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이후 일본소설은 국내 독서시장에서 괄목할만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 단초를 제공한 것이 무라카미 하루키다. ‘노르웨이의 숲’이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되었을 당시만 해도, 아무도 이 젊은 일본작가가 그 어떤 해외 유명작가보다 더 큰 인기를 누리리라는 걸 예상하지 못했다. 무라카미 하루키야말로 ‘하루키 신드롬’이라는 조어와 함께 젊은 독자들에게 현대 일본문학에 대한 인상을 강렬하게 각인시킨 장본인이다.
1990년대 접어들면서 일본소설의 번역 붐이 일었는데 역시 ‘하루키 신드롬’의 여파로 보아도 무방하다. 무라카미 하루키에 이어 최근에는 무라카미 류, 요시모토 바나나, 시마다 마사히코 등이 국내 독자들에게 주목받고 있는데, 이들 역시 하루키와 더불어 오늘날 일본문학계의 흐름을 주도하는 작가들이다.
현대 일본문학은 국내 독서시장에서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노벨 문학상 수상자를 둘이나 배출한 것도 세계문학으로서의 입지를 확보할 수 있는 바탕이 되었다. 1980년대 이후 등장한 작가들의 활동도 두드러져, 무라카미 하루키나 요시모토 바나나 등의 소설은 세계 여러 언어로 번역되어 읽히고 있다.
현대 일본문학의 현황을 이해하기 위해 두 노벨상 수상 작가의 경우를 살펴보는 것도 유익한 일일 것이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와 오에 겐자부로는 패전 이후 1980년까지 일본 현대문학의 두 흐름을 대변하는 존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1994년 10월 스톡홀름의 노벨상 시상식에 참석한 오에 겐자부로는 ‘애매한 일본의 나’라는 제목으로 수상 연설을 했다. 이 이색적인 제목은 26년 전 같은 자리에 섰던 선배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수상 연설 ‘아름다운 일본의 나’를 패러디한 것이다.
선배 작가에 대해 자못 ‘불손’하게 비춰질 수도 있는 제목의 연설에서 오에는, 어조는 비록 신중했지만 가와바타를 단호히 비판했다. 비판의 핵심은 일본적 미학의 특수성에 안주하며 신비주의의 닫힌 세계에 칩거하는 가와바타의 문학이 일본과 일본인을 더욱 ‘애매’한 존재로 남게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자기’에 대한 과도한 나르시시즘이 아시아에서 ‘침략자’의 역할로 이어졌다고 말함으로써 근대일본사에 대한 자기반성을 곁들였다. 그는 천황이 노벨상 수상자에게 하사하는 문화훈장을 사절함으로써 실천적 지식인의 면모를 보였다.
일본적 서정 對 세계적 보편성
가와바타와 오에는 사뭇 대조적인 작가다. 가와바타가 전통적 서정성과 자연관에 의존하면서 일관되게 ‘일본적’ 서정을 일궈왔다면, 오에는 되도록 일본어가 강요하는 문화적 귀속성을 배제하고 지구적 규모의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세계적 보편성을 지향했다.
가와바타의 노벨상 수상은 세계(=서양)가 가지고 있지 않은 특수한 세계를 그려서 주목을 끈, 다시 말해 서양인들의 이국취미의 소산이라고 볼 수 있다. 이점에서는, 가와바타에 못지않게 서양 독자들에게 지속적으로 읽히는 다니자키 준이치로와 미시마 유키오의 경우도 예외가 아닐 것이다.
이에 반해 오에의 수상은 일본문학이 세계적 동질성의 기반 위에서 평가받았다는 의미이며, 일본문학이 비로소 세계문학 속에서 진정한 시민권을 획득했다는 의의를 지닌다. 아울러, 가와바타에 대한 오에의 비판은 이질적인 것에서 신비하고 진기(珍奇)한 것을 찾고자 하는 서양인들의 오리엔탈리즘, 혹은 관음증적인 동양취미에 대한 비판으로도 읽힐 수 있다.
전통적인 자기고백의 문학인 사소설에서부터 오에 겐자부로처럼 보편적 소설 문법을 지향하는 작가들에 이르기까지, 1970년대 후반까지 일본 현대문학은 다양한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오에 겐자부로는 일본 현대문학의 큰 줄기를 다음 세 집단으로 분류해 설명한 바 있다. 제1그룹은 ‘세계문학으로부터 고립된 문학’으로 앞서 언급한 가와바타와 다니자키, 미시마가 여기에 포함된다. 제2그룹은 ‘세계문학으로부터 배워 세계문학을 향해 되돌려주고자 하는 문학’으로 오오카 쇼헤이, 아베 고보, 오에 겐자부로가 여기에 속한다. 제3그룹은 ‘세계가 하위(대중)문화로 공고하게 얽혀 있는 시대의 전형적인 문학’으로 무라카미 하루키와 요시모토 바나나 등이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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