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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에서 진가 발휘한 CG기술

없는 것을 있게, 있는 것을 사라지게

  • 글: 장병원 ‘Film 2.0’ 취재팀장 jangping@film2.co.kr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에서 진가 발휘한 CG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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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전문인력이 없어 주먹구구식으로 작업했던 CG업계에는 이제 CG전문가를 꿈꾸는 젊은 재주꾼들로 넘쳐난다. 인사이트 비주얼, 모팩, 매커드, 풍년상회 등 CG업체의 수도 늘어났다. CG가 한 편의 영화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990년대 말부터 비약적으로 증가했다. 멜로나 코미디 등 흥행 안전제일의 장르 선택, 스타 시스템, 드라마로 승부를 거는 등 이전까지의 영화계 풍토가 CG 같은 기술적 실험을 시도하는 것 자체를 어렵게 했던 것도 사실이다.

알려진 것보다 CG의 효용은 다양하다. CG엔 평면 그래픽을 이용한 2D기술과 입체적인 영상을 만들어내는 3D기술이 골고루 활용되고 있다. SF나 공포 등 판타스틱 장르뿐 아니라 최근엔 코미디, 스릴러, 멜로 등 전통 장르에도 CG가 활용되고 있다. 할리우드 영화 ‘포레스트 검프’ 이래 CG는 눈이 휘둥그래지는 비주얼이나 스펙터클한 장면이 아닌, 리얼리티를 강화하는 데도 쓰이기 시작했다. 5월 개봉을 앞둔 한국영화 ‘효자동 이발사’는 ‘포레스트 검프’의 유명한 CG커트를 패러디한 장면들이 들어 있다고 한다.

이 밖에도 와이어에 매달려 촬영한 액션 신의 와이어를 지우는 작업(‘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아라한-장풍대작전’), 촬영한 필름을 컴퓨터에 집어넣고 스캐닝으로 화면의 질감과 톤을 균일하게 맞추는 디지털 색보정(‘화산고’ ‘태극기를 휘날리며’), 블루 매트(서로 다른 시공간에서 촬영한 두 장면을 합성하기 위해 후면에 대는 푸른 영사막)를 통한 화면 합성…. 이 모든 것이 CG팀의 몫이다. 최근 개봉한 범죄 누아르 영화 ‘범죄의 재구성’에서 진가를 발휘한 현란한 화면 분할과 장면 전환도 CG기술이 이룩한 성과이다.

이들 중에 최근 CG기술의 개가로 평가되면서 각광받고 있는 것이 CG 캐릭터이다. ‘반지의 제왕’의 ‘골룸’은 CG 캐릭터가 어디까지 진화했는가를 보여준 일대 사건이었다. 골룸은 분장을 하고 액션을 취하는 배우를 모션캡처 카메라로 찍은 후 컴퓨터에 데이터를 입력, CG로 생기를 불어넣는 과정을 거쳐 탄생했다. 이렇게 창조된 디지털 인간에 배경과 액션을 입력하면 스스로 생각하고 움직이는 인물이 된다. ‘반지의 제왕’에서는 골룸뿐만 아니라 전투 장면에서 떼지어 등장하는 전사들과 오크가 CG의 힘을 빌려 창조됐다.

‘태극기’에서도 이 같은 CG 캐릭터가 적극 활용됐다. 인공지능에 의해 움직이는 디지털 캐릭터는 사람이 있으면 피해가고, 장애물이 있으면 돌아가는 신통방통한 재주를 지녔다. 그러나 관건은 감정 없는 디지털 인간에게 어떻게 인간의 숨결을 불어넣을 것인가 였다. ‘태극기’는 디지털 캐릭터의 액션, 표정, 질감을 자연스럽게 만들기 위해 꼬박 두 달 이상을 할애했다. 장대하게 이어지는 피난 행렬 장면, 새카맣게 쏟아져 내려오는 중공군의 인해 전술, 국군의 진격 장면 등에서 디지털 캐릭터는 살아 있는 인간만큼이나 영화의 사실감을 더하는 데 기여했다.



전신주 사라지게 만들어

한국영화에서 CG의 효용성은 무엇보다도 영화제작의 각종 한계를 뛰어넘게 하는 신묘한 능력에 있다. 제작비 절감이라는 단순한 경제적 효과 외에도 자본으로 해결할 수 없는 시대 상황의 재현이나 작가의 상상력을 뒷받침하는 창조적 기능이 강조되는 추세다. 예컨대 ‘태극기’는 1950년대라는 과거의 재현에 역량을 집중했다. 이 영화에서 CG는 한국전쟁 당시로 영화의 시간을 되돌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태극기’는 야외촬영 위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신식건물들과 전신주 등이 카메라에 찍힐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블루 스크린 합성 등 CG기술을 통해 거대한 피난 행렬, 대구역에 운집한 피난 인파 장면에서 신식건물이나 전신주 등을 완벽하게 지웠다. 또 전투 상황의 리얼리티를 극대화하는 파편과 먼지, 불을 뿜으며 날아가는 총탄의 궤적 등은 CG의 힘을 빌리지 않고서는 도저히 완성될 수 없는 장면이었다.

또 CG기술은 전투기와 장갑차, 탱크, 총, 화기, 박격포를 망라한 각종 무기류, 그리고 인간의 피와 살점을 창조했다. 과연 CG기술은 이 영화에서 없는 것을 있게 하고 있는 것을 사라지게 하는, 또 한 대의 카메라 이상의 역할을 완벽하게 했다. 이쯤이면 ‘태극기’는 한국영화가 가용할 수 있는 온갖 CG기술을 집대성한 영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 같은 CG기술의 놀라운 진보에도 불구하고 영화현장에서는 여전히 사라지지 않는 오해들이 있다. CG 만능주의가 그 하나요, CG 과시주의가 그 둘이다. 이 둘은 현장에서 CG 스태프를 가장 힘들게 만드는 질곡이기도 하다.

강종익 실장은 “제작자나 감독이 CG 분야에 대한 전문 지식 없이 안 되는 걸 만들어내라고 요구할 때 가장 난감하다”고 털어놓았다. CG 활용에 대한 명확한 사전설계 없이 촬영한 다음, 미비한 부분을 CG로 메우려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렇게 될 경우 CG는 완성도에 기여하는 게 아니라, 결점을 보완하는 미봉책으로 전락할 공산이 크다. ‘공동경비구역 JSA’ ‘화산고’ ‘2009 로스트 메모리즈’ ‘빙우’ 등을 작업한 모팩 스튜디오의 장성호 실장 역시 “과거에는 막무가내로 CG에 의존하려는 경향이 있었다”고 지적한다. 없는 것을 있게 하는 것이 CG이긴 하지만 무엇이든 뚝딱 만들어낼 수 있는 요술방망이도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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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장병원 ‘Film 2.0’ 취재팀장 jangping@film2.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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