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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취재

强小國 스위스 경제의 힘

‘하이디의 나라’에서 ‘하이테크의 나라’로

  • 이형삼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hans@donga.com

强小國 스위스 경제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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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사람들이 얼마나 부지런하고 꼼꼼한지는 그들의 일상 곳곳에서 짐작할 수 있다. 농촌에는 기계를 이용한 과학영농이 자리를 잡은 지 오래지만, 농부들의 손을 만져보면 젊은층도 하나같이 마디가 굵고 울퉁불퉁하다. 잠시도 쉬지 않고 손을 놀려대기 때문이다.

뒷마당에는 집집마다 장작더미들이 가지런히 층을 이루며 쌓여 있다. 과거에는 갑작스런 폭설로 장작을 잃어버리면 꽁꽁 얼어붙은 냉방에서 밤을 보내야 했기 때문에 겨울이 오면 장작을 정리해 쌓아두는 습관이 붙었다. 하지만 요즘은 다들 기름으로 난방을 하고 장작은 거실 벽난로의 운치를 살리는 부분 난방용으로나 사용하는데도 옛 습관을 못 버리고 있는 것.

스위스인들은 웬만한 집 수리나 자동차 정비 정도는 자기 손으로 해결한다. 그래서 농가는 물론 도시 가정들도 손때 묻은 갖가지 공구를 다 갖춰놓고 있다. 수십 종의 연장과 공구를 창고 한쪽 벽에 빽빽히 걸어둔 광경을 쉽게 볼 수 있는데, 자세히 살펴보면 각각의 공구가 걸린 자리마다 그 공구의 이름을 써놓고 모양까지 그려놓았다. 누가 무슨 공구를 가져다 쓰든 나중에 제 자리에 정확하게 걸어놓도록 하기 위함이다.

취리히에 거주하는 교민 김용학씨는 “스위스 사람들은 타고난 일벌레들”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스위스에서는 연방정부와 지방자치단체들이 다양한 현안을 내걸고 1년에도 20차례가 넘는 국민투표를 실시해 민의를 반영한다. 몇 년 전에는 스위스인의 근로시간이 너무 많다는 지적에 따라 급여는 그대로 둔 채 근로시간을 축소하는 방안을 국민투표에 회부했는데, 예상을 깨고 부결됐다. ‘부존자원도 없는 우리가 이만큼 잘 살게 된 것은 오직 근면과 성실 덕분’이라는 데 많은 이들이 공감했기 때문이다. 스위스에서 20여 년을 산 나도 깜짝 놀랄 만한 결과였다.”



교육 시스템 또한 내실있는 직업교육에 초점을 맞춘다. 스위스 청소년들은 9년 간의 의무교육을 마치면 적성과 장래희망에 따라 대학 진학을 준비하는 고등학교, 교원양성학교, 직업학교 등으로 진학한다.

의무교육을 마친 학생의 4분의 3 정도가 직업학교에 진학해 3∼4년 동안 도제수업을 받는다. 이들은 직업학교에서는 이론적인 부분만 배우고, 그 외에는 자신이 선택한 직종과 관련있는 인근 기업으로 출퇴근하면서 현장실습 위주로 배운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은 짧아진다.

이처럼 도제수업을 통해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직업교육을 받은 학생들은 졸업과 동시에 사회에서 바로 적용할 수 있는 기술을 익히게 된다. 스위스 젊은이들의 실업률이 미국, 독일, 스웨덴 같은 나라의 절반 수준밖에 되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IMD에 따르면 스위스 청소년의 과학·기술의 대한 관심도는 10점 만점에 7.43점으로, 핀란드(7.31) 프랑스(7.12) 독일(6.78) 미국(6.60) 일본(5.48) 등의 기술 선진국을 제치고 세계에서 가장 높다. 스위스는 학생 1인당 교육투자액도 세계 최고이며, 인구 대비 노벨상 수상자 수와 특허건수도 단연 세계 1위다.

‘시장을 존중하는 작은 정부’

교민 김용학씨는 “스위스 청소년의 대학 진학률은 20%에도 못 미치지만 고등학교만 나오면 3개 국어 정도는 어려움없이 구사한다”고 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외국어 교육을 실시하는 등 제도교육에서 외국어 교육을 강조하는데다, 다민족·다언어·다문화 국가이고 외국인이 많이 살다보니 대부분의 스위스인이 최소한 한 가지 이상의 외국어를 할 줄 안다는 것. 특히 비즈니스 분야에서는 영어가 공용어로 자리잡고 있다.

스위스인들은 이런 여건 때문에 외국어 실력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개방성과 포용성, 조화와 협상의 전통이 몸에 뱄다고 한다. 이는 외국 기업을 끌어들이거나 다보스 포럼 같은 각종 국제행사를 유치하는 데 커다란 장점으로 작용한다. 세계무역기구(WTO) 국제노동기구(ILO)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 국제결제은행(BIS) 등의 국제기구가 스위스에 본부를 둔 것도 이런 사정과 무관하지 않다.

스위스는 GDP의 약 3%를 연구·개발(R&D)에 투자하고 있는데, 투자액의 4분의 3은 민간부문에서 나온다. 각 대학의 과학·기술분야 연구소들은 전담 사무소를 두고 이들 민간부문과 긴밀한 협조관계를 유지한다. 정부의 R&D 예산은 기초연구에 중점적으로 지원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조사에 따르면 기술수출액을 기술수입액으로 나눈 기술 무역수지 순위에서 스위스는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에 올라 있다.

스위스 기업의 경쟁력은 ‘시장을 존중하는 작은 정부’에서 나온다는 말이 있다. 정부의 최우선 정책목표는 ‘가장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하는 데 있다. 인근 강대국인 독일이나 프랑스보다 유리한 기업환경을 만들어 첨단분야의 외국인 투자와 다국적 기업 본사를 유치하는 데 주력한다.

그렇다고 파격적인 투자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것은 아니다. 경제활동에 유리한 투자환경을 만드는 데 주력할 따름이다. 기업 인프라, 안정된 통화정책, 낮은 세금정책, 지적재산권 보호, 행정절차 간소화, 정치 안정, 노사관계 안정, 양질의 노동력 등이 그런 환경을 구성하는 요소들이다.

스위스의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연방경제부는 수도 베른 시내의 교차로 한 모퉁이에 있는 허름한 건물에 입주해 있다. 한 대뿐인 엘리베이터는 그나마 공간이 협소해 단체로 방문할 때는 계단을 이용해야 한다. 연방경제부는 국내 및 대외 경제정책 파트로 분리돼 있었으나 글로벌화의 진전으로 국내외 경제정책을 분리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에 따라 최근 관할부서를 일원화했다.

연방경제부는 자신의 임무영역을 거시적 차원으로 제한한다. 즉 ▲대외적으로는 상품·서비스 교역 및 해외 투자를 관할하고 스위스의 대외 경쟁력 향상과 국가간 경제협력에 주력한다 ▲대내적으로는 연방 차원의 산업·경제정책을 수립하고 각 주의 균형적 경제발전을 조정·지원한다는 것이다.

주정부의 독립성을 보장, 실질적인 경제정책은 주정부의 자율적 판단에 맡기고 연방정부의 간섭은 최소화해 경제발전을 측면에서 지원하겠다는 얘기다.

이처럼 연방정부로부터 상당한 수준의 정치적 자율권과 자치행정권을 부여받은 26개 주정부는 서로 경쟁하면서 기업활동에 유리한 여건을 만들어 가고 있다. 연방경제부 이레나 크로네 공보관은 “스위스에 투자하려는 한국 기업인들은 ‘힘없는’ 연방정부보다는 재량권을 많이 가진 주정부들과 직접 접촉하면서 그들이 내거는 조건을 비교해보는 게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기업 스스로 살 길 찾게

스위스는 상위 10대 기업의 시가총액이 주식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75%(한국은 61%)에 달할 만큼 소유 및 경제력 집중도가 높지만 대기업에만 적용되는 차별적인 규제는 없다고 한다.

“스위스는 인구가 적고 자원이 부족해 해외시장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반영, 독점이나 카르텔도 명백한 경쟁제한 행위만 없다면 사회의 부를 증진할 수 있는 유효한 수단으로 간주하고 용인해왔다”는 게 변호사 겸 컨설턴트인 우르스 루스텐버거 박사의 설명이다. 최근에는 EU 출범 등에 대응하려고 공정거래법을 개정하는 등 경쟁촉진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기업합병 등에 대해서는 여전히 관대하다는 것.

외국 기업에 대해서도 별다른 규제를 적용하지 않는다.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적 권리는 외국인에게도 내국인과 차별없이 부여한다. 영주권자는 물론 임시 체류허가를 받은 외국인도 스위스인과 똑같은 방식으로 회사를 창업하거나 기업 지분을 매입할 수 있다. 회사를 세울 때는 정부로부터 특별히 허가를 받을 필요도 없고, 관련산업 조합에 가입하거나 상공회의소 등의 승인을 얻을 의무도 없다. 회사 지분의 일정 비율을 스위스인이 보유해야 한다는 따위의 규정도 없다.

스위스 정부는 과거부터 특정산업을 육성하거나 기업을 지원하는 등의 시장개입정책도 추구하지 않았다. 기업들이 스스로 결정하게 내버려두면 결국은 살 길을 찾게 된다는 믿음이 깔려 있다. 카메라산업과 자동차산업이 위기를 맞았을 때도 정부는 이들을 구하려고 시장에 뛰어들지 않았다. 기업들이 자발적인 혁신을 통해 살아 남았다. 그 결과 한 카메라 회사는 세계적인 거리측정 광학기기 전문업체로 거듭났고, 승용차산업이 자취를 감춘 대신 청소차, 스키장용 자동차 등을 만드는 특수차량업체가 활기를 띠고 있다.

스위스에는 식품, 서비스 관련산업, 정밀기계, 화학, 섬유 등 5개 ‘클러스터(Cluster)’가 오랜 기간에 걸쳐 자연스럽게 형성됐다. 우리말로는 ‘산업단지’쯤으로 번역되는 클러스터에선 대기업, 중소기업, 대학, 연구소가 상호보완 기능을 하며 긴밀한 협력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 최근에는 바젤, 베른 지역을 중심으로 유전공학·나노테크놀로지·IT분야의 새로운 클러스터가 형성되고 있다.

이들 클러스터도 정부가 주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국내외 민간기업들이 스스로 살 길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혁신하고 변모하고 협력해서 만들어낸 것이다.

물론 정부가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스위스 정부는 1997년 유전공학 연구를 적극 지원하기 위해 ‘메드테크 이니셔티브’를 출범시키고 이를 통해 유전공학 R&D 분야의 과학자와 기업체를 연결, 산학협력체제를 가동했다. 1992년 이래 생명기술 중점 육성 프로그램(Swiss Priority Program Biotechnology)을 통해 제약, 식품, 생명공학 분야의 R&D 프로젝트를 지원하기도 했다. 정부 지원이 불가피한 분야의 ‘준비된 기업’에 대해서는 지원을 아끼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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