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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리포트

일본열도 뒤흔드는 ‘NHK 왕국’ 비리

제작비 횡령, 비자금 조성, 연금특혜, 기업 돈 뜯기로 불명예 자초

  • 글: 조헌주 동아일보 도쿄 특파원 hanscho@donga.com

일본열도 뒤흔드는 ‘NHK 왕국’ 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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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5700명의 지역 스태프 가운데 이 노조에 가입한 사람은 200명 정도. 이들은 NHK와 위임계약을 맺고 수신료 징수 업무를 맡고 있다. 징수한 수신료 중 일부를 수입으로 삼는다. 수신료 노조는 이 노조 외에도 약 3100명이 가입한 ‘일본방송협회 수금 노조’, 약 100명이 가입한 ‘일본방송협회 스태프 조합’이 있다.

‘물타기 영수증’으로 회계 부정

이들 수금원이 NHK 회장 사퇴를 요구하고 나선 것은 NHK 사원 비리가 잇따라 사회문제화되면서 7월 하순부터 2개월간 약 1만7000건의 계약해지, 즉 수신료 납부 거부가 이어진 데 따른 위기감 때문이다. 그만큼 수신료 징수가 줄고 이는 곧 보수의 감소로 직결되는 것이다.

1993년에도 직원 비리가 터지면서 시청료 납부 거부 움직임이 거세져 한때 시청료 징수율이 74%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현재의 징수율은 평균 82%대로 알려졌다. 시청료 납부를 거부하는 가구가 갈수록 늘어날 기미가 보이자 수금원들이 급기야 회장 사임을 요구하기에 이른 것이다. NHK 조직 내부는 에비정일 체제에 순응, 모두들 당근을 입에 물고 있어서인지 퇴임 요구는 없다. 사원도 아닌 수금원들의 소규모 노조가 퇴임요구를 했다 해서 ‘에비정일’이 물러날 리는 없겠지만 체면은 크게 깎이고 말았다.

NHK 사원들의 추문이 언론매체를 통해 드러난 것은 올해 7월. 주간지(일본에서는 한국인이 상상하는 것보다 스트레이트 뉴스에 강하다) 폭로가 계기가 됐다. NHK는 결국 자체 감사를 실시해 그 결과를 공개했다.



NHK의 연말 최고 인기 프로그램인 ‘가요홍백전’을 비롯해 연예 프로그램을 오랫동안 담당해온 한 고참 PD가 방송제작을 외부에 맡기면서 제작비를 절반 정도 가로채온 것으로 드러났다. 그는 외부 회사에 프로그램 제작을 발주할 때 건넨 제작비 가운데 일부를 현금으로 되받거나 통장을 통해 받았다. 이렇게 챙긴 돈이 1996~2000년에만 4800만엔(약 4억8000만원)이었다.

NHK는 일단 특정 프로그램을 제작하기로 결정하면 제작회사에 선불로 제작비를 지급한다. 대개 영세한 제작사로서는 대단히 매력 있는 발주처다. 기획안이 NHK 내부 결정을 얻도록 제작사가 로비를 벌이는 건 당연한 일이다. 수주 로비에 관한 무성한 소문이 실체로 확인된 순간이었다.

이어 8월엔 1993년부터 4년간 NHK 서울지국장을 지낸 직원의 비리가 불거졌다. 그는 당시 한국에서 각종 프로그램을 제작하면서 제작사에 경비를 부풀려 신청하도록 한 다음 금액을 다 지불한 것처럼 엉터리 서류를 꾸몄다. NHK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는 제작사측은 협조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물타기 영수증’을 이용해 부당 회계 처리한 돈은 총 4400만엔(약 4억4000만원)에 이르렀다. 서울지국장 당시 그는 밤이면 서울 한남동 고급 술집을 누비며 돈을 펑펑 써대 일본매체 서울 특파원들 사이에 ‘밤의 황제’라는 별명으로 불렸다고 일본의 한 주간지는 전했다.

이런 식의 부정 회계 처리가 드러난 것은 사실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는 당시 발각돼 구두 경고를 받았다. NHK측은 부당 회계 처리한 돈의 액수가 컸는데도 경미한 처벌을 내린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실제 취재 등에 사용한 돈 가운데 영수증 처리하기 어려운 것도 있다. 그런 돈을 처리하기 위해 편법으로 한 것일 뿐 사적으로 유용한 것은 아니다.”

일단락된 것처럼 보이던 서울지국장 부정 회계 처리 문제가 다시 도마에 오른 것엔 이유가 있었다. 그가 최근 또 다시 NHK 서울지국장으로 부임한 것이다. 사내에서 은근슬쩍 처리됐지만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일이다. 귀국 후 그는 취재 일선에서 벗어나 연구소 연구원 신분으로 일종의 ‘징계’를 받은 것처럼 보였다. 그런 그가 슬며시 서울지국장으로 다시 부임하게 되니 기자 조직 내부에서조차 반발이 일어났을 것쯤은 쉽게 상상할 수 있다.

일본 언론계 소식통들은 과거 NHK의 해외지국, 특히 씀씀이가 큰 일부 지국은 NHK 간부들의 비자금 조달 창구 노릇을 했다고 전한다. 해외지사, 지국에 대해서는 본사가 직접 감사하기 곤란한 측면을 이용했다는 것. 서울지국장이 거액의 회계 부정에도 불구하고 사내 징계위원회조차 열리지 않고, 솜방망이 징계로 끝나고 만 것도 비자금과 연관이 있다는 것이다. 지국장이 개인적으로 쓴 돈도 있겠지만 그 자금의 대부분이 임원 출장 등을 위해 마련된 일종의 사내 비자금이었기에 관대하게 처분할 수밖에 없었고 다시 명예회복을 시켜 서울지국장에 재부임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NHK에 대한 불만이 터지며 여기저기서 사원 비리 폭로가 잇따랐다. 그러자 NHK는 1997년부터 2001년 사이 직원 4명이 총 970만엔(약 9700만원)의 공금을 착복한 것으로 드러나 전원 면직처분한 사실을 뒤늦게 발표했다. NHK측은 이들이 착복한 금액을 모두 반납해 형사고소는 하지 않았으며 처분은 2001년 말 모두 끝났다고 밝혔다. 제 집 식구에게는 한없이 관대한 관료 체질을 드러낸 것이라는 비난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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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조헌주 동아일보 도쿄 특파원 hans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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