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기술의 힘을 빌어, 청중과 함께

들리지 않는 소리까지도

기술의 힘을 빌어, 청중과 함께

2/6
기술의 힘을 빌어, 청중과 함께

클로드 드뷔시

핵분열처럼 작가들은 기존의 모든 개념을 해체한 후 나름대로 재구성했다. 사실 20세기 초반의 제1차 대전, 사회주의 혁명, 제2차 대전 등은 기존 체제를 부정할만한 충분한 이유를 주었다. 정치·사회·경제구조의 대변혁, 대중이라는 계층의 출현과 교육 및 대중문화의 확대는 음악문화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음악가들은 음악이 갖는 사회적 기능에 눈을 떴으며, 때로는 음악을 사회주의 전파의 도구로 전락시키기도 했다.

제3세계 음악가들은 민족주의 경향으로 새로운 음악에 대한 갈망을 해결했으며, 문화 강대국의 작곡가들은 제3세계 음악으로 자신의 음악적 한계를 극복하려 했다. 과학정신에 매료된 음악가들은 음악을 논리적이며 구조적인 것으로 몰아갔다. 과학의 발달에 따라 녹음기, 컴퓨터, 전기악기 및 전자음악 신시사이저, 대형 PA시스템, 멀티미디어 등 새로운 개념의 음악도구와 전달방법을 사용해 새로운 언어를 구사하는 음악가도 나타났다.

바벨탑이 수많은 방언에 의해 무너졌듯 불안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그 누가 이들의 언어를 모두 이해할 수 있을까? 소통의 어려움은 작곡가들 자신이 일반인들의 이해를 바라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따라서 일반인들에게 그들의 음악은 자폐증에 빠진 아이의 웅얼거림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기에 소비에트 사회주의자들은 이러한 현대음악을 전혀 생산성이 없는 부르주아의 퇴폐적인 산물로 매도했는지 모른다.

낯선 언어를 구사하면서, 또 존립 배경이 점점 희미해지는 가운데 현대음악 작곡가의 존재 의미는 무엇일까? 그들은 무엇을 이야기하는 것일까? 이 대목에서 잠시 고교 국어시간을 떠올려보자.

국어시간에 우리는 고전문학과 더불어 현대문학을 배웠다. 자유시, 현대시, 상징시에서 각 시어가 지닌 원개념과 보조개념을, 그리고 시어마다 숨어 있는 암호들을 해독하여 나름대로 의미 부여하는 것을 배웠다. 즉 우리는 제3자의 표현을 통찰하고 이해하는, 또 그의 감정을 내 것으로 만드는 훈련을 받았으며 결국 우리 내부에 잠재된 수많은 감정들을 시인의 것과 일치시킬 수 있었다. 한마디로 국어시간은 단순히 현대문학을 이해하는 시간이라기보다 다른 이의 감정을 세심하게 이해해야만 하는 시간이었다. 결코 안식의 시간이 아니었다.



음악과 미술시간은 어떠했던가? 이 시간은 한마디로 쉬는 시간이었다. 그래서인지 많은 사람들에게 음악회 가는 이유를 물으면 “좀 쉬기 위해서”라고 한다. 맞다! 그들이 바라는 음악은 그들로 하여금 숙고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안식과 위안을 주는 기호식품과 같은 것이다. 즐거움과 편안함. 이렇게 생각하니 열린 음악회가 누리는 인기를 이해할 수 있으며 작곡가들의 쇼맨십도 고맙게 느껴진다.

하지만 즐거움이 정말 ‘모든’ 것일까? 적절한 템포가 유지되면 으레 기계 인간처럼 박수를 치는 것이 즐거운 것일까? 축구 경기장의 응원처럼 감정마저 복제된 듯 하나같이 즐거워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일까? 음악회장에는 현실이 없다. 음악회장에서 사람들은 그렇게 약 먹은 것처럼 현실을 떠나고 싶어한다.

사람들이 현대음악을 듣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듣는 훈련이 안 돼있기 때문이다. 이는 곧 작가에 대한 무관심과 음악에 대한 기대 결여로 나타난다. 진정한 작가란 무릇 문제의식을 갖고 고민하는 사람이다. 요즘처럼 경제적 이윤추구가 치열한 세상에서 문제의식 운운하는 것은 사치스러운 일인지 모른다. 그러나 작가는 바로 그런 것들을 사유하고 표현하는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들을 통해 우리는 우리의 문제를 투영하며, 그들의 사고를 통해 진지해진다.

작가에 대한 관심은 곧 자기 성찰로 이어진다. 또한 작곡가의 작업은 과거에 비해 더욱 전문적이어서 감성만으로는 이해하기 어렵다. 현대음악을 이해하려면 이에 관한 역사적 관심과 더불어 음악에 관계된 여러가지 지식도 필요하다.

또한 진정한 작가는 세련되고 정제된 표현을, 또는 실험을 통해 늘 새로움을 선보여 우리를 즐겁게 하며 또 앞으로의 변화를 기대하게 한다. 그들은 주문배수로 소비자를 만족시키는 사람이 아니라 그들이 원하는 대로 우리를 이끌어가는 매력 넘치는 사람이다. 그래서 기술과 정신이 충만한 작가는 늘 진지하며, 자신 넘치고, 또 솔직하다.

2/6
글: 황성호 한국예술종합학교·음악학 / 작곡가 shhwang@knua.ac.kr
목록 닫기

기술의 힘을 빌어, 청중과 함께

댓글 창 닫기

2023/10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