를 일구어가는 리더십이다.

    ▶ 변혁적 리더십

    변혁적 리더십이란 변화를 창출하고 관리하는 적극적 리더십을 말한다. 세계가 변화하고 있는데 우리가 변화하지 않으면 되겠는가. 다른 기업이 새로운 기업환경에 무섭게 적응해 가고 있는데 우리 기업이 이보다 앞서서 가지 않으면 되겠는가.

    피터 드러커는 ‘변화리더의 조건’이라는 책에서 “우리가 미래를 예측하고 대비하기 위해 노력하는 목적은 내일 해야 할 일을 결정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일을 만들기 위해 오늘 해야 할 일을 결정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이러한 의미에서 변혁적 리더십이란 변화를 수동적으로 기다리고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의 계기를 만들기 위하여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지도력이라고 할 수 있다.

    변혁적 리더십을 구성하는 덕목은 첫째 비전능력이고, 둘째 변화창출능력이며, 셋째 위기관리능력이다.

    우선 비전능력으로부터 살펴보기로 한다.

    어느 누구도 변화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다. 예측은 항상 틀리게 되어 있다. 우리나라의 본격적 산업화는 경제개발계획 수립에 따라 시작됐고, 박정희 행정부의 공로는 이의 성공에 있음을 자타가 공인하고 있다. 그런데 제1차 경제개발계획으로부터 제4차 계획에 이르기까지 한번도 그 결과를 가까이 예측하지 못했다고 한다. 비전의 가치는 그 예측의 정확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변화하는 방향의 제시에 있는 것이다.

    비전은 미래에 대한 지식의 획득에서 출발한다. 미래의 지식은 시간과 공간의 압축에서 얻을 수 있다. 시간적으로 미래는 현재에 그 자태를 흘리고 있다. “오동나무 한 잎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가을이 멀지 않았음을 안다”는 옛 현인들의 가르침과 같다. 청소년 세대의 의식과 문화, 현재 개발은 완료되었으나 아직 실용화되지 않은 기술, 그리고 공상과학소설의 발상과 연극·영화 시나리오에 이르기까지 미래의 뿌리를 현재에서 살펴볼 수 있는 분야는 많다.

    공간적으로는 외국, 특히 선진국의 경우를 벤치마킹하는 것이다. 전기가 발명된 뒤 본격적으로 실용화되는 데 10년 내지 15년의 세월이 소요되었다. 1980년대 중반 미국 레이건 행정부가 대대적 구조조정 작업을 진행한 때로부터 10여 년 뒤인 1990년대 후반에 한국은 타율적으로나마 구조조정에 나서지 않으면 안되었다. ‘지구적으로 생각하고 지역적으로 행동하라’(Think Global, Act Local)는 의미는 여기에 있다. 미래의 뿌리는 현재에 있고, 한 나라의 사례는 세계의 맥을 따라 다른 나라에 적용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비전은 현실을 깊이 성찰함으로써 얻을 수 있다. 이 나라 이 시대의 현실을 직시하면 무엇을 해결해야 하는가에 대한 대답을 얻을 수 있다.

    시간과 공간의 압축을 통해서 얻는 안목은 상황의 비전이다. 현실에 대한 성찰로부터 얻는 비전은 의지의 비전이자 꿈이며, 실현하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간절한 소망의 비전이다. 이 시대를 이끄는 리더십은 이 두 가지 비전을 겸비해야 한다.

    변혁리더십의 두번째 요소는 변화창출능력이다.

    변화는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나가는 것이며, 비전은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실천하는 것이다. 전임 옐친 대통령과 달리 러시아 국민들의 안정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푸틴 대통령의 가장 큰 강점은 ‘실천’이라고 한다. 옐친 행정부 시절 말만 앞세우는 기성 정치권에 염증을 느낀 러시아인들이 푸틴 대통령이 보여준 행동력에 크게 감동한 나머지 푸틴은 안정된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면 비전을 실천할 수 있는 구체적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국가경영의 리더십과 기업경영의 리더십을 비교하여 살펴보면 두 경우 모두 실천력은 동일한 원천에서 나온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변화창출능력의 첫째 원천은 의지이다. 즉 변화를 창출하겠다는, 그리고 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거대기업 마쓰시타를 창업한 마쓰시타 고노스케 (松下幸之助) 회장은 생전에 일본을 이끌어갈 정치 경제 지도자들을 제대로 육성하겠다는 꿈을 가졌다. 그래서 그는 마쓰시타 정경숙(政經塾)을 만들고 이곳에서 배출된 인재들이 일본의 낙후한 정치문화를 개선할 수 있는 근간이 되기를 바랐다. 이곳에서 열린 한 강연에서 마쓰시타 회장은 지도자가 신념을 가질 것을 강조한 바 있다.

    “중요한 일, 꼭 성취해야 하는 일에는 목숨을 건다. 신념과 사명감을 가지고 일을 추진해야 한다. 언제나 기도하는 마음가짐이 지도자에게는 중요하다.”

    권력을 잡겠다는 절절한 마음이 아니라 국가 발전이라는 비전을 반드시 실천하겠다는 의지가 지도자의 자세에서 스며 나올 때에 국민의 지지가 뒤따르는 것이다.

    두번째로, 인재의 활용이 중요하다. 진부할 정도로 듣게 되는 적재적소의 인사원칙이 바로 전략의 첫걸음이다. 전(前) ‘대한민국 CEO’ 박정희는 머리맡에 있는 함에 정부와 기업의 간부급 이상에 대한 신상카드를 비치하여 항상 이를 관리했으며, 어떤 사람으로부터 깊은 인상을 받았거나, 어떤 사람에 대한 새로운 정보를 얻으면 직접 기존 카드에 이를 추가로 기재했다고 한다.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언급이 그를 찬양하는 뜻으로 비쳐지지 않기를 바란다. 그는 18년 이상을 통치하는 동안 뚜렷한 공로(功勞)와 더불어 뚜렷한 과오(過誤)를 남긴 사람이다. 박정희의 시스템적 인사관리가 그의 카드정리 작업을 통해 가능했다면 지금의 국가나 기업의 CEO 또한 데이터 베이스에 인재 파일을 보유하고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인재를 구하기 위하여 천하를 주유한다고 했듯이 인재를 제한된 채널에 의존해서 구하는 것은 곤란한 일이다. 펩시콜라의 CEO 웨인 켈라웨이는 상위 600 자리의 간부를 뽑을 때면 직접 면접에 나선다. 낮은 직위의 사람들을 뽑는 방식에 대해서도 항상 모니터한다. 질렛트의 알 자이엔은 업무 시간의 90%를 해외 여행으로 보낸다. 현장의 책임자들이 그와 같은 생각으로 경영하고 있는가를 확인하기 위해서이다. 이처럼 인재의 선발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비전을 공유하는 유능한 사람을 뽑는 것이다.

    조직원의 창의력 살려야

    변화창출능력에서 세번째로 중요한 요소는 조직활용능력이다.

    인재의 활용은 뽑을 때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조직이 충분히 가동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프로야구의 연륜이 깊은 일본에서도, 그에 비해 상대적으로 짧은 한국에서도 전년도에 아주 부진한 성적을 올렸던 팀을 맡아 바로 우승으로 이끈 감독들이 있다. 이들 감독이 성공을 거둔 원인은 선수들로 하여금 가지고 있는 역량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하고 그 힘을 팀의 승리로 집약할 수 있도록 한 데 있다고 한다.

    조직원들의 창의력과 적극성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 조직 운용능력이다. 사람이 조직을 움직여야지, 조직이 사람을 움직이도록 해서는 안된다. 예를 들어 장관을 자주 바꾸면 부처조직은 죽은 조직이 된다. 설거지를 많이 하면 그릇을 깨게 마련이다. 마음놓고 일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질적(質的)으로 우수한 일을 하게 하는 길이다.

    앞에서 예로 든 CEO들의 경우처럼 수시로 현장 확인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통하여 조직이 CEO와 비전을 공유하며 움직이는가를 점검해야 하는 것이다. 핵심 사항은 CEO가 직접 나서서 확인하되 나머지는 과감한 권한 이양을 통해 소신껏 일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이것이 리더십의 조직활용 능력이다.

    네번째로 변화창출능력에는 타이밍을 잡는 안목이 중요하다.

    현재 시장 1위 상품을 생산하고 있는 기업들은 대개 후발주자였다고 한다. 천신만고끝에 제품을 개발하여 온갖 역경을 무릅쓰고 시장을 개척해 놓은 선발주자가 유동성 위기나 예상하지 못한 악재로 쓰러지면 그 뒤에 진출한 후발기업이 과실을 거두는 사례가 드물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타이밍을 이야기할 때에 일반적으로, 너무 빠르지도 않고 너무 느리지도 않은 적절한 시점을 강조한다.

    개혁정책의 실천에 있어서도 이점은 마찬가지다. 특히 대통령제 아래에서 중요한 정책은 집권 초기에 순식간에 해치우는 것이 긴요하다. 스티븐 코비의 ‘성공하는 사람들의 일곱 가지 습관’에서 누누이강조하는 사항도 “중요한 일부터 먼저 하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대개 급하게 생각되는 부분을 먼저 하고 중요하지만 급하지 않은 사항을 나중에 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 지금은 정보화시대다. 정보기술은 몇 개월을 간격으로 차원이 다르게 발전하고 있다. 뒤늦게 정책을 시행하면 차라리 아니함만 못한 이유는 이미 세계적, 기술적 환경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타이밍을 맞출 줄 아는 능력은 리더의 직관력과 판단력에 있다. 이 능력은 학문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훈련이나 토론에 의하여 얻어지기보다는 리더의 인간적 자질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작은일과 큰일을 구분할 줄 아는 능력, 그리고 직관을 통하여 감(感)을 잡으면 승부를 걸 줄 아는 기백을 갖추어야만 타이밍의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다.

    변혁적 리더십이 갖추어야 할 세번째 자질은 위기관리 능력이다.

    변화하는 과정에서는 몇 번의 위기가 온다고 한다. 성공한 기업 중 위기를 넘기지 않고 오늘에 도달한 기업은 없다. 소프트웨어의 황제 빌 게이츠도 ‘성공은 형편없는 교사(敎師)’라고 말한다. 성공의 뒤에는 항상 위기가 찾아온다는 말이다.

    흔히 위기관리 능력에서 중요한 요소는 임기응변과 순발력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이것도 중요하다. 삼국지에서 제갈공명이 위나라 병사들에게 추격 당해 도저히 도망갈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을 때 성루에서 한가히 거문고를 켰다던가, 죽은 공명이 산 사마의를 물리쳤다는 마지막 계책이다.

    그러나 위기관리능력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위기를 감지하는 능력이다. 1950년대 미국의 AT&T는 지역통화사업과 장거리 및 국제전화사업부문을 분리하는 시기를 놓쳐 사업에 큰 손해를 보았다. 미국의 자동차회사 GM은 한때 “GM에 좋은 것은 미국에 좋은 것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낳을 정도로 성공했지만, 바로 그때 사업다각화를 하지 않으면 일본차에 밀릴 수 있다는 점을 알아채지 못하여 기업의 변화시기를 놓쳤다.

    두번째 위기관리 리더십이 갖춰야 할 것은 바로 위기를 관리하는 능력이다. 이는 평소에 위기에 대비한 준비가 얼마나 철저한가에 달려있다. 한 미국인은 필자에게 “한국에서는 건물을 지을 때 화재가 발생할 리가 있겠는가며 짓고, 도로를 건설할 때에도 사고가 날 리야 있겠는가며 건설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지 않다면 대형사고들이 어떻게 그리 자주 일어날 수 있겠는가 물은 적이 있다.

    이번 미국 뉴욕 테러사건 때 세계무역센터에서 그 수많은 사람들이 침착하게 대피한 과정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미국인들의 질서의식과 수준 높은 위기관리능력에 감탄했다. 임진왜란을 맞았을 때 이순신 장군의 위기관리능력은 불과 12척의 부실한 배로 100여 척의 왜적을 물리친 명량대첩에서 절정을 이룬다. 이것은 순발력이다. 절체절명의 순간에 이룩한 대첩의 상과는 이순신 장군이 위기를 예견하고 평소 준비를 했기에 가능했다.

    예상 못한 위기가 닥쳤을 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 정정당당하게 대처할 것인가, 아니면 임시방편으로 모면할 것인가. 기업의 명운도 뜻하지 않게 찾아온 위기에 대처하는 방식에서 확연히 갈라진다. 일본의 유키지루시유업은 지난해 자사의 우유를 마신 고객들이 식중독에 걸려 입원하는 사태가 발생했을 때 이를 모면하기 위하여 발뺌으로 일주일을 허비하다가 주가가 25% 이상 추락하고 75년간 쌓아온 명예는 물거품이 되었다.

    반면 미국의 존슨 앤 존슨(Johnson & Johnson)사는 이 회사에 불만을 품은 어떤 사람이 어린이용 제품에 유해물질을 탄 사태가 발생했을 때 일단 관련제품 전량을 수거하여 즉각 조사를 실시함으로써 몇 개의 이상제품을 추가로 발견해내고, 관련자를 검거할 수 있도록 했다. 이 사건이 있은 후 이 회사의 주식은 10% 이상 상승하고 고객의 신뢰는 더욱 탄탄해졌다.

    위기가 발생했을 때 필요한 리더십은 정직한 리더십이다. 원칙 위에서 행동하고 정도로 가는 행동이 힘을 얻는다. ‘묘수를 계속 두려다 보면 바둑을 그르친다’는 속담과 같이, 묘수로 위기를 타개한 예는 드문 경우에 속할 뿐이다.

    ▶ 지식 기반의 리더십

    현대사회에서 리더십이 지식 기반 위에 서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 절실하다. 지도자들이 세계의 변화를 읽지 못하여 우리는 남의 나라 식민지 생활을 해야 했다. 지금은 지식 수명과 기술 수명이 매년 짧아지고 있으며, 교육을 통하여 얻은 지식의 효용연도도 짧아지고 있다.

    그러므로 끊임없는 배움(自强不息)이 중요하다. 15세기, 세계최강을 자랑하던 중국을 옆에 두고도 과학과 의학, 예술의 수준에서 중국에 비견했고, 자주 국방으로 강토를 굳건히 지키고 넓힌 세종대왕의 치적은 세계사에서도 비슷한 경우를 보기 드물다. 세종대왕의 이와 같은 치적은 그의 끊임없는 독서에서 비롯됐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지식기반사회에서 지식을 구성하는 요소 또한 달라지고 있다. 지식경영의 첫걸음은 개인의 머리속에 있는 지식과 경험을 기업의 것으로, 혹은 사회의 것으로 공유함으로써 지식활용의 가능성을 폭발적으로 넓히는 것이다. CEO 개인의 지식과 경험은 이러한 총괄적 지식체계의 작은 한 부분일 뿐이다. 그러므로 CEO 자신뿐만 아니라 나라와 기업의 지식총자산이 끊임없이 확대될 수 있도록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이를 위해 나라와 기업이 삶의 공동체이면서 학습공동체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세계화 시대, 정보화 시대의 본질은 네트워크 조직에 있다. 리더는 모름지기 지식네트워크를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열린 지식망이 갖는 힘은 작은 참모조직이 갖는 힘에 비하여 엄청나게 클 수밖에 없다. 지식기반의 리더십이란 세계적 범위에서 지식네트워크를 활용하면서 자기 조직이 가지고 있는 지식총자산을 끊임없이 확대해나가는 학습형 리더십이다.

    산업사회로부터 지식기반형 정보화 사회로 진입한 21세기 초에 우리에게 필요한 리더십은 변화의 비전을 세우고 이를 실천해나갈 수 있는 지도력이다. 위기로 다가오는 이 변화를 우리의 커다란 기회로 전환시킬 수 있는 열린 안목의 리더십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리더십의 본질은 시대에 따라 변하는 것인가. 지금까지 살펴본 지식정보사회의 리더십은 동서고금의 리더십 교본이 말하는 기본 성격과 맥을 같이 한다.

    동양에서 말하는 리더십의 요체는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이다. 항상 자기성찰하고, 겸손하며, 말을 아끼고 남의 말을 진지하게 듣는 모습을 보여야 하는 것이다. 원칙을 세우고, 기본을 지키며, 신념으로 변화를 창출하는 필사의 노력을 기울이는 지도자가 필요하다. 개혁은 해도 좋고 안해도 좋은 것이 아니다. 개혁은 나라를 위기에서 구하기 위해 절실한 것이고, 조직을 새롭게 태어나게 만드는 필수의 과제인 것이다.

    서양에서 말하는 리더십의 기본은 무엇인가. 그것은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로 요약되는 지도층의 솔선수범이다. 전쟁이 나면 지도층이 가장 위험한 전선에 나가서 먼저 싸우고, 위험이 생기면 어린이와 여성 그리고 노약자를 먼저 보호하는 전통을 세운 나라가 강한 힘을 갖는다.

    고참은 편안히 앉아서 신참에게 모든 궂은일을 시키는 조직을 일컬어 사회조직론에서는 하등의 조직력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지도층의 자기희생과 솔선수범이 있을 때, 국민과 조직의 역량을 모을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것이다. 신념과 절절한 마음으로 호소할 때 모두가 한마음이 될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리더십의 본질은 때에 따라 변하는 것이 아니라 일관된 것이다. 교묘한 것이 아니라 단순한 것이다. ‘천진난만함이 나의 참스승(天眞爛漫是我本師)’이라는 말과 같이 순진하고 열린 마음으로 사물을 관조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힘이다. 원칙과 기본을 세우고 이를 지키는 것이며, 무엇보다도 정직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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