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에서 온 스님들이 앙코르와트를 순례하고 있다. 스님들이 입은 가사의 노란 빛깔이 인상적이다.
“예스”라 말해선 안 되는 거리
앙코르와트 입구는 언제나 ‘콜라’ ‘워터’ ‘포스트 카드’를 외치며 접근하는 꼬마들로 가득하다. 이들은 관광객이 물건을 사지 않을 기색을 보이면 반드시 “애프터!”라는 말로 나중을 기약하곤 하는데, 이 때 이들의 성화를 벗어나기 위해 무심코 “예스”라고 대답한 사람들은 나중에 반드시 곤욕을 치르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꼬마 상인들이 몇 시간 후 다시 달려와 “나중에 산다고 하지 않았느냐”며 ‘당당하게’ 강매하는 것이다. 이방인을 어떻게 찾아내는지는 모르지만 절대로 놓치는 법이 없다. 몇 년 전까지는 물건을 사지 않아도 웃는 얼굴을 보였던 꼬마들은 관광객이 늘면서 순박한 미소를 잃어가고 있다. 물건을 사지 않으면 뒤돌아서 욕을 하는 아이들도 생겼다.
앙코르와트로 들어가려면 먼저 이 꼬마상인들을 뚫고 해자(垓字)에 걸친 다리를 건너야 한다. 사원의 해자는 인도신화에 나오는 깊고 무한한 대양(大洋)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자 건너편의 앙코르와트는 마치 다른 세상인 듯 신비롭다. 앙코르와트는 고대 크메르인의 세계관을 그대로 구현해 놓은 구조다. 중앙의 높은 탑과 이를 동서남북으로 둘러싸고 있는 네 개의 낮은 탑은 5개의 봉우리를 지녔다는 힌두교의 성산 메루산을 상징화한 것이다. 메루산을 중심으로 형성된 대륙은 7개의 대양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인간세계는 그 밖에 있다. 그러니 앙코르와트로 들어간다는 것은 인간들의 땅을 지나 신들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첫 번째 문을 통과하니 앙코르와트의 장엄한 모습이 한눈에 펼쳐졌다. 황색가사를 입고 무리를 지어 나오는 스님들의 모습이 건물과 어우러져 묘한 신비감마저 느끼게 한다. 참배로를 따라 1층의 회랑으로 들어서면 길이가 800m에 달하는 부조가 사방의 벽면에 새겨져 있는데, 그 정교함이 마치 입체적인 두루마리 그림을 보는 것 같다. 힌두교 신화인 ‘라마야나’와 ‘마하바라타’에 나오는 내용들을 새겨놓은 작품들이다.
계단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가니 한 여인이 불상 앞에서 무릎을 꿇고 향을 피우며 기도를 하고 있었다. 외모는 다르지만 그 간절함이 우리네 절에서 보던 여인과 다를 바 없다. 2층의 벽면에는 갖가지 포즈를 취하고 있는 춤추는 선녀, 압사라의 부조가 벽을 따라서 끝없이 펼쳐진다. 풍만한 젖가슴을 그대로 드러낸 채 관능미를 자랑하는 압사라는 사내들의 가슴을 설레게 할 정도로 매력적이다.
2층을 지나면 지성소가 있는 중앙사원으로 오르는 계단이 보인다. 이 계단은 아주 가파르고 폭이 좁아 조심해야 한다. 중앙사원에 오르면 숲에 잠겨 있는 앙코르와트와 주변의 풍경이 한눈에 펼쳐진다. 답답할 것이 전혀 없는 세상이다. 중앙사원은 앙코르와트의 핵심으로 우주의 중심인 메루산의 중앙이니 바로 절대자가 거주하는 곳이다.
돌덩어리인가, 희망의 표상인가
찬란한 앙코르 유적을 건설했던 캄보디아인들의 삶은 오랜 내전의 결과 열악하기 그지없다. 학교 대신 유적지 주변에서 장사를 하거나 “원 달러”를 외치는 어린이들과, 일자리가 없어 빈둥거리며 시간을 보내는 많은 어른들. 그들에게 과연 앙코르와트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삶의 고단함에 찌든 그들에게는 한낱 돌덩어리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천년 동안 말없이 자리를 지킨 앙코르 유적의 신들이 다시 만난 자신의 백성들에게 꿈과 희망을 베풀어주기를 기원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