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1월호

일본열도 뒤흔드는 ‘NHK 왕국’ 비리

제작비 횡령, 비자금 조성, 연금특혜, 기업 돈 뜯기로 불명예 자초

  • 글: 조헌주 동아일보 도쿄 특파원 hanscho@donga.com

    입력2004-10-26 16:2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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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열도 뒤흔드는 ‘NHK 왕국’ 비리
    ‘에비정일.’일본의 언론계 인사는 말할 것도 없고 일반인조차 이 말을 들으면 ‘무슨 말인지 알겠다’는 뜻으로 씁쓸한 미소를 짓는다. 이 말은 NHK의 에비사와 가쓰지(海老澤勝二·70) 회장을 북한의 철권 통치자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에 빗댄 것이다. 부러움과 비판, 시샘과 야유의 감정이 뒤섞인 조어(造語)다.

    에비사와 회장이 단지 사내에서만 절대 권력자로 군림한다면 이런 말이 등장했겠는가. 일본사회에서 어느 언론매체보다 광범하고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방송매체, NHK 그룹의 총수로서 그만큼 사회 전반에 강력한 힘을 쥔 인물인 탓이다.

    “나는 회장이 될 것이다.”

    일본의 명문사학 와세다대 정경학부를 나와 NHK에 기자로 입사한 1957년 당시부터 그는 입버릇처럼 말했다고 한다. 권력지향적 성향이 잘 드러난다. 그는 도쿄 동북부 이바라키(茨城)현 출신으로 결코 명문가에서 태어났다고는 할 수 없다. 대대로 명문호족 집안도 아니고, 부친이 정·재계 거물도 아니었다. 굳이 따진다면 부친이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 전 총리를 맹주로 한 다나카파의 실력자로, 후일 관방장관과 운수상을 지낸 하시모토 도미사부로(橋本富三郞) 후원회에서 간부를 지낸 것이다.

    ‘만년 집권당’ 자민당으로 통하는 이 가느다란 끈을 정치부 기자 에비사와는 최대한 활용해 사내에서 출세가도를 달렸다.



    취재를 잘해서라기보다는 유력 정치가에 대한 정보를 회사 간부들에게 전달하는 정보꾼으로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해 승승장구해 ‘방송사의 꽃’이라는 보도국장을 지냈다. 1989년엔 이사에 올라 회장 후보군에 이르렀다. 곧바로 전무이사를 거쳐 1997년에 마침내 NHK 회장에 올랐다. 현재 이례적으로 3기째 임기를 보내고 있다.

    흔들리는 ‘에비정일’ 왕국

    하필이면 일본인들이 극도로 싫어하는 ‘김정일’의 이름에서 딴 별명이 붙은 것만 봐도 그가 사내외를 막론하고 얼마나 기세등등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물론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사에 임명된 그는 1993년 4월 계열사인 NHK엔터프라이즈 사장으로 부임했다. NHK로서는 비중이 큰 회사임에 틀림없지만 권력중추 대열에서 떨어져나간 것이 아니냐는 해석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하반기에 전무이사로 복귀하는 데 성공하고 이듬해 부회장에 오른다. 1997년엔 신입사원 때부터 입에 달고 다닌 회장 자리에 올라섰다.

    전무이사로 복귀하는 권력 재편과정에서 ‘에비정일’다운 술수가 작용했다는 의혹이 아직도 언론관계자들 사이에 남아 있다. 당시 임원진 개편은 회장 사임에서 비롯됐고 회장은 한 주간지에 폭로된 스캔들로 사임했다. 방송위성 발사 현장을 참관한다며 미국 LA로 출장 간 회장이 쾌락의 도시 라스베이거스의 고급호텔 스위트룸에 NHK 관련 회사의 젊은 여직원과 함께 있었던 것이다.

    회장 퇴진을 겨냥한 것이 분명한 치명적 정보인 만큼 내부 조직원이 흘려준 것으로 볼 수밖에 없어 당시 외곽으로 밀려나 회장과 소원한 관계에 있던 에비사와를 ‘용의자’로 지목한 이가 많았다. 그들은 스캔들 폭로를 에비사와가 실지(失地) 회복을 꿈꾸며 그간 쌓아온 인맥을 총동원해 미국 지국의 기자들로부터 수집한 정보를 활용, 회장 체제를 타도한 정변으로 해석했다.

    그래서였을까. 신임 회장은 에비사와를 ‘차기 NHK 회장’에 한 발짝 근접하는 전무이사 자리에 앉혔다. 회장의 의지라기보다 다나카파 인맥을 중심으로 한 자민당의 에비사와 엄호세력의 뜻이었다는 해석이 그럴 듯하게 들린다.

    이런 설과 해석이 어디까지 진실인지는 본인밖에 모를 일이다. 그러나 그가 임기 3년의 회장을 이례적으로 3기째 연임하며 올해 8년째에 이르고 있는 점을 보면 적어도 그의 탁월한 생존력 만큼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역대 NHK 회장 가운데 3기 연임, 9년 재임 기록을 가진 사람은 1945년 이후 14명의 회장 중 마에다 요시노리(前田義德) 한 사람뿐이다. ‘아사히신문’ 국제부장 출신인 그는 NHK 보도국장, 편성국장을 거쳐 1964년부터 73년까지 회장을 역임했다.

    최근 NHK에서 불상사가 잇따르자 이를 ‘에비정일’ 체제가 장기화하면서 필연적으로 등장한 사원들의 기율 해이, 도덕성 저하와 관련해 분석하는 시각이 많다. NHK 일각에서는 회장 중도 퇴임을 요구하는 소리도 나오고 있다. ‘일본 방송 수신료 노조’가 10월5일 에비사와 회장에게 사임을 요구한 것이다. TV 시청세대와 계약을 맺고 시청료를 수금하는 이들 노조원은 NHK 직원이 아니다. 일본에서는 ‘지역 스태프’로 부르는 개인 사업자들이다.

    약 5700명의 지역 스태프 가운데 이 노조에 가입한 사람은 200명 정도. 이들은 NHK와 위임계약을 맺고 수신료 징수 업무를 맡고 있다. 징수한 수신료 중 일부를 수입으로 삼는다. 수신료 노조는 이 노조 외에도 약 3100명이 가입한 ‘일본방송협회 수금 노조’, 약 100명이 가입한 ‘일본방송협회 스태프 조합’이 있다.

    ‘물타기 영수증’으로 회계 부정

    이들 수금원이 NHK 회장 사퇴를 요구하고 나선 것은 NHK 사원 비리가 잇따라 사회문제화되면서 7월 하순부터 2개월간 약 1만7000건의 계약해지, 즉 수신료 납부 거부가 이어진 데 따른 위기감 때문이다. 그만큼 수신료 징수가 줄고 이는 곧 보수의 감소로 직결되는 것이다.

    1993년에도 직원 비리가 터지면서 시청료 납부 거부 움직임이 거세져 한때 시청료 징수율이 74%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현재의 징수율은 평균 82%대로 알려졌다. 시청료 납부를 거부하는 가구가 갈수록 늘어날 기미가 보이자 수금원들이 급기야 회장 사임을 요구하기에 이른 것이다. NHK 조직 내부는 에비정일 체제에 순응, 모두들 당근을 입에 물고 있어서인지 퇴임 요구는 없다. 사원도 아닌 수금원들의 소규모 노조가 퇴임요구를 했다 해서 ‘에비정일’이 물러날 리는 없겠지만 체면은 크게 깎이고 말았다.

    NHK 사원들의 추문이 언론매체를 통해 드러난 것은 올해 7월. 주간지(일본에서는 한국인이 상상하는 것보다 스트레이트 뉴스에 강하다) 폭로가 계기가 됐다. NHK는 결국 자체 감사를 실시해 그 결과를 공개했다.

    NHK의 연말 최고 인기 프로그램인 ‘가요홍백전’을 비롯해 연예 프로그램을 오랫동안 담당해온 한 고참 PD가 방송제작을 외부에 맡기면서 제작비를 절반 정도 가로채온 것으로 드러났다. 그는 외부 회사에 프로그램 제작을 발주할 때 건넨 제작비 가운데 일부를 현금으로 되받거나 통장을 통해 받았다. 이렇게 챙긴 돈이 1996~2000년에만 4800만엔(약 4억8000만원)이었다.

    NHK는 일단 특정 프로그램을 제작하기로 결정하면 제작회사에 선불로 제작비를 지급한다. 대개 영세한 제작사로서는 대단히 매력 있는 발주처다. 기획안이 NHK 내부 결정을 얻도록 제작사가 로비를 벌이는 건 당연한 일이다. 수주 로비에 관한 무성한 소문이 실체로 확인된 순간이었다.

    이어 8월엔 1993년부터 4년간 NHK 서울지국장을 지낸 직원의 비리가 불거졌다. 그는 당시 한국에서 각종 프로그램을 제작하면서 제작사에 경비를 부풀려 신청하도록 한 다음 금액을 다 지불한 것처럼 엉터리 서류를 꾸몄다. NHK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는 제작사측은 협조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물타기 영수증’을 이용해 부당 회계 처리한 돈은 총 4400만엔(약 4억4000만원)에 이르렀다. 서울지국장 당시 그는 밤이면 서울 한남동 고급 술집을 누비며 돈을 펑펑 써대 일본매체 서울 특파원들 사이에 ‘밤의 황제’라는 별명으로 불렸다고 일본의 한 주간지는 전했다.

    이런 식의 부정 회계 처리가 드러난 것은 사실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는 당시 발각돼 구두 경고를 받았다. NHK측은 부당 회계 처리한 돈의 액수가 컸는데도 경미한 처벌을 내린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실제 취재 등에 사용한 돈 가운데 영수증 처리하기 어려운 것도 있다. 그런 돈을 처리하기 위해 편법으로 한 것일 뿐 사적으로 유용한 것은 아니다.”

    일단락된 것처럼 보이던 서울지국장 부정 회계 처리 문제가 다시 도마에 오른 것엔 이유가 있었다. 그가 최근 또 다시 NHK 서울지국장으로 부임한 것이다. 사내에서 은근슬쩍 처리됐지만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일이다. 귀국 후 그는 취재 일선에서 벗어나 연구소 연구원 신분으로 일종의 ‘징계’를 받은 것처럼 보였다. 그런 그가 슬며시 서울지국장으로 다시 부임하게 되니 기자 조직 내부에서조차 반발이 일어났을 것쯤은 쉽게 상상할 수 있다.

    일본 언론계 소식통들은 과거 NHK의 해외지국, 특히 씀씀이가 큰 일부 지국은 NHK 간부들의 비자금 조달 창구 노릇을 했다고 전한다. 해외지사, 지국에 대해서는 본사가 직접 감사하기 곤란한 측면을 이용했다는 것. 서울지국장이 거액의 회계 부정에도 불구하고 사내 징계위원회조차 열리지 않고, 솜방망이 징계로 끝나고 만 것도 비자금과 연관이 있다는 것이다. 지국장이 개인적으로 쓴 돈도 있겠지만 그 자금의 대부분이 임원 출장 등을 위해 마련된 일종의 사내 비자금이었기에 관대하게 처분할 수밖에 없었고 다시 명예회복을 시켜 서울지국장에 재부임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NHK에 대한 불만이 터지며 여기저기서 사원 비리 폭로가 잇따랐다. 그러자 NHK는 1997년부터 2001년 사이 직원 4명이 총 970만엔(약 9700만원)의 공금을 착복한 것으로 드러나 전원 면직처분한 사실을 뒤늦게 발표했다. NHK측은 이들이 착복한 금액을 모두 반납해 형사고소는 하지 않았으며 처분은 2001년 말 모두 끝났다고 밝혔다. 제 집 식구에게는 한없이 관대한 관료 체질을 드러낸 것이라는 비난이 컸다.

    일본열도 뒤흔드는 ‘NHK 왕국’ 비리

    NHK는 작품성이 뛰어난 프로그램 못지않게 방송기술 연구분야에서도 많은 공을 세웠다. 사진은 NHK의 문자데이터 방송전시관을 찾은 어린이들.

    직원들의 공금 횡령 수법은 ▲인감을 제멋대로 이용해 공금 통장에서 마음대로 돈 빼내기 ▲통장 거래내역을 조작해 잔액 착복하기 ▲수금한 시청료를 관련 부서에 전달하지 않고 가로채기 ▲파견된 계열회사에서 경비 유용하기 등이었다.

    NHK측이 직원 비리와 징계 내용을 뒤늦게 공개한 것은 7, 8월에 직원들의 공금 관련 비위가 외부로 알려지면서 그동안 내부 비위를 숨겨왔다는 비판이 거세게 일었기 때문이다. 민간방송사와 달리 시청자가 내는 수신료로 운영되는 공영방송이니만큼 꺼림침한 대목이 어지간히 많았겠는가. 직원 비리가 공개되면 시청자들의 반발이 거세지고, 시청료 거부 등 역풍이 일 것을 두려워해 비리를 쉬쉬해왔던 것이다.

    사내 비리를 숨겨온 사실을 지각 공개하면서 파문이 예상되자 NHK 회장과 전무 등 주요 간부는 이 사실을 공개하는 날 감봉 3개월의 징계를 자청, 사죄의 모양새를 갖췄다. 그간 비리를 숨겨온 데 대한 시청자들의 항의와 비난이 예상외로 크자 에비사와 회장 등 임원 12명 전원은 또다시 대국민 사과와 함께 6개월 감봉(10∼30%) 징계를 자청했다. 구두 경고조치만 받은 것으로 밝혀져 ‘솜방망이 징계’라는 비난이 일었던 서울지국장은 6개월 정직 처분하면서 본사로 소환했다. 당사자로선 한 사안에 대해 두 번 징계 받은 꼴이 됐다. NHK는 또 사내에 ‘법령준수 추진위원회’를 설치하는 등 재발방지 조치도 약속했다.

    NHK 임원진이 징계를 자청한데 대해선 정치권이 국회에 회장 등을 소환해 청문회를 열기로 하고 날을 잡자 김 빼기에 나선 것이란 비아냥도 있다.

    9월9일 청문회 과정에서도 말썽이 빚어졌다. NHK는 평소 공영방송답게 국회 상임위원회 활동을 자주 생중계했다. 그러나 상임위에서 막상 자사 관련 청문회가 열리자 ‘편집권’, 즉 무엇을 방영하고 무엇을 방영하지 않을지를 외부 간섭 없이 자율적으로 정할 수 있는 언론의 고유한 권리를 앞세워 중계하지 않았다. 충직한 사원들이 구차한 회장의 모습을 거창한 명분을 앞세워 방영하지 않은 것이다.

    청문회 이튿날 조간신문들이 NHK의 미중계 문제를 일제히 비난하고 나서자 NHK는 청문회 이틀 뒤 지각 중계를 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다시 물의가 빚어졌다. 방송 사정상 긴 청문회 과정을 짧게 편집한 것까지야 이해할 수 있지만 한 야당 의원이 에비사와 회장에게 “책임을 지고 자진사퇴할 의사가 없는가”라며 추궁하는 ‘알맹이’를 빼버린 것이다. 총수가 추궁당하는 장면을 그대로 내보내야 한다고 고집한다는 게 조직 생리상 어렵다 해도 공적 기능에 충실해야 할 공영방송이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한 것은 틀림없고, 그런 까닭에 원론적인 비판이 따른 것은 마땅한 일이다.

    사라지는 국민의 돈

    NHK의 올해 예산 규모는 6785억엔(약 6조7850억원)으로 도쿄 인근 지바(千葉)시 예산과 비슷하다. 수입의 대부분(96.5%)이 TV를 보유한 사람이 다달이 내는 시청료여서 사실상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일반기업과 달리 감시체계가 허술해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공영방송 NHK 직원들의 도덕적 해이는 주간 ‘겐다이(現代)’ 10월2일자가 폭로한 NHK 사내 공제연금 제도를 봐도 짐작할 수 있다. 직원은 매달 급여의 5.5%, 회사 역시 같은 금액인 5.5%를 재단법인 NHK공제회에 낸다. 공제회는 여기에 연 4.5%의 운용이익을 더해 직원 퇴직 후 사망 때까지 매월 연금을 지급한다. 기업의 90%가 연금지급 기한이 퇴직 후 몇 년식으로 정해진 것에 비하면 종신연금이라 이것도 특혜가 아닐 수 없다. 대학 졸업 후 60세 정년까지 근무한 부장급의 경우 월 15만∼16만엔(약 150만∼160만원)을 지급받는다. 문제는 NHK가 보장한 운용이익은 4.5%이나 최근 10년간 평균 운용이익은 2.8%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약속한 운용이익이 발생하지 않아도 연금을 그대로 지급했으니 결국 예상 운용이익 부족액 1.7%분은 시청료로 메워져 왔다는 뜻이다.

    NHK는 이게 문제화되자 “향후 운용이익을 늘리고 인건비에서 충당하는 방법으로 이 돈을 갚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인건비 역시 시청료에서 나온다는 점에서 ‘아랫돌 빼 윗돌 괴는’ 식의 미봉책에 지나지 않는다. NHK의 예산과 결산은 국회에서 심의를 받지만 NHK의 연금재정까지 들여다보는 의원은 없다. 따라서 NHK가 스스로 공개하지 않는 한 사내연금 지급실태 등에 관해 시청자들이 제대로 알 턱이 없다.

    일본 민간방송사의 경우 1시간짜리 쇼 프로그램의 평균 제작비가 2500만엔(약 2억5000만원)으로 알려져 있다. 방송사는 이 프로그램을 사는 스폰서 기업에 제작비의 4배에 해당하는 1억엔을 받는다고 한다.

    NHK도 민간방송사와 마찬가지로 제작비 부담을 안는 것은 물론이다. 광고방송이 없으니 기업의 돈을 받을 수는 없다. 그런데 일부 제작진은 간접적인 방법으로 기업에 도움을 주며 ‘협찬’받아 비도덕적이라는 지탄을 받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가 1992년 9∼10월 방영된 ‘금단의 왕국 무스탄’이란 프로그램이다. 당시는 히말라야 오지까지 TV 카메라가 들어간 적이 없어 화제가 됐다. 그런데 문제가 터진 것은 다음해. ‘아사히신문’이 보도내용 가운데 사실과 다른 점을 폭로한 것이다.

    가령 실제로는 헬리콥터를 타고 이동하고선 도보로 현지에 들어간 것처럼 조작했다. 고산병에 걸려 취재진 1명이 쓰러졌다는 보도도 거짓이었다. 현지로 들어가는 도중에 낙석 사태를 만났다는 것도 연출이고 비는 취재기간 석 달 동안 한번도 내리지 않았다고 했는데 역시 거짓이었다. 물 부족으로 소년 승려가 ‘물 동냥’을 하는 장면도 돈을 주고 시킨 것이었다.

    그러나 정작 이보다 더 큰 문제가 있었다. 특정기업으로부터 차량을 제공받고 프로그램을 통해 간접 이미지 홍보를 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취재를 마치고 돌아와 홍보 프로그램용으로 활용하도록 영상자료를 해당 기업에 따로 건넨 사실까지 밝혀졌다.

    과거의 일이라고만 할 수 없다. 현재 방영중인 NHK 인기 프로그램 ‘프로젝트 X’도 마찬가지다. 험준한 산맥 위에 만들어진 거대한 댐 건설 공사에 참여했던 이들에서 지하철 자동개찰기 발명자에 이르기까지 오늘의 경제대국 일본을 음지에서 뒷받침해온 ‘무명전사’들의 이야기를 감동적으로 그린 시리즈로 이미 150회를 넘길 만큼 인기가 있다. 낱권으로 엮어진 책이 장기 베스트셀러 목록에 들어가자 만화판도 만들어졌다. DVD도 많이 팔린다. 그만큼 내용이 우수한 프로그램으로 ‘역시 NHK’라는 호평을 받기도 했다.

    공공연한 기업 협찬 강요

    그런데 7월 하순부터 한 달간 도쿄시내에서 ‘프로젝트 X 특별전’을 열면서 말썽이 일었다. TV에 소개돼 특별전시관을 만들게 된 기업들에게 특별협찬 명목으로 최대 3000만엔(약 3억원)을 내라고 주문한 것. NHK 프로그램에 소개된 ‘신세’를 진 터에 ‘기업 PR도 되지 않겠느냐’며 협찬을 요구하는데 이를 냉정하게 거절할 기업은 많지 않다. 더구나 상대는 천하의 NHK가 아닌가. 사정사정해 협찬금 규모를 낮춘 기업이 대부분이나 한결같이 ‘울며 겨자 먹기’식 협찬이었다.

    전시회의 어른 입장료는 1300엔(약 1만3000원). 싼 요금이 아님에도 한 달간 약 10만명이 찾았다. 일반인에게 볼거리를 제공한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럼에도 잡음이 일어난 것은 협찬금 조성과정에서 기업측의 불만이 커졌기 때문이다.

    NHK가 ‘프로젝트 X’ 제작시 각종 세트장 설치 등에 협조해달라고 해서 지출한 비용은 나름대로 명분이 있다. 그러나 별도의 이벤트 사업을 하면서까지 협찬을 고압적인 자세로 강요한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방송사, 그것도 공중전파를 이용하는 공영방송 NHK가 정당하게 지출해야 할 비용을 지출하지 않는 것은 절약의 미덕으로 칭송받을 일이 아니다. 부당한 부담을 민간기업에 안긴 것으로 논란의 대상이 돼야 마땅하다. 그러나 기업의 협찬을 잘 받아내는 PD가 ‘능력 있는 PD’로 통하기에 이 일로 징계받은 관계자는 아무도 없다. 그만큼 ‘공적 기관’이란 자각이 희박함을 뜻한다.

    시청료 징수체계 엉망

    시청료 징수 실태를 봐도 NHK 운영이 얼마나 주먹구구식인지 알 수 있다. NHK 설립의 법적 근거는 별개의 특별법이 아니라 1950년 6월 제정된 방송법 2장 ‘일본방송협회’ 규정에 있다. 여기에 공공복지를 위해 일본 전국에 수신 가능하도록 방송을 행할 것, 수지 예산·자금 계획 등에 있어 정부 허가를 얻을 것을 규정했다. 또 TV 보유세대와 시청수신계약을 맺어야 하며 계약 후 수신료를 면제해주면 안 된다고 되어 있다.

    수신료를 한국에서처럼 세금 걷듯 공과금에 끼워 넣어 한꺼번에 징수하는 식이 아니라 각 지역 ‘NHK 영업센터’에 소속된 이들이 수금한다. 일부 시청자는 예금계좌로 입금하고 있지만 다수는 직접 돈을 건넨다. 수금원은 NHK 직원이 아니며 개인사업자로 월 고정급은 대략 15만엔(약 150만원)으로 알려졌다.

    1953년 당시 한 달 수신료는 200엔. 현재는 두 달에 2790엔(컬러 계약시, 선불)이다. 위성방송 수신료는 이와 별도로 부과되는데 2개월에 4680엔이다. 일반 가정을 제외하고는 TV 대수마다 시청료를 부과하는 만큼 호텔이나 병원 등 보유대수가 많은 곳의 징수과정에서 비리가 발생한다.

    ‘마이니치신문’ 계열의 주간지 ‘선데이 마이니치’ 10월3일자를 통해 한 ‘지역스태프’가 고발한 내용을 보자. 새로 병원이나 호텔이 개업하면 지역 담당자가 TV대수를 파악해 계약교섭에 들어간다. 그런데 이 무렵에 지역 NHK방송국의 영업부장이 연락을 해 “내가 직접 맡겠다”고 했다. 나중에 시청계약한 결과를 보니 약 50대가 설치된 병원에는 15대분, 100대 이상 설치된 호텔은 25대분을 내는 것으로 계약을 마쳤더라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NHK방송국 영업부장이 장난을 쳤다는 것이 고발의 핵심이다.

    NHK는 수금 부정을 막기 위해 수금업자에게 영수증 발행 단말기를 휴대토록 하고 있다. 영수증 발행시간이 바로 기록되기 때문에 도중에 ‘꿀꺽’할 수 없게 한 것이다. 그럼에도 수금구조가 복잡해 시청료 징수관련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NHK는 전국적으로 시청료 징수율을 공개하지 않고 있지만 2003년 말 국회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81.6%다. 약 20%가 시청료를 내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실제 시청료 미납자는 이보다 더 많을 것으로 추정한다. NHK는 시청계약을 맺기를 거부하는 사람의 명단을 따로 지역별 수금회사에 통보하는데 이들 명단은 아예 수금대상에서 빠져 있어 미납자 통계에 잡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7월 말 현재 NHK와 수신계약, 즉 시청료를 내겠다고 한 건수는 3800만건. 일본 전체 4430만 세대, TV 보유대수 1억대에 비해 턱없이 적은 것도 이런 통계상의 허점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물론 한 세대에 TV가 몇 대 있더라도 계약은 1건으로 하고 있는 데다 각급 학교, 사회복지시설, 생활보호대상자, 시청각장애자 등 면제 예외가 많은 영향도 있다.

    최근 비리 사건이 잇따라 보도되면서 계약자 중에 시청료 납부를 거부하거나 계약을 취소하겠다고 통고한 사례는 7월 말부터 10월 초 사이에만 약 3만건에 이른다.

    NHK는 수신료를 직접 걷는 방식을 고집하고 있다. 수신료는 세금과 달라 공과금에 끼워서 부과할 성격의 것이 아니며 프로그램 내용에 만족하는 시청자가 자발적으로 내야 할 성격의 돈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영국 BBC도 수신료 수금방식이 한국과 다르다. 일본처럼 별도 수금조직을 운영하지 않고 우체국 조직과 별도 계약을 맺어 수금한다. 대신 우체국에 일정한 수수료를 지급하고 있다. NHK는 수신계약을 한 세대가 납부를 거부하면 민사소송을 통해 받아 낼 수 있지만 지금까지 이런 조치를 취한 사례는 없다.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다는 자신감을 토대로 어디까지나 시청자를 설득해 수신료를 받겠다는 자세를 지키고 있다. 방송의 질, 시청자의 만족도에 관계없이 행정편의주의적 사고방식 아래 하루아침에 공과금에 끼워넣는 방식으로 납부 방식을 바꿔버린 한국과는 대비된다.

    수준 높은 영상물

    일본의 TV 방송원년은 1953년. 그해 2월1일 NHK 도쿄TV가 막을 열었다. 이어 8월28일 최초의 민간상업방송 니혼TV가 방송을 개시했다.

    NHK 방송개시 당시 TV 수신 계약건수는 866건에 불과했다. 모두 생방송으로 진행됐으며, 방영시간은 아침 점심 저녁 각 시간대에 조금씩 수시간에 불과했다. 당시 TV수상기 1대 값이 월급의 10배에 해당했던 탓이다. 이듬해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프로레슬링 중계를 하면서 수상기 보급이 확대되기 시작했다.

    현재의 NHK 니혼 후지 TBS 아사히 등 5대 방송 체제가 갖춰진 것은 1959년 말. 이때 전국의 시청세대는 346만으로 불어났다. 1960년 9월부터 전 방송사가 컬러방송을 실시했다. 1962년엔 계약세대가 1000만을 돌파했다. 이때의 TV 보급률은 48.5%. 고도성장기에 접어들기 시작한 1961∼62년에 모든 방송국이 전일방송 체제로 들어간다.

    현재 일본은 1억2000만 인구에 1억대의 TV를 보유하고 있다. 광고회사 덴츠가 집계한 2002년도 매체별 광고수입을 보면 총액 5조7032억엔 가운데 34%, 1조9531억엔이 TV방송 몫이었다. NHK의 2004년도 시청료수입 예상액은 6785억엔(약 6조7850억원)으로 일본내 전 민간TV방송(지방 포함) 광고수입의 3분의 1에 해당한다.

    물론 NHK는 시청료를 사용해 수준 높은 영상물을 만들어 ‘일본의 얼굴’을 세계에 널리 소개하고 있다. BBC에 견줘도 전혀 손색없는 수작도 많다. 2001년 1∼12월 일본 TV프로그램의 해외수출 실적을 보면 대만 미국에 이어 한국이 3위를 차지한다.

    한국이 수입한 일본 프로그램을 보면 ‘짱구는 못말려’란 제목으로 알려진 크레용 신짱, 유희왕, 햄토리(하무타로), 도라에몽 등 만화가 70%를 차지한다. 나머지는 대개 다큐멘터리인데 거의 대부분이 NHK가 제작한 것이다. ‘보루네오 열대우림’ ‘북극곰’ ‘영국 왕실’ ‘현대 마하라자 전’ 등이다.



    NHK는 세계를 상대로 일본문화를 전파하는 핵심기관 역할을 하고 있어 가히 ‘일본의 얼굴’이다. ‘NHK 인터내셔널’을 통해 정부 산하 기관인 국제교류기금의 자금 지원을 받아 2001년 한해에만 22개국에 다큐멘터리, 드라마, 교육프로그램 등 84개(총 455시간분)를 지원했다. 지원국은 몽골 중국 아제르바이잔 캄보디아 베트남 부탄 카자흐스탄 스리랑카 필리핀 동티모르 자마이카 볼리비아 파나마 브라질 가나 이집트 마다가스카르 러시아 헝가리 시리아 등이다. NHK의 장편 드라마 ‘오싱’ 15분짜리 96회분이 아프리카 에리트레아에 제공된 것이 한 예다.

    NHK의 문화전파사업은 1985년 중국에 국제교류기금을 통해 지원한 일이 성과를 거둔 이후 확대일로를 걷고 있다. 2002년 말까지 총 59개국(63개 방송사)에서 일본 프로그램, 주로 NHK가 제작한 프로그램을 방영했다. 개도국에 대한 방송프로그램 지원 실적에선 일본이 독일을 제치고 1위를 차지한다.

    이보다 더 직접적인 문화전파 행위는 위성을 통한 무료방송, ‘NHK월드’다. 또 주요국 케이블방송을 통해 내보내는 ‘NHK 월드프리미엄’이 있는데 이는 유료다.

    한편 일본 방송의 수출입 현황을 보면 1980년의 경우 수입은 2332시간 분량으로 전체 방영시간의 4.9%인 데 비해 수출은 4585시간이었다. 수입 대 수출의 비율은 1대 2였다. 그러나 2001년의 경우 수입은 3036시간으로 4.9%, 일정한 비율을 유지했다. 반면 수출은 크게 늘어나 4만2600시간이었다. 수입 대 수출 비율은 20년 사이에 1대 2에서 1대 14로 크게 변했다. NHK 문제는 방송의 국제화 추세에서 결코 한국과 무관한 일이 아닌 것이다.

    허울뿐인 경영위원회

    NHK가 일본 방송문화 국제화의 주역임은 부인할 수 없다. 이런 긍정적 측면에도 NHK가 비판받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정치적 편향성에 있다. 겉으론 정치적 중립성을 내세운다. 그러나 면밀히 관찰해보면 당대 집권당의 논리, 현재는 자민당-공명당의 논리를 반영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분석이다. 이는 수치로 딱 잡아낼 수 없는 미묘한 문제지만 언론계 경험이 많은 이들은 편향성을 피부로 감지한다고 한다.

    NHK가 자유로운 사상의 시장이 아니라 권력층의 논리에 치우친 보도를 한다는 비판은 NHK 최고 의사결정기관인 경영위원회의 구성을 보면 이해가 된다.

    경영위원회는 NHK의 매년도 예산, 사업계획, 프로그램 편집의 기본방향, 업무집행의 책임자인 회장과 감사의 임명, 부회장 및 이사의 임명 동의 등 방송법 규정상 의결이 필요한 중요사항에 관해 전적으로 결정권을 갖는다. 경영방침과 업무 운영에 관해 문자 그대로 최고의사결정기관이다.

    위원은 모두 12명으로 임기는 3년이다. 위원 자격에 관해 방송법은 국가공무원과 정당 간부는 위원이 될 수 없다고 규정했다. 또 위원 5명 이상이 동일 정당 소속이 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위원은 모두 중의원, 참의원의 동의를 거쳐 총리가 임명한다. 이중 8명은 교육 문화 과학 산업계 등 각 분야를 대표하는 전문가로 폭넓은 경험과 지식을 가진 사람 가운데 전국을 8개 지구로 나눠 각기 1명씩 배정한다. 나머지 4명은 전문분야에 관계없이 지역대표로 선정한다. 경영위원회의 대표인 위원장은 위원들이 호선으로 선출한다.

    경영위원회는 원칙적으로 매월 2차례 정기적으로 개최되며 NHK 회장, 부회장, 임원으로부터 업무보고를 받는다. 경영위원은 상근직이 아니며 회의가 있을 때마다 교통비, 숙박비, 약간의 회의 수당을 받는 일종의 명예직이다. 대개 월 평균 8일 정도 업무를 본다. 2기 연임이 가능하다.

    회장 파면권도 가지고 있다. 이는 회장이 직무상 의무를 위반했거나 회장 직분에 어울리지 않는 비행이 있다고 인정될 때 사용된다. 물론 파면권을 행사한 적은 없고 스스로 알아서 사임한 경우는 여러 차례 있었다.

    현 경영위원의 면면을 보면 철도회사 회장, 생명보험사 회장, 주류회사 회장, 대학교수, 어업협동조합연합회 대표 등이다. 일견 정치색을 띠지 않고 공평하게 배분된 것 같다. 그러나 임명 절차에 주목해보자. 우선 중의원과 참의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는 점이 눈에 띈다. 즉 다수당이 동의하지 않는 인물은 선임되기 어렵다. 여기에 다시 총리의 임명 절차가 필요하다. 다수당 대표인 총리의 취향에 맞지 않은 인물은 최초 위원 후보군 리스트를 작성할 때부터 배제된다고 보면 틀림없다.

    경영위원 12명 가운데 특정 정당 소속 위원이 5인을 넘지 못하도록 한 규정에도 불구하고 결국 경영위원은 다수당의 입맛대로 선임될 수밖에 없으며, 이들로 구성된 경영위원회는 NHK 회장 선임시 ‘당연히’ 집권당의 의향을 배려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현재 3기째 연임중인 에비사와 회장의 독주체제는 집권 자민당의 지지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다.

    NHK 회장과 자민당 권력층과의 유착관계를 일반인이 극명하게 알 수 있게 된 사건이 있다. 1976년 9월3일 오노 요시로(小野吉郞) NHK 회장이 사임했다.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한 지 두 달이 되지 않은 상태였다. 발단은 그가 록히드사로부터 거액의 뇌물을 받은 사건 때문에 도쿄구치소에 갇혀 있다 풀려난 다나카 가쿠에이 전 총리의 자택을 방문한 일이었다.

    이 장면은 폭력조직의 졸개인 ‘꼬붕(子分)’이 두목인 ‘오야붕(親分)’을 찾아가는 것처럼 묘사되기도 했다. 방문 목적은 두 가지였다는 것이 정설로 되어 있다. 하나는 회장에 재선되도록 음양으로 배려해준 자민당 실력자에 대한 깊은 감사의 표시. 또 하나는 록히드사건을 비판한, 다시 말해 사건의 주역인 다나카 전 총리에 대해 비우호적인 특집 프로그램이 간부들의 방영중지 시도에도 불구하고 보도국 기자들의 강력한 반발로 NHK 전파를 타게 된 경위에 대한 해명.

    물의가 빚어지자 오노 회장은 “NHK 회장, 공인 자격이 아니라 친분관계상 개인 자격의 위로방문이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생각해보라. 기자 수십 명이 진을 치고 있는 다나카 전 총리의 집 앞에 NHK 회장 전용차를 타고 당당하게 나타난 모습을.

    이는 도전이었다. 일반인의 분노는 폭발했다. 공정보도를 해야 할 공영방송 회장이 아니라, 순전히 ‘다나카 패밀리’의 일원이 아니냐는 항의전화가 NHK 본사에 빗발쳤다.

    다나카 전 총리가 석방된 뒤 그의 사저를 찾은 사람이 어디 그뿐이겠는가. 석방 후 일주일 사이 방문자는 무려 72개 그룹, 총 204명이었다고 당시 집 앞에서 철야 취재를 했던 사건기자들은 기록했다. 그럼에도 유독 NHK 회장의 방문만 문제가 된 것은 공영방송 총수로서 정치권력과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는 도덕적 의무를 공개적이고, 노골적으로 무시해버린 탓이다. ‘권언유착? 그래, 그렇다 치자. 그게 뭐가 어떠냐’는 뻔뻔스런 모습에 대중의 분노가 폭발했던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공영방송인 영국 BBC의 경우도 BBC 회장을 선임하는 기구는 경영위원회이며, 그 멤버도 NHK와 마찬가지로 12인이다. 웨일스 스코틀랜드 북아일랜드의 지역대표가 포함되며 공공서비스 문화 예술 산업 노동계 대표도 들어간다. 임명은 국왕이 하지만 실상은 정부가 한다는 점에서 일본과 마찬가지다.

    NHK가 경영위원회를 구성하면서 BBC를 모델로 했음이 틀림없다. 이렇게 양사의 조직 구성은 같음에도 BBC라면 상상 못할 일이 NHK에서 일어나는 것은 양국 방송계 인사의 책임의식, 방송을 바라보는 시청자의 눈, 언론의 사회적 역할을 평가하는 정치인의 태도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전문 시청자’

    일본의 여당 의원들은 흔히 공익은 국가요, 다수당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NHK를 국영방송으로 취급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그게 어디 일본만의 일이겠는가만.

    NHK의 자회사 계열사를 보면 목적이 불분명하거나 중복된 회사가 숱하다. 이곳은 낙하산 인사의 소굴이기도 하다. 사원이나 임원 수가 비슷한 회사도 있다.

    NHK는 공중파 2개 채널을 무료로 운영하고 있다. 이와 별도로 BS1, 2 방송과 BS하이비전은 유료로 운영하고 있다. 디지털 다채널 시대, 위성시대, 방송시장의 개방 흐름에 맞춰 민간방송사의 경쟁력을 강화해야 할 시기에 NHK가 수신료라는 안정적 수입을 토대로 민간 영역을 침범하는 데 대한 비판도 높다. 불공정 경쟁을 할 바에야 차라리 NHK를 민영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현재 수신료 액수를 그대로 월별 유료시청료로 전환하면 민영화 이후 재정도 크게 걱정할 것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 집권세력은 기를 쓰고 막고 나설 일이다. 그러나 ‘공영방송’의 영역이 언제까지 변화의 예외지대로 남아 있을지 의문이다. 일본에서는 철도 전화 분야에 이어 현재 우정부문 민영화가 진행되고 있다.

    공영방송 NHK의 민영화론까지 등장하는 일본에 비하면 한국의 상황은 시대를 거꾸로 가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공영방송 취지를 착각하고 있거나, 혹은 전적으로 무시하며 공영방송을 집권 다수당의 이념과 가치를 국민에게 선전 전파하는 수단이나 도구로 여기고 있지 않나 하는 의구심마저 생기게 할 때도 있다.

    언론과 권력의 오랜 관계를 살펴볼 때 ‘사상의 자유시장’이란 언론의 존재 목적은 특정 시기를 지배했던 ‘올바른’ 역사관이나 이데올로기보다 더 보편적인 가치다. ‘국민의 방송’을 ‘정권의 방송’이 되지 않도록 지키는 최후의 파수꾼은 소수 언론인이나 정부 관계부처 공무원, 정치인의 몫이 아니다. 그것은 현명한 다수의 시청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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