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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르포

韓·中 보따리 무역상 ‘따이공’과의 3박4일

  • 조동수 < 소설가·85년 신동아논픽션 당선작가>

韓·中 보따리 무역상 ‘따이공’과의 3박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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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이공들은 대개 선실에 자기 고정 자리를 정해두고 선반에 사물함까지 마련해놓았다. 갈아입을 겉옷이며 속옷, 세면도구, 화투장, 바둑판, 소주에 안주, 컵라면 따위들을 배 안에 두는 것이다. 배가 곧 집이며 한살림이 거기 있다.

2001년 광복절 오후에 출항한 동춘호에는 166명의 승객이 탔다. 이중 순수 관광객은 60명 정도일 것으로 실무자들은 파악했다. 그렇다면 따이공은 100여 명이며, 결국 통관거부로 인해 50명 정도가 승선하지 못한 것이다. 안내를 하기로 한 내 친구도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배는 항구를 빠져나와 망망한 바다를 헤쳐나가고 있었다. 짙은 구름이 낮게 내려와 펄럭이고 있어서 동해의 낙조는 기대조차 할 수 없는 날씨였다.

“안내실에서 말씀 드립니다. 소무역 사장님들은 잠시후 회의가 있을 예정이오니 316호실로 모여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선상 안내방송이었다. 내가 배낭을 내려놓고 고스톱 판을 구경하고 있는 큰 선실이 바로 316호실이었고, 따이공들은 스스로 자율위원회를 결성해 임원이며 회장을 뽑아놓고 있었다. 회의의 형식은 없었다. 선실 입구 쪽에 한 사나이가 나타나 주목을 요구했다.



“요즘, 에, 세관에서 우리를 계속 때려잡은 이유를 알아냈습니다….”

자율위원회장이었다. 그는 바로 며칠전 술에 취해 사방에다 욕설을 해대던 그 사나이다.

“문제는 비아그라였습니다. 속초 세관이 비아그라 공장이라는 소문이 났대요. 이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라는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곡물은 단 한톨도 엑스레이를 통과시키지 않겠답니다.”

“그거야 핑계지. 약 안 가져왔다고 언제 곡물 왕창 내보내준 적 있냐고. 글코, 세관도 못 찾게 숨겨오는 약을 우리더러 우짜라꼬?”

회장의 말에 누군가 이유를 단다. 그러자 다른 사람이 또 말했다.

“이건 주객이 전도된 거라구. 곡물이 안되니 위험한 물건에 손을 댔을 거라구….”

“아, 거 말이시. 약 적발된 사람은 말이시. 영원히 배 탈 자격을 박탈하라고 당국에 건의하자 말이시….”

여기저기서 잠시 몇 가지 발언이 나온다. 회장이 정리에 들어갔다.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니 당분간 눈치를 보며 다음날을 기약합시다. 세관측에서는 가방을 두 개만 올리라는 겁니다. 그러면 곡물은 기본외 20킬로까지는 봐주겠다고 약속받았습니다. 이의 있습니까?”

기본이 60kg이다. 거기서 한 톨도 더 안되는 줄 알았는데, 20kg을 더하면 80kg…. 따이공들은 수긍하는 눈치다. 회장은 이 약속에 마무리 못질을 했다.

“그러니까, 가방 두 개에 20킬로… 앞으로 2∼3주간은 이대로 나가는 겁니다. 됐습니까?”

돈 안되는 돈벌이

따이공들은 박수를 친다. 회의는 이로써 끝이다.

곡물 80kg면 적자는 면하는 걸까. 나는 말띠라 불리는 따이공한테 물었다. 그는 광도 못 팔고 판에서 죽어 있었다.

“이거(따이공), 해볼라 그러쇼? 내가 계산 해드리리까?”

그는 심심한데 잘 됐다는 표정으로 큰 몸집을 일으켜 사물함에서 전자계산기와 볼펜을 찾아왔다. 사이 시간에 배는 얼마나 탔느냐고 물으니 이번이 꼭 10항차째라고 했다.

“이거, 한번 보시라고….”

그는 큰 덩치를 구부려 바닥에 널브러졌던 스포츠신문을 끌어당기더니 한 가지한 가지 적고 계산을 했다. 고추가 마진이 좋기는 한데 20kg 이상은 통관이 안된다는 거다. 그래서 기본 60kg에는 찹쌀과 흑미를 같은 비율로 싣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추가로 차고 들어올 수 있는 20kg에서 고추와 찹쌀을 반반으로 잡고 계산을 했다. 중국쪽 원가는 인민폐고 한국의 판매가는 원화여서 계산법이 복잡했다. 하여간 그의 계산기에 찍힌 숫자는 22만원이었다.

“여기에다 참기름 한 통 들어주면 1만5000원 플러스, 또 발렌타인 두 병이면 1만4000원 플러스, 그리고 디스 담배 한 보루 3000원…. 이러면 에, 25만2000원. 이게 기본이에요.”

일반인은 왕복 선박요금이 26만5000원이다. 결국 80kg을 차고 들어와도 배 삯이 안된다는 계산이다. 말띠 따이공과 나는 휴게실로 자리를 옮겼다. 내가 깡통 맥주를 몇 개 샀다.

“적자가 뻔한데 이것만 가져갈 겁니까?”

“내 덩치를 보쇼. 몸무게만큼은 들고 나가야지 원. 일단 차고 나가다 뺏기더라도 95킬로는 돼야 덩칫값을 하는 거 아니겠소.”

“약속된 거 같은데, 그게 통과됩니까?”

“봐 달라고 통사정해야지 뭐. 내가 불쌍하게 생겼잖아요? 덩치는 이만한 게 해 먹을 짓이 없어서 이짓 하는데, 지네(세관원)들이 봐도 불쌍해 보일 거 아닙니까?”

지난 9항차 동안 털리기도 하고 더 차고 나가기도 해서 결국 돈을 번 것도 없지만 적자가 난 것도 아니라고 했다. 배에서 먹고 자고, 감옥에서 사는 것처럼 시간만 보내고 있다고.

“나는 이나마 혼자 입이라도 먹고 자고 고스톱이라도 치니 다행인 거요. 속초에는 지금 명태가 안 잡힌 후로는 학생들의 40% 가량이 공납금을 못 내고 있어요. 이나마 배를 타보려고 해도 밑천 없어 못 타는 사람이 수두룩해요. 원, 정치를 ×으로 하는 것인지… 이거, 먹고 살 수가 있어야지.”

그는 맥주 한모금을 마셔서 그런지 혈색이 돌았다. 전에는 어떤 일을 하던 사람일까.

“아, 옛 시절은 항상 좋았던 법이지요. 나도 그땐 대위, 공수대위였으니까 끗발 좋았지. 청와대에도 있었고 일해재단에도 있었지만, 거, 부산 모방송국 파견대장으로 나가 있을 때가 재미는 좋았지. 연예인들하고 놀고, 문주란이한테 노래도 시키고….”

“문주란씨도?”

“연예인들은 신분증을 안 가지고 다닌다고. 얼굴이 명함이니까. 우리도 다 알지. 하지만 심심하니까 부하가 잡아왔더라고…. 진짜 문주란이면 ‘동숙의 노래’를 불러보라니까 그냥 부르데. 한 20번은 시켰지. 심심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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