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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제3의 길’을 모색하는 사람들

한국 대표적 지식인의 사상적 원류 ② 중도주의자

  • 김호기 < 연세대 교수·사회학 > kimhoki@yonsei.ac.kr

‘제3의 길’을 모색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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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진 교수는 현재 대통령자문정책기획위원회 위원장이다. 그는 김대중 정부가 들어선 이후 여러 주요 직책, 즉 제2건국범국민추진위원회 상임위원, 노사정위원회 공익위원,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원장 등을 지냈거나 현재 맡고 있다. 한국지식인의 이념성향을 분석한 일본 가나가와대 윤건차 교수는 김대중 정부의 대표적 지식인으로 최장집 교수, 한상진 교수, 황태연 교수(동국대)를 꼽았지만, 현재 겉으로 드러나는 영향력에서는 한교수가 압도적이라 할 수 있다.

한교수는 아태평화재단에 참여하면서 정치적 성향이 비교적 뚜렷해진 것으로 보인다. 같은 사회학 전공자로서 한교수의 변신은 놀라운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1980년대까지 적어도 후학들에게는 아카데미즘에 충실한 교수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가 우리 사회에 본격적으로 소개한 관료적 권위주의론이나 푸코의 사회이론은 진보적 경향의 흐름이었지만, 1980년대를 풍미한 사회구성체 논쟁과는 거리가 있었다. 그렇다고 한교수의 학문적 성향이 한국 사회학의 주류인 보수주의와 친화성이 있었던 것은 더더욱 아니다.

‘눈카마스, 이제는 그만’

한교수는 1945년 전라북도 임실에서 태어났다. 1970년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1972년에는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마쳤으며, 1979년 미국 남일리노이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학위 취득 이후 한교수는 귀국하지 않고 독일 빌레펠트대로 가서 1981년까지 연구교수를 지냈다. 그러다 1981년 귀국해 모교 사회학과에 자리를 잡았다.

이제까지 그가 발표한 책은 적지 않은데, ‘민중의 사회과학적 인식’(1987), ‘한국사회와 관료적 권위주의’(1988), ‘중민 이론의 탐색’(1991) 등이 주요 저작으로 손꼽히고 있다. 또한 그는 ‘한국, 제3의 길을 찾아서’(1992), ‘눈카마스, 이제는 그만’(1992) 등의 시사평론집을 출간했으며, ‘제3세계 정치체제와 관료적 권위주의’(1984)에서 최근 ‘현대사회와 인권’(1998)에 이르기까지 사회학계의 관심을 불러모은 책들을 펴냈다.



필자는 학부시절부터 한교수를 지켜보았는데, 매우 경이로운 학자라는 인상을 품어왔다. 이 경이로움은 이중적인 것인데, 그 하나가 서구 사회이론에 대한 그의 지속적인 관심이라면, 다른 하나는 그런 사회이론의 한국적 적용을 부단히 모색해 왔다는 점이다. 서양학문을 다루는 사회과학 전공자들이 나이가 들어가면서 서구 사회이론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이 일반적인 경향인데 비해, 한교수는 최근 동양사상에 대해 관심을 표명하면서도 서구 이론의 한국적 수용을 줄기차게 모색해왔다. 이런 한교수의 성향은 서구 학문의 일방적 추종으로 볼 것이 아니라 비서구 사회에 살고 있는 사회과학자의 성실성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한교수의 지적 이력 가운데 특기할 만한 것은 학창시절 경험이라 할 수 있다. 몇 년 전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한교수는 서울대 재학시 학생운동에 관여했다고 밝힌 바 있다. 석사학위 논문도 학생운동에 관한 것이었으며, 운동에 대한 관심이 자연스레 그의 사회학적 지향을 실현가능한 이념의 모색으로 이끌었다고 회고했다. 이와 함께 1972년 7·4남북공동성명 이후의 개인적 체험이 그의 연구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당시 인터뷰 내용을 그대로 옮기면 다음과 같다.

“유신독재 체제가 등장하기 전 7·4남북공동성명이 나오면서 저도 어려운 경험을 했습니다. 이것이 저에게 굉장히 많은 걸 면역시켜 줬다고 생각해요. 저는 체험을 통해 항상 주변과 가장자리에서 무엇인가 일어나서 움직이는 힘 못지않게, 사회의 중간에 있는 집단들이 특히 우리사회에서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것이 어떤 곤혹인지 자세히 말하지는 않았으나, 적어도 개인적 체험이 한교수에게는 적잖이 중요했던 것으로 보인다. 즉 그것은 그의 시사평론집 제목이기도 한 ‘눈카마스’를 함축하고 있는데, ‘이제는 그만’이라는 뜻을 가진 이 말은 남미 군사정권의 반민주적 인권유린에 대한 저항을 의미하는 것이다. 필자가 보기에 이런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에 대한 열렬한 옹호는 한교수 사회학의 기본 저류(底流)다. 진보주의나 보수주의에 대비되는 중도주의의 주요 이념 가운데 하나가 자유주의라면, 이 글에서 다뤄지는 중도주의 사회과학자 가운데 한교수는 가장 자유주의에 가까운 이론가라 할 수 있다.

중민론, 그리고 ‘제3의 길’

한국 사회학계에서 한교수를 일약 유명하게 만든 것은 그가 소개한 관료적 권위주의론이다. 아르헨티나 정치학자 오도넬이 제시한 관료적 권위주의론의 기본 가정은, 기존의 민중정치가 사회불안을 조성하기 때문에 산업화가 심화되기 위해서는 민간 기술관료와 국내자본가, 국제자본가 세력이 쿠데타 동맹을 형성해 권위주의 체제를 성립시킨다는 것이다. 한교수는 이 모델에 입각해 박정희 정권의 10월유신을 한국식 관료적 권위주의의 성립으로 분석해 학계 안팎에서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어 한교수는 한완상 교수(현 교육부총리·당시 서울대 교수), 조희연 교수(성공회대)와 중산층 논쟁을 활발하게 전개했다.

중도주의 지식인들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1980년대 사회구성체 논쟁과 일정한 거리를 두었다는 점인데, 한교수도 예외가 아니었다. 오히려 한교수는 이른바 중민론을 제창함으로써 노동자계급 중심의 변혁론과는 다른 실천적 대안을 제시했다. 중민론의 기본 골격은 다음과 같다. 즉, 한국사회는 정당의 대표성과 신뢰성이 약하고 대의정치를 특징짓는 게임의 규칙이 정립되지 않았기 때문에 제도권과 사회운동의 역할분담 및 다양한 세력들 간의 민주적 연대가 매우 중요하다. 중민이라는 이름의 중산층은 체제에 대한 비판의식과 개혁성향이 높기 때문에 민주주의 개혁의 중심세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중민론은 그 시각의 참신성에도 불구하고 필자가 아는 한 사회과학계에서 그 반향이 크지 않았다. 그것은 중민론이 기반한 중도주의 이념에 문제가 있다기보다 우리 학문의 근본주의적 성향 때문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 우리 학문은 절충주의보다는 확실한 견해를 선호하며, 특히 진보주의 사회과학의 경우 노동자계급의 당파성을 중시하기 때문에 중산층을 중시하는 한교수에 대해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이런 점에서 한교수는 왕성한 학문적 활동에도 다소 외로웠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교수의 매력은 이런 외로움을 이겨내면서 놀라운 열정으로 새로운 이론을 소개하고, 이론의 한국적 적합성을 탐구해 왔다는 점이다.

이런 측면에서 꼭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서유럽 ‘제3의 길’에 대한 소개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한교수의 학문적 업적 가운데 주목할 것의 하나는 서구 사회이론에 대한 지속적인 수용인데, 푸코 이외에도 하버마스와 기든스 이론을 국내에 알리는 데 크게 기여해왔다. 이 가운데 눈길을 끄는 것은 김대중 정부 출범과 함께 논의되기 시작한 ‘제3의 길’이다. ‘제3의 길’이 최근 다시 주목받은 이유는 영국 토니 블레어 총리와 그의 사부(師父)인 사회학자 앤서니 기든스가 사회민주주의 갱신 프로그램으로 새롭게 제창했기 때문이다.

한교수는 세계적으로 커다란 논란을 불러일으킨 기든스의 ‘제3의 길’을 박찬욱 교수(서울대)와 함께 번역하고 국내에 적극적으로 소개했다. ‘제3의 길’의 목표가 기존의 좌파와 우파를 모두 비판하고 넘어서려는 것에 있는 한, 한교수의 사회학과 일맥상통한다. 더욱이 ‘제3의 길’은 ‘제1의 길’(사회민주주의)에 대해서는 시장의 효율성을 강조하고 ‘제2의 길’(신자유주의)에 대해서는 사회적 평등을 부각시킨다는 점에서 김대중 정부의 ‘시장경제와 민주주의의 병행발전론’과 직접적으로 이어진다.

한국 중산층의 이중성

한교수는 일찍이 그의 사회평론집 제목을 ‘한국, 제3의 길을 찾아서’라 붙인 바 있다. 한교수가 염두에 두었던 길이 자본주의와 국가사회주의를 넘어서는 ‘제3의 길’이라는 점에서 기든스의 ‘제3의 길’과 다소 다르지만, 진보주의와 보수주의의 장점을 적극 결합하려고 시도한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필자가 보기에 한교수는 한국식 중도주의 사회학자의 전형이다. 그가 겪어온 삶과 사상적 여정은 보수적 사회학자의 길 내지 진보적 사회학자의 길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그 무엇을 보여준다. 그것을 한마디로 말한다면 서양 학문으로서의 사회학과 우리 삶을 이루고 있는 한국현실간의 끝없는 긴장이다. 보편성과 특수성의 긴장이라 할 수 있는 이 문제에 대해 지난 20년간 한교수는 언제나 진지하게 대면해 왔다. 한교수는 동년배 사회학자 가운데 하버마스와 푸코로 대표되는 서구 사회이론에 가장 정통해 있으면서, 또한 현실 정치에 가장 깊게 발을 들여놓은 사회학자다. 아마도 이것은 1940년대에 태어난 이 땅의 사회학자가 갈 수 있었던 가장 ‘먼 길’이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가 이런 긴장을 잘 견뎌왔다고 해서 한교수의 사회학에 문제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우선 그의 주장처럼 과연 한국의 중산층이 그렇게 개혁지향적인가에 대한 의문이다. 오히려 한국 중산층은 개혁지향적이면서도 보수지향적인 양면성을 보여왔으며, 상대적으로 보수지향적인 성격이 더 두드러지지 않은가 하는 의구심을 떨쳐버리기 어렵다. 또 비서구사회 절충주의 지식인의 자기정체성에 관한 문제도 지적할 수 있다.

과연 서구의 이론과 동양의 현실은 어떻게 통합될 수 있는가? 일본의 마루야마 마사오에서 중국의 이택후에 이르기까지 지난 100여 년간 동아시아 지식인들의 의식을 짓눌렀던 이 질문에 대해 한교수는 여전히 대답을 유보하고 있다. 물론 이 문제는 우리 후학의 몫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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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기 < 연세대 교수·사회학 > kimhoki@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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