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비-스트로스
현대사상은 맥락에 따라 후기구조주의(구조주의 극복을 위해 등장한 사유라는 점에서), 포스트모더니즘(포스트모던 사회를 배경으로 하는 사유라는 점에서), 프랑스사상(주로 프랑스에서 배출된 사상이라는 점에서), 탈근대사상(근대가 남긴 병폐들과 싸운 사상이라는 점에서), 68사상(1968년 혁명을 기점으로 형성된 사유라는 점에서)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고 있으나, 딱히 일반화하기 힘든 각기 독창적 사유들이다. 그럼에도 이들 사이에는 분명 일정한 연계성이 존재한다. 기본적으로 ‘구조주의’라는 사유를 통과하고 그것과 대결하면서 형성된 사상들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현대사상의 입구에는 구조주의가 놓여 있다고 할 수 있다.
‘근대철학’이란 대체로 16세기 서구에서 형성돼, 17세기에 본격화했으며, 18세기에 대중화를 거쳐, 19세기에 만개(滿開)한 동시에 변형되기 시작한 철학적 흐름을 말한다. 물론 근대철학은 이미 마무리된 것이 아니라 여전히 우리 삶의 대세(大勢)를 형성하고 있다.
근대는 과학기술의 발달을 통한 세계관의 변화, 자본주의의 발달로 인한 삶의 변화, 민주주의의 발달로 인한 대중사회의 도래를 비롯, 몇 가지 현상들로 특징지을 수 있다. 이런 다양한 현상들 밑에서 작동해온 철학적 원리는 곧 ‘주체의 철학’이다. 과학기술, 자본주의, 민주주의, 주관화한 문화예술…. 모두 ‘주체’라고 하는 인식론적·존재론적 원리를 토대로 한다. 그러므로 근대철학을 간단히 ‘주체철학’이라 해도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주체철학이란 무엇인가. 쉽게 말해 인식, 의미, 역사의 가능근거(可能根據)를 신, 하늘(天), 운명, 섭리 등이 아닌 ‘인간 주체’로 보는 입장이다. ‘가능근거’를 ‘선험적(transcendental) 근거’라 부르기도 하므로 ‘선험적 주체’라 할 수도 있다. 이렇게 서구의 근대철학이란 ‘인간을 주체로 세운 철학’이다.
현대사상의 돌쩌귀, 구조주의
칸트는 인간 인식을 ‘신이 영혼에 넣어준 진리의 씨앗’이나 수동적 경험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 아닌, 인간 의식의 능동적 구성작용으로 이해했다. 헤겔은 역사를 인간 주체가 만들어나가야 할 하나의 ‘작품’으로 보았다. 후설은 인간의 의식을 세계로부터 초월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라 했고, 하이데거는 인간만이 존재를 이해하고 존재를 담보하는 존재라 보았다. 사르트르는 인간을 자유로운 주체로 보았고, 메를로-퐁티는 인간 신체를 중심으로 세계를 이해하고자 했다. 이런 철학들에서 우리는 ‘선험적 주체의 철학’이 변화해간 궤적을 읽을 수 있다.
이렇게 서구 근대철학은 주체·이성·자유·역사를 강조했다. 그리고 이런 가치들은 인류 역사를 크게 바꿔놓았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서구의 주체철학은 여러 면에서 한계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과학적 합리성의 추구는 세계를 탈색(脫色)시켜버리고, 기술의 발달은 모든 사물을 조작의 대상으로 전락시켰다. 자본주의와 기술의 결합은 환경을 황폐하게 했으며, 사람들의 마음까지 삭막하게 만들었다. 대중사회의 도래는 모든 고급한 가치들을 몰락시키고, 저급한 문화들이 세계를 휩쓸도록 했다. 민주주의는 우중(愚衆)의 변덕에 좌우되는 정치를 탄생시켰다. 탈근대 사유들은 이런 근대라는 시대가 남긴 상처들을 치유하고 새로운 시대를 사상적으로 모색하려는 노력으로부터 생겨났다.
구조주의는 주체 중심의 문화가 빚어낸 폐단에 맞서 새롭게 모색된 사유양식이다. 그 발단에는 여러 맥락이 있지만 굵직한 것들로 마르크스·니체·프로이트의 유산, 바슐라르·게루 등의 인식론, 소쉬르에서 연원한 구조주의 언어학 등을 들 수 있다. 마르크스·니체·프로이트는 주체 중심의 근대 사유를 거부하고 인간을 바깥에서 바라보는 시각을 제시했다. 바슐라르와 게루는 19세기 이래 탈합리주의 사조들을 비판하고 새로운 형태의 합리주의를 마련함으로써 구조주의를 향한 길을 예비했다. 더 직접적으로, 소쉬르에서 연원한 구조주의 언어학은 구조주의적 사유의 방법론적 토대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