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교양이 경쟁력이다

‘사생활의 발견’에서 ‘생활의 정치학’으로

문학, 세계의 반영

  • 글: 이광호 서울예대 교수·문예창작 / 문학평론가 over82@lycos.co.kr

‘사생활의 발견’에서 ‘생활의 정치학’으로

2/5
‘사생활의 발견’에서 ‘생활의 정치학’으로

왼쪽부터 소설가 신경숙, 윤대녕, 성석제

‘내면’ 혹은 ‘일상’에 대한 탐구는 근본적으로 새로울 것도 없는 테마다. 근대문학이 기본적으로 ‘내면적 인간의 형식’이라고 한다면, 90년대에 와서 왜 갑자기 내면성의 미학이 부각된 것일까? 80년대 이전 한국문학에서 계몽에 대한 요청이 너무 강력했기 때문에, ‘내면성의 문학’이 주류로 부각되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그 연장선에서 ‘역사’와 ‘집단적 이념’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일상’을 탐구하는 것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개인의 일상세계에 대한 미시적 접근이라는 주제 역시 그러하다.

이런 상황에서 90년대 문학은 전통적인 리얼리즘 미학으로부터 이탈하기 시작했다. 문학이 객관적 현실을 반영해야 한다는 ‘반영론’의 가치에 대해 야유하기 시작했고, 리얼리즘의 규범에 대한 반란이 새로운 문학적 모토가 되기도 했다. ‘실재/반영’의 도식을 해체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문화논리와 맞물리면서 리얼리즘이 아니라 ‘낯선 리얼리티’가 새로운 문학적 관심사가 되었다. 미학 이데올로기와 문학운동 형태의 리얼리즘이 아니라, 생활세계의 내부에 대한 현실적인 시선에 의해 포착되는 리얼리티의 문제가 현안이 된 것이다.

이와 연관해서 서사성의 약화도 지적 대상이다. 소설에서 서사적 구조의 해체와 더불어 이미지와 기호의 유희가 우위에 서게 되었다는 것이다. 90년대 소비생활의 심미화와 디지털 세계의 확대, 그 안에서 미디어가 생산하는 무한복제의 이미지들은 재현의 코드를 의심스러운 것으로 만들었다. 이 이미지의 제국 안에서 소설은 이미지의 매혹을 위해 기꺼이 서사적 인과성의 원리를 희생시키기도 했다.

90년대는 그 어느 시대보다 ‘여성성’에 대한 관심이 증폭된 시기다. 여기에는 몇 가지 문화적 조건이 관여한다. 기존의 변혁이념이 다원화되는 자리에서 여성주의와 성 정치학 이론이 진보적 의미를 획득하게 된다. 진보와 보수의 전선은 단지 ‘좌우’의 문제가 아닌 문화적 지형 속에 형성되었고, 페미니즘은 기존의 전선을 해체하는 새로운 급진성을 보여주기에 이른다. 또 다른 측면에서 문학제도권과 독서시장에서 여성작가와 여성독자층이 두터워졌다. 물론 이것은 한국사회의 구조적인 변화에 맞물린 여성의 사회적 문화적 성장을 의미한다. 그리하여 한번도 ‘주류’가 된 적이 없는 여성적인 주제와 여성적 시선, 혹은 여성적 미학이 문학사의 전면에 부각된다.

물론 이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도 있다. 여성문학이 리얼리즘의 후퇴를 가져왔다는 논리의 연장선상에서, 여성독자들의 기호에 영합하는 사소설적 경향이 지배적인 상업성을 띠게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일부 여성작가들의 소설이 평면적인 여성성의 미학을 반복하고 불륜 소설의 매너리즘에 빠지면서 문제의식의 날카로움을 보여주지 못한 측면도 있다. 또한 페미니즘이라는 개념을 둘러싸고 여성문학가 내부에서 상호 이견과 비판도 표출되었다. 문제는 여성성이라는 개념이 단일한 미학적 전술을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는 데서 출발한다. 90년대를 통해, ‘언어미학으로서의 여성성’과 ‘정치의식으로서의 여성주의’는 하나의 작품에서 행복하게 만난 적이 별로 없다.



그럼에도 90년대 새로운 여성문학의 탐색은 ‘성숙한 남성의 형식’으로서의 주류 서사문학을 낯설게 만들었으며, 일상세계의 정치학에 대한 새로운 문학적 탐구의 차원을 열어놓고 있다.

영예이자 부담인 신세대 문학

‘세대론’은 10년 단위의 시대구분론과 함께 한국문학사의 맥락을 설명하는 익숙한 설명 방식이다. ‘신세대 문학론’은 문학사의 전환기에 출몰하는 일종의 유령일지도 모른다. 그 유령을 보는 시선은 다분히 이중적이다. 문화적인 층위에서 본다면 이 용어는 새로운 세대에 대한 기성세대의 거부감과 우려를 담고 있는 동시에, 새로운 문화생산자·문화소비자이며, 그 자체로 문화상품인 집단에 대한 매혹을 담고 있다. 거부감에는 다소 윤리적인 면이, 매혹에는 저널리즘과 문화산업의 논리가 스며 있다. 한쪽에서는 그들의 ‘가벼움’을 문제로 제기하고, 다른 쪽에서는 그 새로움과 전환의 논리를 긍정적으로 내세운다. ‘신세대 문학’이라는 명명은 그래서 부담스러운 영예인 동시에 받아들일 수 없는 오명이다.

90년대 초반에 등장한 ‘신세대 문학론’ 역시 뚜렷한 실체가 있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일군의 젊은 작가들이 80년대에는 나타나지 않은 성향의 문학을 선보이기 시작한 것처럼 보인다. 저널리즘에 의해 ‘신세대 작가’로 명명된 일군의 작가들 작품에서 집단적 문학적 동일성을 확인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개념이 출현한 것은 그들이 80년대 문학과는 다른 어떤 문학을 ‘따로 또 같이’ 보여준 것처럼 인식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들은 정치과잉의 시대였던 ‘80년대’와는 다른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적 요청과 마주하던 세대다. 이들 중 80년대 후반부터 활동한 세대들은 여전히 ‘80년대의 기억’을 중요한 문학적 관심으로 삼아 이른바 ‘운동권 후일담’ 문학을 선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세대적 새로움을 보여준 것은 영상대중매체에 밀착되어 성장한 경험을 갖고 있는, 90년대 이후에 등장한 작가들이다. 초기 신세대 문학론은 박상우, 구효서, 이순원, 공지영, 김소진, 김인숙, 이인화 등이 대상이지만, 실제 90년대 중반 이후 문학적 평가를 받은 것은 신경숙과 윤대녕, 성석제이며, 더 선명한 세대적 차별성을 선보인 것은 백민석과 배수아 그리고 김영하, 박성원, 김연수 등이다.

2/5
글: 이광호 서울예대 교수·문예창작 / 문학평론가 over82@lycos.co.kr
목록 닫기

‘사생활의 발견’에서 ‘생활의 정치학’으로

댓글 창 닫기

2022/07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