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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기행

시베리아 샤머니즘의 원류를 찾아서

문화탐험가 윤명철의 바이칼 기행

  • 윤명철 < 동국대 교수·역사학 >

시베리아 샤머니즘의 원류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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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수(世界樹)와 새숭배 신앙의 근원인 바이칼의 샤머니즘, 강강술래와 비슷한 동작에 우주의 율려를 노래하는 부랴트 샤먼의 무가(巫歌), 백야의 땅 위에서 벌어지는 굿판…. 거기엔 고구려·백제·신라의 원형 문화가 고스란히 녹아 있다.
여름날의 시베리아는 아름다움 그 자체다. 신선하고, 푸르고, 환한 아름다움이다. 겨울날이라면 새하얗다 못해 푸른 기가 도는 하얀 눈들이 천지를 뒤덮고, 늘상 제 빛을 지닌 수십 미터 침엽수들도 눈에 치여 빼꼼히 눈만 내놓고 있을 텐데.

비행기가 달린다. 눈이 달린다. 마음이 달린다. 시베리아와의 첫만남은 하늘에서 이루어졌다. 몽골 울란바토르에서 러시아의 이르쿠츠크로 향하는 비행기는 산맥의 길이가 1000km에 달하며 최고봉인 문쿠사르디크산의 높이가 3491m나 되는 거대한 지대 위를 헤엄치듯 출렁거리며 달렸다. 러시아 여인의 흰 피부 같은 산의 살결이 구름의 깨어지고 갈라진 틈으로 드러난다. 끝이 없는 수해(樹海)의 수평선에서 초록의 물결들이 넘실거린다.

언젠가 뗏목으로 대양을 횡단하다가 태풍의 뒤끝을 만나 정처없이 표류할 때였다. 사방에서 파도가 밀려오는 그 장엄함에 기가 질리면서 “아! 바다와 산이 같을 수도 있구나”하고 소리쳤다. 그런데 이젠 하늘에서 산맥의 골과 마루를 채운 나무들의 물결을 보면서 다시 한번 “아! 산과 바다가 같을 수 있구나”고 중얼거린다.

6월이 이제 반을 넘어 여름의 한가운데를 향해 질주하고 있는데도 끝을 모르는 나무의 바다에는 눈덩이들이 아직도 곳곳에 쌓여 있거나 파도의 갈기처럼 흘러내리고 있다. 산 능선이 수십킬로미터씩 이어지는데도 사람들이 터를 잡고 사는 흔적을 발견하기가 영 쉽지 않다. 거의 길도 나 있지 않은 데다가, 때때로 사행천(蛇行川)만 풀밭 사이로 가늘게 흐르면서 햇살에 반사되고 있을 뿐이다.

놀랍게도 원시림 같은 산정의 높고 낮은 곳곳에 호수가 있고, 물이 차 있다. 대접 모양도 있고, 조롱박 모양도 있고, 옹달샘처럼 동그란 모양도 있다. 우리에겐 남과 북, 두 군데밖에 없는 천지(天池)가 여기서는 연꽃잎에 굴러다니는 물방울들처럼 산 곳곳에 있다. 늘상 천지의 신령스러움에 감동받으면서 자라온 나는 경이로움에 마음이 정결해진다.



시베리아의 파리, 이르쿠츠크

몽골의 쌍발여객기가 이르쿠츠크 공항의 한적한 활주로에 착륙했다. 금발의 늘씬한 러시아 여군의 얼음 같은 미소와 더딘 통관수속이 우리를 맞았다.

시내의 분위기는 예상보다 활달하고 밝았다. 여인들의 복장이 시원하고 노출이 심하여 눈길을 끈다. 쾌활하고 자신감에 넘치는 인상들이다. 반면에 사내들은 왠지 주눅이 들어 풀죽은 인상들이다.

백화점에는 물건이 풍성하고, 백인·몽골인·고려인 등 다양한 인종들이 섞여 물건을 사고파는 정경이 단일민족의 눈에는 매우 이채롭다. 러시아가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선입견만 없다면 편안하고 활력이 넘치고 아름다운 도시라는 인상이다.

거리 한복판에 전차선로가 죽죽 그어져 있고, 그 위로 발그레한 색의 긴 전차가 러시아인들의 여유있는 웃음을 싣고 천천히 지나간다.

이 도시는 코사크족을 앞세운 러시아의 침략으로 그 문이 열렸고, 1661년에 몽골과 중국을 방어하기 위한 군사요새로서 출발했다. 중국과 교역이 이루어지면서 도시가 점점 커지다가 결국 1764년에는 총독이 다스리는 행정도시가 됐다. 그런데 1825년에 성페테르스부르크에서 차르의 왕정통치에 반대하는 귀족들이 데카브리스트(12월당)의 난을 일으켰다. 거사가 실패한 뒤에 많은 귀족(128명)들이 이곳에 유배됐다. 그들은 엄청나게 긴 고행의 거리를 지나 이곳에 유배돼 일부는 한을 달래다가 즈나멘스키 수도원에 묻혔다.

하지만 사람들은 곧 이곳을 사랑하게 되었고, 향수를 달래면서 아름다운 건물들을 짓고 정착했다. 그래서 이 도시는 ‘유형자들의 수도’라고 불렸다. 그 흔적들이 지금도 남아 이르쿠츠크를 유럽문화가 살아 숨쉬는 ‘시베리아의 파리’로 만들었다. 250만 명이 살고 있는 이 도시는 340년이란 긴 세월을 보내면서 우아하고 고풍스러운 데카브리스트 기념관과 독특한 형식의 목조건물들을 거리에 세워놓았다. 이를테면 마르크스 거리는 환한 붉은 벽돌로 쌓은 나지막한 건물들이 격조 높게 늘어서 있는 고풍스러운 도시다.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에 나오는 귀족여인들이 활보하는 듯한 환상에 빠져본다.

앙가라강의 전설

앙가라강으로 나갔다. 강변은 더운 여름날 이르쿠츠크 시민들이 피서하는 장소다. 러시아인의 시베리아 개척을 기념하는 거대한 오벨리스크가 강을 바라보며 서 있다. 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춤을 추기도 하고, 젊은 연인들은 파라솔 안에 앉아 콜라를 마시거나 팔짱을 낀 채 환한 미소를 띠고 우아하게 거닐고 있다.

앙가라는 시내를 관통하는 강이다. 폭이 그다지 넓지는 않지만 좁지도 않고, 시원스럽고 인간에게 가까이 있다는 느낌을 준다. 몇 척의 배들이 떠다니고 있다.

대략 336개의 하천이 바이칼호로 흘러들지만, 그 물이 빠져나가는 곳은 오로지 앙가라강뿐이다. 그 길이도 1779km에 달하는 긴 강이다. 이러한 신비로움 때문인지 재미있는 전설이 있다.

세계적 휴양도시인 리스트비얀카에는 호수와 앙가라강이 맞닿은 한가운데에 큰 바위가 있다. ‘샤먼 바위’로 불리는 이 바위는 부랴트 샤먼이 바이칼 신에게 제사를 드리던 장소인데, 때로는 범죄자를 처벌하는 데도 이용하였다. 해가 질 무렵에 죄인을 바위 위에 올려놓고 가서 다음날 아침에 돌아와 그 범죄자가 없으면 바이칼 신이 수장시킨 것이라 믿고, 만약에 살아 있으면 무죄라 여기고 살려주었다고 한다.

이 강에는 또 다른 흥미있는 전설이 있다. 바이칼 할아버지는 336명의 아들과 어여쁜 외동딸 앙가라를 두고 있었다. 바이칼은 앙가라를 이르쿠트라는 청년에게 시집보내려고 마음을 먹었다(이르쿠트는 물결이 사나운 강이다. 이르쿠츠크라는 도시 이름이 바로 이 강 이름에서 온 것이다). 그런데 바이칼에 사는 갈매기들은 앙가라에게 멀리 북쪽에 있는 예니세이라는 용사가 더 멋있다고 자랑하였다(예니세이강은 앙가라강이 흘러 들어가 만난 다음에 멀리 북극해로 빠져나간다). 그때부터 앙가라는 예니세이를 사랑하게 되었다. 이를 눈치챈 바이칼은 딸을 감시하였고, 마침내 그녀는 아버지가 잠든 사이에 몰래 도망을 치려 했다. 바이칼은 잠에서 깨어나 놀라서 큰 바위를 집어던져 앙가라의 하얀 목을 맞혔고 그녀는 그만 죽어버렸다. 지금도 앙가라는 늘 예니세이를 그리면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고 한다. 이는 바이칼 주변의 자연현상을 의인화하여 설명한 흥미로운 전설이다.

宇宙木 숭배 신앙

서둘러 시내를 빠져나갔다. 아름답고 우아한 시내가 싫은 게 아니라, 깊이 있는 문화와 아름다운 여인들이 싫은 게 아니라 어서 빨리 바이칼과 가까워지고 싶어서다.

큰 건물이 점점 드물어지고 검은 통나무집들이며 남루한 건물, 조그만 가게들이 가끔씩 나타나는가 싶더니 일직선으로 시야가 확 트인다. 버스는 몇 시간째 내내 달리고 있지만 길은 끝이 없다.

이게 바로 타이가다. 낙엽송, 자작나무, 가문비나무, 흑전나무 등이 수해를 이루고 있는 지역이다.

우리의 몸뚱이 옆으로는 백양나무와 자작나무들이 나름대로 자리를 양보하면서 숲을 이루어 멀리 끝간 데를 가늠하기가 어렵다. 우린 영락없이 수해, 숲의 바다에서 항해하고 있는 것이다. 자칫하면 표류할 수도 있는….

자작나무의 비릿하고 야릇한 내음이 공중에 떠다닌다. 사람의 혼을 홀린다는 그 향기가 이곳에선 지천으로 흘러다니고 있다. 어디서나 숲은 아름다움보다는 생기를, 눈길보다는 마음을 더 움직이게 한다.

타이가의 주인은 숲과 나무다. 숲에서 바람이 일고, 물이 흐른다. 나무에 먹을 것이 달려 있고, 그 사이사이에서 바브츠카(하얀나비)들이 날고 있다. 이곳의 나무들은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의 상태로 하늘을 향해, 땅을 향해 아래위로 곧추 서 있다.

이러한 자연환경에서는 수풀신앙이나 수목숭배신앙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 수풀이란 인간에게는 감추어진 장소다. 밖에 사는 인간에게는 피안의 영역이고 신들의 거주지다. 신들의 내밀한 속삭임이 바람결에 들려오는 곳이다. 그래서 늘 역사와 신화에서 수풀은 신비로운 자태로 등장한다.

신라는 특히 수풀과 관련이 깊다. 박혁거세는 나정 옆의 수풀 사이에서 백마가 낳고 간 알에서 깨어나 신라의 시조가 됐다. 경주김씨의 시조인 알지는 수도의 시림에서 발견된 궤짝에서 나왔다. 국호이면서 수도 이름이기도 했던 계림은 바로 이 시림의 알지신화에서 생겨난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신화가 영남지방에서는 골매기 신앙으로 이어져 오고 있다.

수풀은 나무들로 채워져 있기에 나무는 더욱더 숭배의 대상이 된다. 특히 나무들이 그 존재를 구현하고 있는 타이가에서는 더부살이하는 모든 존재물들에게 숭배의 대상, 신령스러운 대상이 될 수 있다. 고대세계에서 끝없이 솟은 나무는 날개를 잃어버린 인간에게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유일한 존재요, 인간이 살을 부비면서 체온을 주고받으면서 하늘과 교신할 수 있는 곳이다. 더구나 나무는 자체로 생명을 지니고 있으니 늘 실존에 불안한 인간이 얼마나 의지하고 싶었겠는가?

사람들은 그 나무를 세계수라고 하고 우주목이라고도 부르면서 몸과 마음을 던지고 머리를 조아리곤 했다. 큰 나무가 없는 몽골 같은 평원에서는 오보에라는 돌무더기를 쌓아놓고, 그 꼭대기에 마른나무를 세워놓기도 했다.

단군신화에서 환웅이 하늘에서 내려온 곳은 태백산 꼭대기의 신단수 아래다. 그리고 웅녀가 자식을 낳게 해달라고 정안수 떠놓고 빈 곳도 신단수 앞이다. 곳곳에 솟대가 서 있는 것도 역시 나무신앙의 한 변형이다. 신라고분 천마총에서 발견된, 흰말에 그려진 말다래도 신단수인 바로 자작나무 껍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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