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특별기획 | 쌀의 운명

쌀을 살려야 민족이 산다

  • 윤석원 < 중앙대 산업경제학과 교수 > sukwon@cau.ac.kr

쌀을 살려야 민족이 산다

2/2
국제곡물시장은 실질적으로 곡물 메이저가 장악하고 있어 이들의 횡포를 막기 어려운 구조를 가지고 있다. 세계 5대 곡물메이저인 카길, 아처다니엘스 미들랜드(ADM), 루이 드레퓌스, 분게, 앙드레는 세계 곡물교역량의 약 80%를 차지하고 있으며, 유통분야 시장점유율도 총 저장능력에서 75%, 수출취급능력에서 56%, 밀 제분에서 69% 등을 차지하고 있다. 이들 곡물 메이저들은 언제든지 수출금지, 가격담합 인상 등 불공정 무역을 자행할 수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이는 세계 곡물시장이 WTO 등 국제기구의 규범에 따라 유지되기보다 이들 메이저들에 의해 혼란해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쌀을 취급하는 곡물기업에는 미국의 쌀경작자협회(RGA)와 코넬 등이 있다. 1980년 냉해로 인해 우리나라의 쌀 생산이 크게 감소하자 RGA와 코넬은 가격을 3배 가량이나 올려서 판매했고, 1991년 일본의 쌀생산이 냉해로 감소하자 RGA는 일본이 한국으로부터 쌀 수입을 못하게 미국정부에 압력을 행사하고, 쌀 가격을 2배로 올려서 일본에 판매한 적도 있다.

또 수입국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수출국으로부터 농산물을 수입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곡물 수출국들은 국제 곡물가격이 폭등할 경우 자국내 식량확보와 물가안정을 위해 쌀 등 곡물의 수출을 금지하거나 제한하는 조치를 취할 수 있다. WTO가 출범한 이후에도 1995년 태국의 쌀 수출금지조치, 1995년 헝가리의 옥수수, 밀 보리 수출금지, 1996년 유럽연합의 밀과 밀가루에 대한 수출세 부과, 1996년 체코의 밀과 귀리 수출금지 등 수출제한조치가 취해졌다. 미국은 ‘1996년 농업법’에, 유럽연합은 1999년 3월 채택된 ‘아젠다 2000’에 “필요한 경우 곡물의 수출을 제한할 수 있다”고 명문으로 규정했다.

그러나 국제무역경찰을 자처하는 WTO도 이러한 수출제한조치를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 농업협정문 제12조(수출금지 및 제한에 관한 규율)는 수출제한조치를 취하는 국가에 대해 식량수입국의 식량안보에 끼칠 영향을 고려하거나 필요한 경우 수입국과 협의할 것만을 규정하고 있을 뿐이다.

해방 이후 지금까지 우리의 쌀정책은 경지정리의 확대와 용수관리 등 생산기반조성사업에 역점을 두어왔다. 그도 그럴 것이 항상 쌀이 부족했기 때문에 수요(소비)보다는 공급(생산) 위주의 정책을 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1995년 WTO 체제가 출범한 이후 개방화에 대응하여 쌀산업을 육성하고 유지하기 위한 정부정책의 기조는 ‘규모의 확대를 통한 가격경쟁력 제고’와 ‘민간유통조직의 활성화’로 요약할 수 있다.



쌀 경쟁력강화를 위한 영농 규모화 사업은 규모의 확대와 전업농 육성을 통해 생산비를 47% 절감하기 위한 정책으로 1995년에서 2000년까지 약 6년 동안 1조 4215억원을 투입하였다. 그러나 2000년 현재 생산비 절감 효과는 3300억원에 불과하며 이는 80kg 가마당 3400원(5.5%) 절감에 그치고 있다. 뿐만 아니라 0.5ha 미만의 영세농이 1990년에 전체농가의 27.3%인 48만3000가구였는데, 1999년에는 48만7000가구(전체농가의 35.2%)로 늘어났다. 이는 규모확대를 통한 생산비 절감에는 한계가 있으며, 결국 가격경쟁력제고에 크게 기여하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UR협상의 결과로 쌀 수매량이 감소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정부는 쌀의 민간유통기능 활성화를 위해 수확후 관리·가공 등의 기술개발을 통한 고품질 쌀의 생산과 산지유통의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해 1991년 충남 당진 합덕농협과 경북 의성 안계농협에 미곡종합처리장(RPC)을 설치했다. 2000년 현재 전국에 324개의 미곡종합처리장이 설치되었다.

쌀, 정부대책 무엇이 문제인가

미곡종합처리장은 산지유통량의 약 60~70%를 처리하는 산지유통의 핵심주체로 성장했다. 그런데 이 민간유통주체들인 미곡종합처리장이 심각한 경영상의 애로를 겪고 있다. 그 가장 큰 이유는 계절가격진폭이 최근에 올수록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민간유통조직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계절가격진폭을 유지해야 하는데 정부는 이에 실패했다.

정부가 발표한 올해 ‘수확기 쌀 가격안정 및 수급안정대책(8·29)’과 ‘중장기 양곡정책 방향(9·4)’, 그리고 ‘보완대책(9·28)’을 보면 2004년 이후의 개방을 전제로 한 대책치고는 너무 안일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지난번 단기 대책에서는 올해 수확기 상황을 염려하여 4조원을 긴급 투입하는 것처럼 국민들에게 공표했으나,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300억원의 보조와 3000억원 정도의 융자금(3% 이자)이 전부다. 나머지는 올해 가을에 어차피 투입하게 되어 있던 자금이거나 농협 및 민간 미곡종합처리장의 자금이다. 더군다나 쌀 가격이 하락할 경우 농민의 소득보전조치는 전혀 없다. 그것도 최근에서야 내년도 논농업직불제 예산으로 지난해의 2105억원보다 573억원 많은 2678억원을 책정했을 뿐이다.

특히 단기 대책에서 올해 쌀 가격을 지난해 수확기 수준인 15만8000원(80㎏)선으로 유지하겠다고 했는데 이는 재고량 수준과 대책의 미흡함 등을 감안할 때 실현불가능한 약속이다. 차라리 쌀 가격의 하락을 기정사실화하고 가격하락에 따른 농민들의 소득보전책을 적극적으로 강구했어야 했다.

중장기 대책에서도 양질미 정책으로의 전환, 다양한 직불제 도입, 공공비축제 도입 등을 제시하고 있으나, 이는 확정된 대책이 아니라 연구 검토하겠다는 사항을 나열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이 농민들로 하여금 정부를 불신하게 만들었으며 농민들을 분노케 한 요인이 되었다.

그 이유를 두 가지만 지적하면 첫째, 직접지불제를 통한 농가 소득보전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이 제시되지 않았다. 추곡수매가를 동결하고, 2004년 이후 약정수매제를 폐지하며, 시가매입 시가방출의 공공비축제를 도입하고, 2004년 이후의 개방에 대비하여 쌀 가격의 하향안정을 기정사실화하는 등 시장기능을 확대하는 방향을 제시했다.

이러한 정책기조를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쌀 생산기반을 최대한 유지하겠다면 직불제에 의한 소득보전대책을 시급하게 확대 도입해야 한다. 그런데도 미작경영안정제와 소득안정직불제 등 다양한 직접지불제는 2004년까지는 모두 ‘연구’ ‘검토’만 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현행 논농업직불제도 2003년에 그 효과를 ‘심층분석’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는 올해부터 3~4년간은 현행 직불제만을 운용하고 새로운 직불제는 도입할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시장기능에 맡길 것만을 생각하고, 소득보전조치는 2004년 이후에나 상황을 보아가며 시행하겠다는 것이니 너무나 한가한 발상이다. 무엇보다도 검토하고 연구할 사항을 무슨 ‘대책’이라고 발표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 이미 연구하고 검토가 끝난 대책을 정책으로 발표해야 한다. 연구 검토는 항상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 민간유통기구와 산지 쌀 유통 인프라에 대한 정책이 전혀 포함되어 있지 않다. UR협상의 결과로 앞으로 쌀 유통과정에서 정부의 비중은 점차 줄어드는 반면, 민간유통기구(미곡종합처리장, 임도정공장, 산지상인 등)의 역할과 비중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들을 건전하게 육성하고 지원하는 정책이 양정(糧政)의 중요한 자리를 차지해야 한다. 그리고 수확 후 물벼산물 수집체계를 조기 구축하기 위해 수송, 건조, 저장시설 등 유통인프라에 집중적으로 투자해야 함에도 이번 대책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쌀을 살리겠다는 합의가 필요

셋째, 내년(2002년) 상황에 대한 대책이 없다. 내년이면 쌀 재고량은 올해의 989만섬 수준에서 1300만섬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며 거기다가 농협중앙회가 수매한 400만 섬을 더하면 총 1700만섬에 달해 내년에도 가격이 오를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그런데도 올해 이후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재고를 어떻게 할 것이며, 계절가격진폭은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대책을 찾아볼 수 없다.

그렇다면 쌀 산업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쌀농사를 살리겠다는 국민적 합의와 공감대의 형성이다. 이를 전제로 정부는 쌀산업을 정책적으로 뒷받침해야 한다. 단기적으로는 올해 수확기와 내년을 슬기롭게 극복하기 위해서는 올해 가격을 지난해 수확기 가격수준인 15만8000원선으로 유지하겠다는 정부의 지난번 발표를 취소하고, 쌀 가격이 지난해보다 약간은 떨어질 수밖에 없음을 솔직하게 공표해야 한다. 올해 수확기 쌀 가격을 지난해 수준으로 유지하기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우며, 이러한 징후는 이미 나타나고 있다. 동아일보 10월10일자 보도에 따르면 전남의 경우 지난해보다 10% 가까이 떨어진 14만2000원에 거래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올해 수확기 가격을 지난해 수준으로 유지할 경우 내년 쌀 가격이 올해 수확기 가격보다 오를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재고가 누적되어 있고, 더군다나 농협중앙회가 400만섬이나 보유하고 있어 언제 시장에 방출할지 모르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올해 쌀 가격은 정부가 인위적으로 지난해 수준을 유지하라고 할 것이 아니라 시장에 의해 결정되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만 내년에 계절가격진폭이 살아날 가능성이 있으며 농민과 유통주체 모두에 이익이 될 수 있다.

2004년 이후 쌀 시장이 어떤 형태로든 개방되면 쌀 가격은 큰 폭으로 인하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정부는 지금부터 쌀 가격이 서서히 낮아질 수밖에 없음을 인정하고 농민들을 설득해야 한다. 그 대신 정부는 이에 따른 소득보전 장치를 확실하게 도입하여 최소한 올해 수준의 소득을 앞으로도 보전할 것임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여 농민들이 생산을 포기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중장기적으로는 첫째, 품질이 우수하고 환경친화적인 안전한 쌀이 생산될 수 있도록 양질미 정책으로 양정의 틀을 바꾸어야 한다. 개방에 대비하여 가격보다는 품질제고를 통한 경쟁체제를 강화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수매등급기준의 상향조정, 종자공급체계의 전환, 양질미에 대한 객관적인 기준설정 등의 조치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밖에도 고품질미 생산을 위한 브랜드 쌀 개발을 위해 계약재배를 확대해야 한다. 처음에는 소량이더라도 명성을 얻을 수 있도록 미질관리를 철저히 하며, 마케팅전략도 치밀하게 세워 명성을 얻도록 정부와 지방정부는 생산자와 유통주체에 대한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 고품질의 브랜드 쌀 개발 없이는 앞으로 시장에서 존립하기가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良質美정책으로 전환을

둘째, WTO 체제에서도 가능한 직접지불제도의 확대를 통한 소득보전정책을 강화해야 한다. 우리 실정에 맞는 다양한 직접지불제도를 시급히 도입할 필요가 있으며, 장기적으로는 미국이나 일본에서 도입하고 있는 경영체별 소득안정 프로그램을 도입해야 한다. 그리고 장기적으로는 휴경이나 윤작에 의한 생산 제한정책도 조심스럽게 추진해볼 필요가 있다.

셋째, 남북의 식량문제를 함께 고려하는 대승적 식량정책이 필요하다. 현재 쌀이 남아돈다고는 하지만 통일에 대비하고, 북한의 식량문제까지 고려한다면 결코 과잉이라고 볼 수 없다. 순수하게 인도적인 차원에서 남북협력기금 등을 활용해 제도적으로 해마다 일정량을 북한에 지원하는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넷째, 정부는 민간유통조직의 활성화를 위해서 계절가격진폭을 최소한 58%선으로 유지하는 데 모든 역량을 모아야 한다. 계절가격진폭만 있으면 정부가 특별히 유통주체들을 위해 할 일은 없다. 그리고 산지 쌀 유통 인프라 구축에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물벼 상태로 산물을 수집할 수 있는 수송수단이나 건조·저장시설의 확충을 지원해야 한다.

다섯째, 소비확대를 위한 수요관리정책을 강하게 추진해야 한다. 식생활의 변화와 서구화로 쌀의 소비가 매년 감소하고 있는데 이를 되돌리기란 그렇게 쉬워보이지만은 않는다. 그러나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쌀 가공식품을 개발하여 소비를 늘려야 한다. 국내산 쌀을 원료로 이용할 수 있는 쌀 가공식품이 개발되어야 한다. 또한 생산자와 정부는 미질이 우수하고 밥맛이 뛰어난 품종을 육성하여 브랜드화함으로써 소비자에게 다가가야 한다. 소비자에게 브랜드 이미지를 각인시켜줄 수 있어야 쌀 소비를 조금이나마 늘릴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유통주체들, 특히 미곡종합처리장은 기능성 쌀 개발에 진력해야 한다. 최근 일본의 쌀 소비량이 약간 늘었는데 그 이유가 주먹밥 등 가공상품의 개발과 기능성 쌀 때문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그리고 청소년과 군인에게 양질의 쌀을 급식하여 쌀밥에 대한 좋은 인식을 심어주어야 한다. 미래의 쌀 소비 고객이기 때문이다.

여섯째, 고품질 브랜드 쌀의 수출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쌀맛에 영향을 끼치는 요인으로는 여러가지가 있으나 일본에서는 보편적으로 이해되고 있는 단백질 함유량이 6%미만이고, 정립률이 90%이상인 쌀을 계약재배 방식으로 생산하여 일본 수출을 적극적으로 추진해볼 만하다. 단백질 6%미만 쌀의 재배를 위해서는 질소질 비료 시비량이 적어야 하므로, 농가와 계약재배하여 상징적으로 일본에 수출함으로써, 우리 쌀의 우수성과 안전성을 홍보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해볼 만하다.

이상으로 우리의 쌀산업이 왜 위기이며, 왜 시장기능에만 맡길 수 없고, 왜 쌀 문제의 해결이 간단치 않은가를 살펴보았다. 또 정부정책의 문제점, 그리고 국제곡물시장구조의 문제점 등을 논의해 보고 쌀문제 해결을 위한 방안을 제시해 보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쌀산업은 우리 민족과 함께 해야 하고, 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 깊이 인식해야 한다는 점이다. 모든 대책은 이러한 철학을 기반으로 할 때 가능하기 때문이다.

신동아 2001년 11월호

2/2
윤석원 < 중앙대 산업경제학과 교수 > sukwon@cau.ac.kr
목록 닫기

쌀을 살려야 민족이 산다

댓글 창 닫기

2023/06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