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예봉은 인기 상한가를 치던 1936년 잡지 ‘삼천리’와의 인터뷰에서 앞으로 어떤 역을 연기해보고 싶냐는 질문에 ‘그 여자의 일생’의 이금봉 역을 해보고 싶다면서 ‘내가 미모와 재주에 있어 이금봉에 미치지 못하지만’이라는 단서를 달았다. 당시 문예봉은 한국적 미와 지성을 겸비한 배우로 꼽혔는데 소설의 주인공 이금봉의 재색은 그보다 더 대단했다는 것이다.
한편, 목포 출신 여가수 이난영이 ‘목포의 눈물’과 ‘신계곡산’을 히트시켜 톱가수가 된 것은 1935년이다. 그의 나이도 불과 스물. 이난영은 월간 ‘삼천리’에서 실시한 인기가수 투표에서 3위를 차지했다. 이난영의 취미는 독서였고 인터뷰 당시 그녀가 ‘눈물과 감격’으로 읽던 책은 ‘그 여자의 일생’이었다. 이난영 또한 이금봉의 운명에 깊이 감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문예봉, 이난영 같은 대스타들을 감격시킨 ‘그 여자의 일생’은 어떤 소설이며 그 주인공 이금봉은 누구인가?
‘그 여자의 일생’은 이광수가 1934년 ‘조선일보’에 연재하고 이듬해 단행본으로 발간하여 화제를 모은 작품이다. 전형적인 ‘여자의 일생’형 구조를 가진 소설에서 이금봉은 하늘이 내린 미모와 청순함을 타고났다.
그러나 하늘은 서울 계동 출신의 이 미녀에게 미모뿐 아니라 비극적 운명까지도 선사했다. 금봉은 사랑에 실패하고 돈 있는 남자들 사이에서 비싼 값에 팔려다니는 신세로 전락했다가 아들까지 뺏긴 뒤 결국 비구니가 된다. 당시 젊은 여성들은 그저 청순가련하고 수동적이기 그지없던 이런 여성과 자신을 동일시하고자 했던 것이다.
소설 속에서 이금봉은 러일전쟁이 일어난 1904년에 태어났다. 이금봉의 어린 날 별명이 ‘약안’ ‘라란’이다. 금봉의 집에 드나들던 남자 어른들이 “금봉아, 너는 자라서 라란 부인이나 약안 부인처럼 되어라”고 했던 것이다. 이금봉이 닮고 싶었지만 닮을 수 없었던 라란, 약안 부인은 누구일까.
중국·일본에서 수입된 영웅관
민족적 혹은 한국사적 관점에서 벗어나 시야를 넓혀 보면 영웅주의나 영웅대망론은 전쟁과 살육으로 가득 차 있던 당대 세계인의 인식과 상통하는 것이었다. 19세기 유럽인들도 영웅주의에 감염되어 있었다고 한다.
영국의 토머스 칼라일(Thomas Carlyle)이 1841년에 발표한 ‘영웅숭배론’은 전유럽인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칼라일은 이 책에서 ‘인간이 이뤄낸 세계사란 근본적으로 영웅들의 역사이며, 세계가 이룬 물질적이며 정신적인 것은 모두 영웅들의 활동 결과물’이나 다름없다고 주장했다. 더구나 범인(凡人)은 진정한 영웅을 발견하고 그에게 복종할 의무를 가진다고 하였다.
그래서 칼라일의 책은 유럽에 전체주의가 출현하는 지적 배경이 됐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이상 칼라일 저, 박상익 역, ‘영웅숭배론’, 소나무, 1997년 참조).
칼라일이 내세운 영웅주의는 종교적이며 문화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그가 분류한 6개의 영웅 중에는 ‘신으로 나타난 영웅(오딘)’ ‘예언자로 나타난 영웅(마호메트)’ ‘성직자로 나타난 영웅(루터)’ ‘제왕으로 나타난 영웅(크롬웰·나폴레옹)’뿐 아니라 셰익스피어가 포함된 ‘시인으로 나타난 영웅’, 루소가 포함된 ‘문인으로 나타난 영웅’도 있다. 칼라일은 도덕적 교화가 영웅이 범인을 설득하여 복종하게 만드는 가장 유력한 매개라 보았고, 그런 점에서 예수야말로 완벽한 세계사적 영웅이라 했다.
칼라일은 도덕적이며 문화적인 면의 ‘교화력’까지 영웅의 요건으로 보았다. 따라서 그의 영웅주의가 전체주의의 밑바탕이 됐다는 주장은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다. 전체주의는 항상 엄숙하고 단일한 이데올로기에 의한 대중의 교화, 즉 자발적 복종을 필수적인 요소로 삼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서양사의 영웅과 나폴레옹, 비스마르크, 잔 다르크 등에 대한 이야기는 한국이 유럽에서 독자적으로 수입한 것이 아니었다. 지적 문물의 대다수가 그러했던 것처럼 일본이나 중국을 통해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