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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서양 근현대사 흥미롭게 깊이 읽기 ‘뉴턴에서 조지 오웰까지’

  • 글: 조한욱 한국교원대 교수·서양사상사 hocho@knue.ac.kr

서양 근현대사 흥미롭게 깊이 읽기 ‘뉴턴에서 조지 오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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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난 비용이 들어간 이 교육 방식을 통해 당시 각국 귀족계급들 사이에 공통의 행동 규범과 연대 의식이 생겨났다. 이 그랜드 투어를 통해 귀족 자제들은 예술에 대한 안목과 감식력을 높이고 교양과 지식을 넓혔다.

이 같은 17세기 네덜란드의 번영과 표트르 대제의 여행, 귀족층 자제의 유럽 그랜드 투어에 대한 설명은 보통의 개설서에서는 간략하게 소개되거나 혹은 전혀 언급되지 않는 내용이다.

반면 웬만한 역사서라면 자세하게 다뤘을 주제인 계몽주의와 로만주의에 대한 설명은 의외로 간단하다. 구체적인 한 인물이나 개별 사건이 계몽주의나 로만주의 같은 거대한 사상적 조류와 함께 주제로 선정된 것부터 불균형적이지만 그 서술의 심도에서는 더 큰 불균형이 나타난 것이다.

70년대 유럽 지성계 풍토 엿보기

이 책의 다른 면에서도 불균형이 감지된다. 예컨대 과학사의 거목인 뉴턴과 다윈에 대한 서술은 두 위인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이룩한 업적을 충실하게 압축 표현한다. 만유인력의 발견과 ‘프린키피아’ 출판의 의미는 뉴턴이 살던 시대의 업적이지만 그 중요성은 결코 한 시대에 국한되지 않는다. 진화와 관련된 이론을 확립시킨 다윈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글들은 통시대적인 중요성을 부각시킨다.



반면 “우리 시대에 계몽주의는 어떤 의미를 갖는가?”라는 한 장절의 제목이 시사하듯 계몽주의와 트로츠키, 조지 오웰을 다룬 부분이 실린 것은 이 책의 원본이 출판된 시기에 그 인물들과 사상이 새롭게 부각됐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그 장절을 읽으며 계몽주의와 트로츠키, 조지 오웰에 대한 지식을 얻게 되는 것은 물론 이 책이 처음 출판되었던 1970년대 초반의 지적 풍토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역사는 시대에 따라 다시 씌어진다. 시대마다 역사로부터 요구하는 것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정하는 주제가 바뀌기도 하고, 주제에 접근하고 서술하는 방식이 달라지기도 한다. 따라서 책을 출판할 때는 초판의 출판 시기를 분명하게 밝혀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의 번역본에서 몇 년도에 발간된 판본을 이용했는지 밝히지 않은 것은 잘못된 일이다. 독자는 이 책의 원본이 최근에 발간된 것으로 오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책을 읽으며 17세기부터 20세기 초반까지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서양사의 드라마에 감명받음과 동시에 1970년대 초반 유럽 지성계의 흐름을 추측해보는 이중적인 즐거움을 차단당하게 된다.

‘서양 문명의 전망’이라는 원제는 다소 거창한 측면이 있지만 다양하고 방대한 주제에 대한 흥미로운 서술이 제목을 어느 정도 정당화해준다. 하지만 지금의 역사학계는 이 책이 다룬 여러 주제에 대해 세부적으로 더 많은 연구 성과를 축적했기 때문에 그것은 어느 정도 ‘오래된’ 전망이다. 역사학을 전공하는 사람은 이 책이 제공하는 정보보다 더 새로운 정보를 찾아봐야 할 것이다.

방대한 주제, 흥미로운 서술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의 중요성이 감소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처음 출간될 당시, 즉 지금보다 한 세대 이전에는 더 깊고 더 넓게 역사와 문명을 내다보는 대가가 많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역사학이 전문화되고 세분화되었지만 일반 대중이 역사학에서 진정 원하는 것은 세분화보다는 대가에게서 얻을 수 있는 광범위한 안목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의 가치는 충분하다.

각 장 끝에는 독자가 본문의 내용을 이해하기 쉽게 상세한 주를 달았다. 옮긴이의 세심한 배려가 엿보이는 부분이다.

한 가지 유감스러운 점은 몇몇 같은 지명이나 인명이 장마다 다르게 표기된 것이다. 예컨대 ‘튜린’과 ‘토리노’, ‘사보이’와 ‘사브’ 표기가 공존하고 있다. 재판(再版)에서는 더욱 꼼꼼한 편집 작업이 이루어지길 기대한다.

신동아 2004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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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조한욱 한국교원대 교수·서양사상사 hocho@knue.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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