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10월 8일 참여연대 장유식 변호사가 국방부 민원실에 법무관리관에 대한 고발장을 접수시키고 있다.(‘오마이뉴스’제공)
총리실 감사관은 약 한 달간에 걸쳐 조사한 후 A4 용지 4쪽 분량의 보고용 문서를 작성했다. 여기에 수사비 횡령 의혹을 뒷받침하는 수사관들의 통장 사본과 입출금 기록, 직권남용 의혹과 관련된 공소장, 판결문, 관련자 진술서 등의 자료를 첨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감사관이 작성하는 문서는 통상 ‘비위자료’라는 제목이 붙는다. 이 문서는 권영효 국방부차관에게 전달된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이 문서가 김창해 법무관리관 손에 넘어갔다는 사실이다. 이에 대해 총리실과 국방부 주변에서는 권차관과 김법무관리관의 관계를 의심하고 있다. 두 사람은 부산고 동문으로 평소 절친한 관계로 소문나 있다.
총리실에서 이 문서를 국방부에 넘긴 이유는 공직자 비위사실을 적발한 감사팀이 청와대 민정수석실(사정비서관실)에 정식 보고하기 전 해당 부처에 알려줌으로써 청와대 조치에 대비하게 하는 관행에 따른 것이다. 이 문서는 11월 중순 청와대 사정비서관실에 이첩된 것으로 알려졌다.
총리실 해당 부서의 고위관계자는 문서의 실체는 인정했지만 국방부와 청와대로 이첩했는지 여부에 대해선 “공식적으로 간 건 없다”고 부인했다. 이 관계자는 “이미 국회에서 문제가 되는 등 알려진 내용이 대부분이라 정보가치가 떨어진 것이었다”고 말했다.
그의 말은 반만 맞다. 군검찰 수사관 활동비 횡령 의혹은 국정감사 때 불거진 것이지만, 나머지 혐의는 새롭게 제기된 것이기 때문이다. 총리실 감사관은 사실확인을 위해 현지 출장 조사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다.
“군 생활하면서 부탁도 못하나”
총리실 고위관계자는 또 국방부차관에게 문서를 넘기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국방부와 관련된 것이니 국방부차관에게 물어볼 수 있는 것 아니냐”며 접촉사실을 간접적으로 시인했다. 한편 청와대 관련 부처 고위관계자는 이 문서의 접수 여부에 대해 “대답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확인을 거부했다.
김창해 법무관리관은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총리실 문서를 봤다”고 말했다. 그는 문서 내용을 훤히 알고 있었다. 이는 총리실에서 작성한 문서가 국방부를 거쳐 그에게 건네졌음을 뜻하는 것이다. 그는 국회 국정감사 때도 그랬듯 자신의 혐의를 부인했다. 먼저 검찰 수사관 활동비 횡령 의혹. 김법무관리관은 육군 법무감 시절 수사관들의 통장에 수사활동비를 입금하고는 곧바로 일괄 인출해 빼돌린 흔적이 명백한데도 이를 부인했다. 아울러 “수사관 활동비라는 명칭은 잘못된 것이며, 수사활동비이기 때문에 꼭 수사관들한테 주지 않아도 되는 돈이다”라는 새로운 해석을 내놓았다. 이에 대해 군검찰의 고위관계자는 “예산항목에 분명히 수사관 활동비가 잡혀 있다”며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김법무관리관은 또 육군 법무감 시절 허아무개 준위의 군용물절도사건 재판에 개입해 군검찰관 법무참모 군판사 등에게 청탁과 압력을 넣고 부당하게 공소장을 바꾸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당시 총열 가늠쇠 등 총기 부품과 실탄을 빼돌려 사제 총기를 제작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허준위는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았다. 그런데 2심에서는 군검찰의 공소장 변경으로 군용물절도죄가 일반 절도죄로 바뀌면서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벌금형은 군복무를 계속하는 데 지장이 없다.
김법무관리관은 “군 생활하면서 남한테 부탁할 수도 있는 것 아니냐”며 자신의 개입 사실을 시인했다. 그러면서 “인사 문제도 고려했다”고 말했다. 이는 유죄판결로 허준위가 당할 강제전역 등의 불이익을 감안해 군용물절도죄를 벌금형이 가능한 일반 절도죄로 바꿨을 개연성을 시사하는 발언이다.
그는 또 “법무감은 재판부에 의견을 낼 수 있는 권한이 있다. 하지만 결정은 재판장이 하는 것이다. 공소장 변경이 잘못된 것이었다면 재판장이 받아주지 않았을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그에 따르면 당시 허준위가 빼돌린 총기 부품은 도태 직전 장비였고 실탄도 효용성이 없는 것이었기 때문에 군용물로 볼 수 없다는 것.
그의 주장은 억지에 가깝다. 쓸 수 없는 부품과 실탄이라면 폐기 처분됐어야 마땅한데, 허준위가 빼돌린 부품과 실탄은 총포소대 무기고와 창고에 보관돼 있던 것들이다. 국방부 소속의 한 법무관은 “그 사건은 유명한 사건”이라며 다음의 얘기를 들려줬다.
“군용물의 주인은 국가다. 도난당했던 군용물을 되찾으면 국가가 환수해야 한다. 그런데 2심에서 군용물이 아니라는 판결이 나오는 바람에 허준위한테 압수한 총기 부품과 실탄 처리가 문제가 됐다. 일반 절도라면 원 소유주에게 돌려줘야 하는데 도대체 총기 부품과 실탄의 소유주가 누구란 말인가. 군용물이 아니라 하니 군에서 환수할 수도 없는 어처구니없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군검찰은 끙끙 앓다가 시간이 흐른 후 부대 병기담당자에게 넘겨줬다. 그것만 봐도 군용물이 아니라는 주장이 얼마나 허구인지 알 수 있지 않나.”
김법무관리관은 자신의 육사동기 서아무개 중령의 군용물횡령 사건 재판에 관여한 사실도 시인했다. 서중령의 혐의는 국가 재산인 군인 아파트를 팔아 넘겨 4000만원을 챙긴 것이었다. 김법무관리관은 1심 때는 모 군사령부 법무참모로서, 항소심 때는 육군 법무감으로서 재판부에 압력을 넣어 결국 군용물횡령 건에 대해 공소기각 판결을 이끌어낸 혐의를 받고 있다.
“동기라고 봐준 게 아니다. 벌금형이 선고돼 중령에서 대령으로 진급하지도 못했다. 그보다 더한 일도 많은데 별 것도 아닌 걸 갖고 그런다. 나로서는 정당한 권한을 행사한 것이다. 그게 어떻게 직권남용인가.”
국방부장관의 감사 지시
하지만 그가 자신의 직위를 이용해 재판에 관여한 것은 어떻게 해석을 하더라도 월권이거나 직권남용으로 보인다. 군검찰의 한 관계자는 “횡령액이 1000만원만 돼도 유죄판결을 받는다”며 “벌금형은 명백히 봐준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법무관리관은 또 당시 공소기각 결정에 반발한 군검찰관이 대법원에 상고하려 하자 결재를 해주지 않음으로써 군검찰관의 권리행사를 방해했다는 혐의도 받고 있다. 이에 대해 그는 “회의를 한 결과 상고할 필요가 없다는 결론이 내려졌다”고 해명했다.
김법무관리관은 2001년 12월 군납비리사건 당시 국방부장관에게 건의해 검찰단 수사를 중단시키고 수사권을 육군본부 검찰부로 넘기게 했다는 의혹도 전면 부인했다.
“육군 법무감이 어떻게 장관에게 그런 건의를 할 수 있나. 장성 수사는 육군본부에서도 할 수 있다. 또 당시 국방부 검찰단은 사건 접수만 해놓고 수사를 시작하지도 않은 상태였다.”
하지만 군검찰 주변에 따르면 당시 국방부 검찰단은 수사를 상당히 진척시킨 상태였다. 이 사건은 청주지검이 군납업자의 뇌물공여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 불거진 것이다. 국방부 검찰단이 청주지검으로부터 사건 관련 자료를 넘겨받았을 당시 이미 관련자들의 혐의가 거의 파악돼 있었다. 이아무개 준장 등 관련자 계좌추적에 나섰던 검찰단은 “육군본부로 수사권을 넘겨라”는 국방부장관의 갑작스러운 지시에 따라 수사에서 손을 떼게 됐다.
김법무관리관은 군판사 출장여비와 국선변호인료 횡령 의혹에 대해 “군판사들과 변호사들에게 일일이 확인해보라. 그런 돈을 횡령했다면 내가 이 자리에 있을 수 있겠나”라고 강하게 부인했다. 또 계룡대 부근 룸살롱에서 변호사들과 술판을 벌였다는 의혹과 관련해선 “문서에 보면 (2002년) 10월에 내가 (충남) 유성에서 변호사들과 술을 먹었다고 돼 있는데 나는 10월에 유성에 내려간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총리실 감사관은 현지 출장조사를 통해 제보자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법무관리관은 “총리실 문서가 청와대 사정비서관실로 이첩된 사실을 알고 있느냐”는 질문에 “당연히 청와대로 건네졌을 것”이라며 개의치 않는다는 반응을 보였다.
군내 정통한 소식통에 따르면 2002년 12월초 국방부 감사관실은 ‘외부기관’으로부터 김창해 법무관리관의 비리의혹이 담긴 문서를 전달받고 장관에게 보고했다. 장관의 지시에 따라 특별감사팀이 구성돼 곧 감사에 착수할 예정이다. 육군 소속의 한 법무관은 “조사의지가 중요하다”며 “이미 국회에서 문제가 되고 시민단체가 고발까지 한 사건을 국방부 수뇌부가 어떻게 처리할지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