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11월호

김동태 농림부 장관 인터뷰

“쌀도 상품이오! 정부수매가 인상은 곤란해요”

  • 육성철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sixman@donga.com

    입력2005-03-11 14: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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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4년 쌀 재협상이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다. 11월이면 한국보다 6배나 값싸게 쌀을 생산하는 중국이 WTO(세계무역기구)에 가입하고, 카타르 도하에서는 WTO각료회의가 열린다. 하지만 정부가 고심 끝에 내놓은 쌀산업 종합대책은 농민들을 더욱 자극하고 있는 실정이다.
    9월7일 김대중(金大中) 정부의 후반기 농정을 이끌어갈 책임자로 김동태(金東泰) 농림부 장관이 임명됐다. 그는 1970년대부터 농림부의 요직을 두루 거친 정통관료 출신으로 1998년 김대중 정부가 출범한 직후 농림부 차관을 지냈다. 1998년엔 소값 파동이 최대의 숙제였다면, 지금은 쌀값 하락 문제가 난관으로 등장했다. 인터뷰는 10월13일 과천 정부종합청사 장관 집무실에서 진행됐다.

    ―장관으로 취임한 지 한달 넘게 지났습니다. 소감부터 말씀해주시죠.

    “사실 저는 장관이 될 줄도 모르고 ‘금년에는 농림부가 쌀값 때문에 어려움이 많겠구나’ 하는 생각했는데, 막상 장관이 되고 보니까 ‘어려운 때 막중한 책임을 지게 됐구나’ 하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제가 농촌 출신이고 농업학교를 나오고 농림부에서 오래 근무했으니까 ‘나보고 봉사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있어요.”

    ―장관님께서는 현재의 밑바닥 農心을 어떻게 느끼고 계십니까.

    “쌀농사를 짓는 분들은 대개 나이가 많고 영세농이에요. 그분들은 쌀값이 해마다 큰 폭으로 올라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정부가 계속 지원해주기를 바라는 거죠. 그러니 쌀값이 떨어지는 요즘, 정부에 대한 불만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농림부는 8월29일과 9월24일 두 차례에 걸쳐 쌀값안정 대책을 내놓았고, 9월4일엔 중장기 쌀산업 종합대책(9·4대책)을 발표했다. 전농과 한농연 등 농민단체는 특히 8·29대책과 9·4종합대책에 강력히 반발했는데, 농촌 현장에서는 일관성 부족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농림부는 최근까지 쌀 증산에 치중해 왔지만, 이번에 나온 대책을 보면 증산을 포기한 것처럼 보입니다. 이에 대해 농민들은 ‘어느 장단에 춤을 추라는 거냐’며 반발하는 모습입니다.

    “시점을 무시하면 안된다고 봐요. 1995년에 정부가 대북 쌀지원을 35만섬 했는데 그해는 냉해 때문에 작황이 나빴어요. 그랬더니 1996년 쌀재고가 169만섬까지 내려갔잖아요. 그때 농림부 공무원들이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지 몰라요. 만일 쌀이 모자라서 수입하겠다고 발표하면 아마 전 농민이 들고 일어났을 거예요. 그래서 농림부는 어떻게든 쌀 수입을 막기 위해 빈 땅이 있으면 무조건 농사를 지어야 한다는 판단을 내리고 증산 쪽으로 간 거죠.

    1996년부터는 작황이 계속 좋아서 재고가 차츰 늘어났어요. 제 생각에 재고가 넉넉해진 2000년쯤, 서둘러 정책을 전환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어요. 하지만 농림부 공무원들이 보수적이인데다 속된 말로 방정 떨다가 재해가 올 수도 있으니까 조심했던 거죠. 그러다 올해 작황을 보고 이제는 중장기적으로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양보다 질 중심으로 가야 한다는 정책기조를 세운 겁니다.”

    ―쌀 재고가 충분한 상황에 간척사업은 왜 하느냐는 주장도 있습니다.

    “1990년부터 2000년까지 논 면적이 해마다 평균 1만7000ha씩 줄어들고 있어요. 10년 뒤 17만ha의 논이 사라지는데 새만금 간척지의 논면적은 고작 2만8000ha입니다. 이런 추세라면 남한의 쌀 소비량이 줄어도 공급량이 부족한 사태가 올 수 있습니다. ‘친환경 농업’을 도입한다는 전제에서 새만금 간척지는 반드시 필요한 사업이라고 생각해요.”

    ―8·29일 대책과 9·24일 보완대책을 보면 수매량 등 주요내용이 많이 바뀌었는데, 이것은 농민들의 주장을 반영한 것입니까. 아니면 8월29일 이후의 작황 등을 고려하신 것입니까.

    “둘 다죠. 8월29일 농림부 발표가 나왔는데도 농민들이 계속 불안해하고 내용에 대해서 비난이 쏟아졌잖아요. 8월29일에는 올해 작황을 3650만섬으로 잡았는데, 9월20일이 되니까 3750만섬까지 되겠더라고요. 공급량이 달라졌으니 대책을 바꿀 수밖에 없었던 거죠.”

    “쌀도 상품이다”

    9·4 쌀산업 종합대책은 한갑수(韓甲洙) 전농림부 장관이 발표했다. 한 전장관은 자민련 소속으로 9월4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DJP공동정부의 마지막 국무회의에 참석한 뒤 사표를 제출했다. 말하자면 9·4대책은 한 전장관이 농림부를 떠나면서 내놓은 대책인 셈이다.

    ―물러나는 장관이 중요한 국가정책을 제시했습니다. 후임 장관의 부담을 덜어준다는 의미는 있겠지만, 왠지 자연스럽지 못한 것 같습니다.

    “제 생각에 한 전장관께서는 그만두기 전에 한국농업에 뭔가 보탬이 되는 일을 하고 싶지 않았을까 합니다. 벼농사의 기본틀을 바꿔야 한다는 생각에서 어려운 얘기를 한 게 아닐까 추측하고 있습니다.

    ―농림부는 ‘품질위주로 정책 전환’이라고 표현했지만, 이게 따지고 보면 증산정책 포기를 뜻하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것은 지극히 당연한 얘기예요. 쌀도 상품입니다. 소비자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상품을 생산하지 않는다면, 그걸 누구한테 팔겠습니까. 2004년이면 쌀도 재협상해야 합니다. 물론 정부는 관세를 매긴다는 확고한 원칙을 갖고 있지만, 상대가 있기 때문에 예측하기 힘든 게 사실입니다. 그런 상황에 대비하려면 품질개선밖에 없어요. 다른 나라에서 어떤 쌀이 들어오더라도 우리 쌀을 찾도록 만들어야죠.”

    ―현재의 ‘약정수매제’ 대신 ‘공공비축제’ 방안을 검토한다는 부분도 농민들을 자극한 것 같습니다. 마치 정부가 2004년 이후 수매를 포기한다는 것처럼 비쳤는데….

    “WTO(세계무역기구) 협정 때문에 수매량은 계속 줄어들 수밖에 없어요. 2004년이 되면 지금 가격으로 계산했을 때 정부가 500만섬도 수매하지 못해요. 올해에 575만섬을 수매하면서도 쌀값에 별로 영향을 끼치지 못하잖아요. 2004년이면 정부수매가 농민들에게 큰 도움을 주지 못할 것 같으니까, 차라리 농민들에게 더 좋은 공공비축제로 가자는 얘기였습니다. 그걸 갖고 농민단체에서는 2004년부터 정부수매가 없어지는 것처럼 말하는데, 그건 아니죠. 그리고 이건 어디까지나 검토과제일 뿐이에요.”

    ―검토과제를 농민들의 의견도 수렴하지 않고 공식적으로 발표하나요.

    “아이디어나 방향제시 정도로 봐주세요. 쌀농가가 100만이나 되다보니 의견수렴 자체가 어려운 게 현실입니다.”

    RPC는 농민들의 산물벼를 사들여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유통기관이다. RPC가 수익을 내려면 쌀값의 ‘계절진폭’이 생겨야 하는데 지난해의 계절진폭은 1.4%(농림부 계산, 농협은 0.4%라고 주장)에 그쳤다. 농민들이 수매가 인상을 요구하는 상황에서 RPC가 적자부담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런 까닭에 많은 RPC들이 ‘정부가 최저가격을 결정하고, 손실이 발생할 경우 보조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시가수매’ 방침을 확고히 하고 있다.

    ―RPC의 ‘시가수매’는 나름대로 장점을 갖고 있지만, 정부의 기능을 농협과 농민에게 떠넘겼다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그건 옳은 얘기가 아닙니다. 1990년 이후 지금까지 쌀값이 떨어진 예가 한번도 없었습니다. WTO체제가 들어서면서 정부는 과거처럼 마음대로 쌀을 수매할 수 없게 됐어요. 농협 RPC는 그 자체가 비즈니스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장사가 돼야 하는 겁니다. 예전에는 조금 비싸게 산물벼를 사더라도 신용수익으로 운영할 수 있었는데, 이젠 어려워요. 작년에 좀 비싸게 샀다가 100개 이상의 RPC가 적자를 봤잖아요. 시장가격대로 매입하지 않으면 RPC는 망할 수밖에 없어요.”

    ―농림부는 계절진폭을 만들어낼 복안이라도 있습니까.

    “계절진폭은 5% 이상이 정상이에요. 그래야 이익이 생기고, 품질저하에 따른 손실도 보상하죠. 그런데 인위적으로 비싸게 쌀을 사들이면 계절진폭이 발생할 수 없어요. 수확기엔 공급량이 많으니까 쌀값이 떨어지는 게 당연해요. 지금 재고가 많고 풍년까지 들었는데, RPC가 비싸게 사들인다면 어떻게 계절진폭이 생기겠습니까. 그러니까 RPC는 시중가격으로 사고, 정부는 재고부담이 있더라도 공급을 줄여서 계절진폭을 만들겠다는 거죠.

    쌀이 식량안보 차원에서 중요한 작물이지만, 어쨌든 쌀도 상품이기 때문에 시장원리를 존중하는 가운데 유통돼야 해요. 정부 수매는 전체의 1/6밖에 안되고, 나머지는 시장에서 유통되는데, 정부가 어떻게 시장원리를 무시할 수 있습니까?”

    ―일부 RPC는 이런 추세로 갈 때 내년에는 쌀값이 더 떨어지니까, 지금 싼 값으로 사들이고 내년에 정산하겠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농민들은 이것이 쌀값 하락을 부추긴다고 반발하고 있습니다.

    “농민들의 주장을 받아들이면 문제가 더 악화될 뿐 해결책은 없습니다. 정부를 원망할 수는 있어도 국제협정을 무시할 수는 없잖아요. 정부가 해결책을 갖고도 안한다면 반성해야겠지만, 이건 그런 경우가 아니거든요. 공급이 많아서 쌀값이 떨어지는 건 불가피한 문제입니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쌀이 갖고 있는 여러가지 특성을 감안해 가격을 계속 지지해주는 쪽으로 흘러왔는데, 이제 그 방식이 한계를 드러냈으니까 직접지불제도 쪽으로 옮겨가지는 겁니다.”

    ― 일부 RPC 조합장들은 정부가 운영자금을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RPC에 대한 추가 지원은 고려하고 있지 않습니까.

    “RPC가 무슨 자선단체입니까? 그렇게 하면 도적적 해이를 어떻게 막을 수 있습니까? 경영을 잘하는 민간인은 이런 악조건에서도 흑자를 내고 있는데, 특정 RPC를 더 도와주는 것은 형평의 원칙에도 맞지 않아요. 오히려 잘하는 쪽에 인센티브를 주고, 못하는 쪽은 페널티를 줘야죠.”

    논농업 직불제 확대할 것

    김장관은 쌀값을 정부 보조금으로 지지해주는 방식에 한계가 왔으며, 이제 새로운 대안을 모색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현재 대안 부분에서는 정부와 농민단체의 이해관계가 겹치는 부분이 있다. 쌀농가에게 소득을 보전해주는 ‘논농업직불제’와 재고쌀 처리방법으로 등장한 대북지원 등이 그것이다.

    ―올해 논농업직불제가 처음 시행돼 1ha당 25만원을 지원했습니다. 앞으로 어느 정도까지 확대하실 계획이십니까.

    “내년에는 농업진흥지역 35만원, 비농업진흥지역 25만원을 지급하기로 예산을 잡았습니다. 저는 그것도 충분치 않다고 봐요. 국회에서 그 부분을 잘 설명하려고 합니다. 물론 정부 부처에서는 직불제에 대해 이견도 있어요.”

    ―논농업직불제는 도입 당시부터 경제부처의 반발을 샀습니다. 이 제도를 확대하려면 더 큰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어떤 논리로 경제부처를 설득하실 것인지요.

    “농가의 소득이 줄어들고 있으니까, 정부가 소득보전 정책을 펴야 한다고 주장해야겠죠. 도시와 농촌의 소득을 비교하면 농촌은 도시의 80%밖에 안돼요. 소득이 낮은 상태에서 또 다시 수입이 감소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현재 핵심 경제부처에서는 농림부를 어떻게 평가하는 것 같습니까. 김성훈(金成勳) 전농림부 장관은 어려움을 털어놓은 적이 있었는데.

    “솔직히 어려움이 많아요. 경제관료는 효율을 중시하니까요. 하지만 김대통령은 어려운 계층에 대한 지원을 매우 중시합니다. 그래서 사회복지쪽도 많이 강화됐잖아요. 대통령은 농민에 대한 애정이 깊은 분이고, 또 대통령 되실 때도 농민표가 많았어요. 대통령이 많이 배려해서 올해 농가부채 특별조치법 같은 것도 만들 수 있었어요.”

    ―방금 표 얘기를 하셨는데, 9월2일 한갑수 전농림부 장관이 TV에서 “국회가 농민표를 의식해 수매가격 인상을 결정해왔다. 국회의 동의를 얻어 수매가를 결정하는 방식을 재검토할 방침”이라고 말했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건 정치적 오해를 살 수 있기 때문에 정부 부처에서 논하기 어렵다고 봅니다. 현실적으로 WTO 재협상이 다가오는 시점에 국회의원들을 어떻게 설득할 것이냐가 더 중요하겠죠.”

    ―장관께서는 북한에 쌀을 지원하는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나는 남북관계가 잘되기를 기도했어요. 우선 굶주리는 북한 사람들에게 쌀을 보내는 게 중요해요. 영양이 부족해지면 유전적으로 몇 대에 걸쳐 영향을 끼친다고 합니다. 언젠가 통일이 되면 지금 북한의 기근이 큰 부담이 될 겁니다.”

    ―일부에서는 북한에 지원하는 식량이 군량미로 전용될 수도 있다며 신중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습니다.

    “물론 투명하게 공개될 필요는 있겠죠.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인도주의라고 생각해요.”

    농민의 처지에서 최근의 쌀값 하락이 소나기라면 2004년 WTO 재협상은 거대한 폭풍이다. 한국은 WTO협정에 따라 해마다 쌀의 MMA(최소시장접근물량 또는 의무수입량)를 0.25%씩 늘리는 한편, 정부 보조금은 평균 750억원씩 줄여나가고 있다. 2004년이면 수입쌀의 비중이 4%에 달해 시장가격에도 큰 영향을 끼칠 전망이다. 한국쌀이 국제시가보다 월등하게 비싼 상황에서 2004년 쌀 재협상은 농림부나 농민 모두에게 일종의 ‘시한폭탄’이나 다름없다.

    ―쌀 재협상이 시작되면 농민들의 반발도 상당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앞으로 어떻게 농민들을 설득할 생각이십니까.

    “저는 농민단체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2004년 이후 쌀을 진정으로 지키고자 한다면, 우선 품질면에서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먼저 소비자로부터 인정받아야죠. 품종뿐만 아니라 유통문제도 개선해야 합니다. 미질 품종이 현재 전체의 22% 수준인데, 2005년까지는 50%까지 늘릴 계획입니다.

    지금 한국쌀은 중국쌀보다 6배 이상 비쌉니다. 그런데도 중국쌀 값은 계속 떨어지고 있습니다. 중국이 11월 WTO에 가입하면 한국시장에 들어오려고 애를 쓸 겁니다. 농민들이 지금부터 그런 상황에 대비해야 합니다. 그래서 쌀값이 더 이상 올라가는 것은 곤란하고, 소득보전 쪽으로 가야 한다는 겁니다.”

    ―쌀값이 더 오르는 것을 막으면서, 또한 의도적으로 쌀값을 떨어뜨리지 않겠다는 뜻으로 볼 수 있겠네요.

    “의도적으로 떨어뜨릴 필요는 없습니다. 기본적으로 쌀값은 시장에 맡겨야죠. 지금도 비싼 쌀은 많아요. 유기농법으로 재배한 쌀이나 기능성 쌀은 엄청나게 비싸지만, 없어서 못 팔아요. 그런 쪽은 자꾸 장려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어쨌든 쌀값이 더 오르는 것은 막아야 한다는 말씀이시죠.

    “정부 수매가를 지금보다 더 올리는 것은 곤란하죠. 쌀값이 더 올라가면 재협상 이후 심각한 위기가 올 수 있으니까요. 국회의원들께도 이 점을 잘 설명할 예정입니다.”

    ―일부 농민단체에서는 농림부가 2004년까지 쌀값을 떨어뜨리기 위한 시나리오를 갖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즉 재협상 이후 수입쌀의 관세를 300∼400%에 맞추기 위해 정부가 의도적으로 시장가격을 조정하고 있다는 주장입니다.

    “시나리오 같은 건 없어요. 농업정책을 어떻게 시나리오대로 할 수 있겠어요? 올해의 대풍을 제가 만들었나요? 아니면 한갑수 장관이 만들었나요? 자연이 준 혜택이잖아요. 지금 상황을 놓고 농민단체의 머리 좋은 분들이 연역해서 그런 시나리오를 만들 수는 있겠지만, 농림부는 그런 구상을 해본 일이 없어요.”

    ―농림부는 얼마전 전국을 돌면서 쌀값대책 설명회를 열었는데, 그때 일부 지역에서 2004년 수입쌀의 관세가 300∼400% 정도로 매겨질 것이라는 얘기가 나왔습니다. 중국쌀이 현 수준을 유지한다는 전제에서 장관님 구상대로 쌀값을 시장에 맡기고 수입쌀에 300~400%의 관세를 부과한다면 한국쌀이 중국쌀과 경쟁할 수 있다고 보십니까.

    “그런 상황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봅니다. 지금은 일단 더 이상 정부수매가가 올라가는 것을 막아야죠. 시장가격은 시장이 결정해줄 것이고요. 농민은 품질개선과 생산비 절감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최선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농민들이 듣기 좋아하는 소리만 했으면 좋겠는데, 그게 농민을 망하게 하는 길이라면, 당장은 괴롭더라도 쓴소리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게 농림부에서 오래 근무한 제가 해야 할 몫이죠.”

    농촌 생활환경 개선해야

    쌀은 우리나라의 주식이며, 농업소득의 51%를 차지한다. 때문에 농촌에서는 쌀값 만큼 민감한 주제도 없다. 하지만 우리 농촌은 쌀값 말고도 풀어야 할 난제들이 산적해 있다. 대표적인 것이 농촌의 ‘삶의 질’ 개선일 것이다. 농촌에 ‘젊은피’가 없다는 사실은 우리 농촌의 경쟁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실례다. 농촌에서 태어나 농업을 전공한 ‘실무형’ 장관은 이런 문제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농민들에게 가장 큰 부담을 주고 있는 것은 농가부채가 아닐까 합니다. 장관께서는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한다고 보십니까.

    “조금 엉뚱하겠지만 농가부채는 농민들의 생활문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젊은 농민후계자의 경우 자식들을 도시에서 교육시키고 있는데, 이들 중 상당수가 두집 살림을 꾸려갑니다. 도시에 집을 사거나 전세를 얻는데, 농사 지어서 두집 살림을 한다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거든요. 저는 그것 때문에 빚을 지는 사례를 많이 보았어요. 물론 경영실패나 자연재해 등으로 크게 손해보고 부채가 생긴 경우도 많고요.

    저는 교육문제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초등학교 교사조차 자기 아이들을 농촌으로 데려오지 않으려고 하는 게 현실이에요. 쉽지는 않겠지만, 교육인적자원부와 협조해서 교육, 위생, 문화분야에 대한 투자를 늘릴 계획입니다. 농촌도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최소한의 환경을 갖춰야만 도시로 아이들을 내보내지 않을 거라고 봐요. 또한 소득면에서는 직불제 등을 확대해서 생활을 안정시켜야겠죠.”

    ―한국농업의 경쟁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경쟁력의 원천은 사람입니다. 농촌이 노령화한다는 건 그만큼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얘기라고 봐요. 젊은이들이 많이 정착해서 대규모로 농사를 지어야 경쟁력이 높아질 수 있습니다. 이젠 IT, BT산업도 농업현장에 접목돼야 합니다. 벼농사는 나이 드신 분들이 짓고, 젊은이들은 가능성 있는 작물에 집중투자하는 것이 바람직하겠죠.”

    ―우리 농업의 또 한가지 화두는 ‘환경친화적’이고 ‘지속가능한’ 농업이 아닐까 합니다. 앞으로 이 분야를 어떻게 지원하실 계획입니까.

    “그것은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세계적인 추세입니다. 소비자가 그쪽을 선호하니까 자연스럽게 그렇게 갈 수밖에 없는 거죠. 쌀의 경우 유기농법 등으로 특성화하지 않으면 버틸 수가 없어요. 한국은 지금 유기농산물 직판장을 개설하는 수준이지만, 중국에서는 유기농법 품평회가 열리고 있어요. 중국이 우리보다 몇 발짝 앞서가고 있습니다.”

    ―농림부의 각종 정책이 농민들에게 믿음을 주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농업분야의 생산성이 떨어지니까 정부 에서 예산이 제대로 뒷받침되지 않고 그러다 보니 당초 구상대로 되지 않은 사업도 많고…. 더 중요한 것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농업정책을 잘한다고 평가하는 국민들은 없다는 점이에요. 기본적으로 농업은 자연에 의존하기 때문에, 정부의 정책대로 안될 때가 많거든요. 산업 자체의 부정확성이 농민들의 불신을 키우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김장관은 농림부에서 잔뼈가 굵은 전문가답게 인터뷰 내내 막힘이 없었으며, 농정 전반에 걸쳐 자신감을 보였다. 많은 사람들이 한국농업의 미래를 우려하는 요즘, 그는 농민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잃지 말라고 당부했다. 가깝게는 ‘쌀 1포대 더 사주기운동’부터 시작하고, 멀게는 농촌의 생활환경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겠다는 게 그의 포부다. 김장관이 생각하는 2001년 가을의 한국 농촌은 어떤 모습일까. 그는 “어렵다지만 그래도 아직까지 인심이 좋고 풍요로운 곳”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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