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8월호

위기의 한국 프로복싱

헝그리와 무대뽀로 르네상스 꿈꾼다

  • 이형진 < 임바디 대표 > embody@embody.co.kr

    입력2004-09-01 1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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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끝까지요” 행선지를 묻는 버스 안내양에게 소년 김득구가 말한다. 삶에는 목표가 필요하다. 정처 없는 나그네길에 인생을 비유한 노랫말도 있지만, 인생은 뚜렷한 목적에 따라 길이 갈린다. 스포츠도 마찬가지다. 2002년 6월, 한국축구는 분명한 목적이 있었기에 세기의 신화를 남길 수 있었다.

    ‘숫자로 생각하는 사람이 성공한다’는 책이 있다. 저자는 애매성, 우연, 포기 등 인생의 비전과 실천을 가로막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 숫자로 목표를 명확히 할 것을 주장한다. 적절한 예가 이번 2002한일월드컵에서 한국팀이 거둔 성과다. 그 동안 한국축구에는 ‘16’이라는 숫자만 있는 줄 알았다. 국민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16강을 뛰어넘어 4강 신화를 만들어냈다. 뚜렷한 길을 갔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4’는 덤으로 얻은 행운이다.

    그렇다면 김득구가 말한 “끝까지요”는 불확실한 행로의 의미였을까. 아니다. 그건 복싱의 불확실성과 복서의 권투 인생을 내포하는 말이다. 레이 맨시니와 처절한 사투를 벌여 14회로 끝난 그의 마지막 시합은 비록 목숨을 제물로 요구했지만, 한 청년의 삶을 모두 내던진 링 위의 전쟁이었다.

    랭킹도 못 매기는 한국 복싱

    김득구는 목표를 가진 사나이였다. 최근 개봉한 영화 ‘챔피언’에서 김득구는 자취방과 호텔 방에 승리를 다짐하는 문구를 붙여놓았다. 복싱은 실존의 스포츠다. 구체적으로 존재해야 이기는 스포츠다. 실존은 반드시 삶을 얘기하지만 죽음을 떠나서는 삶이 있을 수 없다. 승리도 마찬가지다. 패배를 모르는 승리는 없다. 권투가 실존에 더욱 가까이 가는 건 역설적으로 죽음에 가까이 가는 불온한(?) 위험성을 항상 동반하기 때문이다.



    세계챔피언이 한 명도 없는 한국 프로복싱은 이미 죽음에 이른 것일까. 위기에 빠진 프로복싱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한국권투위원회 이세춘(58) 사무총장은 한국 프로복싱의 현주소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프로복싱의 위기는 시대 흐름 때문이다. 경제가 발전하고 국민소득이 올라갈수록 권투라는 극기 스포츠는 팬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다. 하나의 원인이라기보다는 여러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것 같다. 현재 한국권투위원회에 등록된 전국의 복싱 체육관은 116개다. 1990년대 초반에는 더 많았지만, 중반부터 감소했다. 2000년 이후 조금씩 늘어나는 추세지만, 내용을 보면 반가운 현상만은 아니다. 선수가 되려는 사람보다는 취미로 권투를 즐기는 사람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프로복싱 선수 기반은 여전히 취약하다. 등록선수가 많을 때는 800여 명이었는데, 현재는 500~600명 수준이다. 심지어 어떤 체급에서는 한국 랭킹 10위 리스트를 작성하지 못하는 경우까지 있다.”

    하지만 너무 비관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 이사무총장은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일본도 10~15년 전에 우리와 같은 침체기를 겪었지만 요즘 부흥기를 맞았다. 한 달에 24일이나 시합이 잡혀 있다. 따라서 일본에서 경기를 하려면 3개월 전에 스케줄을 잡아야 한다. 일본은 현재 세계 챔피언도 4명이나 된다.”

    이사무총장은 국민들이 좀더 애정을 갖고 프로복싱을 봐달라고 당부한다. 그는 한국 프로복싱이 현재 심한 몸살을 겪고 있다고 진단한다. 따라서 고난의 시간이 지나면, 과거의 영광을 되찾을 것이라는 얘기다. 그의 말대로 한국 프로복싱의 르네상스는 가능할 것인가. 먼저 화려했던 시절로 돌아가보자.

    1966년 6월25일 서울 장충체육관. 그곳에서 WBA(세계복싱협회) 주니어미들급 타이틀전이 열렸다. 챔피언은 이탈리아의 니노 벤베누티였고, 도전자는 한국의 김기수. 15회전 경기가 모두 끝났다. 장충체육관을 직접 찾은 박정희 대통령과 국민들은 링 아나운서의 채점 결과를 숨죽인 채 기다렸다. 두 명의 부심은 엇갈린 판정을 내놓았고, 이제 챔피언 벨트의 향방은 주심 리처드 포프에 달려 있다.

    “벤베누티 68, 김기수 74.” 밤 9시, 한국 최초의 프로복싱 챔피언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다음날 신문들은 호외까지 뿌려가며 김선수의 승전보를 알렸고, 6월27일에는 서울시내에서 승리를 축하하는 카퍼레이드가 벌어졌다. 2002년 6월의 함성 못지않은 흥분과 감격이 대한민국을 뒤덮었다. 이렇게 한국 프로복싱은 세상 밖으로 나왔다. 김기수 개인도 마찬가지다. 신문과 담배를 팔던 소년이 가난에 찌든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는 영웅으로 다시 태어났다.

    한국의 역대 세계 챔피언들은 가난했던 과거를 들추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하지만 박종팔(44) 전 WBA 슈퍼미들급 챔피언은 자장면을 배달하며 복싱을 배웠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는다.

    영화 ‘챔피언’에서 체육관에 새로 들어온 선수들과 관장이 마주하는 장면이 있다. “왜, 권투를 하려고 하나?”는 김현치 관장의 질문에 한 명씩 답한다. 뒤이어 김관장이 말한다. “한마디로 너희는 몸뚱이 하나로 부와 명예를 얻기 위해 권투를 하는 기다.” 그렇다. 분명, 한국 프로복싱은 자기 파괴에서 시작했다. 가난 무식 불우한 환경 등 그 단단한 껍질을 깨는 과정에서 챔피언들이 만들어졌다.

    88서울올림픽 금메달리스트 김광선(41)씨는 “예전에는 죽기살기였다. 복싱 아니면 없다는 식으로 열심히 운동했는데, 요즘 선수들은 그렇게까지 열심히 싸우지 않는다”고 말한다. 전 WBA 주니어미들급 챔피언인 유제두(57)씨도 “우리 때는 어려워서 부와 명예를 얻기 위해서 열심히 뛰었는데, 요즘은 좋은 선수를 키우기가 힘들다”며 달라진 세태를 얘기한다.

    인터뷰를 위해 만난 역대 챔피언들은 한결같이 프로복싱의 변화를 언급했다. 많은 사람들이 선수가 되기 위해 복싱을 배우기보다는 다이어트나 취미생활로 운동한다는 것이다. 앞서 지적한 이세춘 한국권투위원회 사무총장의 생각과 같다. 우리 복싱도 분명 전환기를 맞고 있다. 그 변화의 한 가운데에서 전 WBC 밴텀급 세계 챔피언 변정일(36)이 시작한 복싱 에어로빅을 발견할 수 있다.

    변정일의 시도는 ‘생각의 파괴’였다. 요즘 신세대들에게 복싱은 더 이상 무서운 스포츠가 아니다. 복싱은 하나의 생활이다. 복싱이 재미있다는 것만큼 효과적인 ‘복싱의 저변 확대’가 어디 있겠는가. 변정일은 젊은층을 복싱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먼저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다이어트’에 착안했다. 우선 시장을 넓히자는 게 그의 아이디어였다. 변정일은 “체질적으로 편차가 있겠지만, 3개월 동안 10~15kg까지 감량할 수 있다”고 말한다.

    전문영역에서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현재 한국에는 복싱 전문잡지가 하나뿐이다. 10년 전에 폐간된 ‘펀치라인’에 이어 나온 ‘크로스 카운터’가 그것이다. 문귀정(32) ‘크로스 카운터’ 편집장은 처음에 개인적으로 복싱 홈페이지를 운영하다가 10개월쯤 지난 뒤 복싱협회 권대섭 부회장의 지원을 받아 2001년 1월 잡지를 창간했다.

    오프라인 잡지 ‘크로스 카운터’와 온라인 사이트는 한국 프로복싱의 황금기를 체험하지 못했던 세대에게 새로운 꿈을 심어주고 있다. 문편집장의 말을 들어보자.

    “당장은 뚜렷한 결과가 없지만 4~5년 뒤엔 효과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내년쯤 총판을 통해 전국에 잡지를 배포할 계획이다. 현재 정기구독자는 400여 명이다. 회사는 편집장과 디자이너, 영국과 미국의 특파원과 리포터 등 8~9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일본지역 복싱매거진과도 제휴하고 있다.”

    화려하지 못한 챔피언의 삶

    히딩크 감독은 월드컵 기간 중 “나는 여전히 배가 고프다”는 말로 승리에 대한 강한 욕심을 드러낸 적이 있다. 한국 프로복싱도 여전히 배가 고프다. 히딩크의 배고픔이 승리에 대한 정신적 결핍이라면, 한국 프로복싱의 배고픔은 경제적 빈곤에 가깝다. 문득 영화 ‘챔피언’에서 배를 채우는 데는 물이 최고라며 수돗물을 벌컥벌컥 마시는 김득구의 모습이 떠오른다. 요즘은 달라졌을까. 김광선에어로빅클럽에서 일하는 이인철 트레이너의 말을 들어보자.

    “어중간한 선수라면 살기 힘들다. 무조건 최고가 돼야 생계를 유지할 수 있다. 세계챔피언이나 국제대회에서 이름을 날려야만 사람 구실을 제대로 할 수 있다. 아마추어 선수들에겐 대전료 개념이 없다. 최우수 선수나 MVP라면 시합 때 조금 받지만, 나머지는 거의 없다. 프로선수의 대전료도 시합 때마다 다르다. 4라운드 선수의 경우 보통 40만원에서 50만원 정도 받는다.”

    보통 한국챔피언의 대전료는 200만~300만원이다. 1년이면 약 600만원 수입이 된다. 동양챔피언은 많으면 2만달러고, 보통은 5000달러에서 1만달러를 받는다. 물론 여기에는 매니저와 트레이너의 몫이 포함돼 있다. 매니저의 몫은 대전료 수입의 33%를 넘을 수 없고, 트레이너는 10%를 갖는다. 따라서 선수는 스태프 몫인 43%와 건강보호기금 등을 제외한 52~53%를 수입으로 챙긴다.

    때때로 대전료가 문제가 되기도 한다. 역대 챔피언 중에서도 대전료를 받지 못해 어려움을 겪은 선수가 있다. 문성길과 변정일이 그들이다. 원래 대전료는 시합하기 전에 한국권투위원회에 예치시켜야 한다. 그런데 프로모터가 이런저런 이유로 미루다가, 선수에게 돈을 주지 않는 ‘사고’가 발생하는 것이다.

    맞아가며 돈을 번 왕년의 챔피언들. 그들은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유제두 변정일 김광선 문성길 유명우 등은 복싱체육관을 운영하고 있다. 유명우는 수원에 설렁탕집도 열었다. 전 WBA 플라이급 챔피언 김태식(45)도 식당을 하고 있다. 전 WBC 라이트플라이급 챔피언 장정구(39)와 전 WBA 슈퍼미들급 챔피언 백인철(41)은 S&S 프로모션에서 함께 일하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화려했던 선수시절에 비해 넉넉하지 못하다. 이유는 여러가지다. ‘크로스 카운터’의 문귀정 편집장은 그 원인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운동만 했기 때문에 사회 경험이 없다. 그래서 세상물정을 잘 모른다. 복싱선수들이 많이 배우지 못한 것도 한 이유다. 그러나 무엇보다 챔피언이라는 체면에 너무 묶여 살다보니까 경제문제에서 실리를 찾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1990년 미국 미시간대학 비즈니스스쿨의 프라할라드(C.K. Prahalad) 교수와 런던 비즈니스스쿨의 개리 하멜(Gary Hamel) 교수가 발표한 ‘핵심역량’ 이론이 있다. 핵심역량이란 단순히 그 기업이 잘하는 활동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경쟁기업에 비하여 훨씬 우월한 능력이다.

    스포츠에도 핵심역량이 있다. 히딩크 감독을 영입해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룬 한국축구는 ‘압박’과 ‘지배’가 핵심역량이다. 태극전사들은 강한 미드필드와 지칠 줄 모르는 체력으로 쉬지 않고 공격해 유럽의 벽을 넘었다.

    그렇다면 한국 프로복싱의 핵심역량은 무엇일까. 영화 ‘넘버 3’에서 삼류깡패로 출연한 배우 송강호는 감칠맛 나는 연기로 인기를 끌었다. 그중 스포츠 스타를 패러디한 대사가 압권이다. 송강호는 부하들에게 정신교육을 시키면서 임춘애와 최영의를 들먹이며 헝그리 정신과 이른바 ‘무대뽀’ 정신을 강조했다.

    권투는 몸과 몸이 부딪치는 스포츠다. 스포츠이기 이전에 싸움이다. 내가 이긴다는 것은 상대를 쓰러뜨린다는 의미다. 체육학에서는 이것을 인간 안에 잠재한 ‘근원적 경향’의 순화라는 세련된 언어로 설명한다. 쉽게 말하면 우리 안의 폭력성을 대리 배설하는 게 권투라는 얘기다.

    물론 전설적인 5체급 세계챔피언 슈거 레이 레너드와 전 WBC 플라이급 챔피언 박찬희(45) 같은 테크니션 복서도 있지만, 복싱은 기술을 뛰어넘는 뭔가를 담고 있다. 복싱인들은 그걸 ‘헝그리’와 ‘무대뽀’라 말한다. 그것이 바로 과거 한국 프로복싱의 핵심역량이었다. 전 세계챔피언 조인주씨는 말한다.

    “나는 체육관에서 선수 발굴에 힘쓰고 있다. 가정환경이 어렵고 권투를 하겠다는 의지가 있는 사람이라면 숙식도 제공할 수 있고 일자리도 줄 수 있다.”

    이것은 조인주씨가 가난에서 나오는 헝그리와 무조건 정신이야말로 성공으로 가는 고속철도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변정일씨도 “정신적인 면에서 후배들이 많이 떨어진다. 옛날에는 헝그리 정신이 있었다. 이제는 과학적으로 보완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빈사 상태에 빠진 복싱계

    핵심역량이 소멸되면서 인기마저 추락한 한국 프로복싱은 과연 ‘의식불명’ 상태에서 깨어날 수 있을까. 아니면 식물인간이 된 김득구에게서 산소호흡기를 떼어내듯이 영원히 우리 기억 속에서만 더부살이를 해야 할까. 김광선씨는 말한다.

    “아마추어는 대학만 졸업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운동한다. 국제적으로는 기량이 떨어지니까 국내에서만 잘하면 된다는 식이다. 프로도 예전에는 중계방송을 많이 해서 시합이 자주 열렸지만, 요즘은 중계가 없으니까 시합을 갖기가 어렵다. 중계가 없으면 개인 돈이 많이 들어가 프로모터의 부담이 크다. 중계 방송으로 전파를 타야 스폰서도 붙고 활성화되는데, 요즘은 프로야구 축구 농구 배구에 밀려서 편성되다보니 여간 힘든 게 아니다.”

    복싱 시합을 주선하는 건 프로모션이다. 대표적인 곳이 풍산프로모션인데, 이마저도 주춤거리고 있다. 소속 선수인 조인주가 타이틀을 뺏겼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숭민프로모션을 인수한 S&S프로덕션이 있다. 기대를 모았지만 첫번째 경기였던 최요삼 타이틀전에서 실패했다. 다음으로 중소프로모션이 2~3개 있지만, 특별한 선수가 없어서 어려운 실정이다. 적어도 스타급 선수 1~2명을 데리고 있어야 운영이 가능한데, 재목감은 보이지 않는다. 설상가상으로 시합도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현재 한국에서 열리는 프로복싱 경기는 한달에 1~2회 정도에 불과하다.

    유제두씨도 “선수층이 너무 얇다. 예전에는 선수층이라도 두꺼워서 여러 명의 챔피언이 나왔는데, 요즘은 그게 안된다. 그리고 선수들의 기량이 갈수록 떨어진다”며 소프트웨어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한편 실업선수인 임계룡(28) 선수는 심판 판정 비리 등 복싱계의 구조적 문제를 거론했다.

    선수 안전문제도 빼놓을 수 없다. 프로복싱 시합장에는 의사, 앰뷸런스, 산소호흡기가 필수다. 하지만 의사만 있고, 앰뷸런스와 산소호흡기는 갖추지 못한 채 시합하는 경우가 많다. 또 상처를 입을 경우 커트맨이 링코너에서 치료해줘야 하는데, 현장에서는 커트맨을 보기 힘들다. 규정에 따르면 안전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시합 전에 건강검진을 받아야 하지만, 현실은 시합 당일에야 형식적 절차를 밟는 수준이다.

    국내에서는 1985년에 한 아마추어 복서가 경기 도중 사망한 일이 있다. 미국이나 일본에서는 매년 1~2명씩 사망하는 실정이다. 지난 6월에는 외국에서 열린 WBO 주니어밴텀급 타이틀전에서 챔피언이 목숨을 잃기도 했다. 한국의 열악한 현실을 감안하면, 1985년 이후 사망 사고가 없는 것이 신기할 정도다.

    한국 프로복싱의 집행부인 ‘한국권투위원회’의 문제점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집행부에는 아직까지도 20~30년 전에 복싱판을 주름잡던 인물들이 그대로 포진해 있다. 이 점은 새로운 아이디어의 부재로 이어진다. 우리 복싱계는 현재 홈페이지 하나도 갖추지 못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체육관과 프로모터 사이에서는 밥그릇 싸움이 끊이지 않고 있다.

    문성길씨는 이와 같은 복싱계의 문제를 개인운동이라는 복싱의 특성에서 찾는다. 혼자 하는 운동이다보니 서로 어울리지 못한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우리는 막강한 복싱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다. 역대 챔피언들이 현장에서 후배들을 직접 지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역대 챔피언들의 모임조차 없다.

    한국 프로복싱은 이러한 문제점들을 극복하고 부활할 수 있을까. 축구는 히딩크라는 족집게 강사를 통해 기적을 만들었지만, 복싱에서는 당분간 그런 신화가 어려울 것 같다. 현실적으로 한국복싱이 부활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바로 세상을 들썩이게 만드는 ‘대형스타’의 출현이다. 추억 속의 스타는 더 이상 스타가 아니다. 살아있는 영웅이 필요하다.

    최근까지 한국 복싱의 유일한 스타는 전 WBC라이트플라이급 챔피언 최요삼(28) 선수였다. 장정구는 “복싱센스와 훈련 소화능력 등 모든 것에서 나를 능가할 유일한 선수”라고 최요삼을 높이 평가한다. 하지만 그는 4차 방어전의 벽을 넘지 못했다. 3차례의 방어전을 모두 KO로 장식했지만, 그는 멕시코의 강타자 아르세에게 허무하게 무너졌다.

    영화 ‘챔피언’에 이런 장면이 나온다. ‘여자는 인생의 걸림돌’이라는 말을 써 붙였던 김득구 선수가 애인과 사랑에 빠진 뒤 ‘걸림돌’을 ‘디딤돌’로 바꾼 장면이다. 세계타이틀을 하루 앞둔 지난 7월5일 최요삼 선수에게 “인생의 디딤돌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나에게 디딤돌은 많다. 한 명의 여자가 아니라 주위의 모든 분이다. 어머니부터 코치 선생님, 회장님과 나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이다. 월드컵 경기에서 붉은 악마가 펼친 ‘꿈★은 이루어진다’는 카드섹션을 봤다. 난 이렇게 생각한다. ‘꿈은 꿀 때가 아름답다.’ 그렇지 않은가. 꿈은 이루어지는 것보다 준비하는 시간이 더 아름다운 것이다.”

    최선수의 경기는 오랜만에 방송국에서 전국에 생중계하는 세계타이틀전이었다. 영화 ‘챔피언’까지 개봉된 마당이라 국민들의 관심도 어느 때보다 높았다. 태풍이 상륙한다는 7월6일 토요일 오후, 올림픽공원 펜싱경기장으로 갔다.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경륜경기장을 지나치자 펜싱경기장이 보였다. 팬들이 보여준 열기와 관심의 수준에서, 복싱은 경륜의 적수가 아니었다.

    경기장 입구에서 입장권을 팔았지만, 대부분 공짜표로 들어온 사람이었다. 그나마 상당수는 복싱체육관 코치와 선수들이었다. 일본의 경우 1985~89년에 세계타이틀전 22연패라는 최악의 침체에 빠진 적이 있다. 이때 일본은 과감한 구조조정을 실시했다. 전적으로 스폰서에 의존하는 시합 대신 입장권 판매를 비롯한 미국식 시스템을 도입했다. 그렇게 해서 오늘날의 황금기를 열었다.

    링 위에서는 오픈게임이 벌어지고 있었다. 링 사이드에서 경기를 주시하고 있는 한 선수가 눈에 띄었다. 그는 글러브를 끼고 선수복장을 한 채 관람석 뒤편에 앉아 있었다. 궁금해서 물어봤다. “시합 끝났어요?” “아니요. 이제 할 겁니다.” 아니, 이제부터 최요삼 선수의 시합인데 무슨 얘긴가. 그 선수가 대답한다. “최요삼 선수 경기 끝나고 시합합니다.” 그는 메인 경기가 끝난 뒤 쓸쓸하게 링에 오를 김동인(20) 선수였다. 1전1패, 오늘이 자신의 두번째 경기라고 했다. 그는 운동 삼아 복싱을 시작한 지 4년째라고 한다.

    김선수에게 맞고 터지고, 돈도 못 버는 복싱을 왜 하는지 물었다. “스파링 하는 기분이 마약 같아요. 시합하는 것 자체가 즐거워요. 꼭 세계챔피언이 될 거예요. 복싱선수는 김득구 선배처럼 투지와 정열이 있어야 합니다.”

    1패를 당한 복서치고는 꿈이 정말 야무지다. 그래서 한 가지 질문을 더 던졌다. “링에 올라갈 때 기분이 어때요?” 곧바로 대답이 돌아왔다. “떨리면서도 이겨야 된다는 생각밖에 없어요. 무조건 이긴다는 생각을 갖고 올라가요. 진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냥 지는 거예요.”

    최요삼의 좌절

    “대~한민국” 복싱경기장에 붉은 악마의 응원구호가 울려퍼지면서 챔피언이 링 위로 올라왔다. 공이 울렸다. 시작하자마자 최선수가 다운됐다. 카운터에 걸린 것이다. 도전자인 멕시코의 아르세는 생각보다 단단했다. 그러나 “괜찮아”와 “대~한민국”이라는 응원 소리에 최선수는 벌떡 일어섰다. 느낌이 좋지 않다.

    2회전에서 두 선수는 다시 맞붙었다. 도전자의 눈이 빛났다. 챔피언이 그의 눈을 본다. 그리고 허점을 노린다. 서로 치고 받는다. 다운을 만회하려는 최선수의 반격이 저돌적이지만, 도전자는 물러서지 않는다. “대~한민국”의 함성이 안타깝게 들린다. 최선수가 서두르는 모습이다. 그는 당초 종반에 승부를 띄우겠다는 전략을 세웠는데, 초반부터 흔들렸다.

    진정한 승자는 거친 싸움을 하지 않는 법이다. ‘손자병법’에도 나와 있듯이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상수다. 승부사는 성급하지 않고, 단 한번의 기회에 상대를 제압해야 한다. 하지만 최선수는 승부사의 룰을 잊어버린 것 같다. 다시 최선수가 휘청거린다. 4라운드가 되자 링 코너에서 지시하는 장정구의 목소리가 커진다.

    5라운드 도중 최선수의 소속사인 S&S프로모션의 대표이사인 장정구와 최선수가 눈을 마주쳤다. 그 누구보다도 서로를 잘 알고 있는 두 사람이다. 수많은 경기를 치러낸 과거의 챔피언 장정구와 사선(死線)에 선 현재의 챔피언 최요삼, 두 사람은 이 순간 아르세라는 적을 맞아 함께 싸우고 있다. 중반으로 갈수록 도전자가 경기를 우세하게 이끌었다. 최선수가 연타를 맞았다. 공이 최선수를 살렸다.

    만신창이가 된 김득구와 맨시니. 한 치의 물러남 없이 두 선수는 치고 받았다. 특히, 김득구는 맞는 게 점수를 따는 것으로 착각한 선수처럼 보였다. 13회가 끝나고 14회를 향해 달려가는 김득구와 죽음의 코너에서 간신히 벗어난 최선수의 6회가 서로 오버랩된다. 김득구는 끝까지 달렸지만 죽음의 펀치를 피하지 못했다. 최선수도 끝까지 주먹을 날렸지만 도전자의 파워가 훨씬 강했다. 마침내 주심이 경기를 중단시켰다. 아르세의 6회 KO승. 김득구는 오래 전에 눈을 감았고, 최요삼은 새로운 챔피언을 뒤로한 채 황급히 링을 내려왔다.

    최선수가 퇴장하자 사각의 링이 흉물처럼 보였다. 한국 축구가 독일과의 준결승에서 요코하마 결승행의 꿈을 접은 것처럼 한국 프로복싱도 부활의 꿈을 접어야 할까. 황량한 좌석을 뒤로하고 링에서는 새로운 경기가 펼쳐졌다. 바로 김동인 선수의 경기다. 곱상하고 순박한 얼굴과는 달리 저돌적인 파이터다. 절대 진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그의 말처럼 경기는 박진감이 넘쳤다. 관중석 여기저기서 최요삼의 세계타이틀보다 더 재밌다는 말이 들려왔다. 경기가 끝났다. 심판 전원일치 판정승.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승리를 만끽하는 김선수를 다시 만나 소감을 물었다.

    “너무 기분이 좋아요. 지난번 패배가 이번 경기에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김한철(28) 선수는 오늘도 바쁘다. 한국 미들급 1위로 유망주지만 복싱훈련 때문에 바쁜 게 아니다. 그는 요즘 휴대전화 액세서리를 팔러 다닌다. 부업이 아니다. 그는 생계를 위해 물건을 팔아야 한다. 주위의 많은 선수들도 다른 일을 병행한다. 복싱훈련은 아침과 저녁으로 나눠서 한다. 아침에 1시간, 저녁에 1시간 30분이다. 앞으로 중요한 시합들이 많기 때문에 훈련량을 늘려나갈 예정이다. 내년 초에 한국챔피언을 획득하고 곧이어 동양타이틀 획득이 목표다. 물론, 최종목표는 세계챔피언이다.

    24세 때 복싱을 시작했다. 늦은 출발이다. 어려서부터 복서가 꿈이었다. 그러나 집안의 반대로 일찍 배우지 못했다. 결국은 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0세 때 복싱에 입문했지만, 1주일 만에 그만두었다. 불투명한 장래와 경제적 원인 등이 결심을 흔들었다. 다시 글러브를 낀 것은 24세 때다. 꿈을 버릴 수는 없었다고 한다. 작년에 웰터급 신인왕을 차지하면서 자신감이 붙었다. 올 10월에는 결혼도 한다. 배우자는 자신의 열성팬이다. 그는 복싱팬들도 축구의 붉은 악마 못지않다고 자랑한다.

    운동하면서 가장 힘든 건 스폰서 문제라고 한다. 돈이 없으면 마음놓고 운동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신은 날마다 묵묵히 샌드백을 칠 뿐이라고 한다. 체육관 관장에게 모든 걸 맡기고, 경기를 앞둔 순간까지 최선을 다한다는 각오다. 복싱계의 여러 어려움에 대해 그는 무엇보다 선수들이 열심히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국 축구의 4강 신화를 보세요. 그들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결국 꿈을 이루었습니다. 저에게도 기회는 반드시 온다고 믿습니다. 그 기회를 잡으면 성공하는 거죠.”

    “꿈꾸는 자는 아름답다.” 최요삼 선수가 시합을 앞두고 한 말이다. 그는 어쩌면 4차방어전 결과를 일찌감치 예측했는지도 모른다. ‘꿈이 이루어져야 아름답다’고 한다면, 우리는 승부의 결과에 따라 흔들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프로복싱에서는 챔피언만 아름다운 게 아니다. 죽음을 불사한 김득구, 끝까지 최선을 다한 최요삼, 그리고 그들을 거울 삼아 펀치를 날리는 무명복서들이 있기에 한국 프로복싱은 더욱 아름다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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