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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인 성공학|(주)한일맨파워 박정부 사장

1000원짜리 제품으로 1000억 수출한 巨商

  • 곽희자 < 자유기고가 >

1000원짜리 제품으로 1000억 수출한 巨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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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비상을 꿈꾸는 박정부 사장, 그는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사람이다. ‘보따리 장사’로 시작해 1000억원대 매출을 올리는 거상(巨商)이 되기까지 그가 기울인 노력은 확실히 남다른 데가 있다. 처음 다이소와 거래할 때 “먼저 수출상품을 창고까지 배달해주고, 불량품이 있을 때는 즉시 되가져 가겠다. 물건에는 도착 즉시 판매가 가능토록 포장과 가격표를 부착해 주겠다. 마지막으로 대금은 상품이 팔린 후 받겠다”고 제안했다.

손 하나 까닭하지 않고 판매할 수 있게 해주고, 물건값도 다 판 후에 달라고 하자, 다이소는 흔쾌히 승낙했다. 상대방의 편리와 필요를 채워준 적극적인 배려로 까다롭기로 유명한 다이소와 거래를 튼 것이다. 첫거래를 한 지 6개월 후 1000만원어치의 물건이 팔렸다. 1000만원으로 시작된 거래가 14년의 세월을 흐르면서 1000억원이 넘는 규모로 성장한 것이다.

박사장은 다이소와 거래를 시작한 뒤 역시 제대로 된 제품만이 매출을 올릴 수 있다고 판단, 최고의 제품 만들기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래서 그는 좋은 상품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날아갔다.

그의 생산업체 선정은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1000원짜리 제품이니 대충해도 되겠지’하고 생각하는 업체들은 나가떨어지기 일쑤다. 선정된 업체에 견본품 대로 제품을 만들게 한다. 제작과정 동안 견본품과 똑같은 제품이 나올 때까지 다시 만들게 한다. 이런 까다로운 과정을 견디지 못한 업체들은 제작과정에서 손들고 만다. 이렇게 완벽한 제품 만들기를 되풀이하다보니 제품 하나 나오는데 짧게는 3개월, 길게는 6개월에서 1년이 걸리기도 한다. 불량률이 0%여야 한다.

“제품은 곧 나의 얼굴입니다. 흔히 10만 개에서 한두 개 불량품이 나올 수도 있다 생각하는데 이 상품들은 손님들과 1대 1로 각각 만나게 됩니다. 어쩌다 하나 생긴 불량품이 손님 손에 들어갔을 때 그것은 그 제품 전체에 대한 이미지 손상을 가져오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바로 내 신용에 금이 갑니다. 그러니 불량률은 제로여야 합니다.” 그래서 그는 생산업체와 계약을 하기 전 제품에 하나라도 불량이 생기면 전량 반품한다는 서약서를 받는다.



이렇게 철저하게 서약서를 받는 것은 서로가 잘못 돼 손해나는 일이 없게 하기 위해서다. 대신 확실한 제품을 생산하는 업체에겐 제품이 선적되면 일주일 이내로 현금 결제한다. 한번 거래를 한 업체들은 꾸준히 거래를 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신뢰가 쌓이면서 견본품만 건네줘도 확실한 제품을 만들어 오는 업체들도 생겨났다. 박정부 사장과 협력업체의 장인정신이 오늘의 한일맨파워를 있게 한 것이다.

박정부 사장은 한번 개발한 제품의 생산에만 매달리지 않고 항상 신상품을 개발해 주문을 받으러 간다. 초창기 그는 매달 50∼100개의 신상품을 들고 거래처를 찾아갔다. 이 상품들은 매장에서 90% 이상이 소비자들에게 호응을 얻었다.

요즘은 월 400∼500개의 신상품을 개발해 가져간다는 박사장은 “많은 제품을 개발하다보니 초창기보다 적중률이 떨어진 편”이라고 했다. 지금 적중률은 30% 정도다.

이처럼 높은 매출을 올리며 성공할 수 있었던 데는 박사장의 노력도 크지만, 일본 경제의 장기불황이 크게 작용했다. 어느 민족보다 유명브랜드를 좋아하는 일본인들이지만 10여 년 이상 경기가 침체되면서 실속 위주로 소비행태가 바뀐 것이다.

일본의 경제 불황이 기회

실속형으로 소비행태가 바뀌면서 ‘다이소100엔숍’은 일본인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다. 30년 동안 100엔을 유지하며 일본인의 소비문화를 변화시킨 다이소100엔숍은 이제 일본인들이 가장 많이 찾는 매장이 되었다. 일본 경제의 장기불황으로 다이소산업이 커지면서 덩달아 수출업체인 한일맨파워도 성장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박정부 사장이 무역업에 뛰어든 것은 1988년, 서울올림픽이 개최되던 해다. 한양공대를 졸업하던 해인 1973년, 전구 생산업체인 풍우실업에 들어간 그는 16년간을 생산공장에서 일했다. 공장장으로서 생산관리를 맡았던 그는 1988년 회사가 노사분규로 시끄러워지면서 관리책임자로서 조직생활에 회의를 갖게 됐다. 이때 자신의 사업을 맡아달라는 동생의 부탁을 받고 사표를 썼다.

당시 그의 나이 마흔다섯이었다. 동생이 경영하는 ‘한일맨파워’는 일본 기업체와 한국 기업을 연결, 기업연수를 대행하는 업체였다. 그는 동생의 사업체를 맡은 뒤 회사명만 남기고 직원들을 모두 내보냈다. 그리고 보유하고 있던 회사주식을 판 돈 일부와 저축해 놓은 돈을 합해 5000만원으로 서울 역삼동에 8평짜리 사무실을 얻고 영업직원 1명과 경리직원 1명을 뽑아 새롭게 사업을 시작했다. 기존의 연수교육에 무역업을 더하기로 했다. 연수사업은 사람을 모아 일본에 있는 동생에게 연결시켜 주기로 하고 주로 무역업에 치중했다. 그러나 무엇을 만들어 팔지 막막했다.

“먼저 회사에선 제품생산을 했기 때문에 하루에도 컨테이너 몇 대씩을 내보내곤 했는데 막상 내 사업으로 무역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무엇으로 컨테이너 하나를 채워 내보낼까 막막했어요.”

그는 무역 역시 동생의 도움을 받았다. 동생으로부터 일본에서 장사를 하는 이들을 소개받아 팔릴 만한 물건들을 주문받아 제품을 구한 뒤 일본에 들여가 팔았다. 잘 팔릴 만한 물건은 견본품을 가져가 주문을 받아오기도 했다. 술집에서 손님들에게 주겠다며 재떨이를 주문하면 재떨이를 만들고 물컵을 주문하면 물컵을 만들어다 주는 식이다.

이렇게 보따리 장사를 하던 중 백화점에서 주방기구를 파는 사람을 통해 100엔숍과 디스카운트 숍, 슈퍼마켓을 하는 업자들을 소개받았다. 박사장은 이들에게 제품을 창고까지 배달해주고 불량품이 나오면 즉시 되가져가며 일본에 도착 즉시 판매가 가능토록 포장과 가격표를 부착해 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물건값은 물건이 팔리고 나면 달라는 식의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했다.

그러나 대부분 소량주문이다 보니 생산업체들이 돈이 안된다며 일감을 맡으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물건을 만들어오면 현금으로 결제를 해주겠다며 설득했다. 그러나 어렵게 설득해 제품을 만들어와도 견본품과 다른 경우가 허다했다. 초창기엔 반품 사태도 많이 일어났다.

다이소 회장의 분노

1995년, 박사장은 뜻밖의 수난을 겪는다. 어느 100엔숍 업체로부터 수출대금으로 받은 어음이 부도가 난 것이다. 부도액은 모두 2억5000만원이었다. 이 부도어음은 일본쪽 일을 맡은 동생이 책임지고 해결하기로 해 다행히 큰 피해는 없었으나 이 일로 충격이 컸다.

설상가상, 이번엔 연수교육을 맡아하던 직원들이 회사 자료를 모두 빼내 독자적으로 회사를 차리는 일이 벌어졌다.

“두 번씩이나 사람들에게 배신당하고 나니까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었어요. 특히 직원들의 경우 영업장에서 서로 얼굴을 부딪쳐야 하니 더 괴로웠어요.”

그러나 그는 자신을 배신하고 떠난 직원들에게 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일어서야 한다는 각오로 힘을 냈다. 이 무렵 박사장은 무역 쪽도 재정비했다. 다른 거래처들과 서서히 관계를 끊으면서 다이소 100엔숍과는 거래를 확대해갔다. 이렇게 한곳에 거래가 집중되면서 주문량도 늘고 관리도 쉬워졌으며 매출도 늘어났다. 그러나 다이소와의 거래가 늘 쉬웠던 것만은 아니다.

“한번은 일본 다이소산업에 들어가 테이블 몇 개를 차지하고 그곳 바이어들과 상담을 하는데 갑자기 한 테이블이 뒤집혔어요. 깜짝 놀라서 보니까 야노 다이소 회장이 뭐라고 큰 소리를 치고는 안으로 들어가요. 우리 직원에게 테이블을 정리하라고 하고 ‘신중하게 행동하라’고 주의를 줬어요. 그런데 조금 있으니까 야노 회장이 다시 나와서 또 그 테이블을 엎으면서 ‘이런 식으로 하면 안된다’고 버럭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어요. 그날 저녁 야노 회장이 같이 저녁을 먹자고 해요. 그래서 나갔더니 ‘오해는 하지 말라, 사업은 전투고 긴장감 없이 성의없는 상품을 가져오면 박사장도 망하고 나도 망한다. 우리가 롱런하려면 이건 서로가 지켜야 한다. 절대 방심해선 안된다’며 일침을 가하더군요.”

이후로도 박사장은, 야노 회장의 성에 차지 않은 물건을 가져와서 상담을 하면 그 자리에서 물건에 침을 뱉으며 “이런 제품을 가져와서 다이소와 상담하는 것은 다이소를 능멸하는 것”이라며 집어던지는 것을 보며 ‘절대 방심하면 안된다’며 결의를 다졌다고 한다.

오직 제품개발에만 매달려 달리느라 박사장은 그동안 내부조직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 허점이 최근 곳곳에서 발견돼 그는 요즘 내부 조직정비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한일맨파워와 다이소아성산업의 사원은 400명이다. 박정부 사장은 “직원들 각자가 자기 몫을 제대로 감당해 내가 물러나도 굴러갈 수 있는 기업으로 성장시키는 것이 꿈”이라고 말한다.

신동아 2001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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