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1대 총통선거에서 승리한 민진당 천수이볜 총통(왼쪽)과 뤼슈렌 부총통이 승리의 기쁨을 누리고 있다.
무엇이 문제인가. 민진당 천수이볜과 국민당 롄잔은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가. 재검표 결과에 따라 대만 정국은 안정을 회복할 것인가. 대만 사태를 걱정스레 바라보고 있는 중국의 속내는 무엇이며 양안(兩岸)관계는 어떠한 영향을 받을 것인가. 호시탐탐 대만문제에 끼여들 여지를 모색하며, 선거 이후의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호기를 놓칠세라 대만에 대규모 무기판매를 추진하고 있는 미국의 입장은 도대체 무엇인가.
어느 국가를 막론하고 최고지도자를 선출하는 일은 최대의 정치적 사안이며 국가의 전반적인 정치과정과 직결된다. 그러나 대만 역사에서 총통선거가 중요한 사안으로 등장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과거 장졔스(蔣介石)와 그의 아들 장징궈(蔣經國)로 이어진 장씨 일가의 초법적 통치가 행해졌던 시기, 대만의 총통은 종신적 지위가 보장된 국민대표대회(國大) 대표들에 의해 간접선거로 선출되었고 연임의 제한도 없어 군주나 다름없었다. 따라서 총통 선거는 공산당의 일당 지배체제를 무색하게 했던 국민당 통치수단의 하나에 불과했다.
그러나 1988년 1월 장징궈가 사망하고 리덩후이(李登輝) 체제가 출범하면서 총통의 선출방식과 역할문제가 대만 정국의 민감한 사안으로 떠올랐다. 결국 리덩후이는 자의반 타의반으로 1994년 총통 직선제 개헌을 단행했고 1996년 총통선거부터 직선제를 실시했다. 그후 총통선거는 대만의 정치과정에서 최대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리 총통 집권 후반기에 가속화된 국민당의 이른바 대만화(臺灣化)와 당 지도부 분열, 민진당의 정치적 영향력 강화와 대만의 정당구도 변화, 양안관계에 대한 대만 주민들의 인식 변화와 기존 대륙정책의 변화 촉구 등은 총통선거 과정을 과열시키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최고지도자를 직접 선출한다는 것은 과거 40년 가까운 계엄통치 시절에는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그만큼 대만에서 총통직선제는 ‘거수기’에 의한 간접 선출에서 국민의 직접선출로 전환됐다는 방식의 변화에 그치지 않는다. 총통 직접선출 과정은 대만인들의 잠재된 정치적 관심을 폭발적으로 불러일으켰다. 아울러 ‘누가 총통으로 선출되느냐’가 대내외적으로 미묘한 상황에 처한 대만의 정치 경제 안보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 대만인들의 정치 참여 욕구를 자극했다.
한편 중국 정부는 대만의 총통선거를 일개 지방 당국자를 선출하는 지방선거에 불과하다고 폄하하고 무관심한 듯한 태도를 보였지만, 실제로는 선거 과정을 예의주시하고 누가 총통에 당선될 것이며 그가 어떠한 성향의 정책을 펼칠 것인지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다. 그 이유는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총통선거가 대만 정국 변화와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대만 정치지도자들이 선거 전략적인 측면에서 양안관계, 대만의 국제적 지위 문제 등을 의도적으로 ‘정치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2000년 3월 국민당의 50년 집권을 무너뜨리고 대만인 중심의 민진당 정권이 들어서면서 대륙 지향적 정책보다는 대만 지향적인 정책성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집권 초기부터 고전을 면치 못했던 천수이볜 총통은 자신의 정치적 기반을 강화하려는 의도에서 노골적으로 대만의 독립적인 정치적 지위와 국제사회에서의 생존공간 확보 등의 문제를 제기하고 더 나아가 이를 국제화하는 정책을 취했다. 이는 결과적으로 양안관계의 정치적 긴장을 높여 양안 지도부간에 정략적인 설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번 대만 총통선거는 대만 정국은 물론 양안관계에 크고 작은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치러졌다. 따라서 선거운동 과정이 전례 없이 가열됐고 민진당, 국민당 모두 무리한 선거 전략을 추진했다. 지금의 혼란 상황은 그러한 과열과 무리수의 후유증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