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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1982년 아프리카 가봉에서 전두환 암살 노렸다

“특수부대 1급 킬러 3인, 폭발물 테러 위해 20일간 4000㎞ 잠행”

  • 글: 황일도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hamora@donga.com

김정일, 1982년 아프리카 가봉에서 전두환 암살 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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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8월초 콩고에 입국한 3인의 실행조가 대외정보조사부 소속이었는지 인민무력부 특수부대로부터 차출된 인원이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자신들을 지원한 현지 공관원들에게조차 정확한 신분을 알리지 않았기 때문. 이들은 입국 직후부터 전 대통령의 주요 방문예정지를 답사하며 사전정보를 수집하고 거사장소를 물색했다.

일본 도요타자동차제 랜드 크루저 지프에 몸을 실은 이들은 일본인 상사원으로 신분을 위장한 채 아프리카의 험한 흙 길을 누비며 콩고, 가봉, 적도기니를 넘나들었다. 무려 4000km가 넘는 긴 여정이었다. 현지 안내와 자동차 운전을 담당할 두 사람이 동행했다. 이들은 콩고 인접 국가에 주재하는 북한 공관에서 차출됐다. 이들이 답사여행에 항공편이 아닌 자동차를 이용한 것은 공항에 비해 육로가 비교적 검색이 까다롭지 않았기 때문이다.

생면부지의 험지 아프리카에서 벌이는 일이 마냥 순조로울 수 만은 없는 일. 답사 여행이 한창 진행중이던 8월 중순, 이들은 임무를 포기해야 할 정도의 심각한 위기에 봉착한다. 적도기니의 산길을 달리던 지프의 핸들축이 부러지면서 자동차가 언덕 밑으로 10차례 이상 구를 만큼 큰 사고를 당한 것. 그 바로 아래에는 200m에 달하는 경사지가 입을 벌리고 있었다. 자동차가 나무에 걸린 덕분에 이들은 겨우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실행조를 포함해 탑승자 전원이 곳곳에 흉터가 남을 만큼 큰 부상을 입었지만 병원에 누워 있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응급치료를 받은 이들은 곧바로 임무를 속행하기 위해 차를 달렸다. 이들이 수집한 정보는 바로 콩고대사관에 설치된 본부에 전달됐고, 본부는 이를 평양 중앙당 본청에 있는 대외정보조사부에, 대외정보조사부는 김정일 비서에게 보고했다. 계속되는 교신 끝에 ‘거사’의 구체적인 계획이 완성됐다. 디데이는 8월22일, 장소는 가봉의 수도 리브르빌이었다.

검은색 여행가방



암살 방법으로는 당초 계획했던 대로 폭발물 설치를 택했다. 8월22일 가봉에 도착하는 전두환 대통령 일행이 이날 저녁 대통령궁(Palais Presidental) 영빈관에서 열리는 환영만찬에 참석하기 위해 대기하는 지점에 폭발물을 설치하고, 이를 원격조정장치로 폭파시킨다는 것이 골자였다. 이러한 결론에 도달하기까지 실행조는 답사여행 내내 지프 한 켠에 폭발물과 기폭장치, 원격조정장치 등이 들어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샘소나이트 여행용가방 두 개를 싣고 다녔다.

시내 중심가를 바라보고 있는 가봉 대통령궁은 1970년대 개발붐이 한창이던 시대에 거액을 들여 건설한 가봉인들의 자랑거리로, 이탈리아에서 수입한 대리석과 그리스에서 수입한 기둥으로 장식된 호화로운 건물이었다. 대통령궁은 번화가에서 멀지 않은데다 그 주변은 길이 여러 갈래로 갈라지는 까닭에 도주가 용이했다. 또한 사통팔달로 이어지는 리브르빌의 고가도로는 쫓기는 이들에겐 필수적인 안전요소였다.

구체적인 거사장소를 고르는 일은 현장을 답사한 실행조의 몫이었지만 거사를 벌일 나라를 결정하는 것은 평양의 권한이었다. 전 대통령 암살이 성공할 경우 해당국가가 취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조치는 배후로 의심되는 북한과의 국교단절 및 대사관 추방. 본부가 마련된 콩고가 1965년 한국과 단교한 이래 북한대사관만 설치돼 있던 나라인데 비해, 가봉은 남북한과 동시 수교를 맺고 있는 상태였다. 특히 전 대통령이 순방하는 네 개 나라 중 규모가 작은 나라라는 점도 고려했다. 나이지리아 등 아프리카 강국들과 달리 가봉의 경우 국교가 단절된다 해도 북한 입장에서 크게 잃을 것이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고 한다.

계획이 완성되자 남은 것은 실행뿐이었다. 이들이 거사를 위해 다시 가봉으로 출발한 것은 전 대통령이 아직 나이지리아에 머물고 있던 8월19일 무렵이었다. D-3일, 콩고 브라자빌의 본부를 떠나 인적이 드문 밤길을 300여㎞ 달렸다. 험한 산지를 넘어 가봉 국경에 도착한 것은 다음날인 8월20일 새벽. 강철 같던 실행조 요원들의 얼굴에도 긴장이 감돌기 시작했다. 다섯 시간이 넘는 밤길 주행이었지만 아무도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같은 시각, 거사 예정지인 가봉의 수도 리브르빌에서 10km 남짓 떨어진 오웬도항. 호텔과 상점이 즐비해 흡사 마이애미 비치를 연상케 한다는 이 호사스러운 도시 앞바다에는 산뜻한 계절을 맞아 레저를 즐기는 요트가 즐비했다. 그 바다 한켠에 주변 풍경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초라한 배 한 척이 몸을 숨기고 있었다. 북한국적의 ‘동건애국호’였다.

‘동건애국호’는 거사 후 실행조 일행이 한층 강화된 검문검색이나 국제적인 추적을 피해 안전하게 본국으로 대피할 수 있도록 평양의 중앙당 작전부에서 보낸 ‘퇴로’였다(이듬해 발생한 아웅산 사건 때 공작원들을 원산에서 미얀마까지 실어 나른 것도 바로 동건애국호였다). 아프리카 거사계획이 수립된 직후 지구를 반 바퀴나 돌아 대서양에 당도했던 이 배는 리브르빌로 장소가 결정되자 오웬도 앞바다에 머무르며 초조하게 거사시간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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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황일도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hamo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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