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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밀분석

韓·中·日 축구감독의 경쟁력

수읽기의 귀재 히딩크 · 그라운드의 심리학자 밀루티노비치 · 관리축구의 달인 트루시에

  • 김한석 < 스포츠서울 기자 > hans@seoul.co.kr

韓·中·日 축구감독의 경쟁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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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유럽의 명장으로 성공하는 데 유명한 일화가 있다. 나중에 94미국월드컵에서 MVP를 차지하게 되는 호마리우를 공항에서 납치(?)한 사건이다. 1988년 서울올림픽이 끝나고 귀국하는 브라질의 떠오르는 스타 호마리우를 리우데자네이루 공항까지 쫓아가서 데려온 주인공이 히딩크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손을 뻗치자 도저히 놓칠 수 없어 공항에서 낚아챘다고 한다. 1990년대 초반 스페인 바르셀로나로 옮긴 호마리우는 발렌시아 벤치의 히딩크를 찾아와 꾸벅 절하고서야 경기에 나설 정도로 은사를 존경했다.

1995년 2월22일. 히딩크는 네덜란드 대표팀 사령탑에 발탁돼 축구인생의 절정에 올랐다. 96유럽선수권서 8강에 그쳤으나 98프랑스월드컵 16강과 8강에서 유고와 아르헨티나를 각각 2 대 1로 격파했다. 4강에서는 브라질과 1 대 1로 비긴 뒤 승부차기 석패, 3·4위전서도 크로아티아에 2 대 1로 패해 4위를 기록했다.

그는 자유분방한 오렌지전사들 때문에 애를 먹기도 했다. 흑인인 다비즈와 세도르프는 그가 백인우월주의자라고 비난하다 팀워크를 의식한 히딩크의 엄명으로 96유럽선수권 현장에서 중도에 보따리를 싸야 했다. 민주적이지만 규율의 한도를 넘기면 책임을 묻는 히딩크의 단면을 보여주는 사건. 그러나 2년 뒤 그는 다비즈를 포용했고 4강진출의 전위병으로 활용해 선수관리에서 유명한 일화를 남겼다.

히딩크는 네덜란드 대표팀 감독으로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토털사커’로 득세한 1970년대 이후 대표팀을 5차례나 맡으면서 1534일간 지휘한 ‘토털축구의 창시자’ 리누스 미셸 감독에 이어 두번째로 장수한 감독이다.

98~99시즌 스페인의 명문클럽 레알 마드리드 감독에 취임한 뒤 1998년 유럽·남미클럽챔피언 간의 왕중왕전인 도요타컵에서 우승하며 세계클럽의 정상에 섰다. 히딩크는 이때 콧수염을 잘랐다. 경기전 기자들이 “이기면 팬들한테 뭘 보여주겠느냐”고 묻자 그는 서슴없이 트레이드마크인 콧수염을 자르겠다고 약속. 결국 브라질의 바스코다가마를 2 대 1로 꺾자 미련없이 콧수염을 잘랐고 지금도 그 약속을 지키고 있다.



그러나 ‘삼손의 머리’처럼 콧수염을 자른 뒤 시련이 찾아왔다. 리그에서 준우승에 그치자 트레이드의 실패와 선수와의 마찰 등이 구설수에 올랐고 결국 한 시즌만에 하차했다. 이듬해 시즌 막판 2부 탈락 위기에 있던 레알 베티스의 임시감독으로 스페인 무대에 복귀했지만 이미 기울어진 대세를 바로잡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후 잉글랜드 스코틀랜드에서 영입 제의가 있었지만 “당분간 쉬고 싶다”고 사절했다. 한국의 스카우트 작업도 재충전을 고집했던 그의 의지 때문에 애를 먹었던 셈이다.

트루시에는 지난해 아시안컵 우승으로 아시아축구연맹(AFC)이 선정한 ‘2000년 올해의 감독’에 뽑혔다. 1994년부터 시행된 시상에서 외국인 감독이 수상하기는 처음이다.

한마디로 트루시에는 질경이 같은 생명력과 강인한 인내로 성공신화를 일궈냈다. 아프리카 황무지에서 9년간 4개 대표팀을 거치며 일군 결실이다. 84~87년 프랑스 4부클럽 아랑송, 87~90년 3부클럽 레드스타에서 지도자 수업을 받은 뒤 아프리카로 향했다. 90~92년 아이버리코스트의 아비장에서 아프리카 슈퍼컵 우승을 거머쥔 업적으로 1993년 아이버리코스트 대표팀을 지휘했다. 1994년 남아공화국 카이저치프로 옮기자마자 리그 우승을 차지한 뒤 이듬해 모로코 1부리그 CA라바트로 옮겼다. 95~97년 모로코 2부클럽 FUS라바트를 이끌고 내셔널컵 우승으로 파란을 일으켰다.

밀루티노비치의 ‘즐기는 축구’

1997년 나이지리아 대표팀을 거친 뒤 부르키나파소 대표팀에 스카우트됐다. 1998년 아프리카 최고 권위의 아프리카네이션스컵에서 부르키나파소를 사상 처음 4강에 올려놓자 그에겐 ‘하얀 마법사’란 별명이 붙었다. 주술보다도 뛰어난 용병술로 4강고지에 오르자 백인의 마술에 놀란 국민들이 붙여준 애칭이다. 1998년 5월20일. 트루시에는 남아공 대표팀 지휘봉을 잡고 마침내 월드컵 본선무대에 입성했다.

흔히 지도자는 덕장 지장 용장으로 구분하지만 이들 3인방은 모두 이같은 자질을 고루 갖추었으면서도 맹장(猛將)의 기질을 풍긴다. 전술적인 변화보다도 팀의 사기와 단결, 그리고 자신감을 강조하는 탓이다. 다혈질적인 면도 엿보인다. 전술적인 면에서는 공격과 수비, 그리고 포지션간의 밸런스를 강조한다.

밀루티노비치는 ‘그라운드의 심리학자’라고 불릴 만큼 선수 심리파악에 정통하며 전체적으로 동기부여에 탁월하다. “축구에서 골든 룰은 선수들이 체력적으로 정상을 유지하게 하고 팀내에서 좋은 분위기를 창조하는 것”이라는 지론을 편다. 또 “공격이다 수비다 개인기다 해서 팀을 평가하기보다는 전체로서 팀을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하며 팀 스피리트(Team Spirit)를 중시한다.

중국에서는 밀루티노비치가 중국대표팀에 가져온 변화로 전술이나 기술보다 선수들의 심리능력을 꼽는다. 중국은 최종예선에서 긴장된 분위기를 극복하고 자신있는 플레이를 펼쳤다. 이것은 밀루티노비치가 선수들에게 ‘즐기는 축구’ ‘평상심을 잃지 않는 축구’를 강조한 덕분이다. 중국 언론으로부터 질타를 받았던 마밍위, 라샤요펑, 양푸, 장진 등을 끝까지 믿고 주전으로 기용한 결과, 선수들의 자신감을 키웠을 뿐만 아니라 그 자신도 선수들의 전폭적인 신임을 얻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두었다.

밀루티노비치가 자신감을 고취시키는 방법은 비디오다. 전력을 탐색하거나 선수를 고를 때 늘 직접 캠코더를 갖고 다닌다. 비디오로 경기를 녹화해 골을 넣는 장면이나 특별히 호흡이 잘 맞은 장면들을 편집해 선수들에게 보여주면서 “봐라, 너희들도 이렇게 잘 할 수 있다”고 말한다. 물론 실패한 장면들도 편집해 보여주지만, 잘된 것을 먼저 칭찬하는 게 그만의 독특한 심리지도다.

트루시에는 지난 2월 AFC 지도자 포럼 연설에서 축구철학을 드러냈다. “팀의 전력을 100%로 볼 때 감독과 선수와의 관계가 60%, 선수들의 자질이 30%, 날씨 등 기타 환경이 10%를 차지한다.” 결국 감독과 선수의 호흡이 일치해야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다는 얘기다. 지난해 시드니올림픽 직전 최종엔트리를 선정하는 합숙훈련 때다. 볼을 차기는커녕 잔디조차 밟지 못하게 해놓고 러닝, 스트레칭, 웨이트트레이닝 등으로만 훈련을 한 뒤 자유시간을 주었다.

승부욕 강한 히딩크

그러나 트루시에는 훈련장 외에 식사와 휴게실에서의 태도를 체크했다. 선수들의 태도, 특히 협동심을 눈여겨보았다. 트루시에의 선수관리는 철저하다. 국내합숙 때는 전화통화와 신문구독까지 금지시키고 해외원정 때는 쇼핑봉투까지 체크하는 등 집중력을 유지하기 위해 규율을 중시해왔다.

트루시에는 3인방 중 가장 다혈질이다. 표정변화가 심한 데다 목소리는 크고 화도 잘 낸다. 그러나 천성은 솔직담백하다. 불같은 성질 때문에 2000아시안컵 MVP인 나나미와 충돌한 적이 있고, 모리오카는 혹독한 훈련방식에 불만을 터뜨리며 축구화를 벗어던진 일도 있다. 그러나 뒤끝이 없다. 언제 그랬냐는 듯 다음날 훈련에서는 큰소리를 쳐가며 선수들을 다독인다.

트루시에는 지난해에 이어 지난 9월 요코하마에서 J1리그 피지컬코치 및 트레이너들과의 만남을 가졌다. 무려 8시간이나 이어진 이 자리에서 그는 체력과 컨디션을 중시하는 자신의 지도방식을 설명하고 선수들의 특징과 컨디션을 상세히 파악하고자 노력했다. 3년간 대표팀을 맡아보고 틈나는 대로 리그 경기를 봤기 때문에 웬만한 선수들은 꿰고 있었지만, 소속팀 코치만큼 컨디션을 잘 파악하는 사람이 없기에 협회를 통해 귀중한 시간을 요청한 것이다. 지난해 첫 만남에서 선수정보를 공유하자는 약속 덕택에 지난 6월 컨페더레이션스컵 때 스즈키, 하토, 토다 같은 무명선수들을 내세워 준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다.

히딩크는 큰 경기를 많이 치른 탓인지 승부욕이 유난히 강하다. 히딩크가 한국에 온 지 얼마 안돼 이용수 기술위원장이 “프랑스월드컵 때 마르세유경기장에서 규정된 시간보다 20분을 더 사용하며 줄곧 슈팅훈련만 해 한국팀이 훈련에 차질을 빚었는데 왜 그랬냐”고 물었더니 빙그레 웃으며 “한국팀의 기를 죽이려 그랬다”고 대답했다. 결국 다음날 5 대 0으로 한국을 대파했으니 그의 심리전이 적중한 셈이다.

박항서 대표팀 코치의 말을 빌어보자.

“생각하는 축구를 하도록 유도한다. 가령 A라는 선수가 잘못했을 경우 감독이 먼저 나서서 지적하지 않는다. 본인이 잘못된 부분을 깨달을 때까지 내버려둔 다음 대처방안을 가르쳐준다. 또 특정 상황을 가정해서 훈련한다. 예를 들어 경기종료 2분전 1 대 0으로 이기고 있을 때와 지고 있을 때 경기를 어떻게 운영해야 할지 선수 스스로 생각하면서 플레이를 펼치도록 만드는 식이다.”

히딩크는 인내력을 강조한다. 컨페더레이션스컵 때 설사가 난 설기현을 끝까지 뛰게 한 것이나, 체코전 때 범실이 많았던 김남일을 중간에 빼지 않은 것이나, 1월 첫 훈련 때 힘들다고 하소연하는 박재홍을 아예 퇴출시킨 것이 같은 맥락이다. 어려운 상황을 이겨낼 줄 알아야 월드컵 같은 큰 무대에서 경쟁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선수 본인이 자기관리를 안했을 때 그만한 고통을 느끼게 된다는 책임의식을 일깨워주는 치밀한 계산도 깔려 있다.

지난 8월 유럽원정 때 네덜란드의 한 신문은 ‘히딩크, (싸움닭)다비즈를 그리워하다’는 타이틀로 기사를 실었다. 히딩크가 “카리스마를 가진 저돌적인 선수가 없다. 분위기를 살리는 리더가 없고 모두 순한 양이다”며 한국선수들의 수동적인 자세를 꼬집은 것을 두고 나온 보도였다.

히딩크와 밀루티노비치의 공통점이 있다. 미리 예정된 훈련표가 없다는 점이다. 중국의 하오하이둥은 중국 관영 CCTV에 나와 “다롄팀(소속팀)에는 월간스케줄까지 있는데 대표팀엔 주간계획표도 없다. 밀루티노비치의 훈련방식이 즉흥적이다”며 정면으로 질타해 파문을 일으켰다. 히딩크도 한국선수들에게 낯선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어 논란이 많다. 주간, 월간 훈련계획은커녕 일일계획도 없다. 코치들도 모른다. 오전훈련은 아침식사 뒤에, 오후훈련은 점심식사 뒤에 히딩크의 입에서 나온다. 긴장관리를 위한 독특한 방법으로 너그럽게 봐주는 시각도 있지만, 선수들의 자율적인 분위기를 억제하는 자충수라는 비판도 있다.

히딩크와 트루시에는 다른 점이 있다. 수읽기가 그렇다. 컨페더레이션스컵 때 FIFA(국제축구연맹)는 공동개최국인 한국과 일본에 경기순서를 선택할 수 있는 특권을 주었다. 트루시에는 캐나다 카메룬 브라질 순으로 약팀부터 대결하겠다고 했지만, 히딩크는 프랑스 멕시코 호주 순으로 택했다. 결과는 일본이 2연승으로 4강진출을 가장 먼저 확정지은 반면, 한국은 프랑스에 5 대 0으로 대패하면서 뒤늦은 2연승에도 4강에 오르지 못했다. 누가 노회한지는 판별하기 어렵지만, 5개국 사령탑을 맡아본 트루시에가 판정승을 거둔 것만은 사실이다.

시련을 이겨낸 승부사들

낯선 아시아에서 이방인 감독 3인방은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다. 가장 늦게 가세한 히딩크를 빼면 트루시에와 밀루티노비치는 언론은 물론 협회와도 갈등을 빚었다. 하지만 일본은 갈수록 좋아지는 성적으로, 중국은 본선진출이라는 열매로 그간의 불협화음을 씻었다.

히딩크는 처음 한국 감독직을 수락하고 “(예방)주사 맞고 입국하느냐?”고 물을 만큼 한국을 몰랐다. 그래서 일본 J2리그에서 감독생활을 했던 핌 베어벡을 코치로 앉혀 적응력을 키우려 했지만 아직은 미흡한 면이 많다. 히딩크 사단은 그동안 극심한 유럽징크스에 시달렸다. 10월9일 6기 멤버로 훈련을 끝낼 때까지 9개월 동안 14경기를 치러 7승3무4패로 60.7%의 승률을 거뒀다. 그중 4패가 모두 노르웨이, 덴마크, 프랑스, 체코 등 유럽팀이다.

1월 칼스버그컵 3위, 2월 두바이4개국대회 준우승, 4월 LG컵 이집트대회 우승 등 상승드라이브를 타다가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 프랑스에 0 대 5로 참패하더니 8월 체코원정경기에서도 다시 0 대 5로 무너진 히딩크 사단. ‘과연 이대로 가다간 16강 진출이 가능한가’라는 우려가 국회 국정감사에서까지 나왔고 히딩크에 대한 지지도도 하락하고 있다. 그러나 9월 2진급인 나이지리아와 1승1무를 기록한 뒤 히딩크는 “최종 승부는 월드컵이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히딩크가 14차례 A매치에 활용한 선수는 모두 51명. 네덜란드대표팀에서 3년 5개월 동안 모두 39차례 A매치에서 총 47명을 기용한 것과 비교하면 태극전사의 옥석가리기가 그만큼 힘들다는 것을 보여준다.

히딩크에 대한 논란은 크게 포백(4-4-2 또는 4-3-3시스템)이냐 스리백(3-5-2 또는 3-4-3)이냐는 포메이션 문제와 휴가문제다. 언론에서는 “스리백을 썼을 때 승률이 좋았지만 4패는 모두 포백수비를 세웠을 때 당한 것”이라며 1990년 월드컵 이후 한국선수들의 몸에 밴 스리백 방어를 권고한다. 그러나 히딩크는 반대다. “월드컵에서는 어떤 팀을 만나도 다양한 전술변화로 맞서야 한다”며 포백과 스리백 라인을 혼용해 취약한 수비문제를 해결해나갈 것이라는 소신을 굽히지 않고 있다.

그가 훈련장에서 강조하는 ‘트라이앵글’을 보자. 공격할 때든 수비할 때든 동료 3명이 삼각꼴을 이뤄 패스로 공격의 실마리를 풀어나가고 또 협력프레싱으로 견제하는 부분전술이다. 히딩크는 한국선수들의 엉성한 부분조직을 보고 기초적인 전술개념부터 바꿔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1970년대 세계축구계를 강타했던 네덜란드 ‘토털사커’의 바탕인 복수 포지션 소화능력을 점검하는 데 10월 대구합숙훈련을 모두 투자했다. 한 선수가 여러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어야 상대에 따라 탄력적인 전술대응이 가능하며 위기관리능력도 향상된다는 것이다.

히딩크는 2월 무릎수술로 인한 네덜란드 체류에 이어 장기휴가로 언론의 집중포화를 맞았다. 밀루티노비치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12월 대표팀이 훈련하고 있는 도중 홀로 훌쩍 크리스마스 휴가를 다녀와 중국축구협회로부터 비난성 ‘경고’를 받았다. 그러나 밀루티노비치는 시간 나는 대로 중국리그 경기는 물론 지난해 한국·유고전 등 해외경기도 찾아가 자신의 캠코더에 담아 공부한다. 히딩크가 국내프로리그 관전에 소홀하다는 시선에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옹호론도 나오고 있지만, 휴가와 선수탐색, 세계축구의 흐름 파악 등을 슬기롭게 조화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더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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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석 < 스포츠서울 기자 > han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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