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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논리로 망친 북한 농업

  • 이민복 < 전 북한 농업과학원 연구원 > leembo@netsgo.com

정치논리로 망친 북한 농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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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가족 단위 분조관리제는 해결해야 할 문제점도 많다. 첫째는 농사를 짓기 위한 물질적 생산조건이 너무나 메말라 있다는 점이다. 기름과 전력이 부족해 트랙터를 비롯한 농기계는 운영이 마비돼 있고, 비료와 농약 등 농자재도 턱없이 부족하다. 이 제도는 또 가족 단위 분조 사이의 불균형을 맞출 수 없다는 문제도 있다. 일할 사람이 적은 가족이나 병자나 불구자가 있는 가족은 자포자기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북한은 먹는 문제가 기본이기 때문에 분조 관리제를 도입하면 농민들은 노동자에 비해 훨씬 유리해진다. 그러나 사회주의 체제인 한, 유리하다고 해서 농민들이 더 열심히 일하지는 않는다. 내일에 대한 희망이 없기 때문에 자기 배만 부르면 그 이상은 일하려 하지 않는다. 가족 단위 분조제는 그런 한계를 갖고 있다.

북한은 당과 국가가 정치적인 의지를 갖고 중국과 같은 농업개혁을 추진해야 농업 생산성이 높아질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은 이러한 시도를 하지 않고 있다. 북한을 여러 차례 방문한 바 있는 강원대의 김경량 교수는 “북한 농민은 물론이고 농업 간부들에게 ‘북한 농업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느냐’고 물었으나, 대답을 듣지 못했다”고 말한다.

북한 농업이 변하고 있다는 것은 일부 시험적인 변화거나 북한당국이 정략적으로 퍼뜨린 것일 가능성이 높다. 이것이 외부 세계에서는 너무 크게 알려진 것이다. 북한 농업의 변화는 아직도 요원하기만 하다. 진정으로 식량난을 해결하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북한은 중국이나 베트남과 같은 농업개혁을 펼쳐야 한다.

김정일 정권이 출범한 후 식량문제를 해결할 대안으로 제시된 것이 감자증산 정책이다. 김일성 시대에 제시된 식량문제 해결안은 옥수수를 주작으로 재배하는 것이다. 그래서 ‘밭곡식의 왕은 강냉이’라는 구호가 있었는데 지금은 ‘밭곡식의 왕은 감자’로 바뀌었다. 곧 북한에서는 감자가 쌀과 옥수수에 이어 제3의 주식이 될 전망이다.



1999년 3월10일자 ‘노동신문’은 감자 재배면적이 1998년에 비해 4만3000 정보나 더 넓어졌다고 보도했다. 북한 농업성의 계획을 토대로 추정해보면 북한의 감자 재배면적은 약 8만6000 정보다. 그런데 최근 FAO/WFP 공동조사단이 발표한 특별보고서를 보면, 1999년 북한의 감자 재배면적은 17만 정보로 증가했다. 반대로 옥수수 재배면적 62만9000 정보(1998년)는 49만6000 정보(1999년)로 대폭 감소했다.

‘밭곡식의 왕 감자’

감자를 주식원으로 삼겠다는 정책 변화는 “옥수수 농사에만 매달려서는 긴장한 식량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김정일의 판단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연합뉴스 1999년 2월8일 보도). 그러나 감자증산으로 식량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김정일 위원장의 판단과 다르게, 감자농사는 많은 문제점들이 안고 있다. 감자농사의 장점은 옥수수 농사에 비해 질소비료를 적게 소비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감자농사는 이러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첫째, 대부분의 북한 토지는 30년 전에 이미 산성으로 변해버렸는데, 산성 토지에서의 감자 농사는 기대할 것이 없다. 둘째, 감자 재배에는 질소비료는 적게 드나, 칼리비료가 많이 든다. 그러나 북한은 칼리비료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북한의 밭은 대부분 경사지에 만들어져, 칼리 성분이 씻겨나갔는데 칼리비료마저 부족한 것이다. 칼리비료 부족을 대체하기 위해 아궁이 재나 탄재를 뿌리고 있지만 그 양도 한정돼 있다.

셋째, 파괴적인 병충해의 위협이다. 감자 역병과 위루스병, 특히 무당벌레로 인한 피해가 감자 농사를 망칠 만큼 심하다. 옥수수 농사는 비교적 농약 소모가 적지만, 감자는 농약 없이 지을 수 없다. 넷째, 감자는 수확하기가 힘들다는 문제가 있다. 땅속의 감자는 기계로 수확해야 하는데, 대부분 북한 밭에는 돌이 많다. 때문에 기계를 넣지 못하고 손노동으로 수확하니 옥수수 수확보다 훨씬 더 많은 품이 들어간다.

다섯째, 감자는 부피가 크고 물기가 많아 옥수수보다 운반과 보관이 어렵다. 물기가 많은 만큼 겨울철에는 얼기 쉽고, 언 다음에는 바로 썩어버린다. 여섯째, 식량으로서의 가치는 옥수수의 4분의 1내지는 5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 감자는 먹어도 빨리 배가 꺼지고, 그래서 더 먹게 되는 식품이다. 질보다는 양이 먼저인 북한에서 이러한 농산물은 적당치 않다.

일곱째, 감자 생산적지(適地)가 적다. 북한에서 감자 적지는 북부내륙 고산지대인데 이곳에는 경작할 수 있는 면적이 너무 적다. 그렇다고 저지대 경작지에 감자 를 심으면, 옥수수를 심었을 때보다 굶는 사람이 더 많아진다. 기후가 따뜻한 저지대에서는 이모작 앞 재배로 감자 농사가 가능하나 한 벌 농사도 힘들어하는 형편에 이모작 농사를 한다는 것은 무리다.

굴지의 감자 생산지라고 하는 장진·부전고원에 1984년 ‘3대 혁명 소조원’으로 파견되었던 내 친구의 말은 북한의 농토가 산성이 돼 감자를 생산하기에 매우 열악한 상태임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곳의 한 작업 분조장이 감자농사를 포기한 죄로 감옥살이를 하게 되었다. 이유는 감자 종자를 봄에 심지 않고 보관했다가 가을에 수확물로 바쳤기 때문이다. 분조장이 그렇게 한 이유는 수년간 감자를 심어봤더니 감자 종자량만큼도 생산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종자를 보관했다가 가을에 바치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북한이 감자생산을 식량문제 해결 대안으로 내놓게 된 것은 김정일 위원장이 북한 최대의 감자 산지인 양강도 대홍단군을 현지지도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현지지도를 받아들여 1999년 1월3일자 ‘노동신문’은 ‘감자농사 혁명의 포성’이란 제목으로 ‘감자는 흰쌀과 같으며, 조선인민은 흰쌀과 동시에 감자를 주식으로 하는 인민이 된다’고 역설했다 이러한 주장은 감자 농사가 한낱 정치 산물에 지나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정치로 인해 왜곡된 북한 농업

북한 농업은 정치적인 이유로 왜곡된 역사를 밟아왔다. 40여 년 전 김일성은 “가까운 앞날에 이밥에 고깃국, 기와집을 쓰고 산다”고 공언하였다. 그리고 “빨리 이밥을 먹으려면 논뿐 아니라 밭에도 벼를 심으라”고 지시하였다(1960년대 초반). 이 지시는 수령을 맹신하는 농학자(김남신 밭벼 연구사)의 검증되지 않은 자료를 근거로 한 것이었다. 정치적 욕심이 들어간 허망한 지시는 금방 그 부작용을 드러냈다.

밭벼 농사는 이론적으로는 가능하지만, 현실적으로 잡초제거와 물 주기가 난제다. 이러한 일을 할 수 있는 조건이 구비되지 않으면, 밭벼농사는 풀밭농사로 변해버린다. 밭벼농사를 하기 위해서는 최소 3년간의 시험단계를 거쳐야 하는데, 수령의 지시로 하루아침에 실시되었다. 그로 인해 이밥을 먹기는커녕 잡곡도 제대로 못먹는 결과를 낳았다. 그러고도 밭벼농사를 취소하지 못하다가 3~4년 흐른 뒤 슬그머니 취소되었다. 수령은 어쩌지 못하고 밭벼 연구사만 내쫓고 말았다.

농업 최고사령관 김일성 주석의 실패는 이후로도 계속되었다. 1970년대 초 옥수수연구사들의 노력으로 옥수수 생산량이 약 130% 늘었다. 주민들은 “이제 옥수수밥이 남아 충분히 먹을 수 있다”고 좋아하게 되었다. 그런데 수령은 자신의 공을 표 내려는 지시를 내렸다. 옥수수로 사탕 같은 옥당과 이밥 같은 옥쌀을 만들어 인민에게 공급하라고 지시한 것이다.

수령의 지시를 따르기 위해 각 도마다 가공공장을 건립했다. 그러나 이 공장들은 건설한 후로부터 지금까지 근 30년 간 조업을 중지하고 있다. 아무리 옥수수를 많이 생산해도, 북한은 옥당과 옥쌀을 먹을 처지가 아니었던 것이다. 이제는 옥당과 옥쌀을 만들 만큼의 옥수수가 생산되지도 않는다.

김일성은 농촌에서 자라서 그런지 농사에 관심이 많다. 그래서 그의 별장 근처에는 반드시 주석 전용 농장이 있다. 그가 한여름에 가는 백두산 별장에는 고지대 작물을 재배하는 전용 농장이 있다. 1990년 김일성은 전용 농장을 돌아보다가 탐스럽게 자란 ‘보라콩’을 보고, 고지대 간부들을 불러 강령적인 교시를 내린다. “보라콩은 습지에 약해 고지대에 전면 재배는 안된다”는 실무일꾼의 의견을, 고성(高聲)을 질러가며 묵살하고, 고지대 주작인 감자와 맥류 대신 심으라고 지시한 것이다. 주석은 전국 어린이들의 간식을 보라콩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보라콩 재배는 실패하고 감자와 맥류의 생산만 줄어들어 주민들의 식량 사정이 더욱 악화되었다. 북한 농업은 정치논리 때문에 더욱 황폐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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