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는 필름페스티벌(Film Festival)로 어워드(Award)로 표시되는 영화상과는 다른 면이 많다. 미국의 아카데미상이나 프랑스의 세자르상, 국내의 대종상 등은 영화상 시상식이지 영화제는 아니다. 영화상은 보통 자국 영화를 대상으로 일년을 기준으로 부문별 최고를 선정해 시상하는 일종의 ‘세리머니’인 셈이다.
이에 비해 영화제는 일정한 기간에 특정한 범주의 영화를 모아 집중적으로 상영하는 축제를 일컫는다. 물론 경쟁 영화제의 경우 시상식이 뒤따르지만 여기에는 반드시 본선 진출작을 전체 상영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렇게 볼 때 영화제라는 말을 사용하는 곳은 많지만 엄격한 의미에서 본다면 모두 영화제라 할 수는 없다. 예를 들어 시네마테크(필름 라이브러리)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유명 감독의 회고전이나 국가별 또는 테마별 상영전의 경우, 거기 붙어있는 영화제라는 말은 그저 관용적 수식어일 뿐이다.
영화제의 뿌리는 순수한 열정과 끈기
영화제를 구성하는 첫째 요소는 프로그래밍이다. 프로그래밍은 작품을 선정하는 행위다. 그리고 그 일을 수행하는 사람을 프로그래머라 한다. 작품 선정기준은 영화제의 색깔을 만들어주고 존재 의의를 규정한다. 그래서 흔히 프로그래밍 또는 프로그래머를 ‘영화제의 꽃’이라 한다.
영화제에는 또 연속성 혹은 주기성이 있어야 한다. 주로 일년마다 열리지만 격년제로 열리는 경우도 있다. 또한 최신 작품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 월드프리미어(공식적으로 세계 최초로 상영되는 것)는 아니더라도 영화제가 열리는 지역에서는 처음으로 상영하는 작품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지난 영화만으로 구성된 프로그래밍이라는 것은 일종의 회고전, 기획전에 지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조직이다. 주기적으로 영화제를 개최해나가는 명실상부한 주체로서의 조직이 필요하다. 개인이나 사기업(私企業)이 하는 영화제도 없진 않지만 대부분 비영리 사단법인이 운영을 맡는다. 영화제 자체는 영리사업이 아니기 때문에 순수한 열정과 끈기로 영화제를 만들어나가는 개인 또는 조직이야말로 영화제의 진정한 뿌리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영화제는 왜 하는 것일까. 무엇보다 중요한 건 보고 싶은 영화에 대한 갈망이다. 극장에서 개봉하는 영화만으로도 영화에 대한 다양한 욕구를 채울 수 있다면 영화제라는 행사는 따로 필요없을 것이다. 극장이라는 배급 시스템은 철저하게 시장논리로 움직인다. 흥행에서 불리한 영화는 수입할 확률이 적다. 다시 말해 우리가 접하는 영화는 이미 시장논리에 의해 걸러진 것들이기 때문에 매우 한정적이고 편협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으로 인해 영화제라는 숨구멍이 필요한 것이다. 극장에서 볼 수 없는 작품성이 뛰어난 영화를 세상에 드러나게 하는 것이 영화제인 셈이다. 그리고 일단 영화제에서 화제가 된 작품은 극장에서도 관객몰이에 성공할 가능성이 커진다. ‘지옥의 묵시록’ 같은 영화가 대표적이다.
1000개의 도시, 1000개의 축제
영화제의 산업적 순기능 또한 적지 않다. 영화제를 통해 분류되고 평가받은 영화들은 널리 알려지고 나아가 판권 판매에도 유리해진다. 감독과 배우에게도 세계 무대에서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필름마켓이나 프로젝트마켓을 가지고 있는 영화제의 경우, 구체적인 산업적 영향력을 이미 널리 공인받았다고 할 수 있다. 결국 영화제는 다양한 영화를 보고자 하는 관객의 욕구를 충족시키고 전세계에 영화를 알림으로써 판권과 흥행수익을 높이는 산업적 기능을 수행한다.
현재 전세계적으로 영화제가 몇 개 존재하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각 나라별· 테마별·장르별로 다양한 영화제가 존재하며 이러한 행사가 모두 국제영화제의 등급을 매기는 단체인 국제영화제작자협회연맹(International Federation of Film Producers’ Associations, 영어 약자 IFFPA, 불어 약자 FIAPF)에 등록되어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대략 세계적으로 1000개 이상의 영화제가 있는 것으로 추정되며, 영화제가 가장 많이 열리는 프랑스에 약 150개, 한국에는 24개가 있다(영화진흥위원회 웹사이트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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