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11월호

“이젠 DJ그늘 벗어나겠다”

  • 김기영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hades@donga.com

    입력2005-02-21 14: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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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청와대 비서진은 대통령의 그림자. 당·정에 간섭말아야
    • - DJ에게 섭섭하지 않아, 기회 못살려 허탈할 뿐
    • - 영호남 아우를 후보는 나, ‘영남후보론’은 유효하다
    • - 지지율 급상승 확신, 11월15일 출정식을 두고보라
    김중권(金重權) 최고위원은 화술이 독특하다. 김최고위원 자신의 경험담을 얘기하면서 마치 3자가 얘기하듯 이야기를 전개한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지난 8월24일에 내가 청와대 개편을 요구합니다. 대통령을 만나 ‘집권후반기로 가기 때문에 국민의 소리를 들어주는 모습이 필요합니다. 그런 사람이 청와대 주변에 많지 않기 때문에 오늘날 문제가 발생한 겁니다. 그런 사람 중심으로 청와대를 개편해주십시오’, 대통령에게 그렇게 요구하는 겁니다.”

    주어와 술어가 조응하지 않고 시제(時制)도 일치하지 않는 독특한 말투는 김최고위원의 평소습관인 듯했다. 김최고위원의 측근들도 이를 지적하자 “그러고 보니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같다”고 했다.

    김최고위원은 최근 한두 달 사이 우여곡절이 많았다. 지난 8월말 대통령을 향해 당정개편을 요구하면서 자신을 포함한 국무총리 청와대비서실장 빅3 퇴진을 주장했으나 김최고위원만 당대표 자리에서 물러나고 말았다. 원내진출을 위해 내심 검토해온 10·25 서울 구로을 재보선 출마도 여권내 견제세력의 반발로 무산됐는데, 그 무렵 당사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자 당무거부 파문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아마 김최고위원으로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사건들일 것이다. 그런 체험담을 ‘관찰자시점’에서 얘기하는 김최고위원의 술회를 듣노라면 그가 느꼈을 격한 감정은 슬그머니 배제되고 줄거리만 남는다. 어쩌면 이 점을 노린 의도적인 수사(修辭)가 아니었을까.

    신동아와의 인터뷰는 지난 10월13일 오전 9시 서대문 임광빌딩 김최고위원의 변호사사무실에서 있었다. 이날 김최고위원은 두 가지를 얘기하고 싶어했다. 하나는 당대표를 그만두게 된 경위였고 또다른 하나는 대표를 그만둔 심경이었다.



    ―지난해 12월 대표 취임사에서 ‘강한 여당론’을 주창하셨습니다. 그 목표는 얼마나 달성했다고 평가하십니까.

    “강한 여당을 만들기 위해 당내민주주의를 정착시키고 정책생산의 주도권을 당이 확보하고자 했습니다. 당은 국민과 직접 접촉하는 곳이어서 민심을 정확히 알고 있습니다. 정책생산을 당에서 해야 민심을 제대로 반영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야당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함께 국정을 책임지는 상생의 동반자관계를 확립하고자 했습니다. 이것이 강한 여당론입니다. 이를 위해 당대표로 있으면서 당의 회의질서를 세웠습니다. 연수제도도 확립했습니다. 당이 정책주도권을 찾아왔습니다. 그러나 대야관계에서는 성과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야당이 정권쟁취 욕구만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아쉬움이 남습니다.”

    ―밖에서 보기에 한나라당은 김대중 대통령과 청와대를 집중 공격했고 그 과정에 여당인 민주당은 소외된 느낌이 든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야당의 정략적 사고 때문입니다. 자신들의 주장을 극대화하기 위해 사실과 다른 얘기로 청와대를 건드리면서 자신들의 주장을 극대화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김최고위원은 “청와대가 사사건건 당의 일에 간섭하는 모습이 외부에 드러났기 때문에 야당의 공격을 자초한 측면도 있다”며 말끝에 가시를 세웠다.

    김중권 최고위원의 좌우명은 세 가지다. ‘내가 먼저 무거운 돌을 들자’ ‘남자는 자기를 알아주는 주군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 ‘남이 먼저 배신하기 전에 내가 남을 배신하지 않는다’이다. 한결같이 우직함이 느껴지는 좌우명들인데 김최고위원은 얼마전 이런 좌우명의 ‘내공’을 시험받는 사건에 맞닥뜨렸었다. 8월말 ‘항명’으로 언론에 묘사됐던 대표직 사퇴를 둘러싼 파문이 그것이다.

    이에 대해 김최고위원은 “항명이라는 표현은 신문이 만들어낸 용어고 이제부터 진상을 얘기할 테니 잘 듣고 정리해달라”며 자세를 고쳐잡았다.

    “당대표도 바꿔주십시오”

    8월24일 오전 김최고위원은 김대중 대통령을 독대한 자리에서 청와대 개편을 요구했다.

    “집권후반기로 가기 때문에 국민의 소리를 들어주는 모습이 필요합니다. 그런 사람이 청와대 주변에 많지 않기 때문에 오늘날 문제가 발생한 겁니다. 그런 사람들 중심으로 청와대를 개편해주십시오.”

    이처럼 김최고위원이 대통령에게 정면으로 청와대 개편을 요구하기까지 김최고위원과 청와대 수석비서관들 사이에는 크고작은 감정대립이 있었다. 3·26개각 때 당대표인 김최고위원이 사전에 언질을 받지 못한 것은 오히려 작은 사건이었다. 그후로도 당대표를 흔드는 청와대의 움직임이 계속됐다는 게 김최고위원 측의 생각이었다. 10월25일 치러질 서울 구로을 재선거에 출마할 민주당 후보 선정에도 청와대가 개입해 김최고위원의 출마를 막았다고 믿고 있다. 김대통령에게 청와대 개편을 요구하면서 김최고위원은 자신의 팔도 과감하게 잘랐다.

    “여당이기 때문에 당정은 물려있는 거예요. 그래서 대통령에게 청와대 개편을 하면서 당도 개편해달라고 했습니다. 그것도 총장이나 정책위의장 정도를 바꾸는 것으로는 안된다, 당3역 교체니, 4역 교체니 하는 정도로는 당정개편의 효과를 극대화할 수 없으니 대표가 바뀌어야 한다고 요구했습니다. 대표가 바뀌어야만 대통령의 선택의 폭이 넓어진다고요.”

    김최고위원은 자신을 포함한 전면적인 당정개편 건의를 “대통령에 대한 충정”이라고 표현했다. 김대통령은 그 자리에서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 다만 “김대표의 얘기를 숙고해 보겠다”고만 답했다고 한다.

    그날 오후 김최고위원은 울산과 대구에 예정된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민주당사로 돌아오지 않고 곧장 공항으로 갔다. 지방 행사에 참석한 뒤 대구에서 하루를 자고 8월25일 서울로 올라왔다. 그날은 토요일이었는데 대표직 사퇴결심을 굳힌 김최고위원은 당사 사무실에 들러 책상을 정리했다. 그리고 비서에게 짐을 서대문사무실로 옮기라고 지시했다. 당시 김최고위원은 먼저 대표 집무실을 비운 뒤 8월27일 아침, 월요일마다 있는 확대당직자회의에서 정식으로 사퇴표명을 한 뒤 사회봉을 물려주고 회의장을 빠져나올 생각이었다.

    “형님, 재고해 주십시오”

    “그런데 같이 일했던 사무총장이나 원내총무나 정책위의장에게 이 얘기를 귀띔하고 나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총장과 총무를 찾은 겁니다. 박상규 사무총장은 인천에 있어 전화로 얘기했고, 이상수 총무가 내 방에 왔어요. 그래서 내가 ‘어제 대통령을 만나 이런저런 말씀을 드렸고 대표직을 사퇴하기로 했다’고 얘기를 하고 월요일까지 일체 외부에 발설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어요. 이상수 총무와 나는 고려대 선후배 사이이기 때문에 사석에서는 나를 형님이라고 부르는데 이총무가 ‘형님 재고하십시오’ 하고 말리는 거예요. 이미 결심했기 때문에 말릴 단계가 아니다, 이렇게 나가는 것이 대통령을 살리는 길이다, 이 정부를 살리고 이 당을 살리는 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면서 오히려 이총무를 달랬습니다. 마침내 이총무도 ‘알겠습니다. 그럼 외부에 일체 말하지 않겠습니다’ 하며 받아들이더라구요.”

    다음날인 일요일 김최고위원은 경기도 포천 아도니스골프장에 갔다. 민주당팀과 서울대 교수팀, SK그룹팀과 친선 골프를 쳤다. 시합을 마친 뒤 저녁을 먹는 자리에서, 서울대는 서울대대로 SK그룹은 SK그룹대로 학교나 회사에 대해 선전했다.

    민주당 차례가 돼 김최고위원이 나섰다. 김최고위원은 당에 대해 몇 마디 얘기를 한 뒤 “내가 내일 안으로 중대한 정책 결단을 할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참석자들 사이에 작은 파문이 일었다. 김최고위원이 말한 ‘중대 결단’을 대권도전으로 이해한 참석자들은 “김대표 열심히 밉시다” “민주당을 맡을 수 있도록 뒷받침합시다”하며 잔을 부딪치기도 했다. 이런 ‘소동’을 김최고위원은 가만히 보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때 이상수 총무로부터 전화가 왔다. 당장 만나달라는 것이었다. 김최고위원이 “지금 골프장에 있어 곤란하다”고 하자 이총무는 “내일(8월27일) 새벽에 찾아가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다음날 새벽 이총무가 이호웅 대표비서실장과 함께 김최고위원의 북아현동 자택을 찾아왔다. 이 자리에서 이총무는 거듭 대표사퇴를 말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은 그만둘 때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거듭 이총무의 반대를 접하면서 김최고위원도 심사숙고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사퇴의사를 철회했다.

    큰 결정을 했다가 철회한 뒤라 김최고위원은 그날은 당사에 나가지 않기로 했다. 결근의 이유로는 심신이 피곤해 병원에 입원하는 것으로 했다.

    “그런데 8월27일 월요일 아침에 조간신문을 보니까 내가 구로을 재선거에 출마하지 못한 것 때문에 투정부리는 사람으로 나 있더라고요. 청와대도 나를 막 공격하고 있었구요. 이것이 나를 굉장히 자극한 겁니다. ‘그래서 안되겠다, 내가 뭔가 한마디를 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다음날인 화요일에 청와대 비서실을 공격한 것 아닙니까. 비서실의 기능과 자세에 대해 치고 나간 겁니다. 파동의 내막은 이렇습니다. 내가 당무를 거부한 것으로 돼 있는데 그건 아닙니다. 새로운 정치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방안의 일환으로 당직사퇴를 하겠다 한 것이 이렇게 각색된 겁니다.”

    ―그러니까 이 진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김대통령을 포함한 몇몇 분이군요.

    “그렇죠. 대통령이 알고 박상규 사무총장이 알고… 이상수 총무가 가장 잘 안다고요.”

    ―그러면 왜 당시에 적극적으로 해명하지 않으셨나요.

    “일일이 해명하기도 그렇고, 다음날 임동원 통일부장관 해임건의안 파문이 터지면서 정치권의 포커스가 그리 맞춰져 버렸습니다. 어쨌든 당의 대표로서 이것은 이렇다하고 말할 계제도 아니고 입장도 아니고 해서 그냥 덮어버린 거죠.”

    김최고위원의 청와대 비서실에 대한 불만은 대단해 보였다. 시간이 지난 지금이야 차분하게 말하지만 청와대와 갈등이 극에 달했을 무렵, 그가 느낀 분노는 대단했던 것 같다. 김최고위원 자신이 주인공인 얘기를 3인칭 시점으로 설명하는 도중에도 목소리가 커졌다.

    ―김최고위원께서 청와대 비서실장을 지내셨는데, 비서실장 시절, 여당 대표나 중진들이 대통령 면담을 요청할 경우 어떻게 하셨습니까?

    “문호가 열려있었죠. 누구라도 대통령을 만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지금은 어떻습니까.

    “지금은 잘 모르겠는데….”

    ―9월6일인가요. 대통령께 최고위원 회의 발언록을 전달하려 했다가 못한 사건이 있었죠.

    “9월6일이라면 정기 최고위원회의였을 겁니다. 전날 워크숍 결과를 집약하기 위한 회의였는데, 최고위원들의 생각을 알아보기 위해 내가 한 사람 한 사람을 다 지적했다구요. 그렇게 집약된 얘기가 당시 신문에 나고 있는 당대표, 국무총리 하마평으로는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계기를 못만든다, 이걸 대통령에게 진언해서 재고하도록 하자는 게 최고위원들의 공통된 의견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의견을 모아 대통령께 시정해달라고 요구하기로 한 겁니다. 그래서 청와대에 대통령 면담시간을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이날 김최고위원의 대통령 면담은 성사되지 않았다.

    “보통때 같으면 그런 일은 전화로 해도 돼요. 그러나 전화로 보고드리기에는 중요한 사안이라서 청와대에 정식으로 대통령 면담요청을 한 거란 말입니다. 그런데 그날 따라 대통령이 큰 행사가 몇 개 있었어요. 하나 기억나는 것이 평통자문회의였습니다. 오후 두 시인가 세 시인가 열렸고 오전에도 청와대 밖에 큰 행사가 하나 있었어요. 그래서 시간을 못맞춘 거예요, 대통령하고. 면담시간을 맞추려고 노력하던 중에, 오전 11신가 불쑥 이한동 총리가 유임의사를 표명한 겁니다. 이총리가 그렇게 입장을 표명하고 나니까 이제 대통령을 만날 일이 없어졌습니다. 실효(失效)가 난거죠.”

    ―당정개편을 하자는 의견을 전달하려 했는데 개편이 불가능한 상황이 발생했군요.

    “그렇죠. 한쪽에서 유임의사를 밝히고 말았으니까요. 참 허탈해지더군요. 그래서 남궁진 정무수석(현 문화관광부 장관)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여보, 이 일이 이상하게 됐는데 대통령 만나면 뭐하겠소. 그러면 오늘 최고위원회의에서 논의됐던 발언록을 줄테니 당신이 대통령께 드리라’고 하고 전달한 겁니다. 그런데 김근태 최고위원이 어떤 모임에서 대통령이 면담을 거절했다고 말하는 겁니다. 그래서 내가 설명을 해줬다니까요. 김근태 최고위원한테도, 전체회의에서도 설명하고…그런데 김근태씨는 한번 한 말을 자꾸 원용하더라구요. 대통령이 면담을 거부한 것처럼 설명하는데 사실은 그게 아닙니다.”

    ―남궁수석에게 전달한 발언록이 대통령에게 전달됐습니까?

    “그건 모르죠. 정무수석에게 그걸 킬(kill) 해버렸는지 보고했는지 나는 잘 모르죠. 아마 보고했을 겁니다. 그걸 대통령에게 보고 안할 이유가 없습니다.”

    ―청와대의 경쟁력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십니까? 이번 당·정·청 개편에서 가장 인적쇄신이 안된 곳이 청와대라는 비판도 있습니다. 청와대 비서실장의 경험을 근거로 바람직한 청와대 비서실 개혁방안이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누차 강조했지만 청와대는 대통령의 최측근에서 국정전반에 걸쳐 보좌하는 기능을 갖고 있습니다. 따라서 전문성을 갖춘 능력있는 인재들이 포진돼야 합니다. 청와대 비서실은 정책조언 기관이지 집행기관이 아닙니다. 비서진은 대통령을 그림자처럼 모셔야지 정부나 당에 간섭하는 모습이 비쳐져서는 안됩니다.”

    김최고위원은 비서실의 문제를 지적하고 나섰지만, 결국 최종 인사권자는 김대통령이다. 청와대 인사개혁을 받아들이지 않은 사람도, 김최고위원의 대표직 사퇴서를 받아들인 사람도 인사권자인 김대통령이다. 김대통령에게 서운한 감정이 없었을까?

    “섭섭한 마음은 없습니다. 대통령은 우리와 달리 국정전반을 생각하시는 분입니다. 그분만의 생각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도 변함없는 생각은 내가 인사쇄신 의지를 밝혔을 때가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 있는 계기였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결과가 그렇지 않아 당내의 많은 사람들이 허탈해 하고 있습니다.”

    “대권도전 하겠다”

    ―정치권에서는 김최고위원을 대선주자 가운데 한 분으로 분류합니다. 그러나 아직 공식 출마의사를 밝히신 적은 없는 것으로 압니다. 이번 기회에 분명한 의지를 밝히실 의향은 없으신지요?

    이 질문이 끝나기가 무섭게 김최고위원은 “대선에 출마할 것”이라고 ‘정답’을 말했다. 이어서 자신이 본격적으로 대선후보로 나설 경우 현재의 상대적으로 저조한 지지율을 끌어올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10월말부터 영남과 호남지역을 순회 한 뒤 11월15일 후원회에서 공식 대권도전 선언을 할 거예요. 지금까지는 대표로 있으면서 단 한번도 대권도전의사를 밝힌 적이 없습니다. 대표시절 인터뷰를 할 때도 대권도전의사를 표시해본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안한다’고, ‘관심없다’고 이렇게 한 겁니다. 그러니 정치권 사람들이야 나를 대권후보로 봤겠지만 일반 사람들에게는 김중권이가 대권도전을 하거나 말거나 관심이 없었죠. 이런 상태에서 여론 조사하면 당연히 지지율이 낮죠. 내가 만일에 대표로 있는 동안 대권도전의사를 피력하고 그런 행보를 하고 조직을 하고 자금을 투입하고 그랬다면 내가 벌써 1등 했을 거예요.”

    김최고위원은 그를 자유롭지 못하게 했던 족쇄가 풀린 듯 대권도전에 대한 포부를 펼쳐보였다. 김최고위원은 “나도 인기발언할 줄 안다. 하지만 단 한번도 그런 적 없다”고 말했다.

    “나는 비서실장을 거쳐서 대통령에 의해 대표로 임명됐습니다. 누가 봐도 김중권이는 대통령의 그늘에 있는 사람입니다. 대통령의 인기가 오르면 김중권의 인기도 오를 것이고 대통령의 인기가 하락하면 같이 떨어지는 거예요. 이런 요인이 있는데 9개월 동안 당대표를 맡겨놨는데도 지지도가 안올랐다는 것은 피상적인 공격이지 진면목을 보고 하는 평가가 아닙니다. 두고보세요. 11월15일 대권도전 선언을 하게 되면 정말 달라질 거예요. 확신합니다.”

    ―확신의 근거라 할 수 있는 김최고위원만의 장점은 무엇입니까?

    “민주당의 최고 목표는 정권재창출이에요. 그럼 정권재창출을 어떻게 할거냐 말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영남과 호남의 협력입니다. 영호남의 협력없이 다음 정권 창출될 것 같습니까. 설령 된다 해도 지금처럼 갈등이 심화되고 반목과 질시가 계속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민족적으로 불행해져요. 그렇다면, 가장 사람이 많은 동네, 국민의 3분의1에 달하는 영남의 민심을 얻어오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겁니다. 영남민심 얻는 사람이 다음에 이긴다니까요. 한나라당이 얻어가면 한나라당이 이기고, 우리가 얻어오면 우리가 이기는 겁니다. 영남의 민심을 누가 얻어올 겁니까. 영남 정서를 아우르면서 민심을 회복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이것이 ‘영남후보론’인데 이 말은 참 조심스럽습니다. 영호남 화합의 전도사인 내가 영남후보론을 말하면 다른 쪽 사람들이 반발할 수 있습니다.

    “영남을 얻어야 이긴다”

    그러나 정치현실은 무시할 수 없습니다. 영남 민심만 가져오면 되느냐, 안된다 이겁니다. 영남민심과 호남민심을 아우르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입버릇처럼 말하지만 다음 정권은 영남과 호남의 협력 속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전국적으로 고른 지지를 받아야 합니다. 그러면 다음에 창출된 정권은 지금처럼 비틀거리지 않는다 이겁니다. 지금 영남은 온통 ‘반DJ’아니예요? 민주당이 전국정당으로 보이지 않는 이유는 거기에 있는 것 아닙니까?

    국정운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경험입니다. 지금 나와 있는 대권주자 가운데 전국단위의 국정운영을 해본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장관 해본 사람 있지요. 부분만 관리해본 사람들은 있어요. 하지만 전체를 보지 못하고 정권을 잡았을 때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기지 않습니까. 나는 적어도 지난번 정권과 이번 정권에서 국정 전반을 총괄하고 운영하는데 전력을 투구했던 사람입니다. 이건 다른 후보가 갖고 있지 않은 겁니다. 굉장히 중요한 겁니다.

    ―영남 민심을 잡으려면 결국 김대통령과는 차별화 전략을 써야하지 않겠습니까?

    “지금까지 정권 계승자들이 전임자와는 차별화 전략을 써왔다는 말입니다. 부정해놓고 올라서는 것이죠. 나는 그것이야말로 참으로 잘못된 것이라 생각합니다. 지난번 분들이 좋은 정책을 쓰고 그 방향이 옳다고 하면 승계해야 합니다. 승계해서 효과를 극대화해야 합니다. 나는 지금껏 대통령의 그늘에 있었습니다. 그늘에 있으면 좋은 점이 너무 많지요. 대통령이 펼치는 개혁정책이나 대북정책 등 훌륭한 정책들은 전부 계승해야지요. 그러나 부족한 점을 채우면서 보완해가는 노력을 해야지요. 그래야 국정운영이 순조롭게 되고 계속성이 생기는 거죠.

    ―김최고위원에 대한 평가 가운데 여당이라는 ‘정치적 양지’만을 찾아다녔다, 자기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는 비판이 있습니다.

    “그것 역시 나를 제대로 보지 못한 평가입니다. 두고보십시오. 분명히 달라진 모습을 보게 될 겁니다.”

    ―당내 경선에서는 대의원들의 선택이 중요합니다. 김최고위원께서는 대표 취임 직후 대의원 지지도가 급상승했다가 최근에는 떨어진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대의원 지지를 회복할 방법은 있습니까?

    “나에 대한 대의원들의 지지도가 떨어질 무렵, 다른 주자들은 끊임없이 대의원들과 접촉했어요. (일부 경선 후보들은) 지방을 누비고 대의원들의 집을 방문하고, 대의원들이 교육받는 연수원에 와서 선물 돌리고, 심지어 후보 부인이 연수원에 와서 같이 잠자고, 놀아주고 했습니다. 그렇게 하면 지지도가 오르게 돼 있지요. 그걸 다 얘기하면 누워서 침 뱉기이기 때문에 말하지 않겠어요. 하지만 당대표가 그런 짓 할 수 있나요? 대의원들은 경선만 보는 것 아니에요. 앞으로 있을 본선을 봅니다. 이회창씨를 본선에서 꺾을 사람이 누구냐 이겁니다. 대의원들은 그걸 볼 겁니다. 대의원들은 영남에서 많은 인구를 포용하고 있는 사람을 내세울 때 승산이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두고보세요.”

    ―구 여권출신인 탓에 김최고위원이 민주당의 정체성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지적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습니다.

    “어느 시대 어느 정권에서 정치를 시작했냐보다 얼마나 바르게 성실하게 살아왔느냐가 중요합니다. 그런 점에서 나를 비난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정직하고 성실하게 일하고 정말 믿음을 가지고 정치를 했다는 평가를 듣고 있습니다. 40대에 발탁돼 민정당에 들어갔을 뿐, 부정을 저지르고 부담을 주는 행위를 한 것 한번도 없습니다. 오히려 법사위원장을 하면서 날치기하라는 주문에도, 단 한건도 날치기를 해본 적 없어요. 민정당에 몸을 담았다고 해서 나를 비난하는 것은 잘못이에요. 김영삼씨 같은 사람은 자유당 국회의원으로 시작했잖아요. 장택상씨 비서를 했구요. 그런 사람이 나중에 자기 목소리를 내면서 큰 것 아닙니까.”

    ―김영삼씨 얘기가 나왔으니까 하는 말인데 정가에 김영삼, 김종필 두 김씨의 연대가 뜨거운 관심사입니다.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글쎄요. 그게 되겠어요? 당을 만드는 것은 자유입니다. 이념이 같으면 얼마든지 당을 만들 수 있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는 동서화합의 방향으로 가고 있는데 특정지역을 배경으로 해서 당을 만드는 것을 국민들이 원하지 않을 겁니다.”

    ―한나라당 김용갑 의원은 현정권을 ‘친북정권’이라고 표현했습니다.

    “통일을 위해서는 햇볕을 보낼 수밖에 없는 겁니다. 군사적 대결로 북한을 굴복시킬 수 없다는 점은 누구나 다 압니다. 누구는 목소리 높일 줄 몰라서 목소리 내지 않는 게 아닙니다. 현정권이 친북정권이다 하는데 참 어이가 없습니다. 만약 그 사람들 주장처럼 계속 긴장을 고조시켜 북과 대결하면 그게 제일 쉬워요. 그건 누구를 시켜도 할 수 있어요. 어린애를 시켜도 할 수 있는 거예요.

    “DJ 대북정책 계승하겠다”

    ―그렇더라도 북한은 까다로운 상대입니다. 이산가족상봉을 돌연 연기한 것만 해도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지요. 까다로운 상대지요. 그렇다고 우린 우리대로 가자, 그렇게 하면 우리가 얻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걸 생각해야 해요.

    ―대북 포용정책에 대해서는 김대통령의 정책을 계승하겠다는 말씀이군요.

    “계속 계승해가야 합니다.”

    ―그러면 극복해야할 정책은 무엇일까요. 대통령의 정책 가운데서요.

    “절차의 문제겠지요. 대북관계에서 주관적 상호주의든 전략적 상호주의든 국민적 동의를 넓혀가는 노력을 해야겠지요. 국회에서 논의를 하고 결론을 얻는 노력을 더해야 할겁니다.”

    마지막으로 김최고위원의 이력과 관련한 몇가지를 물어보았다. “서울대 출신이 아니고, TK의 본류라 할 수 있는 경북고 출신이 아니라는 점을 콤플렉스로 생각하지 않냐”는 질문에 웃음부터 터뜨렸다.

    “그 점에 대해서는 한번도 생각해본 적 없어요. 대구 경북 돌아보니까 그런 생각하는 사람들 하나도 없었습니다. 대구 경북 지역에는 경북고 나온 사람보다 안나온 사람이 훨씬 많습니다.”

    ―독실한 기독교인이신 것으로 압니다. 중대결단 앞두고 기도하신다고 하는데 대권도전 결심하면서도 기도를 하셨습니까?

    “두세 달 전쯤인가 서울 하림각에서 약수교회 목사님과 장로님들을 모시고 기도를 했습니다. 그때 대권출마 마음을 굳혔습니다.”

    ―종교와 정치의 관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기독교인이시면서 절에도 가고 하셔야 했는데, 마음의 갈등은 없으셨습니까.

    “그게 참 어려운 문제입니다. 내가 절에 가서 합장하는 것을 보고 뭐라 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불교행사에 가서 합장하는 것은 불타를 보고하는 것 아니에요. 스님들에게 인사를 하는 것으로 그쪽의 인사법을 따른 것일 뿐입니다.”

    김최고위원은 시종 경쾌한 어조로 인터뷰에 응했다. 어떤 질문에도 막힘이 없었고 때로는 평소의 김최고위원답지 않은 격한 표현을 써 상대를 놀라게 하기도 했다. 지금까지 어떻게 이런 말들을 참고 살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인터뷰 도중 “확신한다” “두고보라”는 장담도 여러차례 했다. DJ의 그늘에서 시작했지만 이제 그 그늘을 벗어나 홀로 서려는 각오가 비상하다는 느낌도 들었다. 과연 김최고위원의 도전은 성공할까. 그 결과와 관계없이 대권 판도에 만만찮은 변수가 등장했다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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