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5월호

잡음 많은 대만 총통선거 그후

대만 ‘不統不獨’, 중국 ‘一國兩制’, 미국 ‘현상유지하며 실속 챙기기’

  • 글: 문흥호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교수·중국정치hmoon@hanyang.ac.kr

    입력2004-04-28 11:3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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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만이 심각한 선거 후유증을 앓고 있다. 주가 폭락과 소비 급감 등 경제적 타격뿐 아니라 사회적 반목과 갈등도 깊어지고 있다. 국민의 정치 환멸과 전쟁에 대한 우려가 더욱 커져 대만을 떠나려는 이민 신청자가 선거 후 3배로 늘어났다. 향후 대만 정국은 어떻게 흘러갈 것인가. 양안관계는 결국 전쟁으로 치달을 것인가.
    잡음 많은 대만 총통선거 그후

    제11대 총통선거에서 승리한 민진당 천수이볜 총통(왼쪽)과 뤼슈렌 부총통이 승리의 기쁨을 누리고 있다.

    총통선거 이후 대만 정국의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국민당 롄잔(連戰) 후보측은 2만9518표 차의 패배를 전혀 인정하지 않고 있다. 특히 선거 전일의 천수이볜(陳水扁) 총통 저격 사건과 득표 차의 무려 11배가 넘는 무효표는 야당이 당선무효소송과 재검표를 요구하는 빌미가 되고 있다. 또한 선거운동 기간 내내 열세를 벗어나지 못하다가 막판 뒤집기에 일단 성공한 천 총통측도 승자라기보다는 어딘가 당당하지 못하고 수세에 몰리는 듯한 분위기이다. 천 총통은 국제사회로부터도 변변한 당선 축하 전문 하나 받지 못했으며 내부적으론 탕야오밍(湯曜明) 국방부장, 차이차오밍(蔡朝明) 국가안전국장 등 측근 각료들이 사퇴하는 등 진통을 겪고 있다.

    무엇이 문제인가. 민진당 천수이볜과 국민당 롄잔은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가. 재검표 결과에 따라 대만 정국은 안정을 회복할 것인가. 대만 사태를 걱정스레 바라보고 있는 중국의 속내는 무엇이며 양안(兩岸)관계는 어떠한 영향을 받을 것인가. 호시탐탐 대만문제에 끼여들 여지를 모색하며, 선거 이후의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호기를 놓칠세라 대만에 대규모 무기판매를 추진하고 있는 미국의 입장은 도대체 무엇인가.

    어느 국가를 막론하고 최고지도자를 선출하는 일은 최대의 정치적 사안이며 국가의 전반적인 정치과정과 직결된다. 그러나 대만 역사에서 총통선거가 중요한 사안으로 등장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과거 장졔스(蔣介石)와 그의 아들 장징궈(蔣經國)로 이어진 장씨 일가의 초법적 통치가 행해졌던 시기, 대만의 총통은 종신적 지위가 보장된 국민대표대회(國大) 대표들에 의해 간접선거로 선출되었고 연임의 제한도 없어 군주나 다름없었다. 따라서 총통 선거는 공산당의 일당 지배체제를 무색하게 했던 국민당 통치수단의 하나에 불과했다.

    그러나 1988년 1월 장징궈가 사망하고 리덩후이(李登輝) 체제가 출범하면서 총통의 선출방식과 역할문제가 대만 정국의 민감한 사안으로 떠올랐다. 결국 리덩후이는 자의반 타의반으로 1994년 총통 직선제 개헌을 단행했고 1996년 총통선거부터 직선제를 실시했다. 그후 총통선거는 대만의 정치과정에서 최대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리 총통 집권 후반기에 가속화된 국민당의 이른바 대만화(臺灣化)와 당 지도부 분열, 민진당의 정치적 영향력 강화와 대만의 정당구도 변화, 양안관계에 대한 대만 주민들의 인식 변화와 기존 대륙정책의 변화 촉구 등은 총통선거 과정을 과열시키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최고지도자를 직접 선출한다는 것은 과거 40년 가까운 계엄통치 시절에는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그만큼 대만에서 총통직선제는 ‘거수기’에 의한 간접 선출에서 국민의 직접선출로 전환됐다는 방식의 변화에 그치지 않는다. 총통 직접선출 과정은 대만인들의 잠재된 정치적 관심을 폭발적으로 불러일으켰다. 아울러 ‘누가 총통으로 선출되느냐’가 대내외적으로 미묘한 상황에 처한 대만의 정치 경제 안보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 대만인들의 정치 참여 욕구를 자극했다.

    한편 중국 정부는 대만의 총통선거를 일개 지방 당국자를 선출하는 지방선거에 불과하다고 폄하하고 무관심한 듯한 태도를 보였지만, 실제로는 선거 과정을 예의주시하고 누가 총통에 당선될 것이며 그가 어떠한 성향의 정책을 펼칠 것인지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다. 그 이유는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총통선거가 대만 정국 변화와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대만 정치지도자들이 선거 전략적인 측면에서 양안관계, 대만의 국제적 지위 문제 등을 의도적으로 ‘정치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2000년 3월 국민당의 50년 집권을 무너뜨리고 대만인 중심의 민진당 정권이 들어서면서 대륙 지향적 정책보다는 대만 지향적인 정책성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집권 초기부터 고전을 면치 못했던 천수이볜 총통은 자신의 정치적 기반을 강화하려는 의도에서 노골적으로 대만의 독립적인 정치적 지위와 국제사회에서의 생존공간 확보 등의 문제를 제기하고 더 나아가 이를 국제화하는 정책을 취했다. 이는 결과적으로 양안관계의 정치적 긴장을 높여 양안 지도부간에 정략적인 설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번 대만 총통선거는 대만 정국은 물론 양안관계에 크고 작은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치러졌다. 따라서 선거운동 과정이 전례 없이 가열됐고 민진당, 국민당 모두 무리한 선거 전략을 추진했다. 지금의 혼란 상황은 그러한 과열과 무리수의 후유증이라 할 수 있다.

    2000년에 이어 두 번째로 격돌한 천수이볜과 롄잔은 민진당과 국민당으로 상징되는 대만의 대표적 정치세력의 얼굴이다. 이들은 이념적 지향, 세력 기반, 양안관계의 궁극적인 형태에 대한 인식에서 차이를 보인다. 즉 이들은 국민당 정권이 1949년 대만에 천도한 이래 현재까지 형성된 각기 다른 대만사회의 정치, 사회적 특성을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선거 과정, 특히 깔끔하게 마무리되지 못한 선거 이후의 혼란 속에서 이들의 차이가 지나치게 확대 해석되고 있다. 즉 과열된 선거운동 기간 중 전략적으로 두 사람의 차별성을 부각시킴으로써 실제 이상으로 과장됐다는 것이다. 특히 외신을 비롯한 많은 언론들이 두 사람을 ▲대만 출신(本省人)과 대륙 출신(外省人) ▲양안의 통일 지향과 독립 지향 ▲민주인사와 반민주인사 등 이분법적 도식에 의해 비교하려는 경향이 많았다. 어쨌거나 두 사람의 차이와 그 정도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은 향후 대만의 정치상황을 가늠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우선 대만출신과 대륙출신이라는 차이가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 이는 대만사회가 안고 있는 독특한 문제로서 이 차이는 분명 적지 않은 의미를 갖고 있다.

    대만은 1895년부터 1945년까지 일본의 식민지배를 받으면서 대륙과 무관하게 살았고 해방 이후 장졔스 국민당 정부가 대만에 정착하는 과도기에는 본성인과 외성인 사이에 크고 작은 마찰이 있었다. 특히 1947년의 ‘2·28 사건(본토 대만인들과 국민당 정부 사이에 빚어진 대규모 유혈 충돌)’은 대만인들의 가슴속에 지우기 어려운 깊은 상처를 남겼다. 따라서 초기 국민당 정부는 그동안 대륙으로부터의 소외감이나 피해의식을 갖고 있던 대만인들에게 일본 식민통치정부보다도 못한 무능하고 부패한 압제자로 인식되었다. 이런 갈등과 불만은 대만사회 곳곳에 앙금으로 남게 되었다.

    본성·외성 구분 큰 의미 없어

    그러나 장징궈 사망 이후 순수한 대만 출신인 리덩후이가 총통직과 국민당 주석직을 승계하면서 상황이 크게 달라졌다. 대륙인과 불가분의 관계를 갖는 국민당 정권의 최고권력을 처음으로 대만 출신이 장악했다는 것은 대만인들에게 엄청난 의미였다. 이를 기점으로 국민당의 대만화와 대만 정국의 변화가 본격적으로 이뤄지기 시작했다. 특히 2000년 천수이볜 정부의 등장은 대만인의 정서를 대변하는 민진당에 기반한 대만 출신 총통의 탄생이라는 점에서 대만 정치사에 한 획을 긋는 사건임에 틀림없었다.

    이처럼 1990년대 이후 본성인과 외성인이라는 차이는 대만 정국에서 나타나는 모든 갈등, 대립의 근본적 원인이 아니라 하나의 변수에 불과했다. 즉 본성인과 외성인은 민진당과 국민당, 천수이볜과 롄잔을 구분하는 기준으로는 여전히 유효하나 과거와 같이 절대적인 차이를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대만 사회에서도 본성인과 외성인 간 갈등이 크게 완화됐다. 본성인들이 대만정치의 주역으로 등장했다는 점과 더불어 점차 외성인 1세들이 사라지면서 젊은 세대 사이에서는 본성·외성의 구분이 의미를 잃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천수이볜과 롄잔이 양안의 독립 혹은 통일 문제에 있어 극단적인 차이를 보이는 것처럼 확대 해석하는 것에도 무리가 있다. 즉 천 총통은 독립에, 롄잔은 통일에 집착하는 것으로 단순화시켜 비교하는 것은 적절히 않다는 것이다.

    실제로 천 총통은 급격한 대만 독립주의자(臺獨分子)로 부각되는 것이 부담스럽고 롄잔 역시 대만의 독립을 반대하는 것으로 인식되는 게 부담스럽다. 다만 천 총통이 주권국가로서 대만을 강조하는 ‘일변일국론(一邊一國論)’을 제기하며 보다 공세적인 대륙정책을 취하는 반면, 롄잔은 무리한 독립 기도로 중국의 군사적 위협을 자초하는 것은 대만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할 뿐이다. 이들은 양안의 통일과 독립 문제가 이미 자신들 능력 밖의 일이라는 점을 깊이 인식하고 있다.

    대만문제는 ‘지구상에 중국은 오직 하나이며 대만은 중국의 불가분한 일부분’이라는 원칙을 고수하는 중국과 독립적이고 자주적인 정치실체로서 국제적 승인을 요구하는 대만이 대립하는 현 상황에서 어느 한쪽도 완전한 해결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 또 대만문제와 양안관계에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국제적 요인이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는 양안관계가 이미 중국과 대만의 특정 지도자나 정치세력이 근본적 변화를 추진하기 어려울 정도로 대내외적 요인과 복합적으로 연계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대만의 총통선거 결과가 양안관계에 급격한 변화를 야기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결국 중국, 대만 그리고 미국이라는 애증의 삼각관계 속에서 제한적인 변화만이 가능할 것이다. 향후 양안관계를 전망하기 위해서는 이들 세 가지 요인을 분석해보아야 한다.

    잡음 많은 대만 총통선거 그후

    최근 실시된 총통선거가 부정선거라며 시위를 벌이는 국민당 지지자들.

    중국 입장에서 대만문제는 반드시 해결해야 할 국가적·민족적 과제다. 따라서 상징적으로라도 대만문제가 최우선적 정책과제로 설정되는 실정이다. 즉 중국의 최고지도자에게 대만문제의 해결을 위한 노력과 일정한 성과 창출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만약 대만상황이 이에 거스르는 방향으로 전개된다면 지도자의 정치적 기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따라서 후진타오(胡錦濤) 체제에 있어 대만문제는 지극히 중요한 사안이며 기존의 원칙과 성과를 지키는 것은 물론 새로운 진전을 이뤄야 한다. 후진타오도 이를 깊이 인식하고 있으며 총서기, 국가주석 승계 이후 공식적인 연설과 외국 주요 지도자들과의 회담에서는 예외 없이 대만문제에 대한 중국의 원칙과 입장을 역설하고 있다.

    중국은 대만문제에 있어 ‘일국양제(一國兩制)’ 방침을 고수하고 문제 해결의 주도권을 장악하는 데 주력할 것이다. 이를 위해 중국은 그 동안 대만에 제시했던 각종 원칙과 제안, 그리고 선거 이후 대만의 정국 상황을 포함한 대내외 정세 변화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보다 현실적이고 진전된 형태의 원칙과 방침을 설정할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의 정책을 전망하면 첫째, 일국양제 방식에 의한 평화통일 원칙을 고수하는 한편 조건부 무력사용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 정책을 유지할 것이다. 이는 대만의 독립 움직임을 견제하는 동시에 대만해협을 포함한 대만문제에 외부 세력이 개입해 중국의 입지가 제약되는 상황을 막기 위한 전략적 의도이다. 특히 중국은 미국이 대만관계법(Taiwan Relations Act)을 구실로 대만에 대한 무기판매와 군사적 정보제공 등을 계속하는 것에 대해서 강경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최근 미국이 대만에 장거리 조기경보 레이더 시스템을 판매하려고 한 것에 대해 중국이 반발한 것도 미·대만의 협력 확대 가능성을 막기 위한 것이다.

    둘째, 정치 안보적 측면의 대립과는 별도로 그 동안 양안관계 발전의 원동력이었던 비정치 민간 차원의 교류 협력을 지속적으로 확대할 것이다. 실제로 경제부문을 중심으로 한 양안의 교류협력 확대는 중국, 대만 모두에게 절실히 요구되는 사항이다. 이는 양안간의 정치 안보적 불안정을 해소해주는 역할도 하고 있다. 선거 이후 양안관계에 대한 중국의 논평을 보면 경제교류를 중심으로 한 양안간 교류협력 확대의 필요성을 여전히 강조하고 있다.

    셋째, 국제사회에서 생존공간을 확보하기 위한 대만의 외교공세를 차단하는 데 주력할 것이다. 대만은 1990년대 중반 이후 유엔 가입을 통해 자신들의 정치적 실체를 승인받으려 하고 있다. 물론 대만은 현재로서는 유엔 가입이 실현되기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다만 국제사회에 대만문제의 본질과 자신들의 주장을 부각시키기 위해 전략적인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대만의 의도를 파악하고 있는 중국으로서는 이런 행동을 근본적으로 차단하는 데 주력할 것이며, 특히 대만문제의 국제화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갖고 있는 미국의 대만정책 변화를 억제하는 데 역점을 둘 것이다.

    기존의 교류 협력 지속될 듯

    한편 양안관계와 관련된 대만의 정책적 선택의 범위는 민진당, 국민당 정권을 불문하고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중국과의 비정치·민간차원의 교류 협력은 이미 인위적으로 규제하기 힘들 정도로 확대됐다. 예를 들어 중국에 진출한 대만 기업인(臺商)의 수가 이미 100만명을 넘어섰고 비공식 투자를 합하면 대만의 중국내 투자가 1000억달러를 초과한 것으로 전해진다.

    인적 교류와 사회문화 교류 역시 쌍방의 정치적 대립과 갈등을 무색케 할 정도로 증대됐다. 따라서 선거 결과와 무관하게 대만은 정치 이념적 대립과 간헐적인 군사적 긴장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교류 협력을 지속하지 않을 수 없다. 대만 기업인 대부분은 줄곧 중국과의 안정적인 교류를 위해 불필요하게 중국을 자극하지 말 것을 천 총통에게 요구해왔다. 현실적으로도 대만이 장기적인 침체에 빠져 있는 상황에서 경제의 활로를 모색하기 위해서는 중국 외에 별다른 방안이 없다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천수이볜 정부가 전면적인 삼통(三通)의 전 단계로서 ‘소삼통(小三通)을 추진하고 대만기업의 중국내 투자규제 완화 및 투자의 상한선 상향 조정, 대만 주식시장에 대한 대륙인의 투자 허용 등 양안 경제교류의 규제 장치를 대대적으로 완화한 것도 이러한 현실 인식에 따른 것이다.

    결국 향후 중국과 대만이 취할 수 있는 정책의 선택 폭은 극히 제한돼 있다. 따라서 중국은 대만에 대해 위협과 설득의 양면전략을 구사하면서 선거 이후 대만의 정국동향을 예의 주시하고(認眞觀察), 인내를 갖고 기다리며(耐心等待), 서두르지 않으면서도(不急不躁), 분리주의적 경향에 대해서는 군사적 조치를 포함한 고도의 압박을 가하는(保持高壓) 정책을 취할 것이다. 중국 정부가 선거 이후 대만의 정국동향에 대한 공식 논평을 극도로 자제하는 것도 일단 기다리며 사태 추이를 주시한다는 고도의 전략적 행동이다. 물론 중국의 이러한 전략에는 천수이볜과 롄잔의 차이가 양안관계에 급격한 변화를 야기할 정도가 아니고, 더욱이 이들이 주창하는 구호가 정치적, 정략적 차원에서 제기된 것이라는 판단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

    대만은 천수이볜이 총통으로 확정되든, 롄잔이 이기든 간에 선거 이후의 국론분열과 정국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대내적 화합, 대외적 입지 확대에 주력할 것이다. 또한 정치권을 중심으로 양안관계를 둘러싼 소모적 논쟁을 지속하기보다는 이번 ‘방어성 국민투표(defensive referendum)’의 부결에서 나타났듯이 일국양제 방식의 통일이나 무리한 독립 모두 원치 않는 대다수 대만인들의 소위 ‘불통불독(不統不獨)’ 정서를 직시하고 이에 부응하는 정책을 추진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선거기간에 표방된 민진당, 국민당의 각종 주장과 정책들이 선거 이후에는 양안관계 현실의 틀 속에서 축소 조정될 수밖에 없으며, 그 핵심은 양안관계의 ‘안정적 현상유지’를 전제로 경제교류를 중심으로 한 기존 교류협력의 확대발전이 될 것이다.

    예를 들어 천 총통은 지난 3월29일 ‘워싱턴 포스트’와의 기자회견에서 주권을 가진 정치실체로서 대만의 지위, 일국양제 방식의 거부, 신헌법의 제정 추진 의지 등을 강조하면서도 대만의 급격한 독립 추진이나 중국과의 군비 경쟁 등에 대해서는 신중하고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특히 그는 신헌법 제정은 대만의 독립 추진과 무관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심지어 대만 총통부는 ‘워싱턴 포스트’가 천 총통의 의사와는 다르게 독립 추진 의지를 확대 해석하여 불필요하게 중국을 자극했다는 불만을 공식 제기하기도 했다.

    미국, 전략적 모호성 유지

    대만문제의 또 다른 변수인 미국은 그 동안 형식적 측면에서는 하나의 중국을 추구하는 중국의 입장에, 실질적인 측면에서는 하나의 중국과 하나의 대만(一中一臺)을 추구하는 대만의 입장에 동조함으로써 중국·미국·대만의 삼각관계를 자국의 이해득실에 따라 조정해왔다. 앞으로도 미국은 선거 결과와 관계없이 ‘전략적 모호성(strategic ambiguity)’에 입각한 현상유지 정책을 취할 것이다. 다만 미국이 선호하는 양안관계의 현상유지는 고정불변의 것이 아니라 중국과 대만의 대내외적 상황 및 자국의 이해관계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언제든 변할 수 있는 탄력적인 것이다. 중국으로서는 미국의 이런 태도가 불만스럽지만 협력과 갈등이 공존하는 중·미 관계 속에서 이를 일정부분 수용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중국은 ‘하나의 중국’ 원칙에 대한 공식적인 지지와 무관하게 행해지는 미국의 집요한 간섭과 방해를 극복해야 하는 부담을 여전히 안게 된다. 단적인 예로 최근 미국이 대만에 무기판매를 구체화하고 미 태평양사령관이 상원 군사위원회에서 “대만관계법에 의거하여 양안관계 관련 정세를 상부에 보고할 책임과 대만의 자위능력 향상을 도와야 할 의무가 있다”는 점을 강조했는데, 이는 중국의 입장에서 대단히 불쾌하고 고민스러운 것이 아닐 수 없다. 중국 지도부는 대만문제에서 미국에 밀리면 영토·주권문제에서도 수성이 어렵고, 결과적으로 21세기 미국과의 관계에서 자국의 영향력과 경쟁력을 상실할 수도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따라서 중국은 대만문제가 중·미 관계에서 중국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는 현실을 인정하고 양안관계를 통일, 독립의 양극단으로 몰아가지 않으면서 문제해결의 주도권을 장악할 때까지 공수(攻守)를 병행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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